바이오로이드는 이론상 인간을 멸망시킨 모든 병에서 자유로웠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전파 경로도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그 새로운 병 - 질병이 맞다면 - 이 바이오로이드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에 걸린 바이오로이드는, 겉보기에 달라지는 점이 없지만, 감염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버린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병이 돌 수가 있지? 바이오로이드는 보통 인간하고 다르지 않았어?"


"……아무리 휩노스 병에서 자유롭다 해도, 그게 다른 병에도 유효하리란 법은 없으니까."


죽은 브라우니 하나의 뇌를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닥터가 말했다.


해당 병에 감염된 브라우니의 뇌는 전두엽과 대뇌 피질이 변형되어 있었다.


그 단면을 보자 사령관은 피부에 소름이 돋아났다. 괜히 몸이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비밀 요원인 에이미나 시라유리 등으로부터도 보고가 이어졌다.


"현재로서는 어떻게 감염되는지도, 그리고 어디서 발생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치료법도 당연히 알 수 없고요."


감염된 바이오로이드는 원래의 자신과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무표정하고 딱딱한 움직임으로 동료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기계가 된 것처럼.


심지어 발병 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기지 안에 들어와 다른 동료까지 살해하려고 들었다.


지금 보고하는 이 시라유리조차, 친구 '토모'의 기습에 의해 팔에 총격을 당했었다.


시라유리는, 직접 체험한 감염자의 특성을 보고하면서도, 자기 활로 토모를 죽여야 했던 일을 떠올리고 몸서리를 쳤다.


이것은 병의 위중함을 떠나 사령관에게 더없는 위기라 할 만했다.


충성심 강한 바이오로이드가 이렇게 감염당한다면, 사령관이 믿을 만한 구석은 이제 소수의 AGS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서 언제 감염자가 생길지 몰라요. 일단은 외부 작전 중이던 대원들을 모두 귀환시키고 뇌 검사 중입니다."


부사령관 라비아타가 심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조치를 해봤자, 뭐든 간에 어떻게 예방해야 될지 - 그리고 어떻게 치료할지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보고가 끝나고 사령관이 우울한 표정으로 있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병 말야. 인간한테도 걸릴까?"


순간 회의장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오르카호의 주인이자 관리자이고, 지구상 유일한 인간인 사령관이 그 병에 감염된다면 인류와 저항군은 그날로 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괴질병의 특성으로 보아 그가 감염된다면 검사하거나 치료할 의미도 없어질 것이다. 비서 콘스탄챠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 그런 무서운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알아. 해본 소리야."


하지만 인간인 사령관이라고 감염되지 않는단 보장이 없는 게 문제였다.



* * *



병의 전파는 날이 갈수록 빨라졌다.


잠수함 내부에서 외부 감염 요소를 최대한 차단해 놨지만,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느닷없이 감염자가 발생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아예 죽거나 고통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며칠 만에 사람 자체가 바뀌어 버린다.


아무리 용감한 바이오로이드라도, 내가 나로 있을 수 없게 된다는 것만은 두려운 일이었다.


불확실한 감염 경로만 보면 인간을 멸망시킨 휩노스 병과 흡사했다. 단지 이제는 바이오로이드가 무차별적으로 감염되고 있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오르카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혼자서 다니고 혼자서 생활하는 규칙이 마련되었다. 혹시나 모를 전염과 감염자로 인한 피해 차단을 위해서였다.


폐쇄된 잠수함 안에서 배신이라도 당한다면 살아나기 힘들다. 그런데 누가 감염자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어느 날 별안간 옆의 동료가 자신을 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로부터 대원들의 상호 불신과 경계는 심해져만 갔다.


친하게 지내던 이들끼리도 별안간 총질을 하거나 사냥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많은 부대는, 자기네 구역에 허가받지 않고 들어올 경우 발포한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물자 부족까지 일어났다.


외부로부터의 감염 방지를 위해서 외출이 제한된 것이 원인이었다. 많은 인원들이 잠수함 안에서만 머무르다보니 전보다도 빠르게 보급품과 식량이 줄어드는 것이었다.


"너희 쪽 분대가 우리 참치캔 가져갔다며? 내놔."


"증거 있어? 있어도 안 주겠지만."


"뭐라고?!"


잠수함 내부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웃거나 즐겼을 해프닝도 이제는 큰 싸움으로 번졌다.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남은 건 서로가 첨예하게 경계하고, 어느 날 돌변해서 동료를 죽인 댓가로 죽는 것 뿐이었다.


아니면 감염자로서 실컷 날뛰던 끝에 자살해버리던가.


보급품을 구해온다는 핑계로 탈주하는 인원들도 적지 않게 생겨났다.


AGS또한 감염자로부터 예외는 아니었다. 로봇이 아무리 강한들, 로봇을 정비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감염되어 사보타주하는 데엔 손쓸 도리가 없었다.


곧 램파트나 알바트로스같은 정예 로봇 병력의 가동률이 극히 저하되었다.


한편, 사령관은 감염을 차단할 수 있도록, 점점 휘하 바이오로이드와 만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보고를 하러 올 때도, 사령관을 만나는 대신 측근을 통해서 전달했다. 그리고 소수의 측근만이 사령관을 접견할 자격을 얻었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은 그 몇 안되는 바이오로이드 중 하나였다.


저항군 부사령관이기도 했지만, 가장 뛰어난 면역력으로 병에서도 자유롭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령관이 틀어박힌 지도 오랜 시일이 지난 어느 날, 라비아타가 직접 현황 보고를 하러 왔다.


일일 보고도 이쯤에선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어 있었으니 라비아타로서도 사령관을 일주일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가벼운 외견 테스트를 받고 함장실에 들어선 라비아타는 그간 모은 정보와 의견을 전달했다.


"수고했어."


"별 말씀을. 저보단 주인님이 더 걱정되요. 이러다간 저희도 여기서 전멸일 텐데."


이미 사태는 심각하여, 전 병력의 삼분의 일이 감염자가 되며 서로를 죽여 나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폐쇄된 오르카호 내부는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가실 날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사령관은 어두운 얼굴로 뇌까렸다.


"차라리 아예 지상으로 나가면 그나마 덜 답답하려나."


"그랬다간 철충들이 가만 있지 않겠죠."


라비아타는 농담조로 말했지만, 육지로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검토한 지 오래였다.


철충에게 죽느냐, 병에 걸려 자멸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허나 지상에 있다고 이 감염에서 피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탈주한 인원 중에서도 자기네끼리 살인을 벌이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니.


이어서 라비아타가 보고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때였다. 사령관이 불쑥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저기. 오늘은 좀 있다 가. 어차피 당장 출격도 없고."


라비아타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언제나 혼자 있어야 하는 사령관이었다. 얼마나 외롭고 두려우셨을까. 라비아타는 금새 기쁜 빛을 띠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사랑과 믿음을 받기 원한다. 감염자가 판치는 이 상황에서, 아지트에 그녀를 머물게 한다는 건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만약을 대비해 무장을 벗고 오길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시중 드는 분위기가 깨질지도 모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제가 지켜드릴 테니까."


그날은 별 일 없이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날, 사령관은 시선을 느끼고 깨어났다.


곁에 누워 있던 라비아타가 먼저 일어나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비아타?"


라비아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사령관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사령관은 라비아타가 주먹을 쳐들자마자 급히 뒹굴어 피했다. 라비아타의 주먹이 단숨에 배개를 찢어 발겼다.


"라비아타! 이게 무슨 짓......."


그녀는 천천히, 딱딱하게 말 없이 사령관을 무표정하게 돌아보았다.


사령관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모습은 분명 감염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라비아타까지?


사령관이 황급히 라비아타에게서 도망치려고 등을 돌렸다. 그러나 라비아타가 먼저 사령관의 뒷덜미를 잡아채 던져 버렸다.


사령관은 붕 날아가 선실 벽에 처박혔다.


그가 아무리 강화된 육체라도, 최강의 바이오로이드에게 저항할 도리란 만무하다.


무력하게 쓰러진 그를 향해 라비아타가 무표정하게 걸어왔다.


"제발……."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신음하며 바닥을 뒹구는데, 라비아타가 사령관의 목을 잡아서 들어올렸다.


어제만 해도 충성스럽던 부사령관이 깨어나자마자  그를 죽이려고 들었다. 그는 눈을 까뒤집고 버둥거렸다. 그녀의 손아귀 힘에 숨이 턱 막혀왔다.


이어서 라비아타가 주먹을 쥐고 사령관의 머리를 터뜨리기 바로 직전이었다.


일순간, 폭발음과 함께 라비아타의 머리에 휑한 구멍이 두어 개 뚫리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동시에 사령관을 조르던 손목을 누군가가 베고 지나갔다. 덕분에 그는 라비아타의 손아귀 힘에서 해방되었다.


겨우 바라보니 콘스탄챠와 리리스가 든 총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손목을 자른 건 페로의 장갑에 달린 단분자 클로였다.


사령관을 호위하던 측근들이 직접 라비아타, 아니, 감염자를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라비아타는 모두의 큰언니였던 관계로, 측근들 또한 놀라고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라비아타의 자매인 콘스탄챠는 울고 있었다. 사령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언니를 제손으로 죽이다니. 차분한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총을 거둔 콘스탄챠는 가만히 떨다가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사령관도 라비아타의 시신에 엎드렸다. 아무리 죽을 뻔했다지만, 그녀의 죽음엔 그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야말로 사령관의 은인이었다.


처음에 병사들을 불러 모아서 저항군을 조직하고, 이 오르카호를 개조토록 하고, 몇십년 동안 저항군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녀가 이렇게 허망하도록 긴 삶을 마칠 줄은 몰랐다.



* * *



그날 이후 오르카호, 정확히 말하면 사령관의 방비는 더욱 철저해졌다.


AGS로봇은 이젠 가동 불능에 빠져서 그를 안심하고 경호할 이가 없었다. 앞으로 바이오로이드 대원이 사령관을 만나려면 아예 뇌 단면 촬영같은 복잡한 절차를 지켜야 했다.


그동안 오르카호의 파탄은 극에 달했다. 전체 병력의 반수 이상이 감염자가 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서로 감염자가 아닌지 의심하느라 유혈 분쟁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쯤 되자 사령관의 존재 따위는 아무래도 좋게 되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은 핑계조차 대지 않고 앞다퉈 도망가거나 자살했다.


감염을 당하느니 자기 손이나 철충한테 죽는 게 차라리 낫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오르카호 군 조직은 거의 붕괴된 지 오래였던 것이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피 냄새가 나는 통로를 콘스탄챠가 조용히 걸어갔다.


예전에는 제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이 정도로 어렵진 않았다. 어떤 무서운 철충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옮아온 지 모를 병 때문에 단단하던 오르카호의 결속이 완전히 무너지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라비아타마저 허무하게 죽었다. 다른 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령관도 라비아타가 죽은 뒤로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침울해졌다. 측근들조차 이제는 그를 거의 만나지 못하는 판이었다.


브리핑을 하러 간만에 찾아온 콘스탄챠는, 사령관에게 오르카호의 현황과 바깥 정보를 알려주었다.


사령관은 보고를 받는 동안 등을 돌린 채 아무런 대답도 아니했다.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이제까지 겪은 가장 비참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울 터였다.


그런 주인님- 아니, 사랑하는 이를 보고, 콘스탄챠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주인님. 힘내세요. 이제껏 제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버텨내 왔잖아요? 이번에도…… 이번에도 분명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주인님이라면."


그녀는 이 일련의 사태 동안 이런 말만은 해 주고 싶었다.


"라비아타 언니의 일은 슬프지만…… 우리는 딛고 이겨내야 해요."


감염된 라비아타를 제 손으로 죽인 죄책감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사령관에게 더 이상 슬픈 모습을 보여선 안 되었다. 콘스탄챠는 이를 악물고 다짐해 왔다.


주인님의 용기를 북돋는 일이 메이드의 의무니까.


그때, 콘스탄챠를 등지고 서 있던 사령관이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일?"


콘스탄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사령관의 얼굴은 창백하고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콘스탄챠를 향해 권총을 들이댄 다음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전혀 뜻밖의 총격을 당한 콘스탄챠는, 피하지도 못한 채 머리 반쪽이 날아갔다. 의식이 급속도로 멀어졌다.


(주인님…… 감염이…… )


흐려져 가는 망막에, 놀라서 뛰어들어오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마저 사살당하는 모습이 비쳤다.


사령관의 손으로.


측근 둘을 사살한 그는 무표정하게 권총을 자기 관자놀이에 대었다.


이때, 그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은 우연히 눈물샘에 저장되어 있던 마지막 점액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한 조각 남은 의지가 흘린 한 방울이었을까.


그것은 총성과 더불어 아무도 모를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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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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