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부르는 미사일 구출 대작전

 

"전략 물자가 부족해.."

볼펜을 딸깍거리며 메이는 말을 꺼냈다항상 당당하고 고압적인 말투를 유지하던 그녀는 줄어가는 미사일만큼 자신감도 줄어들었는지 의기소침한 얼굴이었다.

"섬에서의 생산량으로 감당이 안 되는 거야?"

여름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하게 된 그녀를 시샘이 살짝 담긴 눈으로 쳐다보던 레오나가 말했다.구조된 바이오로이드가 늘어나면서 요안나가 맡은 섬에 생산인력이 늘어나 순조롭게 개발이 이루어지는 줄 알고 있던 그녀였기에 메이의 발언은 예상외였다.

"인력이랑 기술이 있으면 뭐 해원자재가 없는데.. 이래서는 작전 시 충분한 공중지원을 해줄 수가 없어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물자도 정말 간당간당 하다고."

"근처에 확보할 만한 미사일 저장소는 없을까?"

"딱히 생각나는 곳은 없는데.."

난감한 일이었다공중지원이 없는 전투는 희생자를 늘리게 될 것이다필요 이상의 희생을 늘리고 싶진 않았다관자놀이 부근을 손가락으로 긁던 사령관은 떠오른 게 있는지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로크랑 통신을 연결해줘."

키가 5미터나 되는 로크가 직접 들어오기에는 회의실이 작았다잠시 후 화상 화면에 로크와 그 어깨에 걸터앉아 있는 LRL이 나타났다.

"후후후인간지금 바다 위에는 이 싸이클롭스 프린세스가 소환한 태풍이란 게 불고 있노라무엇이든 찢어발기는 바람의 칼날과 꽈르르릉 울리는 뇌우 앞에 전율하거라!"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LRL의 말을 잠시 동안 들어준 뒤 사령관은 질문했다.

"로크넌 앙헬의 바로 곁에서 일했으니 블랙리버의 비밀기지라던가 전략물자에 대한 정보 같은 걸 알고 있을 거 같은데."

"후후각하앙헬 공은 저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셨습니다저는 그분의 수족으로써 온갖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저의 능력을 생각하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저는 하늘의 지배자 로크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는 게 있냐고!"

늘어나는 로크의 말이 짜증 났는지 메이가 말을 끊고 나섰다.

로크의 붉은 시각 센서가 메이를 향했다. AGS라 감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짜증이 난 듯한 느낌이었다.

"각하와 대화 중인데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암컷."

"이 개자식이!"

"난 AGS그런 것도 못 알아보나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암컷이 아니라 암캐인 모양이군."

"암캐하치꼬?"

화면 너머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LRL이 보이고 바로 옆에는 새빨개진 얼굴로 얼마나 큰 소리를 지르려는지 힘껏 숨을 들이마시는 메이가 보였다그녀가 험한 말을 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애들은 금방 보고 배우니까그리고 암캐가 하치코라니 설마..들었나이런 생각을 하며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소리를 지를 타이밍을 놓쳤는지 작은 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사령관은 대화를 이어갔다.

"자자메이이쯤하고로크 아는 게 있어?"

"송구스럽지만 저는 대외활동을 주로 하였기 때문에 적대 기업이었던 삼안쪽에 대한 정보는 있지만블랙리버에 대해서는.."

"그럼 삼안 기업에 관한 정보 중에 미사일에 관련된 게 있나?"

"저와 오르카 호의 데이터베이스를 GPS와 연동해 살펴보겠습니다."

"삼안쪽 미사일이라도 상관없지?"

"호환 안 되는 것도 좀 있긴 하지만 닥터에게 부탁해야지."

분이 덜 풀렸기 때문인지 사령관의 손길 때문인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메이는 대답 했다볼펜을 딸깍거리던 소리도 멈추고 회의실은 사령관이 메이를 머리를 쓰다듬는 소리만 작게 울려 퍼졌다정색하고 그 광경을 쳐다보던 레오나는 파일을 소리 나게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는 끝났으니 나가볼게사령관."

"그래수고했어 레오나."

"이 근처 상원 지역에 삼안디펜스가 있군요삼안의 방위산업체인데 미사일 생산을 주로 하던 기업입니다. 2차 연합전쟁 때 포세이돈의 해상전력에 최후를 맞았지만 저는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저는 하늘뿐만이 아니라 심연의 지식마저도 가지고 있는.. 후후.."

"그 비밀이 뭔데?"

"바로 삼안디펜스 지하에 엄청난 양의 미사일이 저장되어있는 벙커가 있다는 것입니다. 1차 연합전쟁 전부터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더군요.

정부에 들키지 않으려고 철저히 보안을 지켰겠지만 앙헬 공의 눈에서 벗어날 순 없었습니다."

"왜 블랙리버는 그 저장소를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은 거지?"

"그 시절엔 미사일 같은 건 썩어 넘쳤습니다굳이 호환도 제대로 되지 않는 미사일을 개조해서 사용할 필요는 없었습니다발사대까지 구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을 당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잊혔다는 점이 참 얄궂게 됐군요그 이후로 변화가 있나 싶어 오르카 호의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봤는데 아직 그대로인 거 같습니다사소한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이런 타이밍에 나오는 문제는 사소하지 않던데."

"인간의 뇌파를 이용해 방화벽을 해제해야 합니다.”

"그건 너무 위험해!"

고양이처럼 얌전히 쓰다듬을 즐기고 있던 메이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빼액 질렀다세상에서 하나뿐인 인간이다그뿐만은 아니지만 사소한 위험에도 처하게 둘 수는 없었다.

"미쳤어사령관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령관이라고절대 위험에 처하게 둘 수 없어."

"그 엄청난 양이란 게 어느 정도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저장고의 다섯 배는 될 겁니다."

다섯 배면 작은 나라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정도의 양이었다그런 걸 공장 지하에 보관했다고멸망 전 인류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군.

"작전 규모가 커지겠군저장소를 확보한다고 해도 운반이 문제인데."

"운반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그렇지 않나?"

로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볼펜을 딸깍거리던 메이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기 시작했다자신이 괜한 말을 꺼내서 사령관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돌아버릴 노릇이었다그런 메이의 모습을 본 그는 서 있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가볍게 메이를 무릎에 앉힌 사령관은 메이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느끼며 꼬옥 껴안았다은은한 샴푸 냄새가 코에 닿았다목덜미의 입술을 가져댄 사령관은 빠르게 뛰고 있는 메이의 맥박을 느꼈다.

"말해봐메이"

사령관의 따듯한 품에 안긴 채 한참을 망설이던 메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발사대가 있으면 육상으로 운반할 필요 없이 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뒤 회수해버리면 되긴 해.."

"그럼 굳이 상륙작전을 펼칠 이유 없이팀을 꾸려서 해결할 수 있겠군."

"그러나 각하데이터베이스를 살펴보니 철충들의 밀도가 매우 높습니다물론 전장의 사신이자 하늘의 지배자인 제가 함께한다면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오르카 호의 데이터베이스에 연동된 상태랬지상원과 그 주변 지역의 철충 분포에 대한 가장 최신 데이터를 화면에 띄워봐,"

화면 가득히 빨간색의 점들이 가득 찼다눈이 아플 정도로 점멸하는 빨간 점들에 사령관이 잠시 주춤하자 품에 안겨있던 메이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아까까지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이런 엄청난 수의 철충을 뚫을만한 팀은 꾸릴 수 없어 사령관어찌어찌 돌파해 미사일을 확보한다 해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거야."

최대한 상원과 가까운 지역까지 다가가 부상한 뒤 로크와 다른 팀원들그리고 자신이 삼안디펜스까지 도달해 바로 미사일을 발사시킨다고 해도 최소 1시간은 걸릴 것이다상원지역의 대공 시스템을 돌파한다고 쳐도 돌아갈 때는 주변 지역의 대공망과 연계되어 아무리 로크라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천라지망이 형성될 것이 뻔했다주변 지역의 대공망만이라도 어떻게 할 수 있다면.. 한숨을 푹 쉬자 메이의 머리카락이 뺨을 간지럽혔다이야기가 길어져서인지 LRL는 로크의 어깨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LRL이 아까 뭐라고 했었지?

"레아를 회의실로 호출해줘.”

"사령관?"

뜬금없이 레아를 호출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메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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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요?"

모모와 마법 소녀 매지컬 모모를 시청하다 갑작스레 회의실에 불려온 레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대규모 작전이라기엔 회의에 참여한 인원이 너무 적었다회의실에는 화상 화면에 떠 있는 로크와 심각한 표정으로 사령관에게 안겨 있는 메이뿐이었다.

"지금 상공위에 있는 태풍을 상원지역까지 조종할 수 있을까코어 링크든지 뭐든지 필요한 지원은 아낌없이 해줄게"

"어느 정도 규모의 태풍을 원하시나요?"

"상원 시와 그 앞바다까지 태풍의 눈 안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태풍이었으면 좋겠어위력은 강할수록 좋고주변지역 철충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없어야 해"

"지금 상공 위에 있는 태풍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로크."

화면에 나타난 태풍의 데이터를 보고 손톱을 깨물며 계산을 하던 레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풀 링크 상태에서 오르카 호의 전력과 네오딤의 보조를 받으면 카테고리 정도의 태풍은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아요충분한 수증기를 모으려면 바로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할 거야 사령관?"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메이가 말했다여전히 불안한지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위험한 일이지만 로크가 말한 대로의 미사일이 확보된다면 지금까지 주로 사용하던 정밀 타격뿐만이 아닌 다양한 전술이 가능해질 것이다그렇게만 된다면 숙원이던 대륙으로의 진출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기에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래레아 포츈과 닥터에 연락해 당장 작업을 시작하도록 해그리고 메이지휘관들을 모두 소집해줘지금부터 팀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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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회의실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각 부대의 지휘관부관들이 모여 저마다 한마디씩 하느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상륙작전을 하자는 마리호라이즌의 함포 전력으로 도시를 박살 내며 길을 뚫자는 세이렌회의실 한쪽에서 뭔가 말을 하고 싶은지 손을 꼼지락거리는 팬텀.

"상륙작전을 하기엔 철충의 지상전력이 너무 많아그리고 레아도 태풍을 천년만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이 작전은 속도가 중요해빠르게 회수하고 주변 지역에서 철충들이 몰려오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스틸라인의 항공전력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내가 다 박살 내줄게"

손을 들어 질문하는 피닉스에 발언에 사령관은 설명을 덧붙였다.

"상원 시의 대공 시스템은 수가 어마어마해그거 다 처리하는데 한세월이 걸릴 거야하지만 시스템 자체는 상당히 노후한 장비이니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속도가 빠른 로크를 활용하는 게 맞다내가 직접 가는 건 확정된 거야그렇게 알고 더는 토 달지 마함께할 팀원을 뽑는 데 집중하자고어떤 인력이 필요할까 로크?"

"일단 방화벽을 뚫을 인원이 있어야겠지요."

"그럼 일단 스카디는 필수겠군몇 명까지 나를 수 있겠어?"

"각하까지 포함해서 네 명 정도라면 제 능력을 발휘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하지만 되도록 가벼운 바이오로이드면 좋겠군요."

"마리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수거할 브라우니를 지휘해야 하니까.."

"각하그런 위험한 곳일수록 제가 필요할 겁니다제가 사령관님을 안전하게.."

화면에 떠 있는 마리의 사진을 클릭해 엑스 표를 띄우자 그녀는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눈 색깔까지 변하며 반론했다옆에 앉아있던 리리스는 정전기로 인해 살짝 일어나는 흰색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그런 마리를 비웃었다.

"경호 쪽은 당연히 제가 가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저는 가벼울뿐더러 여기 모인 바이오로이드 중 실내 전투에서 저보다 강한 사람은 없잖아요?"

리리스의 도발에 마리보다 먼저 반응한 건 칸이었다평소 회의에서도 할 말만 하고 별다른 잡담을 하지 않는 그녀는 보기 드물게 리리스의 발언을 반박하고 나섰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경호 대장그대의 능력이 뛰어난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식의 말투는 반감만 불러일으킨다."

차분한 칸의 지적에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리리스는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꼬며 입술을 내밀었다지휘관 중에서 칸은 왜인지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사선을 헤치면서 지내온 그녀의 행동과 말에는 여유와 함께 포용력이 묻어 나와서인지 리리스는 유독 칸에게는 약했다입이 댓 발은 나와 있는 리리스의 보기 드문 모습에 사령관은 슬쩍 미소지었다.

"물론 리리스도 데려갈 거야그럼 남은 한 명을 누구로 하느냐가 문제인데.."

사령관이 말끝을 흐리자 회의실에 모여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기대의 눈빛을 반짝였다위험한 작전이기도 했지만항상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령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누구나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런 바이오로이드들을 천천히 훑어보며 사령관은 생각에 잠겼다리리스가 처리하기 까다로운 중장 타입의 철충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하고진입로를 확보할 수 있고 유사시 로크나 스카디에게 전력을 빌려줄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

"불가사리."

"?"

회의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몰래 오물거리며 도넛을 먹던 불가사리는 갑작스러운 호명과 함께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얼굴을 붉혔다입가에서 빛나는 설탕 결정들을 다급히 손으로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불가사리는 입에 남아 있는 도넛을 꿀꺽 삼켰다.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지?"

"52… 아니 53kg 정도 되니까 장비까지 포함하면 70kg 조금 넘을 거야."

"가능한가 로크?"

"각하와 팀원들을 실을 케이지 무게까지 고려해도 충분합니다준비하도록 할까요?"

"그래케이지도 나노 카본을 사용해서 최대한 경량화를 하도록 하지.

불가사리 너도 닥터에게 가서 최대한 장비의 경량화를 요청해작전 일정이 나오는 데로 통보할게."

"다이어트도 할게!"

예상치 않던 선발에 기뻐하며 불가사리는 회의실을 뛰쳐나갔다시기와 선망의 눈빛들이 그 뒤를 따랐다사령관은 손뼉을 치며 주위를 환기했다.

"그럼 자세한 작전 계획을 짜보도록 하자."

--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어?"

"조금 있으면 태풍의 경로를 조절해야 해서 부상할 텐데그때부터 시작이랍니다."

화상 화면에는 몸에 여러 가지 장치를 붙인 레아가 나타나 있었다풀 링크를 한 상태에다 몸 여기저기에 꽂혀있는 케이블에서 전력을 공급 받는 레아는 새어 나오는 정전기 때문인지 풍성한 머릿결을 질끈 묶고 있었다오랜만에 제대로 된 힘을 쓰는 레아는 흥분했는지 살짝 홍조를 띠고 있었다

"네오딤레아의 보조를 잘 부탁해."

"걱정 마사령관."

레아의 뒤쪽에서 마찬가지로 케이블을 단 네오딤이 대답했다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옅은 미소를 사령관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미소로 화답한 그는 발걸음을 옮겨 회의실로 향했다.

"진입 방법은?"

"슬레이프니르의 도움을 받아 상원 시의 대공 시스템을 유인할 겁니다그녀가 저공비행으로 철충들의 시선을 끔과 동시에 저는 각하가 담긴 케이지를 발톱으로 움켜잡고 30km 상공까지 급상승한 뒤 작전 지점을 향해 사선으로 강하할 겁니다강하 시의 마찰열을 버티기 위해 케이지에 특별히 열 보호 처리를 했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로크의 보고에 이어 스카디가 입을 열었다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왼쪽 전완근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다리를 꼬았다육덕진 허벅지에 사령관의 시선이 자동적으로 향했다.

"삼안의 보안 시스템에 대해 심화 학습을 좀 했어요자기웬만한 방화벽은 다 깨드릴 수 있으니 걱정 말아요."

"미사일 발사 시스템도?"

"당연하죠이 누나만 꼬옥 믿고 있으면 돼요."

"파일 드라이버의 여러 부품을 나노카본으로 교체해서 경량화시켰어그리고.. 도넛 꾹 참아서 살도 3킬로 정도 뺐어헤헤"

"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답니다주인님."

팀원들의 대답을 들은 사령관은 콘솔을 조작해 삼안 디펜스가 위치한 지역을 화면에 띄웠다.

"최우선 목표는 순항 미사일이야탄도탄은 주유가 필요해 시간이 늘어질 수도 있으니 여차하면 버리도록 한다앞으로 24시간 후 작전지역에 도착하면 다시 모이도록 하지그동안 쉬고 있어."

--

 

레아가 이끄는 태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했던 장소에 멈춰 섰다태풍의 눈에서 부상한 채 이동한 오르카 호도 철충과의 교전을 피하고 미사일 회수에 필요한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항구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태풍의 눈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았다함교는 혹시나 모를 철충의 공격에서 레아를 보호하기 위해 세이렌과 호라이즌 병력이 무기를 방열하느라 분주했다그 중심에서 태풍을 조종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도잠도 취하지 못한 레아는 힘겨워 보였다언제나 단정했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눈 밑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발에 걸리는 전력 케이블을 피해 레아에게 다가간 사령관은 고개를 숙였다레아의 거친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돌아오면 레아부터 안아줄 테니 조금만 더 버텨줘."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답니다."

사령관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지친 표정을 지우고 레아는 활짝 웃은 뒤 집중하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열중하고 있는 레아의 모습은 사령관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사령관?"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슬레이프니르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사령관은 비로소 레아에게서 눈을 뗄 수 있었다검은색과 하얀색이 조화롭게 칠해진 보디슈트는 그녀의 곡선이 다 드러나도록 감싸고 있었다슬레이프니르는 머리에 쓴 바이저가 불편한지 만지작거리면서 다가왔다.

"위험한 임무인데 조심해땡컨"

"난 제비라구!!!"

항상 같은 반응에 낄낄거리며 사령관은 바이저에 끼인 머리카락을 빼내 줬다사령관의 손길에 얌전해진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있잖아..다들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믿고는 있는데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만약에 말이야위험해지면 나를 불러줘사령관만이라면 내가.."

"그럴 일 없을 거야걱정하지 마"

"그렇겠지그렇지그럼 조금 이따가 봐!"

총총 뛰어가는 슬레이니르까지 만난 사령관은 집결 장소로 향했다팀원들뿐만 아니라 품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있는 포츈도 함께였다.

"사령관이 누나는 너무 걱정되지만사령관의 선택을 존중하거든그래도 걱정되니까 여기 역장 발생기 EX랑 닥터의 뱀순이 MK2랑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방탄복도 꼭 가져갔으면 좋겠거든?"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방탄복을 입히고 오른손에는 뱀순이왼손에는 역장 발생기를 쥐여준 포츈은 사령관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포츈의 떨림이 손을 통해 느껴졌다.

"무사히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

포츈의 배웅을 받으며 케이지에 오른 사령관은 팀원들을 둘러봤다스카디는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고불가사리는 긴장됐는지 입에 넣은 사탕을 와그작거리며 씹었다바로 옆에 앉은 리리스도 오르카 호의 내부에서와는 달리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맘바 피스톨의 탄창을 점검 중이었다케이지에 설치된 작은 창 너머로 바이저를 내리는 슬레이프니르의 모습을 본 사령관을 숨을 들이마시고 큰소리로 외쳤다.

"작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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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갑판은 어두워져 있었다저 멀리 신해항에서 가끔 점멸하는 불빛들을 제외하곤 거대한 구름 벽에 둘러싸인 상원 시는 소름이 돋을 만큼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사령관의 이어폰으로 무선이 들어왔다전파 교란으로 인해 노이즈가 꽤 섞여 있었다.

"케이지 중력 보정 실시에너지 컨버터 충전 완료강습 가능."

"브레스 엔진 점화 완료출격 가능이야.

"카운트에 맞춰서 출격한다이후 모든 통신을 끊는다유미."

"카운트 시작합니다. 5.4.3."

특수 제작된 의자에 앉아 평소보다 배는 큰 앰플리파이어를 낚싯대처럼 다리 사이 위치한 구멍에 고정한 유미는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론리 크로스의 콘솔을 조작했다철충들이 사령관의 뇌파를 찾는 것을 최대한 방해하기 위하여 작전 개시와 동시에 갑판에서만 발생 중이던 전파 교란을 최대출력으로 상원시 전역에 뿌려야 했다출력을 높이기 위해 개조까지 했지만 귀신같은 철충의 뇌파탐지를 피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이 작전은 시간이 생명이었다.

"2.1."

카운트가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브레스 엔진을 충분히 예열시킨 슬레이프니르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바다를 가르고 상원 시로 쇄도했다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바닷물이 갈라졌고 이와 더불어 달걀 같은 유선형의 케이지를 발톱으로 잡은 로크는 비상했다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사령관은 가슴을 짓누르는 압력에 헛기침했다케이지는 로크의 급상승에서 사령관을 보호하기 위해 중력 보정 장치가 설치되었지만로크의 어마어마한 속도를 채 완전히 중화시키지는 못했다다른 팀원들도 생각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에 놀란 눈치였다그 압박감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다른 감각이 사령관을 덮쳤다마치 무릎 아래 다리가 사라진듯한 느낌어색한 느낌을 참고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본 상원 시는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예광탄으로 뒤덮여 있었다슬레이프니르가 시선을 끌어주고 있는 거겠지 이이이이이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급강하가 시작되었다점처럼 보이는 예광탄의 불빛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땅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발사되는 듯한 속도감이었다예광탄의 불빛을 지나 지상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로크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폈다케이지는 부드럽게 지상에 착륙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인간은 달랐다.

"난폭 운전..우웁.."

비틀거리면서 케이지에서 나온 사령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삼안디펜스 부지는 포세이돈의 포격 이후로 복구가 이뤄지지 않아 풀이 꽤 자란 평지였다얼마나 철저한 파괴였는지 그 흔한 콘크리트 골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오른쪽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는 터널 두 개가 뚫려 있었고 왼쪽으로는 수많은 공장이 늘어서 있었지만 제대로 된 형태는 하나도 없었다반쯤 허물어졌거나 지붕이 폭삭 내려앉은 등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는 그 모습은 새삼스럽게 인류의 멸망이 사실이라는 걸 일깨워주었다.

"사령관 이쪽이에요."

스카디의 부름을 듣고 사령관은 걸음을 옮기며 항구 쪽을 힐끗 쳐다봤다남쪽 하늘을 밟게 채우던 예광탄의 불빛은 북서쪽으로 향했다항구뿐만 아니라 구시가지의 대공 시스템도 유인하기 위해서겠지슬레이프니르가 무사해야 할 텐데.

벙커로 들어가는 스테이지1이랑 최종 방화벽인 스테이지4, 이 두 개는 인간의 뇌파가 필요해요자기 좀 더 가까이 와주겠어요?"

한 손에 기다란 케이블을 든 스카디는 마치 피아노를 치듯이 자신의 왼쪽 위 가슴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스카디의 가슴이 리듬감 있게 흔들렸다어느새 구호 가방에서 젤을 꺼내든 리리스가 사령관의 관자놀이에 능숙하게 젤을 도포하고 케이블을 건네받아 전극을 꽂았다.

"해킹 시작합니다."

두 손이 자유롭게 된 스카디는 무릎을 꿇고 본격적으로 온몸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터치하기 시작했다스카디의 육감적인 몸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는 웨어러블 컴퓨터들이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드러난 저장소의 입구는 가로세로 3미터 정도의 작은 크기였기에 로크가 들어오기에는 무리로 보였다.

"로크는 우리가 진입한 뒤 미사일 발사대를 열면 그곳으로 들어오도록 해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각하"

"스테이지 클리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스카디가 외쳤다저장소의 입구는 별다른 소리 없이 열렸다밑으로 향하는 불빛 하나 없는 계단은 마치 생물의 아가리 같았다.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리리스가 걸음을 옮겨 계단을 밟자 조명이 켜지며 빛이 희미하게 뿜어져 나왔다계단을 다 내려간 리리스는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일직선으로 곧게 길이 나 있습니다특별한 함정은.. 스카디?"

리리스를 따라 내려간 스카디는 벽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스캔을 통해 시설을 살펴본 스카디는 리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통로 끝을 향해 달렸다

"별다른 장치는 일단 없는 거 같아요."

불가사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온 사령관에 눈에 들어온 건 길게 뻗은 통로였다흔한 마감재도 없이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된 벽은 군데군데 전기 시설과 케이블들이 드러나 있었다등 뒤로 불가사리가 입구를 닫는 소리가 들렸다.

"실용적인 디자인이네."

리리스는 후미로 물러나 뒤를 맡았다살짝 경사진 통로의 끝에 다다른 사령관은 주저앉아 해킹에 여념이 없는 스카디에게 말을 건넸다.

"스테이지예상 시간은?"

"120초면 돼요자기."

여유 있는 목소리였지만 얼굴은 매우 진지했다입구 콘솔에 케이블을 연결한 스카디의 몸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신체 세포를 컴퓨터와 연결해 처리 속도를 늘리는 방식이라고 했던가처음 봤을 때 굉장한 옷차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스카디가 일하는 모습을 보니 납득이 되었다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령관이 손부채질을 시작하자 같이 서 있던 불가사리와 리리스도 합세했다등 뒤로 부는 미약한 바람에 잠시 작업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스카디는 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손부채질해 주는 모습에 미소 짓고 작업 속도를 올렸다.

"스테이지클리어."

예상 시간보다 일찍 문이 열렸다스테이지 3으로 가는 길은 마감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앞의 스테이지와 다르게 천장까지 금속 재질의 무언가로 덮여 있었다스카디가 앞서와 같이 스캔을 시도했지만 전기가 흐르지 않는 특수한 재질로 되어 있는 건지 해킹은 먹히지 않았다.

"!"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 몰라 주저하던 스카디와 사령관 사이로 어떤 물체가 날아갔다꽤 강한 기세로 날아간 그 물체는 스테이지방화벽이라 짐작되는 문에 철퍽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가 천천히 흘러내렸다미호가 챙겨준 초콜릿 케이크였다팀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당황한 불가사리는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데는 센서가 있어서 절단 레이저가 막 슈우웅하고 그러지 않아?

그래서 확인차 던져본 거야.."

리리스의 싸늘한 시선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하는 불가사리리리스는 매도의 말 대신 걸음을 옮겼다말씨름할 시간은 없었다한시라도 빨리 주인님과 무사히 오르카 호에 복귀해야 했으니까바닥에 혹시 트랩이 있나 싶어 주의하며 이동한 리리스는 딱히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자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세 번째 문에 다다른 스카디는 해킹을 시작했고 세 사람도 손부채질을 시작했다스테이지2와는 좀 다른 방식인지 스카디의 어깨 너머 보이는 콘솔 화면에는 에러 코드가 종종 떠올랐다스카디는 초조해지는지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놀렸다손톱에 긁힌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스테이지 클리어!!"

약 700초 가까이 지나서야 스카디의 해킹은 끝났다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콘솔 창에 초록색 글자로 떠 있는 ACCESS 단어가 무색하게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잠시만요 자기,"

스카디가 고개를 갸웃하며 허벅지에 손을 가져갔다그와 동시에 하얀색이던 조명의 색깔이 붉은색으로 전환되고 바람이 불어왔다아니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통로의 천장 중앙에서 나타난 흡입구는 공기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카디!"

스카디는 신들린 듯이 손가락을 두들겼지만콘솔 화면에 가득 찬 에러 메시지는 사라질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하나를 지우면 다시 여러 개가 떠오르는 에러에 옅게 맺혀있던 땀은 눈물처럼 스카디의 턱 끝으로 모여 떨어져 내렸다이래서는 안 된다고 느꼈는지 불가사리는 파일 드라이버의 시동을 걸었다낮은 공명음과 함께 스파크가 파일 부분에 떠올랐다.

"부수고 진입하자!"

"30초만 더 지나도 질식하게 될 거예요주인님."

평소보다 톤이 높아진 리리스의 경고에 사령관도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강제로 개방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최악의 경우 기지 전체가 자폭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에 사령관의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하지만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는 위험했다그때 스카디가 일어났다가쁜 숨을 몰아쉬는 스카디는 사령관을 쳐다보며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실패인 걸까?

"그거 알아요자기해킹에는 물리적 해킹도 있다는 거."

스카디는 왼발을 크게 내디뎠다탄탄한 대퇴근에 불끈 힘이 들어가며 갈라진 근육이 도드라졌다.오른팔을 뒤로 빼며 허리를 한껏 뒤튼 스카디의 모습은 마치 팽팽한 활시위 같았다.

".."

"해킹!!!!"

미처 말리기도 전에 꽂힌 스카디의 주먹은 굉음과 함께 튼튼해 보이는 문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박살이 난 문짝과 완전 멀쩡해 보이는 스카디의 주먹을 번갈아서 쳐다보던 세 명은 빨갛게 변했던 통로의 조명이 흰색으로 바뀌자 말문이 트였는지 저마다 한마디씩 시작했다.

"..괜찮아스카디?!"

"이런 해킹이 어딨어.."

"맞으면 아프겠다.."

허겁지겁 스카디의 손을 붙잡은 사령관은 살짝 붉어졌을 뿐 멀쩡한 스카디의 손을 주무르며 당혹스러워했다이게 근육단련으로 가능한 수준의 무력인가?

"스테이지3은 애초부터 해킹으로 돌파할 수 없는 구조였어요자기애초에 답이 없어서 해킹으로 문을 열려고 하면 함정이 작동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질식해 죽는 심보가 고약한 함정이죠해커의 심리를 잘 파악한 좋은 수였지만 두 가지 해킹을 할 수 있는 저에게는 통하지 않았네요."

"그렇구나.."

"그럼 들어가 볼까요?"

콧노래를 부르며 스카디는 앞장서고 문짝과 자신의 파일 드라이버를 번갈아 바라보던 불가사리가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겼다입구가 박살 나며 드러난 공간은 마치 함교와도 같았다조명이 나갔는지 불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통로의 조명이 있어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들어가서 바로 왼쪽에는 창이나 있어 한참 밑에 위치한 미사일 발사대와 저장소가 한눈에 들어왔다군데군데 설치된 조명은 망가지지 않았는지 밝지는 않지만 수많은 각양각색의 미사일들을 보는 데는 문제없었다그리고 정면에는 제어시스템으로 보이는 컴퓨터들이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전력이 들어오는지 일부 기기의 버튼에서 빛이 깜빡였다.

"바로 작업 들어가도록 할게요."

메인컴퓨터로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스카디는 곧 손가락을 두들겼다그러자 콘솔 위로 화상 화면이 떠올랐다어지럽게 떠오르는 코드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물티슈로 관자놀이를 닦아내고 다시 젤을 바른 뒤 전극을 부착한 사령관은 스카디의 옆에 주저앉아 시간을 점검했다작전 개시로부터 지금까지 약 1,400약 30분 동안 얼마나 많은 양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탈출하느냐가 이번 작전의 분수령이었다발사대의 천장이 열리는지 작은 돌멩이들이 떨어지는 것을 창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빠르게 발사할 수 있는 탄도탄부터 주유를 시작하자그사이 다른 미사일들을 발사하도록 하지."

주위를 둘러보던 불가사리는 컨트롤룸의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통로의 빛이 안 비치는 그 부분은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컴퓨터들이 설치된 공간 외에도 꽤 넓은지 천천히 벽을 더듬어 구조를 파악하던 그녀는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냉기에 멈춰 섰다그와 동시에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는 소리고개를 들어 불가사리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그녀가 서 있는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천장이라 생각되는 곳에 붉은빛아니 말라붙은 피 같은 검붉은 빛을 희미하게 내뿜는 렌즈.

"사령관!!"

불가사리의 외침과 함께 카메라 밑에 있던 출입구가 열리면서 엄청난 냉기와 함께 철충들이 쏟아져 나왔다재빨리 몸을 날려 은폐한 불가사리는 파일 드라이버에 시동을 걸었다진동과 함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렘파트로 추정되는 AGS를 삼킨 철충들은 이내 사령관을 발견하고 돌격태세를 취했다.

"불가사리사령관을 지켜요!"

사선으로 맨 구호 가방을 집어던진 리리스가 맘바 피스톨을 양손으로 빼 들고 철충들에게로 쇄도했다여기서 총격전이 벌어져 혹여나 발사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이를 위해선 전투할 공간을 옮겨야 했다슬라이딩하여 제일 앞에 있는 철충의 다리 사이로 들어간 리리스는 재빠르게 일어나 주변의 철충들에게 총탄을 난사했다현란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몇십 발의 총탄을 쏟아부은 그녀는 침묵한 눈앞의 철충을 발로 밀었다넘어가는 철충의 뒤로 보이는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붉은빛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확인한 리리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문 안쪽에서 막겠어요

"나도 들어가겠어!"

"당신은 뚫고 오는 철충들을 처리해요혼자서는 다 못 막을 테니까."

"리리스!"

사령관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며 살짝 미소 지은 리리스는 곧장 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곧 요란한 총소리와 파열음이 컨트롤룸을 가득 채웠다

--

"스카디얼마나 남았어?!"

포츈이 챙겨준 역장을 서둘러 꺼내 설치하며 사령관이 외쳤다황금빛의 방어막이 반구형의 모양으로 사령관과 스카디를 감쌌다.

작업이 방금 시작됐다는 건 사령관도 알고 있었다그러나 끊이지 않는 총소리는 그를 초조하게 하기에 충분한 배경음악이었다.

"80초만방화벽만 깨면 미사일 발사까지는 금방이니까 잠시만 기다려줘요."

"이야야아아아!"

문 옆에 숨어있던 불가사리의 파일 드라이버가 리리스를 지나 컨트롤룸으로 들어온 철충의 옆구리를 꿰뚫었다마치 피 같은 붉은색의 엔진 오일이 뿜어져 나왔다버둥거리는 철충을 끝까지 밀어붙여 넘어트린 그녀는 쇼커의 스위치를 켰다파일을 통해 고전압의 전류가 뿜어져 나와 쓰러진 철충의 회로를 튀겨버렸다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는 철충을 뒤로하고 일어난 불가사리는 엔진오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을 새도 없이 다음 놈으로 향했다방패를 세워 찔러오는 공격을 드라이버로 비스듬히 받아낸 후 가슴팍에 뛰어들어 숏 어퍼컷으로 동력부를 찍어 올렸다원래 램파트의 귀여운 홀로그램 그래픽이 출력되는 그곳은 불가사리의 일격에 구멍이 뻥 뚫려 엔진 오일을 흘렸다마찬가지로 전기충격으로 마무리한 불가사리는 그제야 얼굴을 닦고 문 안쪽으로 시선을 향했다리리스의 총구에서 나오는 화염으로 인해 통로가 가끔 밝아졌는데 철충들은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어디서 그렇게 나오는 건지 미사일 저장소가 아니라 AGS 저장소 같았다미사일 저장소까지도 설마 속임수였던 걸까그런 생각을 하며 불가사리는 기어코 리리스를 뚫고 달려오는 철충에게 달려들었다

리리스는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철충들은 리리스를 상대하기보다는 주인님에게 가는 게 목표인지 적극적인 전투보다는 몇 기가 방패로 전면부를 가리고 달려들어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나머지는 전부 자신을 통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아득한 옛날에도 이런 식으로 철충은 리리스들의 주인님을 뺏어갔겠지자신을 왼쪽 벽으로 밀어붙이는 철충의 방패에 점프하여 양발로 밀어낸 리리스는 그 반동을 이용해 공중에서 돌아 벽을 박찼다. 2미터가 훌쩍 넘는 철충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른 리리스는 총구를 당겼다총알도 함부로 낭비할 수 없었다철충들이 얼마나 더 기어 나올지 몰랐기에 최소한의 총격으로 행동불능에 빠지게 만들어야 했다다시금 철충들의 중앙으로 들어간 리리스는 손을 전후좌우로 교차하여 총알을 쏟아냈다.

"단순한 미사일 저장소가 아닌 거 같아!"

숨이 차는지 내뱉듯이 말을 한 불가사리가 다음 철충에 달려들며 외쳤다언뜻 봐도 쓰러진 철충의 수가 20기는 넘어섰다그리고 자신을 찢어 죽이려고 하는 철충들의 수는 그 배가 넘었다단순한 미사일 저장소숨겨진 비밀 저장소라고 해도 이 정도의 수비병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사령관은 역장 밖으로 손을 내밀어 뱀순이를 쏘며 스카디에 물었다전문적인 사격훈련을 받지 않은 그였기에 불가사리가 맞지 않도록 쏘느라 사격은 조심스러웠다.

"미사일 발사 시퀀스를 작동하고 나면 혹시 이 철충들에 대한 자료가 있나 찾아봐."

"알았어요자기... 스테이지 클리어바로 발사 시작할게요!"

화면에 어지럽게 떠 있던 코드들이 사라지고 미사일 런칭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다그에 맞춰 바깥에 있는 저장소에도 본격적으로 전력이 공급되는지 창밖이 밝아졌다발사대 외벽에 붙어있던 거대한 기계 팔들이 작동하며 미사일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

로크

"벌레 같은 놈들!"

로크는 날개 끝으로 달려드는 스카우트를 두 동강 내었다미사일 발사대가 열리는 소리 때문인지 근처에 있던 철충들이 갑작스레 몰려왔기에 각하의 명령대로 발사대 아래에 내려갈 수 없었다철충들이 열려있는 발사대 천장으로 내려가다 발사되는 미사일과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사령관뿐만 아니라 오르카 호까지 날아갈 수도 있었다통신이라도 되면 상황을 알리겠는데 전파방해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다행히 철충의 수가 많지 않았기에 미사일이 본격적으로 발사되기 전에 주변 청소를 할 수 있을 것이다노란색의 전류를 몸에 두른 로크는 날개를 펼쳤다로크의 시각센서가 반짝였다학살의 시간이다.

레아

"..쿨럭.."

레아는 결국 피를 토했다무리였다태풍을 24시간 넘게 제어하는 건 제아무리 레아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것도 그냥 태풍이 아닌 카테고리4의 태풍은 더욱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입가의 묻은 피를 닦아낸 레아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네오딤도 많이 힘에 부치는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레아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빙긋 웃었다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따라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그제야 자기가 코피를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네오딤은 손등으로 코를 닦았다레아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실핏줄이 터진 눈에서 뺨을 따라 눈물처럼 피가 흘러내렸다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사령관이 돌아오실 때까지.

--

몇 분이나 지났을까한없이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 했다착실히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원하지 않는 시간은 언제나 늦게 흘러간다.

"ICBM 주유 50% 완료순항미사일부터 발사할게요항공 폭탄은 발사체에 수납 중!"

스카디는 바쁘게 손가락을 놀렸다모든 작업을 예약할 수만 있다면 바로 이탈할 수 있을 텐데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인간의 뇌파를 전력처럼 필요로 하기에 발사되기 전까지 계속 사령관이 이곳에 있어야 했다온라인 해킹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번거로울 뿐이었다진동과 함께 첫 번째 미사일이 날아올랐다곧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미사일이 차례대로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창밖을 쳐다보던 사령관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점점 컨트롤 룸으로 들어오는 철충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불가사리가 다행히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지만눈에 띄게 지친 모습이었다바닥을 굴러다니는 철충의 방패를 떼어낸 불가사리는 방패를 세워 사령관을 조준하는 다른 철충에게 찍듯이 휘둘렀다관절부를 정확히 가격한 방패는 실린더를 부수고 철충을 벽에 꽂아버렸다바둥거리는 철충을 끝장내고자 손을 들어올렸을 때 외마디 비명과 함께 리리스가 튕겨져 나왔다복부에 공격을 허용했는지 왼손을 배에 얹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그녀는 이내 입에서 피를 토했다내장을 당한 것이다리리스와 짧은 눈빛을 교환한 불가사리는 벽에 박아버린 방패를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쓰러져 일어나려는 철충의 동력부에 총알을 꽂은 리리스는 떨리는 손으로 탄창을 갈았다단일 전투에서 이렇게 많은 철충을 고철로 만든 건 처음이었다무사히 돌아가면 주인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자랑해야지자랑할 수 있을까..?

"리리스 이거 받아!"

사령관이 던져준 건 구호가방이었다안에 담겨 있는 나노 캡슐을 꺼내 삼킨 리리스는 그런 약한 생각을 한 자신을 털어내듯 고개를 저었다고통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낀 리리스는 다시 총을 장전했다방패로 진형을 만들고 쓰러진 철충들을 밟으면서 전진하던 놈들은 입구 근처에 다와 멈춰 섰다바로 전에와는 다른 움직임이었다마구잡이로 사령관만을 향해 달려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마치 잘 훈련된 군대 같은 모습이었다가늘게 눈을 뜨고 철충을 살피던 리리스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철충들 사이에서 발광하는 빛을 발견했다그 순간 철충의 전열이 방패를 아래로 내리고 무릎을 숙였다그 뒤에 있는 건 커다란 총신을 손에 달고 있는 기괴하게 생긴 철충이었다마치 스토커와 같은.. 에너지가 잔뜩 주입된 총신은 리리스 너머의 사령관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행동은 불가사리가 더 빨랐다리리스가 달려 나가기 전에 그나마 멀쩡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철충위에 주워들었던 방패를 내려놓은 그녀는 오른손의 파일드라이버로 철충과 방패를 찍어올려 방패를 만들고 스토커의 앞으로 뛰어들었다그리고 동시에 총신에서 빔이 뿜어져 나왔다간신히 타이밍에 맞춰 앞을 막아선 선 불가사리의 발이 조금씩 밀렸다방안을 푸른빛으로 가득 채운 고출력의 빔은 철충를 손쉽게 녹여버리고 방패까지 녹이기 시작했다오른팔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도 그녀는 물러나지 않았다영겁과 같은 시간이 지났다빛이 잦아들고 불가사리가 무릎을 꿇었다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그녀의 오른팔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 숯덩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불가사리!"

사령관이 비명을 질렀다그런 그의 비명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한 걸음 물러서며 스토커는 바로 충전을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전열이 뛰어나오고 2열이 다시 스토커의 앞을 막아섰다리리스를 막기 위함이었다쓰러진 불가사리를 끌어낼 틈도 없었다리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고개 숙이십시오각하."

컨트롤룸의 창문을 깨고 케이지가 날아들었다아슬아슬하게 불가사리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케이지는 달려오는 철충들뿐만 아니라 스토커까지 휩쓸고 통로를 틀어막았다유리 파편과 콘크리트로 엉망진창이 된 컨트롤룸에 간신히 들어온 로크는 사령관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위에 있던 날파리들을 처리하느라 늦었습니다죄송합니다각하."

"안전은 확보한 거야?"

"그렇습니다주변에 있는 철충들만 몰려온 거라 미사일 운반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하지만 이쪽에 문제가 생겼군요."

재빨리 불가사리를 끌어내 응급처치를 하면서 리리스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이 멍청한 고철덩이가케이지를 저렇게 던져버리면 어떻게 탈출하란 말이야?!"

"내가 그대로 진입했으면 컨트롤룸은 물론이고 각하까지 무사할 수 없었을 거다.

논리적인 선택이었다감히 내 판단에 토를 다는 건가?"

"뭘 잘했다고!"

"각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주제에 말이 많군."

말문이 턱 막힌 리리스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자신도 모르게 붕대를 감는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불가사리가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아차 싶은 그녀는 눈길을 다시 불가사리에게 돌렸다불가사리의 오른팔에 붕대를 감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령관이 말했다.

"리리스 말대로긴해차선책이 있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제가 각하만 안고 탈출하는 방법입니다만.”

"기각."

"그렇다면 안전을 장담하긴 힘들지만양손과 양발에 한 명씩 끼고 탈출하는 것으로 하는 건 어떠신지?"

"여기서 날아오를 수 있겠어?"

"일단 발사대로 나간 다음 나머지 2명을 이 창가에서 움켜잡아야겠지요."

"좋아그 방법밖에는 없겠군스카디 작업은 어느 정도 진척되었지?"

"70% 이상 완료했어요. ICBM 주유도 완료랍니다."

난장판인 이 와중에도 스카디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았다눈꺼풀을 스치고 지나간 유리 조각 때문에 피가 흘러나왔지만그녀는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리리스불가사리는 괜찮은 거야?"

"의식을 잃긴 했지만목숨에는 지장 없어요."

"다행이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령관은 철충이 쏟아져 나온 입구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 밑에 어떤 시설이 있길래 램파트를 이렇게 많이 저장해 놓았던 걸까지금 쓰러진 철충만 해도 약 80여 기가 넘었다삼안산업은 무슨 짓을 꾸미고 있었던 거지그때 사령관에 눈에 빛이 들어왔다아까와 같은 푸른색의 빛이었다.

"위험해!"

사령관의 외침과 함께 케이지를 뚫고 빔이 뿜어져 나왔다날개를 활짝 펼친 로크가 그 앞을 막아섰다아까보다 강한 출력인지 금세 로크의 검은색 날개가 붉게 달아오르며 형체를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했다로크는 빔을 받아내며 앞으로 조금씩 전진했다로크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발톱이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치명적인 손상이군요저를 이용한 탈출은 불가능입니다차선책은.. 스카디 ICBM의 핵탄두를 빼라."

"설마.. 핵탄두 대신에?"

"넌 꽤 똑똑한 바이오로이드로군통신도 안 되고 탈출할 방법도 없다. ICBM을 잃는 건 아쉽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다핵탄두를 빼고 미사일 보호 덮개에 탑승한 후 발사 각도를 수정해서 오르카호 근처로 떨어지게 해각하께서 역장을 가지고 있으니 같이 사용한다면 크게 다치지는 않을 거다."

"넌 어쩌려고?"

사령관의 질문에 로크의 시각센서가 반짝였다잠시 침묵하던 그는 다시 말했다.

"혹시나 해서 제 설계도와 기억을 업로드시켜놨습니다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로크.."

빔이 잦아들었다달아오른 로크의 날개는 마치 마그마처럼 녹아내렸다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날개를 떼어낸 로크는 전신에서 전류를 방전시켰다고출력의 전류가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모습은 마치 신화 속의 나오는 번개의 신 같았다.

"네놈들을 다시 심연의 구덩이 속으로 떨어트려 주마!"

바닥을 박차고 날듯이 스토커에게 쇄도한 로크는 가로막는 철충들을 발톱으로 짓밟으며 날개를 힘껏 스토커의 가슴에 꽂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끼이익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스토커와 철충들은 로크와 함께 통로의 끝까지 사라져갔다.

"탄두 다 뺐어요 자기리리스불가사리 데리고 먼저 기계 팔에 타!"

창가에 운반용 기계 팔을 가져다 댄 스카디가 외쳤다불가사리의 파일드라이버를 뜯어내고 그녀를 들쳐멘 리리스는 주인을 놔두고 먼저 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지 자꾸 고개를 돌리며 머뭇거렸다.

"금방 갈게"

사령관에 한마디에 조금 마음이 놓인 듯 기계 팔엔 탄 리리스가 ICBM에 탑승하고 스카디는 기계 팔들을 조작하여 ICBM까지 징검다리를 만들었다사령관이 케이블을 빼면 시스템이 셧다운 되기에 이동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조치였다.

"발사각도 수정 완료발사 시퀀스 시작사령관 우리도 가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스카디는 사령관을 옆구리에 끼고 몸을 날렸다기계 팔들을 뛰어넘어 ICBM 안에 들어온 스카디는 입구를 닫고 사령관에게 외쳤다.

"역장을 가동시켜요 자기강한 원심력 때문에 정신을 잃겠지만 걱정 말아요일어나면 오르카호의 침대에서 나와 누워 있을 테니까요."

"나야."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으르렁거리는 리리스의 모습에 사령관은 살짝 웃었다잠시 후 굉음과 함께 ICBM이 날아올랐다신체에 가해지는 어마어마한 원심력 속에서 사령관은 정신을 잃었다꿈속에서 사령관은 로크의 등을 타고 바다를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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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셨군요?"

"로크는?"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사령관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곧 격렬한 고통을 느끼면 침대에 쓰러졌다간호사 복장을 한 다프네가 그런 사령관의 손을 안심하라는 듯이 토닥였다.

"탈출 과정에서 많이 다치셨어요부러진 뼈가 안 부러진 뼈보다 많을 거에요."

"로크는 어떻게 됐어?"

"로크 씨는..”

"제가 대답할게요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옆 침대에 온몸을 붕대로 둘둘 감은 스카디가 누워있었다한쪽 눈에 안대를 한 스카디는 목에 깁스를 해서인지 눈짓으로 인사했다.

"우리가 오르카 호의 바다로 처박힌 이후삼안디펜스 부지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어요아마 ICBM에서 빼낸 핵탄두를 로크가 폭발시킨 거겠죠."

"그렇구나.."

"그래도 설계도를 업로드 했다고 했었잖아요닥터랑 포츈이 열심히 다시 로크를 만들고 있어요최상위 AGS라 손이 많이 간다고 닥터가 두덜거리던데요미사일도 문제없이 회수했어요."

"그 밑에 있던 철충들에 대한 정보는 입수했어?"

"파일을 복사하긴 했는데 추락할 때 컴퓨터가 부서져 버려서 복구하지 못했어요문이 열렸을 때 냉기가 뿜어져 나왔던 거 알죠내 생각이지만 삼안디펜스가 아니고 블랙리버의 짓인 거 같아요. 2차 연합전쟁 중 상원 시를 점령한 블랙리버사가 쏟아져 내린 철충을 어찌어찌 하나 확보해서 제어하려는 실험을 했던 거죠극저온 상태에서 램파트를 하나씩 감염시키면서 말이에요미사일 저장소가 바로 위에 있으니 수틀리면 폭파해 버리면 되잖아요그러다 휩노스병이 터져 연구자들이 죽고 남겨진 철충은 그대로 극저온의 지하창고에서 천천히 남은 램파트를 감염시키고 잠들어 있었던 거고요."

"일리가 있네."

"내 안부는 안 물어봐?"

왼쪽에서 불가사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입에 도넛을 물고 있는 불가사리는 용케도 입만으로 살살 돌려가며 도넛을 먹고 있었다다른 부분에는 붕대가 덕지덕지 덮여있었지만오른팔은 깨끗했다사령관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불가사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신경까지 타버려서 기계 팔로 교체했어아직 신경이랑 연결 중이라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뭐그래도 인공 피부로 덮었으니까 촉감은 그대로일 거야이것 때문에 나 안 부르고 그럼 안돼?"

"손아귀 힘만 잘 조절해주면야."

생긋 웃으며 농을 던지는 모습에 불가사리도 안심이 되는지 히힛거리며 웃었다사령관은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느낀 점이 많았다내가 지휘 콘솔에 편하게 앉아 내리는 명령 때문에 전선에 나서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이런 위험과 고통을 무릅쓰고 인간을 위해 싸워주고 있다그들의 희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전쟁에서 희생자가 없을 수는 없으니까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그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다.

"사령관일어났다며?!"

"쭈인님!!"

병실 문이 열리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사령관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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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갤시절에 쓴글인데 라오갤 폭파됐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