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울리는 그의 검은 구두가 따각거리는 소리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머리에서 흔들거리는 검은 페도라와 떨어질 듯 말 듯, 숄더 로빙한 검붉은 롱코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갈하게 매어진 와인색 넥타이와 목까지 채운 단추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이러니였다.


그럼에도 단언코 말할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현재, 복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오르카호의 사령관이 자의로 격한 감정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이 복도의 끝에는 수많은 희생 끝에 포획한 악녀. 펙스 중공업의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방에서 결박당해 있었으므로.


사령관은 당장이라도 그 가증스러운 여자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이번 포획 작전에서 사그라든 생명들을 위해서라도. ‘자의’로 선택한 죽음들에 대한 예우로써. 그리고 그녀들을 사지로 내몰 수 밖에 없었던, 공리주의자로 살아가야 할 자신에 대한 결심으로써.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선 아니 되었다. 그는 그 여자를 이용 해야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얻어야 할 정보들과 희생된 오르카호의 가족들을 저울질한 결과였다. 비극이었다.


분노를 머금은 구둣소리는 천천히 제 소리를 잃어갔다. 대신, 사령관의 검붉은 두 눈은 붉게 타올랐다. 복도의 끝 방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바이오로이드. 제 주인을 위해 곧게 서 있는 블랙 리리스. 그리고 제 염치를 보이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흝어보아도 자잘한 생채기와 억지로 지혈한 흔적을 가리기 위한 감은 붕대를 한 ‘전대장’ 슬레이프니르. 그는 그녀들을 보는 순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슬레이프니르.”


“응. 사령관...”


“수복실로 가라.”


“사령관... 나는...”


“알래스카에서 저 년을 놓친 일에 대한 속죄라면 이미 충분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사과 하고 싶어서...”


사령관의 손이 슬레이프니르를 향해 뻗어 나아갔다. 분노가 담기지 않은 쓰다듬의 손길이었다. 오히려 사과하고 싶은 쪽은 그였다. 그런 곳에 너희들을 내보내서 미안하다고. 내가 좀 더 좋은 지휘를 했다면 너희들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될텐데. 그런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


“가족끼리는 사과할 필요 없다.”


사령관은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가족으로써, 그리고 오르카호의 일원으로써. 그녀를 보낸 그곳에는 여전히 제 주인을 기다리는 한 떨기 백합이 있었다. 그녀, 리리스는 사령관의 의중을 알아챘다는 듯이 담배를 꺼내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불이 일었다. 회색 연기가 하늘을 타고 날아간다. 분노는 어느 순간 냉정으로 변해간다. 문이 열리고 다시 걸음 소리가 들린다. 두 명 분의 걸음과 타 들어 사라지는 담배. 그리고 철컹거리는 쇠사슬의 소리.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도살장의 돼지처럼 묶여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인도주의적으로 머리가  위로 향해 있다는 점이. 그럼에도 그녀는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가려진 천 조각 하나 없이 나체로 서있는 비너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렇게 평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령관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욕망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온 세상의 악을 응집시켜 놓은 듯한 구역질덩어리. ‘분노에 사로잡히지 말자’ 라고 수백번을 되 뇌었지만, 그는 그녀를 본 순간 그런 관념과 다짐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서로 분노에 찬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와 이제 희생의 댓가를 받아야 할 그. 사령관은 거의 타들어 간 담배를 재털이 마냥 그녀의 몸에 비볐다. 타 들어가는 몸뚱아리와 가려진 비명. 사령관은 응당 그러할 자격이 있었다. 그는 승자였고 그녀는 패자였으니. 소중한 것을 앗아간 악녀를 위해 행하는 모든 행동은 정당화 될 것이었다.


“포기해라. 모든 건 값을 치뤄야 하는 법. 네가 선택한 인생의 대가다.”


이 말은 사령관 스스로에게 말하는 말이기도 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욕심쟁이처럼 얻을 수 만은 없었다. 소중한 것을 빼앗긴 아이가 행하는 일종의 화풀이기도 했다. 분노를 타인에게 돌리는 것 만큼 쉬운 행위는 없었으므로.


“그래서요? 바이오로이드가 주인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


“결백하다는 듯이 말하지 마라. 그건 내 지성을 모욕하는 거다.”


“아. 그렇군요. 그 얄팍한 지성에 졌다는 사실이 참으로 수치스럽네요.”


분노가 담긴 주먹이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 입에서 나온 검붉은 피와 비웃음. 분명한 조소(嘲笑)였다. 모든 것을 잃은 여자의 태도라고는 할 수 없었다. 사령관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네년이 지껄인 말이 있지. 누구도 널 심판하지 못한다고.”


“맞아요. 당신은 날 심판할 자격이 없죠. 나에게 벌을 내릴 수 있는건 제 주인님 밖에...”


그녀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다시금 후려쳐진 뺨은 실핏줄이 터져 붉그스름한 꽃처럼 퍼져있었다. 그리고 순간, 그녀는 사령관의 순수한 악의를 느꼈다. 분노가 냉철함으로 바뀔 때에 가장 위험한 순간이란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사령관의 두 눈에선 분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고 차분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날 굴복 시키려고? 난 절대로 당신을 섬기지 않아!”


“그때에도 분명 말했지. 네년 따위의 섬김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사령관의 가벼운 손짓과 함께 다시 담배에 불이 붙혀진다. 오메가의 얼굴에 내뿜어지는  담배 연기는 지독하리만큼 탁하고 감정적이었다.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사령관의 두 눈에는 치욕스러운 표정의 오메가가 버젓히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다시금 내뿜어지는 담배 연기 뒤에는 그의 충직한 ‘가족’이 행해야 할 말이 전해졌다.


“리리스.”


“네. 주인님.”


“사흘. 사흘 뒤에 이 년이 신을 찾거나 죽여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너에 대한 내 생각을 재고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구나.”


“주인님. 이 리리스를 믿어주세요. 기대에 부응할게요.”


타들어간 담배의 부산물이 오메가의 얼굴에 정확히 던져졌다. 회색빛 재가 허공에 휘날리고 불꽃은 제 힘을 잃어가며 그녀의 살을 조금이나마 타 들어가게 했다. 약한 비명과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콘스탄챠의 귓속말과 함께 사령관은 등을 돌렸다. 이젠 같잖은 여자를 보는 것보다 책임져야할 오르카호의 패밀리들을 돌봐야할 시간이었기에. 구둣바닥이 바닥에 붙는 소리가 울린다. 문이 닫히는 순간, 사령관은 뒤를 돌며 마지막 남은 분노로 으르렁거렸다.


“네년의 드라마에 내 패밀리들을 우겨넣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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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보고 삘 받아서 3시간만에 써내렸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