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오가미씨! 오가미씨!”

마츠시타는 달려가며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오가미를 불렀다. 오가미라 불린 기자는 자리에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 이시죠?”

오가미는 점잖은 얼굴을 하며 물었다. 갑자기 길에서 이름을 불린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 반응이었다.

“TV 도쿄 보도국 경제부의 오가미씨 맞으시죠?”

마츠시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아무래도 운동을 해 체력이라도 길러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이 결심은 집에 돌아가는 순간 잊혀지겠지만. 결심이란 언제나 무너지기전까지만 유지하는 것이었다.

“예,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오신 분들이시죠?”

“월간 치바의 마츠시타 쥰입니다.”

마츠시타는 명함을 꺼내 오가미에게 건네주었다. 오가미는 이상하다는 듯 명함을 보며 말했다.

“월간 치바에서 제게 무슨 볼일이시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 연류된 사건이라도 있는 건가요?”

오가미가 이상하게 보는 것도 당연했다. 기자란 본디 취재를 하는 사람이었다. 취재를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츠시타가 경제부 기자였다면 같은 소재를 취재중이라 정보를 주고 받기 위한 것일수도 있었지만 마츠시타는 사회부 기자였고 그녀가 건네준 명함에도 그렇게 적혀있었다. 갑자기 사회부 기자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의심부터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잠시 시간 되십니까?”

“질문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오가미의 말은 정론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츠시타의 말을 들을 의향 역시 있어보였다.

“먼저 말하자면, 저는 기자로서 취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회부 기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취재를 시작하죠.”

오가미는 다시 정론을 던졌다. 오가미의 성격인가 싶었다. 마츠시타는 반박을 하는 대신 말을 이어갔다.

“이건 제 개인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어제 제가 들은 소식입니다. 경제부의…”

“마츠시타씨.”

오가미는 귀찮다는 얼굴을 하며 마츠시타의 말을 끊었다. 그는 한숨을 쉰 뒤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 기자로서 온 거잖아요. 당신이 뭘 궁금해서 온 건지 다 알아요. 우리 기자가 죽어서 그거 기사화하겠다고 찾아온 거죠? 당신은 같은 기자들이 죽어도 기사로 밖에 안보여요? 양심이냐 윤리 같은 거 없는 건가요? 죽음에 애도할 겨를도 안주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미는 그런 작자들이잖아요.”

“아뇨, 저는 진짜로…”

“그렇게 말하고서는 돌아가서는 컴퓨터로 줄줄이 기사를 쓰겠지. 누가 죽었고 왜 죽었고 기타 등등 말야. 죽어가는 사람 머리 위를 맴도는 매와 까마귀 같은 작자들이에요. 그러고서는 국민의 알 권리다. 취재의 자유다. 그렇게 포장하는 거요?”

그런 기자들이 있었다. 자극적인 기사를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들. 마츠시타는 달랐다. 그녀는 그런 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들에게 가해를 하는 기자가 아닌 피해자들을 도우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그녀 역시 그런 기자였을까.

“저는 단지 시라이시 씨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뿐이에요. 시라이시 씨는 제 지인이었고 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건 기자가 아닌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질문 아닌가요?”

그에게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마츠시타가 무슨 말을 한들 오가미에게는 취재를 하기 위해 아무 소리나 하는 기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이쪽은 직장 동료가 죽었어요. 당신에게 그 사실은 보이지 않겠죠. 그저 당신은 자신이 알고 싶은 걸 알고 싶을 뿐 아닌가요? 죽은 기자의 동료를 찾아오기 전에 그 기자의 장례식에 먼저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미 그곳에서 쫓겨나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요?”

마츠시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마츠시타는 죽은 시라이시의 장례식에 가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장례식에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알고 싶었다. 어째서 시라이시가 자신에게 메일을 보낸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답은 장례식보다는 그의 동료에게 묻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에서 독백을 한다고 답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지도 몰라요. 네. 저는 기자에요. 알고 싶은 것을 참을 수 없는 종자들이에요. 그래서 알고 싶어요. 시라이시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는 있을 수 없어요. 그러니 제발 시라이시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

오가미는 말이 없었다. 둘 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는 그런 상황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돌아가세요. 여기서 계속 사람들에게 물을 거라면 경비에게 말해서 이곳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거니까요.”

오가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가려 했다. 마츠시타는 그를 보낼 수 없었다.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가미씨, 잠시만요!”

마츠시타가 오가미를 부르자 오가미는 조금 전처럼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화가 나 있었다.

“당신에게 해줄 말은 더 이상 없어요. 치바로 돌아가요. 되먹지 못한 당신 같은 기자에게 할 말은 더 없으니까요.”

마츠시타는 멀어져가는 오가미에게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터져나오질 못하는 답답함에 답답해할 뿐이었다.

“이거 지역차등이야.”

토모는 마츠시타를 위로해주려는 듯 말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츠시타. 일단 카페로 돌아가자. 다른 계획을 생각하든, 다른 기자를 기다리든, 일단 따듯한 곳에 앉아서 하는 게 나을 거야.”

“그렇겠지.”

토모의 말대로였다. 오가미는 이 자리에서 따라가면 정보를 말해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비나 경찰에 신고해 마츠시타가 다가오지 못하게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마츠시타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기왕 어디론가 간다면 따듯한 곳이 제일이었다.

“돌아가자.”

마츠시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선은 오가미를 향해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의 개성강한 옷은 멀리서도, 뒤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뛰어가 쫓아간다면 따라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마츠시타는 그러지 않았다. 다시 앞을 본 마츠시타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 했지만 도저히 불을 붙일 수 없었다.

기분이 너무 처진 나머지 담배를 피울 의욕마저 들지 않았다. 카페가 아닌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담배를 주머니에 넣은 그녀는 멍하니 토모를 따라 카페로 돌아갔다.

“아, 커피 사라졌어.”

카페에 들어온 토모는 원래 둘이 있던 장소를 보며 말했다. 토모의 말대로 둘이 있던 테이블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아, 손님 가신 것 아니었나요?”

종업원은 마츠시타와 토모를 보며 당황하며 말했다.

“갈 줄 알았죠.”

마츠시타는 터덜터덜 계산대로 걸어왔다.

“아메리카노 주세요. 아이스로 두잔요.”

천엔 지폐와 동전 몇 개를 계산대에 올려놓은 마츠시타에게 종업원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됐는데 너무 서둘러 손님 테이블을 치워버렸네요.”

“괜찮아요. 그런 일도 있죠.”

종업원은 마츠시타의 힘없는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손님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금방 돌아오신 거 보면 일이 잘 안풀린 것 같은데요.”

“모든 일이 다 그렇죠.”

마츠시타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 두잔은 그냥 제가 무료로 드릴게요. 마침 매니저님이 자리를 비웠거든요. 손님들 리필해드린 거라 하면 아무도 모를 거에요.”

“아뇨 그럴 필요는…”

마츠시타는 당황했지만 종업원은 받은 지폐와 동전을 마츠시타에게 내밀었다.

“매니저님이 오시면 바로 돈 받을 거에요. 아무도 안 볼 때 받으세요. 안좋은 일이 있다면 좋은 일이 있어야 하는 법이에요.”

마츠시타는 멍하니 돈을 다시 자신의 지갑에 넣었다.

“고마워! 공짜 커피 잘 마실게!”

어느새 다가온 토모가 불쑥 튀어나오며 말했다.

“그리고 굳이 준다면 나는 카페치노로! 그게 뭔지 궁금했어!”

“잠시만요.”

종업원은 주위를 둘러본 뒤,

“카푸치노 말씀이죠? 대신 리필은 안됩니다?”

토모에게 조용히 귓속말로 말했다.

“고마워!”

토모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마츠시타도 지금 기회야! 먹고 싶었던 음료 아무거나 시켜도 된다고!”

“호의를 너무 과하게 받으려 하지마. 나는 그냥 커피면 충분해. 아니, 커피는 이미 충분한데.”

마츠시타는 토모를 밀어내며 말했다. 이러다가는 먹다 남긴 치즈케이크까지 달라할지도 몰랐다.

“고마워요.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아뇨, 뭘요. 카페에 기분 안좋아해하는 손님이 계시면 제가 힘들어서 그래요. 자리로 돌아가 계시면 제가 커피 가져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마츠시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토모 역시 고개숙이며 인사를 한 뒤 둘은 원래 앉았던 테이블로 돌아왔다.

“마츠시타, 어떡할 거야?”

“어쩌긴. 일단은 다른 기자를 찾아봐야지.”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작은 정보라도 얻고 싶었던 그녀였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봐야 했다.

“다시 가는 사람들 보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네.”

토모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카페치노도 마시고 좋잖아. 카페인 듬뿍이야.”

마츠시타는 일부러 토모의 잘못된 단어를 말하며 말장난을 했다. 이렇게 장난이라도 쳐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던 것이었다.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입니다.”

종업원이 테이블로 다가와 두 사람 앞에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마츠시타는 웃으며 말했다.

“영업직이신가봐요. 힘드실텐데 힘내세요! 화이팅!”

종업원은 주먹을 쥐며 말했다. 마츠시타는 영업직이 아니었지만 굳이 그 말을 정정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츠시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우와! 맛있어!”

한편 토모는 카푸치노를 한모금 마시더니 놀라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그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종업원이 가져다온 행복의 순간이었다.

그 행복에 취한 토모와 마츠시타는 누군가가 카페에 들어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커피를 사오랬더니 편의점에서 사오는 애가 어디 있어?”

“죄송합니다…”

두 여성은 카페에 들어오더니 계산대로 걸어갔다.

“아메리카노 8잔 테이크 아웃이요. 예, 영수증은 TV 도쿄 보도국 경제부로 끊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