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번병 T-2 브라우니가 마리 대장의 호출을 전하기 위해 생도식당까지 찾아온 것은 포근한 분위기 가득한 주말 오전이었다. 브라우니가 포크 하사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따스한 햇살이 비쳐 반짝반짝거리는 오트밀색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소녀와 그 건너에 일고여덟살은 어려보이는 붉은 머리 꼬마 소녀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칙칙한 색의 생활복을 입고도 퍽 성숙한 태가 나는 소녀, 포크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주말 아침 식사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말 아침마다 이 붉은 말괄량이, 쥰 일병의 아침 식사를 확인해야 하는 것은 부소대장인 포크의 역할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포크는 언제나 영양(만)을 생각했고, 주말 브런치로는 참치와 엘븐 밀크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파였으며 쥰은 엘븐 밀크를 싫어했다. 그래서, 이 포크와 쥰의 눈싸움은 매주 병영식당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먹어."
"엘븐 밀크는 싫습니다."
"키 안큰다."
"작아도 상관없는데요."
"아니면 나이트앤젤 대령이라고 알고 있니?"
"상관모독인가요, 성희롱인가요?"

 나름 정곡을 찌른 말에 포크는 움찔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다. 쥰에게 짜증나기 시작한 포크가 환하게 웃으며 참치에 엘븐 밀크를 가득 부어버리는 것으로. 오르카 사관학교의 평일 일과는 빡빡한 편이다. 그러나 급양관리관 콘스탄챠S2는 인자하게 생긴 것과는 반대로 체계적이고 정량적인 급양을 선호했고- 언제나 사관생도들은 배고파했다. 그러니까, 주린 배 잡고 울든지, 편식하지 말던지. 그게 포크가 편식하는 아이들에 대한 대처법이었다.

"에, 포크 하사님?"

"네, 브라우니씨. 무슨일인가요?"

"대장님 호출이지말입니다. 교장실로 부르십니다."

"네? 저를요? 무슨 일로...?

브라우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같은 말단이야 모르지말입니다~ 아, 혹시 로만 중사님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네, 아마도?"

"하하 잘 되었지말입니다! 로만 중사님께도 마리 대장께서 호출하신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그래요, 뭐. 그러죠."

 생도식당을 뒤로하고 나가는 포크의 뒤로는 여전히 쥰이 우유에 동동 뜬 참치 덩어리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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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의 로만 중사를 찾는 법은 대충 몇 가지가 있는데, 그 모든 방법은 결국 한가지로 귀결된다. 그 방법이란 몇가지라고 말할 것도 없이 간단한 것으로-

"바이올린소리 못들으셨습니까?"
"로만 찾냐? 으, 아까 2층 휴게실 지나면서 들은 것 같은데."
"예. 감사합니다."

 로만 중사의 취미는 바이올린이다. 그러나 그 취미가 특기로 바뀔 생각을 하지 않은지 5년이 넘었다는게 문제다. 일부러 불쾌한 소리만을 내기 위한 '악'취미 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로만 중사의 바이올린 실력은 처참한 수준이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켜는 주말에는 동기나 선임을 피해 이곳 저곳 쫓겨다니기에 위치는 랜덤이지만 찾기는 역시나 쉽다고 해야할까.

 2층 휴게실로 들어가자 금발을 짧게 자른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들고 서 있었다. 사관생도로 입학한지 벌써 십수년은 되었을텐데도 여전히 청년보단 소년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로만 중사였다. 로만은 그 답게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 이건 별로 예상하지 못했는 걸. 포크, 내 연주를 들으러 왔나? 어서 이리 앉게, 아름다운 아리아를 한번 들어보게-."

 글쎄, 본인도 그걸 신경쓰는 까닭인지 언제나 그 말투는 노스러웠지만. 어쨌든 포크는 로만의 연주를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가볍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마리 대장님의 호출입니다."

업무적으로 딱딱하게 말하자 로만은 비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래, 대충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 포크 자네가 이유없이 찾아오진 않을테니까."

"..나중에 들려주십시오. 아리아."

예의상 한 말이었으나 로만은 당장 표정이 바뀌었고, 포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하핫, 그럼. 시간을 정하자구. 언제 들어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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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대장의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로만은 흥얼거렸다. 흥얼거리는 음색을 들어보면 분명히 음치는 아닌듯 한데 어째서 그가 바이올린만 쥐었다 하면 그런 괴상망측한 소리가 나는 것인지 포크는 의아해하며 계단을 계속 올랐다.

"이봐, 포크. 자네의 능력은 뭐라고 했었지? 자네의 훈련 모습을 본 적은 없어서."

"소대가 다르니까요. 저는 약간의 발화와 약간 집중하면 대상을 조금 세뇌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후자쪽은 그리 강한 편도 아니라서."

"허어. 대단하구만. 나는 고작 예지에 가까운 예측 뿐인데."

"..굉장하잖습니까? 그런데 예지에 가깝다는 게?"

"뭐 간단해. 상대방이 하는 행동을 보고 조금 관찰을 하다보면 보이지. 그 사람의 미래 같은게 말이야. 듣자니 내 어머니께서는 연산능력이 아주 뛰어나셨다더군. 두뇌가 내 능력인 셈이지."

 로만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 툭 쳤다. 포크는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뻔 했으나 어찌 됬건 계급이라는게 있는 법이었기에 하하- 하며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로만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모른 채.

"하하..그렇, 으앗!"

 포크보다 계단을 두어칸 앞서가던 로만을 바라보며 웃었기에 포크는 계단에 발끝이 걸렸고, 어찌 된 일인지 그녀가 판단할 새 없이 그대로 바닥이 아닌, 로만의 품안에 안기게 되었다. 로만의 위치 선정이 얼마나 깔끔했던지 마치 포크가 로만에게 안기려 한 것 같은 자세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게 보인다고 하면 믿어 주겠나? 음, 예상보단 무겁군. 포크."

"무,무,무,무슨!!"

"이봐, 아가씨. 남자친구 있어?"

 로만은 거기까지 말하고 포크의 귀에 바람을 훅, 불어넣었고 그때 반사적으로 포크의 주먹이 곧바로 로만의 명치에 적중했다. 로만의 품에서 빠져나온 포크는 그대로 나가떨어진 로만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계단을 올라갔다.

"..으..우.. 이렇게 한 대 맞을 것 까지 예상했다면 믿어주겠나?"

"두대를 때리면 예상이 빗나가는 것이겠군요?"

 그제서야 로만은 조용해졌고, 둘은 어색한 침묵을 끌고 교장실까지 올라갔다. 로만은 여전히 빙긋빙긋 웃고 있었으니 진짜로 어색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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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카 사관학교장, 불굴의 마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쟁시대와 현대를 아루르는 유명인이었다. 그녀의 가동 연한은 무려 80년에 가까워져가고 있다는데, 철충의 지휘 체계를 무너트린 전투를 끝으로 퇴역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영지 마저 사절하는 대신 사령관 양성 학교- 오르카 사관학교의 학교장을 맡으며 인류의 재건에 힘쓰는 진짜 영웅중의 영웅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 다 존경과 경의를 담아 교장, 이라는 칭호 대신 여전히 대장으로 불리고 있다. 본인도 그걸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커다랗고 장식이 없는 대신 금속으로 멸망 전쟁 시절 '스틸라인'의 부대마크가 금속 양각으로 붙어있는 문에 대고 로만은 노크를 했다.

"중사 로만 외 1명 들어가도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단촐한 교장실로 들어가자 크고 검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마리 대장을 볼 수 있었다. 의자 뒤로는 수많은 사진들, 빛바랜 천으로 묶여진 엉성한 몇개의 메달, 그리고 크게 인쇄된 몇개의 사진들이 눈에 띄였다. 스틸라인의 부대원들과 그 위로는 오르카호의 참모진, 그리고 '그 사령관' 인가.. 오랜만에 보는 교장실을 흘긋흘긋 둘러보는 포크와는 달리 로만은 곧바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충성. 호출하셨다는 말 듣고 왔습니다."

마리 대장은 느긋하게, 그리고 고압적인 시선으로 로만을 바라봤다. 포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고, 마리 대장이 말했다.

"그래.. 로만. 맞춰봐라."

포크가 뒤바뀐 것 같은 질의에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로만이 대답했다.

"파견입니까."
"그래. 이유는?"
"철충이 생길 조짐이 보였다던지요. 이를테면, AGS 공장에서 철충화가 진행된다거나."
"정확하다. 라비아타시의 공장에서 철충화 현상이 포착되었다."
"에...그럼.."
"뭘 묻나. 빨리 가라."

가만히 있다가는 곧바로 '예, 고생하십쇼, 충성.' 이라고 말한 뒤 쫓겨날 것 같은 분위기에 포크는 급박히 손을 들었다. 마리가 끄덕였다.

"마리 대장님, 그럼 저는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마리는 대답하지 않았고, 로만을 빤히 바라봤다. 그는 그 눈빛을 잠시 무시했다가, 천장을 바라봤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얼마나 더 미움받으라고..' 라고 중얼거린 뒤에야 말했다. 

"포크. 파견은 원래 2인 1조야."

"..저는 파견 경험이 없는데요?"

마리는 그제서야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모든 어머니들은 한때는 처녀였기 마련. 귀중한 첫 경험이 되길 바란다."

비유가 부적절하군. 포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

로만은 그런 포크를 바라보곤 씩 웃었다.

"아, 포크. 지금 비유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지?"

"..아닌데요."

"포크는 거짓말하면 목소리가 반옥타브 올라가."

이 씹어먹을 중사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포크는 얼굴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말했다. 

"마리 대장님, 하사 포크 외 1명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어, 화났다. 왼눈썹 살짝 올라간거봐. 방금 속으로 욕했네."

"..가도 좋다. 포크."

 문이 조심스레 닫힌 뒤, 로만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마리는 들었지만 피식 웃기만 했다. 하극상은 중죄지만 저 정도는 동료간의 친목 다지기 정도로 여겨주자고 생각하며, 마리는 서랍에서 낡은 액정 단말기를 꺼냈다.

"역시 교장도 오래할 짓이 아니군."

창 너머로 주말을 맞아 저마다 재잘거리는 생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리는 그리운 듯이 단말기를 몇번 쓰다듬은 뒤,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사령관, 이곳엔 당신을 닮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창 밖으로는 본관을 나선 포크가 로만을 질질 끌며 보급고로 향하고 있었다.



-NEXT

"포크는 굉장한 마왕이 될거야. 아-주 굉장한 여마왕이 말이야."

"아하, 그랬던 것이군요? '사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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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s://kr.freepik.com/


오랜만에 쉽덕물 쓰고 싶어서 호다닥 써버렸네요,, 근데 더 쓸지 어떨지,,


슬쩍슬쩍 언급하긴 했는데 부연설명 하자면 사령관-바이오로이드 간 자식의 사령관 교육을 하는 곳이 '오르카 사관학교'라는 설정입니다. 자신이 인간의 피를 가졌다는건 알고있지만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르죠. 


라오는 세계관이 참 흥미로운듯 ㅋㅋ,, 좋은 저녁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