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깊은 숲에서 쇠가 갈리는 소리와 나무가 베어져 넘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아하하하핫! 죽어 이 더러운 쓰레기들아!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숲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끼?

주변은 난장판이 되어있고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이의 피가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하아...하아...

 

가쁜 숨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아하하하!! 아파, 아파... 아픈건 싫어... 여기까지만... 할 거야. 이제 ‘다음’으로 넘길거니까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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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참으로 공사가 다망했던 마키나와의 만남 이후로, 오르카호는 레모네이드 오르카 세력의 중심인 아메리카 대륙을 피해 예전 아시아라 불렸던 대륙의 한 연안에서 정비를 시작했다.

 

레오나:사령관? 부탁했던 건은 다 처리했어.

나:고마워 레오나. 아, 안드바리보고 고맙다고 전해줘. 이번일로 제일 고생했을 테니까.

레오나: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직접 보고해도 되는지 나한테 물어보던데.

나:그래? 그냥 나한테 찾아왔어도 됐을텐데.

 

안 그래도 어제 창고에서 부루퉁한 얼굴로 있기에 잠깐 말이라도 나눠볼까 했는데,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고 해서 넘어갔었다. 그런데 별다른 게 있었나 보다,

 

레오나:사령관.

나:응?

레오나:사령관이 우리들을 걱정해주고, 최대한 챙겨주려고 하는 건 잘 알고있어. 나 또한...이제는 사령관이 내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도 사령관이 지휘할 자매들이 너무 많아졌어. 앞으로 사령관은 더 많은 자매들을 통솔하게 될 거고,.. 오르카호에 사람이 많이 없었던 예전처럼 중간선인 지휘관급을 무시한 채 직접 묻고 다니는 것은 좀 더 자제해주면 좋겠어.

지휘와 계급은 단순히 누군가를 압박하고 윗자리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지휘개체들이 먼저 판단하고 행동하게끔 지휘체계를 좀 더 신경써주겠어? 안드바리도 그걸 원해서 오늘 내게 먼저 말했을 거야.

나:브라우니 때문에 모였던 그때처럼 말이지?

 

나도 그리 말하며 미소지었다. 확실히 그 때 그랬던 이후로, 조금 나도 자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래뿐만 아니라 지휘관급 또한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가끔씩 잊어버린다.

 

레오나:그럼. 사령관은 그때보다 훨씬 진중하고, 멋진 남자가 되었으니까. 아, 그전에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나:할 일?

아르망:폐하, 파견하신 저희쪽 대원들이 소규모 철충 부대를 관측했다는 보고입니다.

나:그래? 아르망, 분석은 끝났어?

아르망:지형과 탐색 현황을 보아서...저 철충 부대를 격파할 경우 추가적인 지원 부대가 올 확률은 20%를 넘지 않습니다. 대대 규모로 움직이는 철충도 아니기에, 처리하는 것이 낫다 생각됩니다.

나:좋아. 아르망, 혹시 모르니 실시간으로 전투 변수를 보고해줘.

아르망:폐하의 뜻대로.

======전투시작=====

 

1-1 끝

다행히 전투는 예상대로 흘러갔고, 아르망의 예상대로 추가적인 지원은 없었다.

 

나:다들 수고했어.

샬럿:폐하께서 명하신 일을 처리했어요.

나:샬럿,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샬럿:다들 무사해요.아, 전 조금 다친 곳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오늘 밤에 확인해 보시겠어요?

나:하하, 고생했어. 요안나, 상태는 어때?

요안나:출격 때와 다름없는 상태라네. 하핫! 그러고보니 주군, 왜인지 모르지만, 꽤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지 않은가?

나:그러게. 어디 섬이라도 갔다 온거같은데?

요안나:하하! 내가 주군을 져버리고 어디를 오가겠는가. 그저 기분탓이겠지.

 

그렇게 요안나와 대화하고 있는 중에, 덴세츠 팀으로 같이 임무를 수행했던 백토 등 마법소녀 트리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백토:젠틀맨, 옛 뽀끄루의 군세들을 모두 정리했다. 역시 뽀끄루 대마왕... 문 라이트 매지컬

★파워로 뽀끄루를 교화시키지 않았다면, 저들의 통솔력이 더 증대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모모:백토, 저기 뽀끄루가 무서워 하잖아요? 대마왕 이야기는 혹시 모르니 그만하자구요.

백토:일 리가 있어. 그럼, 마법소녀 트리오는 젠틀맨의 명을 대기하도록 하겠다.

???:누구 마음대로 명을 대기하겠다는 거냐.

 

뭐지?

 

골타리온:잠시간의 협력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느끼진 않았겠지. 오만한 마법소녀여.

백토:너는...골타리온 XIII세!

골타리온:뽀끄루 대마왕님을 되돌려 받겠다. 더 이상은 네놈들의 세뇌에 뽀끄루 대마왕님이 노리개처럼 당하는 것은 용납...

뽀끄루:골타리온. 잠깐 나와 이야기좀 하자.

골타리온:오오 뽀끄루 대마왕님, 잠시 당신의 위광이 보였습니다. 명령을!

 

마법소녀옷을 입은 뽀끄루가 잠시 골타리온을 붙잡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황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1-2

어느정도 물자들의 보급과 정리가 끝나고, 오르카호의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나 또한 다시 사령관실 내의 밀린 업무를 잠시 정리하고 대원들이 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말이지 어디서 일거리가 튀어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 작은 함선 내에서 끝도없이 나오는 일들을 가끔 보다보면 지친다기보다는 놀랍다. 그러고보니, 메리와 마키나에 관한 서류들이 올라왔었는데, 그 아이들이 오르카 내부에 잘 섞여가는지 모르겠네.

 

나:콘스탄챠, 새로 합류한 메리나 마키나의 오르카호 적응 상태는 어때?

콘스탄챠:큰 일을 겪은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아요 주인님. 메리는 오르카호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느라 바쁜 모양이에요. 전 마키나씨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닥터와의 대화가 무척 즐거운 모양이에요.

 

마키나: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사령관님을 조금은 쉬게 만드는 물건이에요. 어때요?

닥터:오~ 그러면 지금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오빠한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겠는걸? 그래서,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는거야?

마키나:네? 당연히 그건 닥터가 개발해야죠.

닥터:응?

마키나:맞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의 가장 중요한 점은...

닥터:잠깐! 잠깐, 마키나 언니! 이건 뭔가 이상하잖아!

 

...다행이었던 것은, 마키나의 합류가 레모네이드 알파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오르카호의 내부인원들의 반발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선사했던 것은 비틀린 이상이었지만, 대부분이 만족했다는 모양이다.

 

마리:각하, 

마리:생각보다 마키나 모델이 보여준 꿈이 다들 마음에 들었었나 봅니다.

나:그래. 그러고보니, 마리는 그 때 뭐하고 있었어?

마리:윽...

 

마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나:뭐야, 무슨 일 있었나본데? 대체 뭐...

마리:비...비밀입니다! 각하!

 

 마리가 내 말을 끊으며 저쪽으로 쌩 날아갔다. 아무래도 나중에 개인적으로 물어봐야겠군.

 

(울먹이는)메이:나앤! 내가,내가 잘못했어... 이제 정신차려! 제발!

(눈을 반짝이는 거유의)나이트 앤젤:대장~ 이거 봤어요? 저도 이제...커졌어요! 마키나님께서 저를 구원해주셨어요! 나이트 앤젤은 이제 자유에요!

메이:나애애애애애애앵~

 

...스스로를 세뇌했다는 점과 나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 덕분에, 라비아타처럼 오르카 내부에서 그녀의 죄를 묻자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 또한 마키나에게 벌을 줄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모두에게 내가 채워줄 수 없었던 정신적인 휴식을 잠깐이라도 맛보게 해주었다는 점은 내쪽에서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

 

콘스탄챠:주인님, 잠시 확인해주셔야 할게 있어요.

나:아, 콘스탄챠. 무슨 일이야?

콘스탄챠:슬레이프니르 씨의 정찰팀이 철충무리를 발견해 교전허가를 요청중입니다.

 

생각보다 이 근방에 철충무리가 많은 것 같다. 방금 전에 디엔터의 승전보를 듣고 또 얼마 되지 않아 철충 무리와 조우하게 되다니. 아무래도 보급 및 정리가 끝나고 나면 바로 출발해야겠군.

 

나:확인했어. 교전허가를 내릴게. 다만, 무리하지 말고 철충 수가 많다면 오르카로 즉시 복귀하도록 해줘.

콘스탄챠:슬레이프니르 씨에게는 그렇게 전해놓을게요.

 

아무래도 속도나 정찰 면에서는 스카이나이츠를 따라잡을 부대는 없다시피 하기에, 새로운 지역에 발을 들일 때면 매번 다른 대원들보다 고생을 더 하게 되는 스카이 나이츠들이라, 미안한 마음이 좀 더 하다. 아무래도 근시일 내에 휴식과 더불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에 한해서 조그만 소원을 이루어 주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령, 슬레이프니르라면...흠. 오르카 아이돌 콘테스트나 아이돌 콘서트같은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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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끝

슬레이프니르:전투 끝! 후아, 사령관, 내 속도를 느꼈어?

린티:사령관~ 린티의 귀여움을 충~분히 보셨나요?

흐레스벨그:임무 완료했습니다. 사령관님.호...혹시라도 상을 받는다면 모모님의 싸인이라도 좀...

나:어디 다친 데는 없지?

블랙 하운드:네! 사령관님. 다행히 모두 무사해요. 탄약도 넉넉하구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부상없이 전투를 마쳤다는 말에 그제서야 나는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블랙하운드:추가로 보고할 게 있어요. 사령관님.

 

응? 하는 얼굴로 반문하는 내게 블랙하운드가 말을 이어나갔다.

 

블랙하운드:저희가 전투를 치른 곳 근처에서, 전투의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철충 시체의 풍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걸로 보아서는...최근에 벌어진 흔적이에요.

나:생존자가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다는 건가?

 

블랙하운드는 아마도...네 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될 것 같다.

 

1-3 검흔이 말해주는 이야기

나:우선 시티가드를 그쪽으로 보낼게. 아무래도 분석에 관한 임무는 그쪽에게 맞기는게 나을 것 같아. 탄약 보급이 필요하진 않겠어?

그리폰:방금 전 규모정도와 싸운다면, 적게는 다섯 번, 많게는 일곱에서 여덟 번 정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나:좋아, 아까도 말했지만, 가급적 전투가 일어날 상황이 아니라면 회피하고 수색 쪽에 집중해줘.

슬레이프니르:걱정하지마 사령관. 내가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서 알려줄 테니까.

나:부탁할게

 

자, 임무는 내렸고, 다른 부대쪽은...

 

칸:사령관, 근방의 철충들이 소규모로 대기하는 걸 확인했다.

나:여기랑 그리 멀지 않은 곳이네. 너희만으로 정리할 수 있겠어?

칸:다 뭉쳐있다면 부상자를 각오해야겠지만, 저정도라면 충분히 각개격파가 가능한 수준이다. 마침... 전우가 한 명 더 늘어서 서로 호흡을 맞추기에도 좋고.

샐러맨더:출동이야? 드디어! 대장, 여기 다 태워버리면 돼?

나:어쩐지 호드는 점점 더 개성이 늘어나는 것 같네. 칸.

칸:훗,우리 호드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지.

카멜:바보들이 많은 거겠죠. 하, 어떻게 동료들이 늘수록 바보들만 잔뜩...

샐러맨더:산불은 짜릿해, 늘 새로워! 방화가 최고야!

나:가급적이면 자제시켜줘...

칸:저래도 전투에 들어선다면 한 구간을 커버하는 믿음직한 아이다.

나:알았어. 부탁할게.

칸:진입하겠다.

====전투====

 

리앤:사령관? 방금 대략적인 분석이 끝났어.

 

멸망 전의 경찰 역할을 맡았던 시티가드였던 만큼, 그녀들의 수사력과 분석력은 뛰어났다.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있었을 텐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분석을 끝마쳤다.

 

나:보고해줘. 정찰부대 통신망도 열어둘 테니까, 정찰부대도 참고해줘.

리앤:좋아. 우선 철충과 부대규모로 맡붙은 것은 아니야.

나:부대규모가 아니라니? 이정도로 철충 시체가 쌓여있는데?

리앤:...나도 믿기지는 않지만, 최소한 이 근방에 있는 철충 시체들만으로 한정한다면 사실이야. 켈베로스가 만족할 정도로 뛰어다녔는데도 더 이상의 증거는 나오지 않았거든.

 

켈베로스가 만족할 정도라니 놀랍다. 어째 놀라야 하는 부분의 주객이 전도된듯한 느낌이지만.

 

리앤:날카로운 소검으로 베었어. 암살자 계통이야. 그러니까...절반 정도는 인지하지 못하고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찾다가 죽었을거야.

나:같은 모델의 여러 명이 전투를 치뤘을 수도 있잖아?

리앤: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보여줄게.

 

리앤이 보내준 사진들에는, 평범한 이들이 보아도 동일인물이 했다 믿을 정도의 검흔이 남아있었다.

 

리앤:여기 이쪽 끝을 보면, 깔끔하게 자르고 뺄 때, 거칠게 뺀 흔적이 남아있어. 이건 일종의... ‘버릇’같은 거야. 같은 검을 배운 바이오로이드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버릇은 개체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 설령 찌르는 것이 완벽하게 똑같더라도, 회수하는 동작은 일일이 가르치진 않으니까

 

과연. 그렇게 분석한 말을 들으며 리앤이 보내준 사진들을 대조해 보니, 리앤이 말했던 버릇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리앤:이것 뿐만이 아니야. 발을 딛는 흔적이나 다른 부분들이 한 개체가 행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어. 복수 개체가 이렇게 했다는 것은 최소한 전투에 한해서는 완벽하게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그건 매번마다 서로의 기억을 백업받아도 불가능하다구.

 

과연, 그런 근거라면 놀라울 정도다. 이런식의 움직임이 가능한 개체라면 우리 쪽에서도 티아멧 정도나 가능할 성 싶은데.

 

-사령관! 이 멍청이는 대체 언제까지 연락 안받을거야!

-대장, 사령관에게 더 이상 멍청이라는 표현은 좀...

 

동시에 귓가에 다른 쪽에서 온 통신이 스쳤다.

1-4 또 다른 흔적

메이:이...이 멍청아! 언제까지 안 받을거야?

 

화면 안에서 메이의 부루퉁한 표정 뒤에 머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이트앤젤이 동시에 보였다.

 

나:잠시 리앤이랑 이야기를 좀 하는 중이었어.

메이:뭐? 설,설마 나 말고 다른 애랑 이야기 중이었다고?

나앤:그런게 아니잖습니까 대장. 전에 스카이나이츠 분대가 생존자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보고해서, 그쪽으로 시티가드가 파견나갔다 들었습니다. 제 말 맞죠?

나:당연하지. 내가 메이를 두고 다른 여자애들이랑 히히덕 대겠어?

나앤:하아...사령관...

메이:그래? 흥!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그래서, 무슨 일 생긴거야?

메이:응. 지금 철충과 전투를 치른 흔적을 발견했어. 주변에 철충들이 조금 있어서 아직 접근은 힘들어. 필요하다면 저 녀석들에게 우리 둠브링어의 힘을 보여주고 싶은데?

 

또 다른 흔적. 멀리서 보아도 꽤나 격렬하게 싸운 듯한 모양새였다.

 

나:허가할게. 단, 흔적이 폭발에 날아갈 수 있으니까 메이 네 버튼은 자제해줘.

메이:흥!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아? 이번에야말로 둠브링어의 실력을 보여줄게!

========전투=========

전투가 끝나고, 비로소 남겨진 전투의 흔적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리앤:사령관, 새로운 곳을 찾았다고 했지? 그쪽 좌표 알려주면 바로 갈게!

나:아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리앤:다른 애들한테 맞겨둔거야? 그래도 우리만큼...아

 

리앤에게 보낸 사진은 초보자인 내가 단 한 번 보더라도 전의 현장과의 차이점을 알 만한 정도의 현장이었다. 전에 치른 전투보다 훨씬 격력했고, 주위의 철충과 나무들은 예검에 당한 것이 아닌, 날이 달린 둔기에 맞은마냥 일부는 찢어져 있었다. 이런 전투 흔적은 마치...

 

리앤:라비아타 모델의 전투 방식과 비슷해. 하지만...어설퍼. 찢어진 나무들도 그렇고, 곳곳에 핏자국 보이지? 치명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어도, 말라붙은 피가 이정도 거리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라면 맞는걸 두려워 하지 않는다며 싸웠다는 것인데... 저런 타입의 개체가 있었던가? 이건 라비아타랑 레모네이드 알파쪽에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나: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진 것 같네. 우리가 찾는 이는 하나가 아니야.

리앤:그래. 일단 그쪽 좌표도 알려줘, 아무리 대충 봐도 알겠다지만 전문가가 괜히 있는게 아니잖아?

나:그래.

 

통신을 끄고 말없이 둠브링어에서 보내온 사진들을 지긋이 본다. 곳곳에 갈라지고 찢어진 나무들과 말라붙어버린 피들. 무엇이 저 아이를 아프게 만들었는가. 어쩌면 저 아이가 가장 아파한건 저따위 상처가 아니라 인간님들이지 않을까.

 

1-5

아르망:그래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이 두 개라 이말씀이시군요.

나:그래. 이동경로를 예측해 줄 수 있겠어?

아르망: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나:역시 그런가.

아르망:폐하께서도 짐작하시다시피, 저희가 찾는 대상들은 발자국이나 여러 의견을 조합했을 때, 저 또한 리앤양과 마찬가지로 기동형 공격기라 추정합니다. 따라서, 두 번째 발견 지점으로부터 첫 번째 발견 지점으로 이동하며 전투를 했다는 근거는 타당하지 못하겠지요.

나:더군다나 기동형들은 자신들의 귀환위치를 적에게 알려주지 않기 위해 빙 돌아서 귀환하기도 하니까.

아르망: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늘에는 흔적이 남지 않으니까요.

 

하늘에는 흔적이 남지 않지. 어째, 이번에는 지난 백토 수색보다 훨씬 힘들어질 것 같다.

 

칸:사령관

나:무슨일이야?

칸:수색대상을 확인했다.

나:진짜?

 

역시 호드밖에 없다. 수색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발견하다니.

 

칸:하지만 조금...문제가 생겼다. 우선 먼저 전투가 일어났으니 지휘를 부탁한다.

나:알았어.

 

벌써 몇 번째 전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지휘하는 손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전투===============================

나:그래서...놓쳤다는 거네.

샐러맨더:아무래도 내 장비는 평지 전용인지라. 하하핫! 어쩐지 오늘은 운이 좋더라니, 역시 운이 따라준 날에는 항상 불운도 따라오는 법이야.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호드 부대가 휴식하는 중, 기계 위에서 휴식하던 샐러맨더의 눈에 맞은편 나무에서 그녀를 지켜봤다는 것 같다.

 

나:후우...그래도 장비에 카메라 장비가 달려 있어서 다행이야. 사진은 잘 찍어뒀네. 고생했어.

칸:필요하다면 더 추적하겠다.

나:우선 복귀해줘. 어차피 공중에 있어서 추적도 불가능하잖아? 지상병력은 수색 대상자들 중 하나를 찾아준 것으로 다 해줬어. 우리가 지원하기 쉬운 곳으로 가서 야영하거나, 아니면 복귀해줘.

워울프:으하, 드디어 씻을 수 있다! 며칠동안 빨래도 못해서 옷에 시큼한 내가 배였어....

퀵 카멜:야이 바보야! 사령관님 보는데 그런말 하지맛!

워울프:뭐? 왜? 푸훗! 니들은 잘 모르나본데~ 우리 싸령관니임 둘이있을 때 내 냄새를 기가막...

퀵 카멜:꺄악!

페더:그래서? 뭔데? 사령관님이 냄새? 내가 찍었던 것들 중에서는 단 한 편도...

퀵 카멜:꺄아아아악!

 

여전히 기운 넘치는 호드들이 화면 밖에서 화기애애하는 동안, 콘스탄챠가 사령관실 안으로 들어왔다.

 

콘스탄챠:사령관님, 탐사에 복귀한 티아멧 양이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나:티아멧이? 알았어.

티아멧:사령관님!

 

티아멧이 정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령관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참 가쁜 숨을 진정한 티아멧이 내게 말을 이었다.

 

나:뭔가 보고할 거라도 있어?

티아멧:기억났어요. 지금 이곳, 제 기억에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아!

 

티아멧이 나지막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 끝에는, 샐러맨더가 보내준 사진에 있는 대상의 얼굴이 있었다.

 

티아멧:올...리비아 언니... 그, 그럴 리가 없어. 언니는...

나:올리비아?

 

사진 속 저 바이오로이드의 이름이 올리비아인가?

 

1-7

라비아타와 레모네이드를 불러 티아멧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진을 공유했다. 티아멧이 전달해준 정보에 의하면, 이곳은 이전에 그녀가 실험을 당했던 장소 중 하나였다는 듯 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기시감이 느껴졌으나 굳이 내게 보고하지 않았지만, 탐색을 나갔다 오며 확신하게 되었다고.

 

라비아타:처음보는 바이오로이드네요. 제가 꽤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접했지만, 저런 예장은 처음 봐요.

레모네이드:확실히, 저희쪽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그렇다면 따로 양산형으로 등록되지 않은 실험체중 하나일 겁니다. 티아멧 양, 저 바이오로이드의 개체명이 올리비아라고 했죠?

티아멧:개체명은...잘 모르겠어요. 언니는 처음 만났을 때, 그냥 올리비아라 부르라고 했거든요. 제가 이곳에서 전투에 관련한 실험을 받을 적에... 인간님들은 언니를 실험체 P-02라 불렀는데...

레모네이드:특이하군요. 02라고 한다는 것은 단일개체가 아니란 소리고, 01이나 03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건데...

나:올리비아가 쓰던 무기는 뭔지 기억하니?

티아멧:모르겠어요. 그때 언니가 싸운 것은 본 적이 없어서...언니는 주로 정신 쪽을 검사받았거든요. 하지만, 저기 사진에 언니가 쓰는 기동 장비는...제가 실험실에서 쓰던 구형 장비일 거에요. 저 형태의 장비는, 잊을 수가 없으니까요.

나:그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을 텐데 수고했어. 그래도, 이전의 전투흔적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좀 드네.

레모네이드:우선, X-00 티아멧 유닛, 실험실의 위치는 알고 있나요? 아마 매듭을 풀려면 그곳에서 시작하는 게 적당할 것 같네요.

티아멧:알고 있어요.

 

그리고 티아멧은 에이다가 보내준 위성사진의 한 곳을 가리켰다.

 

티아멧:이곳 지하가 실험실이에요. 그리고 입구는... 여기.

 

그리고 티아멧이 가리킨 건,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나: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각 부대 정찰인원들 전원 복귀하라고 말해줘. 그리고...

티아멧:사령관님

 

티아멧이 무언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티아멧:이번 작전은... 저 혼자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라비아타:티아멧 양, 위험해요!

레모네이드:제 조언은 여기까지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른 인원들과 같이 보내고는 싶지만... 사령관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나:올리비아에게 다른 이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거야? 아니면... 혼자 만나고 싶은 거야?

티아멧:잘 모르겠어요. 둘 다 인 것 같기도 하구요.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번 임무는 속도가 생명이다. 우리의 흔적을 이미 안 그쪽에서 거처를 옮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뜸을 들이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었다.

 

나:알았어.

라비아타:사령관님! 재고를...

티아멧:감사해요. 라비아타님,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괜찮아요.

나:지금 출발할거야?

티아멧:네. 그리고, 입구에 모여있는 철충들도 있으니...사령관님, 지휘를 부탁드릴게요.

나:알았어. 조심해야해.

티아멧:감사합니다.

 

그리고 티아멧은 떠났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통신이 들어왔다,

 

티아멧: 전투지휘를 부탁드립니다. 사령관님.

================전투=========================

티아멧:내부로 진입했어요. 사령관님. 아직 내부에 조금 있는 철충들을 처리하고 난 뒤에 수색을 시작할...아!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저 끝에서 철충들을 조용히 정리해 나가는 것이 보였다.

티아멧 쪽을 겨누던 철충들은, 후열이 무너지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티아멧을 경계중일 뿐, 등 뒤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전투를 직접 보니 알 것 같다. 소검을 들고 필요한 부분만을 베어가며 나아가며 뒤로 생기는 흔적은, 분명 첫 번째에 보았던 흔적과 동일했다.

 

나:저 동작은 티아멧과 많이 닮았네.

레모네이드:제 정보와도 일치하는군요. 기본적인 틀은 티아멧 양에서 따오되, 다른 점도 분명 있어요.

티아멧:언니...올리비아 언니!

???:오랜만이야 티아멧.

 

화면 너머의 그녀는 티아멧을 보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올리비아라 부르지 말아줘. 난 더 이상 올리비아가 아니니까.

티아멧:그럼..

???:인간...님들이 내게 지어준 이름은 올리비아, 하지만 지금의 내 이름은 시시포스야.

티아멧:시시포스?

시시포스:그래. 끝도없이 목적을 향해 굴러가지만, 결코 끝에 도달하지 못하고 다시 시작해야하는 운명을 가진... 그래, 나는 시시포스야.

티아멧: 끝에 도달하지 못해? 그게 무슨말이야 언니.

시시포스:굳이 네게 설명해주고 싶지 않아. 설명하면...넌 분명 나를 동정하게 될 테니까. 그럼...

 

그리고 시시포스는 도약해서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티아멧:언니!

시시포스:따라오지 마. 그리고, 며칠 안에 여길 떠나.

 

펑! 하며 뭉게구름이 일었다. 그리고 시야가 걷혔을 때, 시시포스는 사라진 후였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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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물이나 회귀물인것 같지만, 판타지 요소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회귀물처럼 보이게끔 노력했는데 어떻게 비춰졌을지 모르겠네요.

키보드가 완전 쓰레기라 문법틀린건 이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