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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의 무게, 생명의 무게 :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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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을 받은 나는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스스로는 알기 힘들지만, 초조함이 묻어 나오는 얼굴이 아닐까.

방금까지 홀로그램실에서 회의록을 기입하고 있던 나는, 워울프로부터 수신 된 한 메일을 확인했다.


거기에 적혀있던 내용은...


"어라?"


모퉁이를 도니 거기엔,


"주...주인님...?!"


내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띤 리리스가 있었다.


"아... 리리스, 맞아 오늘은 비번이었나"


그녀는 블랙 리리스. 컴패니언 시리즈의 경호 바이오로이드이다.

내가 직접 지휘를 맡아야 하는 안건일 때, 내 옆을 사수하는 그녀이지만

지금은 전염병 사태로 오르카호 인근을 직접 순찰 돌며 안전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것보다 여기는 분명 함장 실 근처...


"아..! 저.....그!!!"


당황한 그녀는 무언가 변명을 준비하는 표정을 띄운다. 갈 곳 잃은 채 붕붕 떠다니는 손이 조금 안쓰럽다.

하지만 난 지금 그녀의 변명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미안 리리스, 나 지금 잠시..."


"해충...역시 그곳에 있었...어?! 주인님?"


산 넘어 산. 설상가상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리제는 나와 리리스를 번갈아 보더니, 눈이 생기를 잃어간다. 무슨 오해를 한 건지 안 봐도 비디오다.

해충이라 불린 눈 앞의 그녀는, 나에게 변명을 하려던 사실 조차 잊은 듯 임전태세에 진입한다. 큰일났다. 이쪽도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있다.


아니, 생각 해보면 뜻밖의 호기일 지도 모르겠다.


"어머...리제양, 해충이라뇨...주인님 앞에서 무슨 격이 떨어지는 발언이신 가요?"


정중한 말투와는 상반되게 당장이라도 발포 할 기세다. 그래, 차라리 잘 됐다.

둘이 서로 싸워주면, 나는 오히려 이 장소를 벗어나기 쉬워진다.


"더러운 해충이... 주인님 앞이라고 아양을 떨어대는 그 입은 360도로 찢어 줘야 조금 조용해 질까..."


이쪽은 이쪽대로 가위가 번뜩인다.


"호호...! 우리 리제양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셨나 보네요. 우리, 저기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할까요?"


무섭다. 특히 웃을 때 눈은 전혀 웃고 있질 않아서 공포감을 곱절로 조성한다.


"벼룩만도 못한 좁쌀만한 뇌로 생각한 거 치고는... 그럴 듯 한 생각이야, 해충... 주인님께 구충 스프레이 냄새를 풍길 순 없으니까"


"스프레이를 그 천한 입에 박아 넣고 발포해버리기 전에 조금 조용해 주시겠어요? 주인님 앞에서 더 험한 말이 나오기 전에"


"맞고 다니는 게 버릇이 돼서 느려진 돼지같은 몸뚱이로 할 수 있으면 해봐...마조히스트 해충"


"....호호"


백전연마의 압력을 뿜어내는 둘은 험악하기 그지 없는 분위기를 두르면서도 나한테 인사만은 정중히 하고 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착한 둘이다. 언젠가 저 둘과도 쌓인 이야기를 풀어놔야겠지.


"맞아, 이럴 때가 아니야"


용건을 떠올린다. 나는 함장 실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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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도착 한 나는, 나를 부른 장본인을 찾았다.


"워울프...!"


호출 한 워울프의 코드 명은 003. 양산형 보병 모델인 워울프 사이에서 두 번의 승급을 이룩 한 몇 안 되는 워울프이다.


그녀는 본래 스스로에게 부과된 능력 이상의 전투력과 판단력으로, 많은 전투에서 커다란 공을 거뒀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한 소대의 통솔까지 맡기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함 내 순찰 스쿼드의 지휘를 하는 중일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에 위화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곳은.


"왔어? 사령관"


"메이, 그래서요? 더 자세히 당신의 한심한 속내를 드러내 보시지요"


"하으읏...메이는..."


함내 식당이기 때문이다. 워울프의 옆에는 평소라면 보기 힘든 조합의 두 명도 보였다.


한 명은 방금 스스로를 3인칭으로 칭한 메이이고,


또 한 명은


"주인, 오늘은 저녁을 드시지 않는다 전해 받았사옵니다만"


내가 온 것을 깨닫고 야릇하면서 당당한 시선을 보내는- 소완이었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누가봐도 이 소동의 주동자로 보이는 소완을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소첩에게 그런 뜨거운 시선을 보내셔도, 소첩은 주인께 걱정을 끼칠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사옵니다"


누가 봐도 뻔뻔한 변명이다.


"너 진짜..."


"주...인...? ...헤헤 오빠다아..."


"메이..?"


그 와중에 날 보며 헤벌레 웃는 메이.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령관, 내가 설명 할 게"


"고마워"


"죠아...헤헤"


테이블 석에 걸터앉아있던 메이가 나를 보고 총총 달려와 안기는 걸 밀어내며 워울프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게 말이야"


--


'좋아, 이 정도면 조금 쉬어도 괜찮겠군'


함내 순찰 근무 교대표를 확인 한 후에 나는 안심한 듯 한 숨을 돌린다.


듣자 하니, 인근에 새로 발견 된 에어리어는 전염병으로 엉망이 되어있는 듯 하다. 덕분에 평소에는 조금 융통성이 듣던 함 내 순찰 일도 꽤 빡빡해졌다.

요령 있게 조율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 지긋지긋 한 함 내를 신발 창으로 청소하듯 쏘다녔으리라.

가끔은 이렇게 여유를 즐겨주지 않으면 내 성격 상 스트레스가 쌓여서 히스테릭 해진다는 자각이 있다. 내일 정오쯤 까진 특이 사항이 없으면 자유 시간이다.


오늘은 실컷 마셔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오랜만에 함내 식당으로 향했다.


그 때


"응?"


"메이잖아"


우연히 메이와 마주쳤다. 


"워울프...003, 순찰 중이야?"


내 계급장을 확인 하더니 그렇게 말했다.

기분탓일까? 그녀는 기운이 조금 없어보였다.


"아니, 지금은 비번이야. 그러는 너야말로 긴급 소집 된 회의는 끝났나 보네"


"흥 건방진 건 여전하네. 맞아, 방금 막 끝난 참이야"


평소 같으면 기운 넘치는 그녀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회의 중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본데


"마침 잘 됐네, 같이 한 잔 어때?"


"아앙? 이런 상황에 음주? 아무리 비번이라지만 너무 풀어지는 거 아냐?"


"뭐 어때, 적당한 음주는 스트레스를 풀어줘서 컨디션 유지에 도움을 준다고"


"하, 뚫린 입이라고"


장난을 되받아 칠 기력은 있나보다.

이정도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꽤 기분이 풀어지겠지.


"알겠으니까 가자"


나는 메이의 팔을 잡아 끌고 간다.


"어...!? 아니...! 야!!"


별 다른 예정도 없는지, 불평을 흘리면서도 순순히 따라온다. 여전히 사람은 좋다.


그렇게 우리는 함내 식당의 테이블 석에 도착했다.


"소완, 네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건 드문데"


"워울프군요"


소완이 글래스 잔을 닦으며 슬쩍 눈길을 준다.


"딱 봐도 그 바보가 지금은 밥 먹을 기분이 아니다~할 일이 있다~ 하면서 저녁을 걸렀나 보네. 문전박대 당해서 침울해진 리리스랑 빼다 박았어"


뒤에서 메이의 무신경 한 발언이 울려 퍼진다. 실내 온도가 급격히 내려간다.

나는 이 때 메이를 데려온 걸 처음으로 조금 후회했다.


"리...리스라고 하셨사옵니까"


소완이 말을 더듬을 뻔 했다. 방금 말이 상당히 먹혔나 보다.


"너네 셋이 맨날 바보 하나 두고 싸우는 거야 일상다반사니까. 유유상종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거 아냐?"


"유유...상종..."


소완이 점점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 되어간다.

저런 직구를 악의 없이 말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둘 다 진정하고, 마침 우리밖에 없어서 조용한 데 분위기를 즐기는 건..."


"그렇군요. 워울프, 좋은 생각이옵니다. 메이도 어서 앉으시지요"


"아니, 난 이 녀석한테 억지로 끌려온 거야. 애초에 난 술도 안마시고, 방에나 가서..."


"그런 매정한 말씀 마시옵소서. 방금 주인께 연락을 받으면서, 메이의 훌륭한 언변도 전해 들었사옵니다. 회의의 중심에 서서 당당히 이야기를 진전 시키셨다고... 당신은 대접 받아 마땅하옵니다"


"그 바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메이의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흐...흥, 그것도 그렇네... 그럼! 이 몸에게 어울리는 진수성찬을 대접 하도록 해."


"알겠사옵니다. 후후"


살짝 웃음을 걸친 소완은 그렇게 읊조리고 주방으로 슬쩍 들어갔다.

불안하다. 소완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게 신경 쓰인다.

‘약차’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사령관이랑 약속했을 테고... 무슨 짓을 벌일 셈이지?


"메이, 너무 소완을 놀리지 마"


"응?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놀린 적이 없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테이블석 의자에 올라가며 말한다. 살짝 끙끙댄다. 다리가 짧아서 올라가기 힘든 가 보다.

그게 놀리는 거다, 같은 말을 해봐야 의미가 없겠지. 나이트앤젤이 고생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안 들리게 가벼운 한숨을 흘리고 나도 메이 옆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는다. 쉽게 앉자 조금 불만스러운 듯 쳐다본다.


"그래서,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


입을 꾹 닫아버리는 메이.

물어볼 타이밍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생각보다 무거운 고민일 수도 있고.


'뭐, 어차피 혼자 마실 생각이었으니까. 둘이서 조용히 마셔도 차이는 없지'


메이는 술을 안 마시겠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나는 적당한 대화 주제를 머릿 속으로 고른다.


"워울프 너는... 그 바보한테 되게 자연스럽게 대했었지"


"응? 아- 그렇지"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그렇게 말해왔다.


"후...얼굴에 철판을 몇 겹이나 깐 건지, 직급의 차이는 이해하고 있는 거야? 그에 비해 나는..."


투덜대더니 갑자기 풀이 죽는 메이. 이건 혹시 월척인가.


"사령관이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재촉하듯, 그녀의 편을 들면서 말했다.


"이번엔 그 녀석은 잘못이...없을 지도..."


그러더니 고개를 붕붕 젓고


"아냐! 저번엔 그 멍청이 때문에 어떤 추태를 보였는데...!"


"아 그 수영-"


죽일 듯이 노려 보길래 어휘를 조금 고른다.


"사령관이 바보 짓을 했던 때인가 보네"


수긍 한 기색이다.


"사람이 틈만 나면 놀려 대기나 하고... 이 몸이 얼마나 대단한 고급 인력인지 전혀! 저.언.혀 이해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고 나서 사령관이 엄청 사과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뭐, 라며 나를 본다. 이어서 말했다.


"사령관이 그렇게 쩔쩔 매는 상대가 오르카호에서 메이 말고 또 누가 있나 싶어서 말이지"


"...! 그...그것도 그러네"


뭐야! 바보가... 솔직하게 굴 것이지- 라며 혼자 수줍어한다. 사령관 이야기만 되면 사람이 나사가 하나 빠진 단 말이지.

조금 기분을 회복 한 메이랑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소완이 글래스를 두 잔 들고 온다.


"뭐야 소완, 저녁 준비를 하는 게 아니었어?"


메이가 두 잔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의문을 제기한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길, 메이가 자주 드시는 미디움레어로 익힌 스테이크를 지금 레스팅 중 이옵니다. 금방 가져 올 테니, 우선 이 것을"


그러고는 메이와 내 앞에 들고 온 잔을 놓아준다. 나는 평소에 마시던 블루 하와이. 역시 사람 취향을 잘 파악한다.

메이는... 뭐지?


"워울프 몫으론 안주로 적당 한 과일을 선별해서 오겠사옵니다"


"소완, 무슨 속셈이야. 나는 술을 안 마신다고 말 했을 텐데?"


"그것이 술로 보이시옵니까?"


내가 슬쩍 메이 잔을 들여다 본다. 커피 우유...처럼 보이는 깔루아밀크다. 고개를 들어보니 소완과 눈이 맞았다.

'말 하면 가만 안 두겠사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길래 별 말은 안했다. 뭐, 가끔은 술을 통해서 쌓인 이야기도 풀어주면 좋을 것이다.


"흥, 커피 우유? 이 몸을 뭐로 보는 거야, 스테이크에 커피 우유라니"


진짜 커피 우유라면 웃긴 조합이긴 하다. 깔루아밀크랑도... 어울리나?


"소첩의 실력을 못 믿으시옵니까? 괜찮은 조합이옵니다"


그냥 그렇게 밀어 붙일 생각인가 보다. 나는 강 건너 불 구경 하는 심정으로 블루 하와이를 한 모금 마신다.

상쾌한 파인애플의 향과 라임 맛, 달콤함에 알코올의 쌉싸름함의 적절한 배합이 혀를 자극한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뭐, 속이 검은 여자긴 하지만, 요리 실력 하나만큼은 나도 인정하니까"


메이는 그렇게 말하고 단 숨에 잔을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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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추태를 보이기 시작 한 메이가 보기 안타까워서 나를 불렀다?"


"뭐, 그런 셈이야"


워울프는 몇 잔째인지 모르는 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취한 기색은 없는 것 같다. 술고래가 따로 없다.


나는 안도와 허무함을 섞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 해소된 것 같긴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놀아난 기분이 들어 유쾌하진 않다.

내게 수신 된 메시지에는 '사령관, 메이가 위험한 상황이야. 자세한 건 함내 식당에 직접 와서 보고 판단해 줬으면 좋겠어' 라고 적혀있었다.

위험하다면 위험하긴 한데...


"워울프, 쓸 데 없는 소리는 그쯤 해두시지요"


"...소완, 메이가 술에 형편없이 약한 건 너도 잘 알잖아?"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주인?"


모르는 척 잡아 뗄 생각인가. 소완이 그 정도의 정보도 파악해 두지 않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변명도 많이 준비 해뒀겠지.

쓸 데 없는 대화로 체력을 소모시키고 싶진 않다. 내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소완은 조심스럽게 웃으며,


"오신 김에 주인께서도 한 잔 어떠시옵니까? 훌륭한 안주들이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사양할게. 우선 이 녀석을..."


"아아앙...! 딴 데 보면 시러... 여기 봐"


계속 떼어놓으려 하니 울려고 해서, 지금은 내 왼 팔에 볼을 비비고 있는 메이가 칭얼댄다.


".....메이를 어떻게든 해야할 것 같아서"


"그렇사옵니까...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지요"


들을 이야기도 거의 다 들었고요, 사악한 미소를 띄운 소완은 그런 말을 남기고 조리를 마무리 하러 주방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여자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메이, 방에 데려다 줄테니 같이 가자"


"안대 안대, 메이랑 같이 적셔 오빠"


"적셔...? 어디서 배운 표현이야 대체"


워울프를 바라보니 자기는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난 안 마셔. 너도 그만 마시고"


그렇게 말하고 메이가 또 싫다고 말하기 전에 빠르게,


양 팔로 그녀를 안아 올린다.


"...!"


메이가 살짝 움찔거린다. 온 몸으로 놀란 신경을 표현하고 있는 느낌이다.

워울프는 워울프대로 휘파람을 불며 날 쳐다보길래 째려봐 주니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지금은 메이다.


메이는 생각보다, 안아 올린 뒤로 잠잠해 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안아보는 건 처음인데, 정말 가볍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니 새빨개져 있었다. 역시 술에 많이 취한 건가.


"워울프 너도 적당히 마시고. 내일 정오부터는 다시 근무 복귀지?"


"역시 사령관,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


꽈악, 메이가 내 팔뚝을 꼬집었다. 또 칭얼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으니 서둘러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 주려 했다.


"아무튼, 이제 알았을 테니 메이한테 술은 주지마"


"네이-"


적당히 대답 한 그녀는 소완이 옮겨 온 다음 잔을 마시고 있었다. 소완도 나한테 정중히 인사를건냈다.

함내 식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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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로 나와 메이의 방으로 가려니, 그녀의 방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그래서 난 메이를 내려 놓으려고 하는데-


"...저기"


품 속에서 메이가 방향을 가리킨다. 귀소본능이라 하는 건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래도 계속 이런 상태로 걸어가다 대원들이랑 만나면 쓸 데 없는 오해를 살 수 있기에 내려 놓으려고 한다.

"...싫어...안아줘"

내 가슴 언저리 옷깃을 잡으며 응석을 부려온다. 팔이 아팠지만, 복도 한복판에서 날뛰기 시작하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아 그냥 가기로 했다. 가볍기도 하고.

나는 메이가 말 한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아무랑도 안 마주치길 바라면서.

그러고 있자니, 쭉 조용하던 메이가 중얼거렸다.


"메이는...나쁜 아이인 걸까"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자기 침울해진 그녀가 신경 쓰였지만,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대답했다.


"메이...오빠한테도 매일 모질게 굴고...이번에도...하지만..."


문장 구성이 지리멸렬해서 잘 못 알아 듣겠다. 일단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메이는...메이같은 아이들 내버려둘 수 없는 걸...구해주고 싶은 걸..."


"아..."


갑자기 주제가 튀었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드디어 알았다.

회의 때 자기가 일방적인 주장을 했던 걸 반성하는 모양이다.


"미안해애..."


오갈 데 없이 놓고 있던 팔을 내 목 주위로 두른다. 눈동자가 조금 젖어있다.


"...메이"


기가 세고, 자존심이 세서 오해 받기 십상이지만, 그녀가 누구보다 자상하고 여린 마음씨를 지녔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그런 개체니까, 같은 말이 아니다. 바이오로이드도 결국은 지적 생명체. 개발 초기 그 방향성이나 틀은 잡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성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나는 다른 멸망의 메이 개체를 직접 상대한 적이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그녀들은 배짱이 두둑하고 열정적이며 호전적인 성격을 타고나는 것 같다.

분명 내가 봐온 메이도 그랬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려 했다. 스스로보다 타인을 우선시하며 무르고, 휘둘리는 성격을 숨기기 위한 자기방어기제로 드센 스스로를 연출했다.

그래... 분명 그녀가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낸 그 날부터.


나는 말을 골랐다.


"메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걱정 마, 그깟 전염병 닥터가 해결해줄 거야"

그녀는 술에 취해있던 동안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메이가 스위치를 누를 일은 없을 거야, 그런 약속은 해주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그녀의 기운을 복 돋아 주고 싶었다.


"실은, 난 메이, 네 차가운 태도가 본심이 아니란 거 알고 있어"


그대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메이가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가시 돋친 말로 화 낼 때도, 자기 스스로가 누구보다 상처받고 있단 것도 알고"


상대가 술에 취했다지만, 내가 취한 건 아닐 텐데, 줄줄이 이야기 하는 스스로를 주책이라 생각했다.

나도 처음부터 그녀에게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던 건 아니다.


한 때, 그녀의 심리 상태가 굉장히 불안했던 적이 있다. 오르카호에 합류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녀는 이미 폐 건물이 된 한 기업의 빌딩에서 무기도 소지하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


본래, 바이오로이드도 인간이기에 숙식 활동은 필요하다. 다만, 생존력이 인간에 비할 바는 아니라, 극히 적은 식량만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격한 운동이나 전투로 소모가 심하지 않으면, 한 숟가락의 밥으로 3달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과는 같은 열량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크게 차이 나는 것이다. 그런 유전공학적 기술력 없이는 바이오로이드 대량 생산 같은 일은 불가능 했을 터다. 그녀들 전부의 활동량과 근력을 사람에 대입했을 때 필요한 열량은 천문학적인 숫자일 테니. 순식간에 식량난이 다가 올 것이다.


물론 지금 오르카호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원활 한 식량 공급을 바탕으로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식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게 내 지시이기도 했다.


"부하가 실수로 크게 질책 받게 된 상황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기 실수라 말했던 것도"


하지만, 폐 건물에서 수십 년간 혼자 보내야 했던 그녀는 어떠할까.

썩어서 파리가 날리는 음식을 섭취해도 바이오로이드는 식중독에 걸리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부패 한 덩어리를 섭취해 왔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 시간이었을 지, 나에게는 그 편린조차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그녀 외에도 많은 무기를 잃어버린 실종된 바이오로이드들이 혼자 살아남기 위해, 철충을 피해 밀폐된 공간에 숨어든 후 바퀴벌레나 구더기를 먹어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최악의 상황엔, 인근에서 생을 마감 한 같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살을 먹어 생존하는 경우도 있다. 동족상잔이란 것이다.

그런 피폐한 생활을 반복해온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바로 심리 치료다.


"오르카호의 한 명 한 명을 스스로보다 아낀다는 것도"


말이 심리 치료지, 단순한 기억 소거술이다. 그래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과정을 생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재기불능 수준으로 망가진 아이들은 기억의 개변에 가까운 심리 치료가 행해진다.

당연하게도, 메이도 해당 프로그램을 받아야 할 정도로 불안정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다. 거절의 태도를 고수하는 그녀의 설득을 위해, 많은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힘썼지만, 실패하였다.

멸망의 메이라는 명령 거부권이 있는 개체였기에, 강제도 불가능 했다.


결국 그녀가 다시 일어서게 된 계기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얼마나 고심 끝에, 어느 정도의 결심으로 그녀가 회복하게 됐는지는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그 날을 기점으로 그녀가 기록 상의 멸망의 메이와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는 것.


"그렇게 상냥한 너라서, 그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구하고싶어 한다는 것도..."


메이의 태도에 맞춰 나도 필요 이상으로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상냥하게 대하고, 지켜주고 싶다고도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그 행동이 그녀를 망가트릴까 무서웠다.

그 시절 그녀의 부서질 것만 같던 모습이, 그녀의 과거를 말해주던 주변 환경이, 나를 겁먹게 했다.

변명일 수도 있다. 그녀의 회복이 너무나 극적이었기에, 그녀에게 맞추기만 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뿐이라는 자각도 있다.


실컷 아는 척 했지만, 결국 난. 제일 중요한 부분에서 그녀를 신뢰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얼간이가 따로 없네'


그렇게 난 스스로를 자조했다.


어느 샌가 메이의 방에 도착 한 나는, 마스터 키로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를 침대에 눕혀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방을 나서는 내 뒤에서,


"나는...이미 행복하니까..."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든 메이가, 그렇게 잠꼬대를 흘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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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도 대충 정리 됐고, 슬슬 나도 취침 준비나...'


지이잉


메이의 방에서 나와 그렇게 생각하 던 찰나, 휴대용 단말이 또 울렸다.


'뭐야, 이번엔 누구 장난......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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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이틀 뒤 저녁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