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령관이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른다. 

트릭스터 포획 작전 중 일어난 일이였다. 트릭스터가 두 개체나 한 곳에 모여있다는 것을 모른 사령관의 실책이다. 그리고 사령관은, 그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 


온 몸이 박살난 기분이였다. 아니, 어쩌면 기분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가 어디지? 마지막으로 봤던 건... 마리의 외침과 함께 내쪽을 향해 사격하며 달려오는 브라우니들이였다. 그 이후엔 큰 충격이 있었고, 간간히 눈을 떴지만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둡다. 차갑다. 조명 하나 없고, 바닥도 너무나 차가웠다. 트릭스터, 트릭스터는? 잡기 직전까지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버리다니. 내 실수다. 진지가 완전히 구축되기 전까지 오르카호에서 나오는 게 아니였다. 하지만, 지금 후회해봤자 되돌릴 수도 없다. 미안함,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그녀들은 다시 사령관 없이 싸워야겠지. 슬픔, 이제 다시는 그녀들을 못 보는 걸까. 두려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죽어야 한다니.


덜컹, 끼이익. 무언가... 묵직한 소리가 났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인가? 이내 눈부신 빛이 비춰지고,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빛이 익숙해졌을 쯔음, 난 이곳이 멸망 전의 군용창고임을 깨달았다. 수많은 무기, 수많은 AGS, 그리고 수많은... 철충. 그것들의 앞에는, 트릭스터가 있었다. 흰색의 팔에 섬뜩한 손톱. 당장이라도 내 영혼을 빼먹을 듯한 기다란 혀. 보통의 철충보다도 훨씬 이형의 모습을 한 철충. 연결체 트릭스터. 그녀석이 내게 다가오며 무언가 지껄였다. 어라? 알아들을 수 있다. 저녀석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나?


 "최후의 인간이여."


 듣기싫은 목소리. 앞으로 그놈이 어떤 말을 할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귀를 막을 수 없었다. 무섭다, 당장이라도 구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너를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은 없다." 


의외의 대답. 난 그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 날 죽이지 않는다면, 대체 어쩌겠다는 말인가?


"너를 살려둔 채로 그 벌레들에게 돌려보내겠다. 하지만 그것들도, 너도, 자신들의 파멸을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돌려보낸다고? 그것도 살려둔 채로? 상황파악도 되지 않은 채 나는 그저 두려움에 떨며 그놈을 바라봤다. 기괴하게 뒤틀린 안면에 박힌 눈을. 


"하지만, 너는 살아서도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네놈들이 말했지. 창에 몸을 꿰뚫리면 육체의 상처를 입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내가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다. 철충이란 놈들은, 전부 이런 건가? 그때,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들이 걸어나왔다. 기간테스. 정확히는, 감염된 기간테스... 저거너트. 그리고 그것들의 아랫도리에는... 셀주크의 포가 달려있었다. 그것만큼 우람한... 무기가. 


"쥬지에 후장이 꿰뚫리면 영혼의 상처를 입지." 


소름이 돋았다. 이제서야 깨달았다. 트릭스터의 말, 수많은 기간테스, 그리고 저 거대한 포들... 저놈들은 날 강간할 생각이다. 내 정신을, 저 포로 박살낼 생각이다. "싫어! 도와줘! 콘스탄챠! 마리! 아무나 좋으니까 여기서 꺼내줘!" 내 처절한 외침은 기간테스가 날 덮침으로써 묻혀버렸다. 싫어, 내 인생의 첫경험이 로봇에게 박히는 거라니, 차라리 바이오로이드한테 박힐래! 전부 소용없었다. 내 연약한 인간의 몸은 기간테스를 밀쳐낼 수 없었고, 곧 셀주크의 포가... 


일주일쯤 지났을까, 사령관은 초췌한 모습으로 숲에서 발견되었다. 조금의 타박상과 찰과상이 있었지만,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지휘 없이 더 나아갈 수 없었고, 무언가 망가진 듯 함장실에만 틀어박혀있는 사령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 사령관이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옛날에 쓴 소설이야


글 잘쓰는 애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