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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Day 121. PM 04:49

 

 작전 회의실로 향하는 철혈의 레오나의 발걸음은 오기 전과 달리 힘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함께 작전 회의실로 향하는 발키리의 걸음은 앞서 걷는 자신의 대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대장과 달리 어두웠다.

 

“대장님. 타 부대의 지휘관들이 대부분 소집을 승낙했습니다.”

 

“그래, 알겠어. 이럴 때만큼은 우리 부대 숙소가 외곽인 게 조금 흠이네.”

 

“...모두 이야기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두운 발키리의 어조에 철혈의 레오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자신의 부관을 바라보았다. 감정기복이 적은 발키리조차 얼굴색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철혈의 레오나는 자신이 가득 차 있었다.

 

“발키리, 내 부관으로서 얼마나 오래 있었지?”

 

“..약 4달입니다.”

 

“아니. 3달하고 14일이야. 후후, 너도 어지간히 정신이 없나 보구나.”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겠죠. 대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앞으로..”

 

“발키리, 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다 여기까지 왔어.”

 

 철혈의 레오나는 자신의 부관의 말을 끊으며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내가 미래를 생각해, 미래를 위해서. 그를 위해서. 이 오르카함을 위해서. 앞으로의 인류재건을 위해서. 이 모든 걸 위해서 여태까지 행동해 왔다고 난 생각했어.”

 

“그건..사실입니다. 대장님은 여태껏..”

 

 발키리는 그녀를 옹호하려 했지만 철혈의 레오나는 웃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 네 말은 틀렸어. 발키리. 난 그저 여태까지 그저 내 사욕을 위해 행동했던 거야.”

 

“예?”

 

“너는 사령관이 변한 모습보다 그 이전의 허술한 모습이 마음에 더 들었다고 방금전 대답했었지. 하지만 난 달랐어. 그가 조금 더 내 이상에 걸맞는 남자가 되길 원했지.”

 

 철혈의 레오나는 고개를 들어 조금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작전 회의실로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렇게 된 것도, 우리가 오늘 내린 모든 작전 결정도. 그가 지금 방안에 박혀 있는 것도. 이 모든 게 내 사리사욕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지도 몰라.”

 

“대장님..”

 

“발키리, 네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아.”

 

“...”

 

“아마 오늘 있었던 작전의 내막이 오르카 내에 모두 공개된다면..”

 

 아마 모두 지금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겠지. 철혈의 레오나는 굳이 뒷말을 내뱉진 않았다. 자신의 유능한 부관이라면 앞으로의 사태와 책임으로 인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상은 하고 있을 것이다.

 

“..대장님은 대장님의 위치에서 항상 노력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이렇게..이렇게 끝나는 건 저로서는 용납하기 힘듭니다.”

 

“난 별로 상관없어. 발키리.”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어머. 너도 꽤 감성적일 때가 있구나. 그 앞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후후.”

 

 철혈의 레오나는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돌려 발키리를 응시했다. 발키리는 갑작스런 대장의 말에 얼굴에 홍조가 떠 있었다. 철혈의 레오나는 짐짓 장난스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아, 이러다 내가 부관한테 선수 뺏기는 대장이 되는 거 아닐까?”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님프양처럼 대장님이 먼저 행복해지셨으면 하는 바램이니까요.”

 

“후후, 난 참 행복한 대장이야. 이렇게 유능한 부하들과 함께 한다니.”

 

 한껏 밝아진 어투에 발키리 역시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불안하기 짝이 없음에도 자신의 대장은 모든 걸 책임지기 위해 당당하게 걷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그녀와 함께 그걸 책임지는 것.

 

“생각 외로 밝구려. 그대는.”

 

 복도의 코너를 돌자 그 사이에서 다른 인영이 나타났다. 검푸른 머리칼과 흰색의 제복, 옆에는 칼을 한 자루 찬 블랙리버의 정수, 그리고 현 오르카함의 호라이즌의 지휘관인 무적의 용이었다.

 

“..당신 부대의 숙소는 그 방향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잠깐 따로 들려야 했던 곳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구려. 동행해도 되겠소?”

 

“좋아. 난 상관없어.”

 

 무적의 용이 철혈의 레오나의 어깨너머 발키리에게 시선을 보냈고 발키리는 조용히 목례를 했다. 무적의 용 역시 목례를 하고 철혈의 레오나와 함께 발을 맞추어 걸었다.

 

“..소관도 그대의 전언을 보았네만, 실로 갑작스런 결정이구려.”

 

“더 미룰 것도 없잖아. 우리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후, 온갖 사선을 넘어왔다고 생각했네만. 지금처럼 가슴 조이는 적은 처음이구려.”

 

 철혈의 레오나는 그 말에 무적의 용을 바라보았다. 입으로는 힘든 척을 하지만 무적의 용 역시 얼굴색은 화색이 피어 있었다.

 

“우리가 한 짓은 용납받지 못할 것이오. 사령관의 직할부대와 독립부대들 역시 모였으니 삽시간에 이 함에 퍼질 것이지.”

 

“그렇겠지. 아머든 메이든의 그 기자행세를 하는 바이오로이드라면 1시간 안에 다 퍼뜨리겠지.”

 

“우리는 모든 신뢰를 잃고 책임을 지고 모두 떠나야 할 수 있소.”

 

 무적의 용이 단호한 눈빛으로 철혈의 레오나를 바라보자 철혈의 레오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 시선을 받아쳤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소집한 거야. 내려오면 뭐 문제가 있어? 바뀌는 거라고 해봐야 우리 후속기의 대체코어가 되는 것 정도인데.”

 

“...후후, 주군이 그댈 부관으로 고집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구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다니 말이오. 솔직하게 감탄했소.”

 

“칭찬으로 들을게.”

 

 어느새 그녀들은 불과 1시간 전에 있던 장소 앞에 도착했다. 문은 닫혀 있으나 이미 안쪽에는 누군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붉은 점등이 알려주었다.

 

“자 이제 단두대 앞이야. 무적의 용 중장. 남길 말은 있어?”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卽死). 이 말이면 충분하오.”

 

“멋지네. 발할라가 그대와 함께 하길.”

 

“좋소. 내 죽거든 그곳에 데려가 주시겠소?”

 

“내 부관이 어련히 챙길 거야. 후후.”

 

 철혈의 레오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인식표를 작전 회의실 명패에 가져다 대었다. 이윽고 거대한 작전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수많은 인영이 들어오는 그녀들을 일시에 바라보았다. 작전 회의실이 작은 크기의 방은 아니었으나 지금만큼은 이 방이 좁게 보였다. 수많은 이들이 작전 회의실의 원형 전등 아래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전등 빛이 닿지 않는 곳에도 다른 이들이 있으리라 철혈의 레오나는 숨을 한 번 삼키고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가장 늦은 것 같네.”

 

 철혈의 레오나는 정면을 응시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초리들에 기죽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지 않고 묵묵히 서 있었으며 그 뒤에 각자의 부관들 역시 서 있었다.

 

“그..그럼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석 인원들을 확인하겠습니다.”

 

 콘스탄챠는 시선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방안의 인원들을 한 명씩 쳐다보았다. 그녀의 경험상에서도 이 작전 회의실이 이렇게 꽉찬 건 처음이었다.

 

“먼..먼저 사령관님 직할부대 배틀 메이드의 대표로 참석한 저 콘스탄챠와..”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입니다.”

 

 콘스탄챠의 등 뒤로 거대한 음영이 걸어 나왔다. 불굴의 마리에 못지않은 거구와 대비되는 단아한 얼굴, 가지런히 정리한 은발이 인상적인 라비아타였다. 그녀의 등장에 무적의 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대는 분명 나오지 않을 줄 알았소만.”

 

“..주인님께 범한 죗값을 치루는 자리이기에..저 또한 죄인이니까요.”

 

 라비아타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운 듯 콘스탄챠는 슬픈 표정으로 자신의 큰언니를 바라보았다. 그때 입구 근처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인영이 전등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령관 직할부대 컴패니언 대표 블랙 리리스. 따로 데려온 자매들은 없어요.”

 

 시큰둥한 표정으로 블랙 리리스는 자기소개를 마치고 다시 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회의실의 중앙을 응시하는 그녀의 호박빛 두 눈동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사령관 직할부대 080기관 소속 닥터야. 그리고..”

 

“에이미랍니다.”

 

 콘스탄챠의 곁에 서 있던 닥터가 자기 소갤 하자 뒤에서 미소를 지으며 에이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닥터와 달리 에이미는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뱀이 짓는 미소와 같이 매우 싸늘하게만 보였다. 닥터가 자기소갤 마치자 회의실의 중앙 홀로그램 위에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시퍼런 안광을 내뿜는 거대한 로봇이 홀로그램을 가득 채웠다.

 

-사령관 직할부대, AGS 로보테크의 지휘관. 알바트로스. 본 회의에 참석하겠다.

 

“AGS들까지 참석하다니..”

 

“호오..”

 

 평소에는 사령관의 직할부대로서 작전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AGS의 최고 지휘관인 알바트로스까지 회의에 참석했기에 타 부대 인원들이 웅성거렸다. 각 부대 지휘관들 역시 당황스러운 눈치를 지울 수 없었다. 그때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반쯤 감고 있던 닥터가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게 누군지 잊었어? 언니들이야 각자 자기들이라고 하겠지만 객관적인 성과 보고로는 이번 작전의 최고 공로자는 여기 AGS 로보테크야. 그러니 회의에 참석해도 아무 문제 없겠지? 레오나 언니?”

 

 평소와 달리 싸늘하기 그지없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닥터는 철혈의 레오나에게 시선을 주었고 철혈의 레오나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닥터의 말마따나 이번 생체 재건 장비 확보 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바이오로이드들이 아닌 AGS라는 사실은 이미 오르카 함 내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닥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구 근처에서 누군가 회의실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사령관 직할부대 분들의 소개가 끝났군요. 다음은 독립소대부터 하죠. 먼저 독립소대 몽구스팀은 저 홍련, 그리고 부관으로 미호가 참석했습니다.”

 

“...흥.”

 

 정돈하게 땋은 붉은 머리칼과 육감적인 몸매를 꽉 조이는 정장으로 더욱 뽐내는 홍련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기소개를 했지만 그녀의 뒤에 따라서 나온 미호는 고개를 휙 돌리며 짜증을 내며 자기소개를 생략했다. 홍련의 곁으로 남색의 장발과 풍만한 체형이 눈에 띄는 여성이 걸어 나왔다.

 

“다음 차례는 제가 받을게요. 페어리 시리즈의 맏언니, 레아에요. 동생들은 지금 바빠서 따로 참석할 수 없었답니다.”

 

 홍련의 곁에 서 있던 레아의 말마따나 현재 다프네와 리제는 수복실에서 정신없이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빴으며 아쿠아 역시 언니들을 돕겠다고 온갖 수발을 들고 있었다. 리제는 사령관을 만나겠다며 난동을 부렸으나 블랙 리리스가 그녀를 제압하고 다프네가 나중에 사령관께 칭찬받기 위해 수복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득해 마지못해 간호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오우, 언니들 덕분에 우리 애들이 빨리 퇴원했슴다. 감사함다.”

 

 보라색 머리칼과 군색 점퍼를 입은 블러디 팬서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신속의 칸 뒤편에서 회의실 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뒤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스프리건 역시 따라 나왔다.

 

“독립소대 아머든 메이든의 대장 블러디 팬서, 그리고 여기는 자칭 오르카 함의 유일한 기자 스프리건임다.”

 

“어...아..안녕하세요.”

 

 입에 껌을 씹으며 재주 좋게 자기소개를 무덤덤하게 하는 블러디 팬서와 달리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을 미친 듯이 굴리고 있는 스프리건은 자신을 째려다 보는 각 지휘관들의 시선을 어떻게 피할지만 궁리하고 있었다.

 

“..너무 그렇게 째려들 보지 마십셔. 우리 애가 입은 싸도 허투른 소문같은 건 안 퍼뜨릴 검다. 애초에 이 녀석을 생각하셨으면 우리 부대는 안 불러야 했던 거 아닙니까.”

 

 입에서 씹던 껌으로 풍선을 불던 블러디 팬서는 자기 대원을 째려보는 지휘관들을 향해 이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이런 작전 회의를 연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거 아십니까? 사령관님을 저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독립소대들까지 전부 참석시킨 이유가 대충 오늘 작전의 내막을 공개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댁들만 알던 것을 이제야 우리한테 알린다고 이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습니까? 이 함의 바이오로이드 모두 이번 작전의 내막을 알 자격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알리는 것이 요녀석이 할 일이고요.”

 

“대자앙..”

 

 스프리건은 자기를 옹호해주는 블러디 팬서의 옆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항상 모든 일에 무덤덤한 태도를 일관해오던 대장이었지만 부하들을 챙기는 건 이 함 내에서 최고였던 그녀였다. 블러디 팬서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지휘관들을 쳐다보며 제 부관을 뒤로 숨기자 지휘관들은 눈총을 거두었다.

 

“...한가지만 약속해 주시오. 이곳에서 밝혀지는 모든 사실을 한 줄의 허황 없이 써 주겠다는 것을.”

 

 무적의 용이 블러디 팬서의 등 뒤에 숨은 스프리건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스프리건은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후 조용히 메이의 곁에서 눈을 감고 있던 금발의 바이오로이드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독립소대 D-엔터테이먼트 소속 대표 아르망입니다. 따로 참석한 이는 없습니다.”

 

 아르망은 조용히 장내를 훑어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딱히 회의장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르망과 달리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는 관심이 서려 있었다. 아르망 그녀는 복원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바이오로이드였으나 그녀의 예언에 가까운 연산능력은 사령관 본인이 직접 이번 작전에서 대동해 그 능력을 십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아르망은 자신에게 날라오는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기만 했다.

 

“...버뮤다팀, 팬텀입니다.”

 

“힉!”

 

 회장의 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조용한 말소리가 나왔다. 스프린건은 귀신의 목소리라도 들은 듯 기겁했고 다른 이들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팬텀의 모습은커녕 기척조차 느낄 수 없으니 일부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의 목을 훑으며 두려워했다.

 

“..암살하러 온 건 아니니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팬텀은 광학미채 망토 너머로 회장의 바이오로이드들을 한 명씩 훑었다. 블랙 리리스만이 자신이 어디 있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불참한 다른 팀들은?”

 

 철혈의 레오나가 고갤 돌리며 참석하지 않은 독립부대를 찾자 콘스탄챠가 다급히 설명했다.

 

“골든 워커즈 분들을 비롯해 퍼블릭 서번트 팀들은 아직 AGS 정비와 오르카함 내부 보수에 집중하시느라 불참한다고 하셨고 스트라이커팀의 경우 랜서 미나양이 참석하려 했으나 티아멧양이 현재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간호하셔야 한다고 불참하셨습니다. 시티가드의 경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비를 서는 중이며 애니웨어의 경우 소완양을 비롯해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신다고..”

 

“스카이 나이츠들은?”

 

“그게..슬레이프니르양을 비롯해 다른 분들이 전부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그래. 그쪽 부관을 데리고 온 게 정답이었네.”

 

 철혈의 레오나는 고개를 돌려 블러디 팬서 곁에 서 있는 스프린건을 쳐다보자 그녀는 열심히 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쓰다가 철혈의 레오나의 말에 에헤헤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들의 소개는 따로 필요 없겠지?”

 

 신속의 칸이 입을 열고 다른 지휘관들을 쳐다보았다. 불굴의 마리와 레드후드, 철혈의 레오나와 발키리, 멸망의 메이와 나이트 앤젤, 로열 아스널과 비스트 헌터, 무적의 용과 세이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탈론 페더까지.

 

“..죄인들은 모두 모인 것 같군.”

 

 로열 아스널은 힘든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 말에 주범으로 낙인이 찍힌 부대의 지휘관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자신들이 벌인 작전의 내막을 모두 공개할 때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손을 들어 전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선 오늘 작전의 내막을 밝히기 전에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 이건 나와 일부만이 아는 사령관에 대한 진실이야.”

 

“..? 철혈의 레오나 소장, 그게 무슨..”

 

“? 그게 무슨 소리요? 철혈의 레오나 소장?”

 

 철혈의 레오나는 당황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5명의 지휘관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품 안에서 총알 모양의 저장기기를 꺼내 들었다. 철혈의 레오나의 말에 대다수 인원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눈치였으나 닥터와 블랙 리리스만은 두 눈을 부릅뜨며 철혈의 레오나를 응시했다. 철혈의 레오나는 총알 모양의 저장기기를 그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먼저..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 그리고 없는 이들에게도 사과할게.”

 

“레오나 언니 설마 그거..”

 

“..내가 지금부터 보여주는 건 사령관이 이곳에 부임한 지, 아니 그가 발견된 지 20일 이전의 모습이야.”

 

 철혈의 레오나는 총알 모양의 저장기기의 머리 부분을 떼고 그것을 테이블 아래에 있는 리더기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작전 회의실 중앙에 위치한 대형 홀로그램 스크린에 로딩 문구가 떴다.

 

“지..지금 무엇을 하려는 게요?”

 

 무적의 용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해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었으나 철혈의 레오나는 묵묵히 그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적의 용이 다른 지휘관들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그들 역시 모른다는 눈치였다.

 

“...이거 대박 특종감. 그런 감이 들어요. 대장!”

 

“...나도 그건 핵공감이다. 뭘 보여주려는 거지?”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온몸을 움츠리며 지휘관들의 눈총을 받을 때마다 울상이던 스프리건의 두 눈동자에는 어느새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고 블러디 팬서는 로딩 문구 옆의 퍼센테이지가 오르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흥, 이제야 결심이 섰나보네요. 뭐..너무 늦은감이 없진 않지만.”

 

 블랙 리리스는 아련한 눈빛으로 작전 지휘실의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옛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렸고 닥터는 피곤한 기색 대신에 당황한 기색을 띄우며 가뜩이나 쥐어뜯는 머리를 또 쥐어뜯었다. 그리고 로딩 문구 옆의 퍼센테이지가 100을 가리키는 순간-

 

 

 

-가위 바위 보! 묵에 묵에 찌! 으라챠! 내가 이겼다!

 

-에엑! 궈...권속이여! 다시! 다시 하는 거다!

 

-아쉽지만 오늘 참치캔은 내가 가져가겠어. LRL은 다음 기회에~

 

-에에에!! 너무해! 사령관 미워!

 

 

 

“...? 이게..무엇이오?”

 

“...사령관?”

 

 무적의 용과 멸망의 메이는 화면에 비치는 남자와 어린 소녀의 모습에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녀들만이 아니었다. 다른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 대부분 역시 자신들이 기억하는 사령관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화면 속의 남성을 얼빠진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화면 속의 남자는 함교로 보이는 공간에서 LRL이라 불리는 유아형 바이오로이드와 한껏 웃으며 떠들고 있었고 그 모습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감정 자체를 표출하지 않던 남자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후후, 오랜만이네요. 저런 자기의 모습.”

 

 에이미는 화면 속의 남자를 보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 오르카 함 초창기 멤버, 더군다나 항상 LRL을 엄마처럼 보살폈기에 저런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사령관, 이제 업무 볼 시간이야.

 

-어..벌써?

 

-잉..짐은 권속이랑 좀 더 놀고 싶은데.

 

-후후, LRL. 사령관님이랑 부관님은 오늘 일로 바쁘시니 이만 들어가도록 해요. 자, 참치캔은 저쪽 창고에 있으니 거기로 가죠.

 

 영상 속에서 철혈의 레오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이 영상의 기록자가 철혈의 레오나라는 것을 회의장 내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눈치를 채었다. LRL은 에이미의 손을 잡고 웃으며 사령관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사령관은 그녀를 웃음으로 배웅했다.

 

“...각하가 저렇게 웃을 줄 아셨다니, 이건 놀랍군.”

 

 불굴의 마리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어느 때라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모든 업무를 보던 자신의 기억 속의 사령관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들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영상의 장면이 바뀌었다.

 

-오빠! 오늘치 AGS 개조 현황 문서야!

 

-오! 닥터. 오늘은 좀 빨랐네?

 

-헤헤, 얼른 AGS들이 현장에 투입되어야 오빠가 좀 더 편하지 않겠어? 힘낸 여동생한테 상은 없어?

 

 새로운 영상 속에는 사령관 집무실로 찾아와 해맑게 웃는 닥터와 서류 업무를 보는 사령관의 모습이 나타났다. 영상 속 닥터는 항상 피곤에 찌들어 있던 지금까지의 모습과 달리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사령관은 서류를 내려놓고 웃으며 그녀를 반겨주고 있었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유능하니 오빠가 참 편해.

 

-헤헤! 그럼 오늘의 포상! 무릎 앉기를 요구합니다!

 

-그거면 되겠니? 자, 여기 네가 바라는 오빠의 무릎이다!

 

-히히! 앗싸!

 

 영상 속 닥터가 쫄래쫄래 그에게 달려가자 그는 의자를 돌려 책상 밖으로 무릎을 내놓았다. 그러자 닥터는 그의 무릎에 앉아 헤실헤실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그는 그런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빠..”

 

 닥터는 영상 속의 자신이 부러운 듯 슬픈 눈으로 영상을 계속 보기만 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에이미가 그녀의 머리를 꼭 끌어안아 주었고 닥터는 에이미의 품에서 훌쩍였다.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남매 같네.

 

-레오나 언니, 부러워? 흐흐흐.

 

-..부럽긴. 어이가 없어서 그래. 업무 시간 중에도 딴짓할 여유가 있다니. 밀린 업무는 난 도와주지 않을 거니까. 사령관 알아서 처리해.

 

-...그건 좀 위험한데.

 

 영상 속 사령관은 그런 말을 하면서도 닥터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닥터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에서 발을 앞뒤로 흔들었고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한 손에 서류를 들고 일을 재개했다. 영상 속의 따뜻한 장면에 벙찐 그녀들을 뒤로하고 영상은 다시 화면을 바꾸었다.

 

-바보 발견! 여기서 땡땡이 치는 중이야?

 

-..쿨럭.

 

-에엑! 더러워! 사령관!

 

 이번에는 몰래 부식창고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사령관과 가지런히 땋은 양갈래 분홍머리의 소녀, 미호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사령관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미호와 철혈의 레오나를 발견하고 사레가 걸렸는지 입안의 면발을 뿜어내었다.

 

-쿨럭. 쿨럭.

 

-사..사령관? 괜찮아? 잠깐만. 등 두드려줄까?

 

-웁..우웁!

 

-으으..미안해. 사령관.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

 

 영상 속의 미호는 괴로워하는 사령관의 등을 두드려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홍련은 영상 속의 주인공인 미호를 내려다보았고 미호는 묵묵히 그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두 눈망울이 글썽이는 건 숨기지 못했다.

 

-...케흑. 아..이제 괜찮아. 미호.

 

-정말? 정말이야?

 

-어어..것보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왔어?

 

-헤헤. 사령관이 도둑처럼 컵라면을 들고 이곳에 들어가는 걸 LRL이 목격했다는 사실!

 

-...그거 내가 참치캔 하나 주고 입막음 시켰는데?

 

-여기 계신 부관님께서 두 개 주시고 정보를 취득했지.

 

 사령관은 벙찐 표정으로 영상 속의 기록자인 철혈의 레오나를 쳐다보았고 미호는 어느새 한발 물러나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사령관. 난 사령관이 좀 더 나한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길 원했는데..이 모습을 보니 한 백 년은 더 걸리겠네.

 

-아..아니, 그...배가 좀 고파서 말야.

 

-하다못해 사령관실에서 먹던가 할 것이지. 무슨 알비스처럼 몰래 숨어서 먹고 있어?

 

-어..여기가 편해서?

 

-풉!

 

-...쪽팔리니까 그냥 조용히 따라가겠습니다.

 

-네에! 범죄자 호송은 저 켈베로스가 맡겠습니다!

 

-넌 또 어디서 나온거야..

 

 사령관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켈베로스에게 수갑이 채워져 부식창고에서 끌려나갔고 미호는 깔깔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철혈의 레오나는 끌려나가는 그의 등에서 시선을 돌려 그가 놓아두고 간 컵라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량을 너무 줄였나. 조금 늘리는 게 나을 거 같네.

 

 그녀의 말을 끝으로 영상은 또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이전 영상과 달리 묵묵히 걷고 있는 사령관의 등이 찍혀 있었다.

 

-..사령관, 부하들을 일일이 챙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자주 방문하면 사령관의 격이 떨어져.

 

-알아. 그래도 갈 거니까 말리고 싶으면 말려.

 

 그가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말리는 철혈의 레오나와 앞선 영상과는 달리 차가운 반응을 내비치는 사령관의 모습에 회의장 내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무슨 일이기에 저러는지 의문을 표했다.

 이내 사령관과 철혈의 레오나는 어느 문앞에 도달했고 문이 열리자 안에서 간호사 옷을 입은 다프네가 사령관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주인님?!

 

-어, 다프네. 항상 폐 끼쳐서 미안해. 일이 많이 힘들진 않아?

 

-아니에요. 주인님. 요새는 언니도 종종 도와주셔서 한층 편해요.

 

-그래? 나중에 리제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네.

 

-후후, 꼭 말씀해주세요. 언니라면 방방 뛰실 거예요.

 

-사..사령관님이랑 대장님?

 

-충성!

 

 다프네와 사령관의 대화 소리에 침상에 누워 있던 님프와 샌드걸이 침상 가림막을 거두며 경례했다. 사령관은 다프네와 대화를 멈추고 경례를 받았다.

 

-둘 다 괜찮아? 미안해. 내 작전 지휘실력이 아직 미천해서..

 

-아니에요. 사령관님. 그래도 작전은 성공시켰고 둘 다 살아 돌아왔는걸요?

 

-님프의 말대롭니다. 각하.

 

 사령관은 간이 의자에 앉아 님프와 샌드걸을 아무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색한 기류에 님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 너무 그렇게 마음 쓰실 필요 없어요. 저희의 역할은 사령관님을 지키고 인류를 재건하는 거니까요.

 

-맞습니다. 각하. 어차피 전장에서 죽고 스러질 몸, 언제가 되었든 저희는 발할라로..

 

-..샌드걸, 그런 말은 안 해도 괜찮아.

 

-각하?

 

-...옛말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 어때? 공감할 수 있겠어?

 

-사는 건 괜찮은데..개똥밭은 좀 그렇군요.

 

-그렇지? 누군지 몰라도 개똥밭 굴러본 인간일 거야. 경험담이 아니고서야 이런 말이 어떻게 돌겠어. 님프, 샌드걸, 너희들의 각오는 잘 알지만 난 너희가 죽는 걸 원치 않아.

 

-하지만 저희는 군인입니다. 각하. 군인은 언젠가 전장에서 죽기 마련입니다. 그건 님프도 저도 그리고 대장님 역시 다 각오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살아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 내일을 위해 살 필요도 없이 오늘이 즐거우면 그만 아냐?

 

-어머, 그것참 끌리는 제안이네요. 사령관님.

 

-홍차든, 부식거리든, 뭐든지 지원해줄게. 그러니까 당장에 죽을 걱정을 하는 것보다 오늘을 살아보자. 어때? 샌드걸?

 

-..각하께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지요. 알겠습니다. 죽겠다는 소리는 앞으로 자제하겠습니다.

 

-고마워. 나도 앞으로 너희들이 조금이라도 생환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게.

 

 사령관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님프와 샌드걸, 다프네의 배웅을 뒤로 사령관은 희미하게 머금던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함내 복도 한복판에서 주저앉았다.

 

-..사령관, 이런 모습을 다른 애들한테 들키면 위신 추락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야. 일어나.

 

-..넌 아무렇지도 않아? 철혈의 레오나?

 

-아무렇지 않냐니. 뭐가?

 

-너의 부하들이잖아. 그런 애들이 침상에 누워 있는 걸 보면 아무렇지 않냐는 소리야.

 

 철혈의 레오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두 눈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그는 없었다.

 

-샌드걸 말마따나 우린 전장에 나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만들어졌어. 그걸 부정하면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져.

 

-...그게 싫어. 그게 정말로 싫다고. 너흴 그따위 목적으로 만든 인간들도 싫고, 그걸 무덤덤이 받아들이는 너희들도.

 

-우릴 부정하려 하지마. 사령관. 당신이 뭐라 하더라도..우리는 바이오로이드야.

 

-뭐가..뭐가 바이오로이드야...씨발.

 

 사령관은 입에서 욕지기를 뱉으며 머리를 쥐어 싸맸다. 철혈의 레오나는 그런 그를 억지로 붙들고 일으켜 세웠다. 휘청거리며 일어선 그는 부축하는 그녀를 밀어내고 홀로 걸어갔다. 그리고 영상은 사령관으로 보이는 남자의 힘없는 등을 비추며 정지했다.

 

 장내는 폭풍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듯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회의실 한가운데의 영상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이 적막을 깨었다.

 

“이게 대체 무슨 영상인가? 철혈의 레오나?”

 

 로열 아스널은 두 눈을 부릅뜨고 철혈의 레오나를 쏘아보았다. 영상 속의 사령관은 모습도, 이런 영상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런 것들은 각 지휘관급들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이게 사령관이라고? 저런 비실비실해 보이는 남자가?”

 

 멸망의 메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영상 속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앞의 영상도 놀랍긴 매한가지였지만 항상 냉랭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던 남자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미호야, 저 영상 속의 미호 모델이..너 맞니?”

 

 홍련은 확인차 옆에 있는 미호에게 물었지만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미호는 어느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스프리건, 필기 스탑. 이거 유출되면 뭔가 큰일 날 거 같다.”

 

“예?! 대..대장님. 하지만 이건..”

 

“쓰읍. 너 까딱하다간 영창 정도로 안 끝나.”

 

 스프리건은 빠르게 놀리던 손을 멈추고 금세 침울해졌으나 블러디 팬서는 그런 그녀를 쳐다도 보지 않고 영상 속의 사령관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내가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던, 사령관의 모습이야.”

 

 철혈의 레오나가 입을 열자 모든 이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혈의 레오나는 그때를 떠올리는 듯 슬픈 눈으로 영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때의 사령관은 참 한심했지. 작전지휘가 미숙했던 건 물론이고, 홀로그램 패널도 잘 사용하지 못했어. 항상 어딘가로 도망을 다니기 바빴으면서 또 남 챙기는데 시간을 허비했었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철혈의 레오나.”

 

 신속의 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 영상은 너무나 이상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사령관에게 무얼 한 거냐.”

 

“...”

 

 신속의 칸의 기억 속의 사령관이라는 남자는 항상 모든 이들을 똑같이 대했다. 차갑기 그지없이 자신의 감정의 일 말도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영상 속의 남자는 어떤가.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지경이다.

 

“말 돌리지 마라. 본제만 이야기해. 사령관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철혈의 레오나는 이제야 눈을 영상에서 떼고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신속의 칸을 바라보며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NNIE 시술.”

 

“..뭐?”

 

 예상치 못한 대답에 신속의 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불굴의 마리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철혈의 레오나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소장. 그게 뭔지 그대는 알 터인데 그걸..”

 

“말 그대로야. 사령관은 NNIE 시술 중 일부, 목 뒤의 척추에 뇌내 호르몬 분비 제어 시술과 안면 근육 제어 시술을 받았어.” 

 

쾅!

 

 철혈의 레오나가 표정의 변화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불굴의 마리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소장!”

 

“지..진정하십시오. 대장님.”

 

 씩씩거리는 불굴의 마리를 보고 크게 당황한 레드후드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달라붙었으나 불굴의 마리는 완력으로 그것을 뿌리치고 철혈의 레오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대체 왜! 왜 각하께 강화인간 시술을 했냐 말이다!”

 

“가..강화 인간? 멸망 전의 그 강화 인간 시술이라고요?”

 

“이런 씹..이런 걸 숨기고 있었다고?”

 

 스프리건은 NNIE 시술의 정체를 듣고 들고 있던 펜을 떨구었고 블러디 팬서 역시 벌레라도 씹은 듯 표정을 구겼다. 회장 내의 대부분이 술렁이는 그때 미호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이 나쁜 년아! 니가 뭔데! 니가 뭔데, 사령관한테 그런 짓을 해!”

 

 미호는 뻘개진 두 눈가를 훔치며 철혈의 레오나를 향해 달려 들으려 했고 홍련과 레아는 그걸 몸으로 제지를 했지만 그녀들 역시 당황스러움이 채 가시지도 않아 미호를 온전히 막기 힘들어했다.

 

“사령관이 맨날 너만 붙여 다니니까 사령관이 네껀 줄 알았어?!”

 

“미...미호, 우선 진정하렴.”

 

“그래..언니들도 지금 많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니까..”

 

“미친년! 니 년은 어떻게 사령관한테 그런 짓을 해놓고 그 옆에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었던 거야! 이 낯짝 두꺼운 년아!”

 

 표독스러움이 묻어나는 미호의 욕설에 발키리가 미호와 자신의 대장 사이에 서서 그녀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대...대체 어느새 저도 모르게 그런 시술을 주인님께..저..저는 대체 비서로서 무얼..”

 

 가만히 영상을 지켜보던 콘스탄챠는 손을 떨기 시작했다. 분명 초창기에 자신도 전장에 나설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사령관이 그런 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령관이 변모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허탈감과 자신을 향한 한심함이 그녀를 주저앉게 했다. 라비아타는 그런 콘스탄챠를 다독여주기 바빴다.

 

“모두 조용히..조용히 하시오.”

 

 무적의 용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항상 냉랭하지만 기운이 가득 차 있던 음성과 달리 방금 전 그녀의 음성에는 그런 힘이 없었다. 무적의 용은 양팔을 테이블에 두고 상체를 지탱한 체 고개를 숙였다.

 

“철혈의 레오나 소장, 방금 불굴의 마리 소장이 했던 질문을 그대로 하겠소. 왜 그랬소?”

 

“...”

 

“..입을 열지 않으면, 이 모든 게 그저 그대의 탓으로 돌아가오. 어서 왜 그랬는지 말하시오.”

 

 철혈의 레오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지 않았다. 무적의 용이 고개를 들어 철혈의 레오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소관이 그대를 잘못 본 것이오? 정말 제 욕심으로 그에게 그런 시술을 한 것이오?”

 

“...아냐..”

 

“아니라 하였소? 그럼 이유를 대보시오. 아니, 말하란 말이오!”

 

 무적의 용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역정을 내었지만 철혈의 레오나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멸망의 메이가 발키리 앞에 섰다.

 

“비켜. 네 잘난 대장년 얼굴이나 좀 보게.”

 

“...그 명령은 거부하겠습니다.”

 

“하! 거부? 아주 잘났어. 쌍으로 진짜.”

 

“...”

 

“야, 지금 상황 파악이 안돼? 네 잘난 대장이, 대체 무슨 이유로 사령관한테 저딴 시술을 했냐고. 그걸 지금 물으려는데, 네가 뭔데 내 앞을 막아?”

 

“...”

 

“강화 인간 시술이야. 그래. 뭐 했다고 치자. 근데 이유도 없이 최후의 인류라는 남자를 제 모습이랑 같이 바꿔 먹은 게. 우리를 납득 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거야?”

 

“...”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독한 년인 줄 알았거든? 근데 오늘 새로 알았어. 나보다 독한 년이 내 옆에 있었다는 걸. 잘났어, 제 이명이랑 똑같이 구는구나. 철.혈.”

 

 멸망의 메이는 할 말 다했다는 듯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나이트 앤젤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철혈의 레오나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그건..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였어.”

 

“..뭐? 아직도 욕심을 못 버린 거야?”

 

“잠깐만 메이 언니. 그 부분은 내가 설명할게.”

 

 다시 한번 불붙을 것 같은 메이의 말을 끊고 닥터가 에이미의 품속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닥터를 쳐다보았다. 닥터는 언제 울었냐는 듯 당당한 표정으로 제 주머니에서 작은 USB를 꺼내 그걸 탁자 밑에 꽂아 넣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NNIE 시술은 오빠한테 필요했던 시술에 가까웠어,”

 

“..닥터, 너는 알고 있었나?”

 

“응, 칸 언니. 그 시술을 누가 집도했을 거라 생각해?”

 

“허!”

 

 당돌하기 짝에 없는 그녀의 대답에 신속의 칸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NNIE 시술은 생각해보면 단순히 의료용 바이오로이드들이 할 수 있는 시술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에서 보면..

 

“나야. 오빠의 척추에 NNIE 회로 설치를 한 게.”

 

“..그럼 그대도 여태껏 숨기고 있었던 건가?”

 

“응. 아스널 언니. 애초에 이 사실은 나 이외에 다른 언니들은 볼 수 없는 특급 기밀이거든.”

 

“왜지? 각하께서 시술을 받은 사실을 왜 우리 지휘관급들도 알아선 안되었던 것이냐?”

 

“..그게 오빠가 노린 노림수야. 아스널 언니.”

 

“뭐?”

 

-오빠..이거 꼭 해야겠어?

 

-응, 닥터. 이건 내가 결정한 사안이야.

 

 로열 아스널은 갑자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성에 말을 끊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스피커 너머의 대화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건..앞으로 예전처럼 활동하지 못할 수도 있어.

 

-알아. 레오나가 아주 자세하게 써놨더라. 이게 뭔지, 이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근데 이걸 하겠다고?

 

-혹시 우리 동생님은 이런 분야에는 약한가? 어, 갑자기 시술이 무서워지는데.

 

-이익! 날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애초에 내가 못할 짓이면 레오나 언니 요구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지!

 

-...닥터, 난 내가 얼마나 모자른 놈인지 나 스스로가 잘 알아.

 

 레코드 속의 사령관 목소리가 낮게 깔리자 모든 이들이 뒤의 말에 경청했다. 그 철혈의 레오나조차도 이 대화 내용은 모르던 것이었다.

 

-레오나야 워낙 챙기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날 봐주는 거야. 지휘관급 개체인데도.

 

-..그 언니가? 매번 오빠를 못살게 구는 건 여기 애들은 다 알아. 매번 쌀쌀맞기만 하잖아.

 

-그거야 레오나 성격이 원체 그러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야. 속은 얼마나 따뜻한데.

 

“..사령관.”

 

 예상치도 못한 사령관의 속마음을 들은 철혈의 레오나는 동공이 풀린 눈으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허공을 응시했다.

 

-..그래도 뒤에 합류할 인원들을 생각하면 레오나의 말이 맞아. 나는 사령관으로서 너무 부족해.

 

-오빠..그래도 이건..

 

-아니, 닥터. 앞으로 합류할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은 수십년의 전쟁을 겪어온 불굴의 마리와 신속의 칸, 그리고 자의적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멸망의 메이, 당당하고 솔직한 성격이지만 그 누구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로열 아스널. 당장에 생각나는 인원들만 해도..내가 이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란 상상조차도 못하겠어.

 

 자신들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각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나 멸망의 메이나 로열 아스널은 어떻게 자신을 이미 만났다는 듯 성격까지 유추해내는 그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지금의 난 너희들에게 형제가 되어주기도,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엄연히 군인들이야. 오히려 나처럼 우유부단한 놈을 인정할 리가 없지. 심지어 지휘능력도 딸리는데 말이야.

 

-오빠, 그건 차근차근 채워 가면..

 

-차근차근이 몇 년이 되고, 몇 십년이 되어도, 그녀들이 그걸 과연 이해해줄까? 닥터, 난 모자란 놈이 높은 자리에 있는 걸 나도 받아들이지 못해. 그걸 그녀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어. 레오나의 말대로야. 나에게 당장에 부족한 걸 채울 필요가 있어. 카리스마. 그녀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그런 가면이 나에게는 먼저야. 부탁해. 닥터.

 

-...알았어. 오빠.

 

-고마워. 닥터. 이걸로 내가 모습은 변할지라도 오빠는 오빠인 거 알지?

 

-응. 오빠. 잘자. 눈뜨면 다 끝나 있을 거야.

 

“오빠는 따뜻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그게 언니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지가 오빠에겐 가장 큰 물음이었어.”

 

 닥터는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계속 훔쳤다. 이제야 사령관의 속내를 모두 폭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마음과 이런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모든 걸 폭로한 자신에 대한 원망이 그 눈물 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다.

 

“오빠가 정말 레오나 언니의 강요 때문에 이런 시술을 받았을 거라 생각해? 그 정도로 오빠가 자기 주관이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남자인 줄 알아?”

 

“닥터..”

 

 에이미는 어느 때보다 당당한 닥터의 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 시술을 집도한 이후 항상 후회만 하던 그 아이는 이제 품을 떠났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오빠는 자기 위치에 걸 맞는 사람이 되려고 뇌에다 회로까지 설치했어. 그 결과가 마음 놓고 웃을 수도 없는 인형이 되는 거라고 해도.”

 

“...”

 

 철혈의 레오나는 슬픈 눈으로 닥터를 바라보았다. 항상 사령관에게 칭얼대던 꼬마애라고만 여겼었지만 지금의 닥터는 이 회장 내의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다.

 

“그런 오빠한테 언니들은 뭘 한 건지 도통 스스로 알기나 해? 용 언니, 다시 말해줄게. 오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니들을 믿었어. 언니들이 무슨 작전을 펼칠지 모든 걸 알았는데도, 오빠는 언니들을 믿었다고. 그런데 그 결과가 뭐야? 언니들이 지금 레오나 언니 혼자 타박할 입장이 아니란 걸 잊었어?”

 

“...소관은..”

 

 뼈를 때리는 닥터의 한마디 한마디에 목을 뻣뻣이 세우던 이들이 그때야 고개를 숙였다. 세이렌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자신의 함장의 등을 보고만 있었다. 그가 가면을 쓰게 된 것도, 그가 철혈의 레오나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인 것도, 전부 이 함을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닥터는 그녀들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빠는 극심한 PTSD 증후군을 겪고 있었어. 단순히 전장에 나서는 사람만 PTSD를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전장의 참상을 항상 두 눈에 담아야 했던, 전쟁과 거리가 먼 오빠가 어떤 생각으로 지휘패널을 잡고 있었다고 생각해?”

 

“...”

 

“매번 중상자가 생기면 오빠는 하던 일을 멈추고 수복실에 제일 먼저 들렸어. 그녀들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오빠를 레오나 언니도, 리리스 언니도, 다프네 언니도. 그리고 나도 알고 있어.”

 

“...각하.”

 

 불굴의 마리는 이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친 브라우니들을 챙기는 그가 별로 내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닥터는 계속해서 울먹거림을 참고 말을 이어갔다.

 

“오빠의 정신치료는 내 담당이야. 오빠는 이 함선에 오르고 하루 4시간 이상 숙면을 취했던 적이 없어. 그 누구보다 벼랑 끝에 몰려 있었어. 그런데도 항상 웃었어. 억지로.”

 

“...그럴수가..사령관이..”

 

 미호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사실에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홍련은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미호는 그런 홍련의 품에서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오빠는 최면치료를 하면 항상 다른 누군가를 자신과 비교했어.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나는 몰라. 하지만 오빠의 가장 큰 비교 대상은 누구보다 완벽한 존재였어.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지적이고 유능하고, 오빠는 그 사람이 여기 있어야 한다고 중얼거렸어. 자기는 여기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만 되뇌었지.”

 

“...아.”

 

“대..대장님.”

 

 철혈의 레오나는 몰려오는 자책감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그렇게 내몰려 있는 줄은 그녀 역시 몰랐다. 자신 역시 그가 애써 불안과 죄책감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권유했다. 그리고 그가 무너졌다.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 같았다.

 

 발키리는 책상에 기대어 쓰러진 자신의 대장을 보고 황급히 부축했지만 철혈의 레오나의 다리에는 힘이 없었다. 닥터는 그런 그녀를 한 번 보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NNIE 시술은 단순히 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감정 기복을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당초에 이 시술은 전후 PTSD를 심하게 겪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기술이야. 오빠 역시 이 시술이 필요했던 이유는 매일같이 늘어가는 자책감과 죄악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고.”

 

“...”

 

“하지만 동시에 오빠는..되고 싶어했던 거야. 언니가 바라는 이상적인..사령관이.”

 

“...아아..”

 

“..그 누구보다 오빠는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 거야. 그 누구보다 언니한테.”

 

“나...난..대체..”

 

 철혈의 레오나는 그 말에 정신이 끊어질 것만 같은 허탈감을 느꼈다. 항상 삐걱대면서도 자기를 따라오려던 그 남자는 이제 무너졌다. 어쩌면 그에게 따뜻한 한마디라도 해주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그녀를 짓눌렀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 그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그게 아니면 대체 뭐야. 불만이라고? 네가 그걸 안 가져 본 적이 있나? 너에겐 아직까지도 내가 미숙한 햇병아리처럼 보이겠지. 맞아, 난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 그래서 무적의 용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이임했잖나. 패배가 아닌 승리만을 안겨주고 있잖나. 너에게는 내가 내 책임에서 도망치는 걸로 보이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맞아. 정답이야. 너는 항상 내게 너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라고 했지. 미안하지만 그 말은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완벽한 남자가 아니니. 네가 처음에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나나? 그래, 난 겁쟁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SOS를 보내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시술 이후 항상 묵묵하게 자신의 일만 해오던 그가 전보다 멀게 느껴졌었다. 자신 때문에 변한 그를 그 누구보다 멀리했던 건 다름 아닌 철혈의 레오나 자신이었다.

 

“흐윽...흑..”

 

 철혈의 레오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 때문에 모든 걸 내버린 그를 자기가 제일 이해해주지 못했다. 자책감과 자기혐오가 동시에 밀려왔다. 발키리는 감정선이 무너진 자신의 대장의 등을 매만져 주었다.

 

“..이제야 이걸 밝혀도 오빠가 원래대로 돌아오리라는 법은 없지만..그래도 언니들은 이걸 알아야 해. 그 누구보다 오빠를 인정하지 않았던 건 여기 있는 우리 모두야.”

 

 닥터의 마지막 말에 장내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고개를 숙였다. 콘스탄챠는 목놓아 라비아타의 품에서 울었고 라비아타는 사령관에게 칼을 겨누었다는 사실보다 홀로 죄책감에 휩싸여 방안에 틀어박혀 사령관을 제대로 보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멸망의 메이는 나이트 앤젤에게 기대어 자신이 여태까지 내뱉은 날 선 말들을 후회했고 신속의 칸은 고개를 숙인 채 탈론 페더의 위로를 받았다. 그때 아무 말 없이 이들을 보던 블랙 리리스가 귀에 꽂힌 통신기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았어. 응. 준비해둘게. 지금 여기 상태가 말이 아니긴 한데..”

 

 블랙 리리스는 조용히 발걸음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그런 그녀에게 반응하는 건 장내의 바이오로이드들 중 아르망 뿐이었다. 블랙 리리스는 자신의 맞은편에 선 아르망을 보고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어머. 연산능력이 예측에 가깝다더니. 이렇게 되실 줄 아셨나요?”

 

“..아니요. 저조차도 없는 정보 속에서 답을 찾아낼 수는 없답니다. 다만 폐하의 동태가 어딘가 어색하다는 것 정도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지요.”

 

“후후, 그 정도만 되어도 된답니다. 당신은 주인님 곁에 설 자격이 있는 분이에요.”

 

“경호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짓던 그녀들은 이내 몸가짐을 정돈했다. 울음바다가 된 장내의 분위기에 어찌할바를 모르던 스프리건이 블랙 리리스와 아르망을 보고 자신의 대장을 쭉쭉 땡겼다.

 

“뭐야. 스프리건. 지금 분위기 안 보여?”

 

“대..대장. 지금 건드릴 때가 아니라는 건 아는데.”

 

“? 뭐 하는 거야? 저 둘?”

 

 블러디 팬서가 꼿꼿하게 서서 두 눈을 감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녀들을 보며 머리에 물음표를 띄울 때 그녀들이 기다리는 누군가가 엄중히 닫혀 있는 작전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기-잉

 

“...?”

 

 예고도 없이 갑자기 열리는 문소리에 장내의 모두가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회의실 안에 복도의 밝은 전등 빛이 새어 들어오고 3명의 인영이 빛을 등지고 나타났다.

 

“주인님! 방안에 언니들이 다 있어요!”

 

“주인! 우는 사람이 있나 봐! 냄새가 나!”

 

“..하치코, 펜리르. 어서 언니 옆에 서세요.”

 

 세 명의 머리에는 각기 다른 쫑긋한 귀가 달려 있었고 그녀들은 재빨리 꼿꼿하게 서 있는 블랙 리리스의 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뒤로 가려졌던 한 명의 인영이 드러났다.

 

“...나 쓰러진 지 5시간 채 안 지났다. 근데 또 여기 모두 모여서 뭘 작당하고 자빠졌냐.”

 

 굵직한 목소리, 여성이기에는 너무 낮고 통울림이 굵었다. 장내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한순간에 혼란에 빠졌다.

 

“주인님이-”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여기 있을 리가 없는 이가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그가 들어서자 블랙 리리스 일동과 아르망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녀들에게 눈길을 주고서는 회의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씨구, 이번에는 작전관들도 모여 있네. 대체 또 뭘하려고..아니 잠깐, 다들 왜 울고 있어?”

 

 혼란의 도가니가 따로 없는 회의실에 들어온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다 몇몇의 얼굴들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말에는 여태껏 묻어나오지 않던 감정이 아낌없이 묻어 나왔다. 닥터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테이블을 넘어 그의 품으로 달려갔다.

 

“오빠!”

 

“오우, 우리 여동생께서 왜 이렇게 울상이실까.”

 

“우-응...”

 

 닥터는 한달음에 그의 품에 뛰어들었고 그는 당황하지 않고 닥터를 품에 꼭 껴안아 주었다. 닥터는 눈물기가 그의 셔츠에 묻는 것을 상관치 않고 자신의 얼굴을 하염없이 그의 품에서 비볐다.

 

“...사령관?”

 

“어? 뭐야? 레오나. 너 얼굴이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철혈의 레오나는 여기 있을 리 없는 남자를 보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기억하던 가면을 쓴 남자가 아닌 영상 속의 그가 서 있었다. 그는 레오나를 빤히 응시하더니 이내 웃으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나왔다.”

 

 사령관의 얼굴에는 정말 오랜만에 활기찬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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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ㄴ 간만에 올린다아ㅏㅏㅏ

원래는 칸이랑 워울프, 메이랑 나이트앤젤 그리고 밴시 이렇게 다른 지휘관들 이야기도 썼는데 이 문학의 주인공은 레오나잖아?

그래서 싹 지웠다. 싸-악

그리고 이거 레오나 애호 문학 맞아. 쓰는 놈이 특촬물 중 가면라이더 드래건을 제일 좋아하고 씹덕질을 베르세르크랑 클레이모어, 에반게리온으로 해서 아주 베베 꼬인 놈이라 그렇지. 아무튼 레오나 좋아.

담편은 지휘관급들이 진행한 작전내용이랑 사령관이 방에서 나오는 이야기 쓸거야. 얼마나 걸리지 모르겠다. 필력의 한계도 느끼고 에이씨발 안되면 카엔 제로 난입해서 싹 죽이는 엔딩간다.

이번 편 존나 긴데 끝까지 봐준 챈넘들에게 고맙고 피드백이나 오탈자 있으면 남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