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lastorigin/7316305?category=%EC%B0%BD%EC%9E%91%EB%AC%BC&target=all&keyword=&p=1

이거 보고 너무 인상 깊어서 한 번도 문학 써본적 없는 라붕이 한 번 써보기로 해슴

혹시 문제되거나 원작자가 만들지 말라고 하면 바로 삭제하게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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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좆됐다.

이게 내가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진짜 좆됐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그것도 고민이다. 여느 때처럼 밤에 자기 전, 라스트 오리진을 켜둔 통발폰을 바라보며 다음 날 어떤 애들이 나올지 고민하며 잠에 들었었다. 여느 때처럼 그랬다. 여느 때처럼. 그렇게 여느 때처럼 다시 일어날 줄 알았지만 빌어 먹게도 밝은 햇빛을 받으며 일어난 나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기묘하게 하얀 천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은 기괴하게 비릿한 냄새가 코 끝을 때렸다. 나름 푹신한 침대와 미묘하게 얇은 이불, 또 이걸로 충분할 정도로 포근한 날씨는 적어도 내가 있는, 아니 있었던 곳의 날씨와 확연하게 다름을 알려주었었다. 그 다음으로 찌부둥한 내 몸의 상태가 내 모든 환경이 그랬던 것처럼 이 기묘한 이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에 침대맡에 닿을 정도로 기다란 다리, 또 속옷을 뚫고 나오고도 절반은 넘게 나온 거대한 음경을 보고도 지금의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남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밖을 볼 수 있게 되어있는 창문 너머에는 파도에 반짝이는 햇살이 넘치도록 보이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고, 그리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둥근 창문은 마치 잠수함 같은 풍경을 조성했다.

 

더 이상 머리 속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전날에 술이라도 진탕 퍼 마셨는지, 두통으로 정신이 나갈 것 같았고, 안 그래도 미칠 것 같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내 상황을 잔뜩 악화시켰다. 거울, 그때 나는 분명 미친 듯이 거울을 찾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었을 테니까. 이 온통 하얀 방을 둘러보니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어디 좋은 펜션에 가면 안방에 딸린 나름 알찬 화장실 마냥 샤워 시설도 있었고, 제법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세면대 위에는 마치 내게 얼굴 꼬라지 한 번 보라는 듯이 커다란 거울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일단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다. 물론 지금 내가 느끼는 절망감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사람 몸뚱아리가 하루 아침에 변해버린 상황에 느껴야 했을 당혹감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180은 넘어 보이는 건장한 근육질 청년이 족히 20cm는 넘을 자기 음경을 절반도 못 가리는 속옷 하나만 입고 있는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았을 때는 누구나 당연히 옷부터 챙길 수 밖에 없으리라. 방을 둘러보며 옷장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아무 옷이나 골라 입고, 난 방 밖으로 나가려 했다. 미친 것이다. 내가 분명 미친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이 내 눈 앞에 펼쳐질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딱 봐도 입구처럼 생긴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를 반긴 것은 방 문 바로 옆에 붙어있었던, 죽은 듯이 고요하게 서있는 바이오로이드였다. 지금이야 그것이 콘스탄챠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 나는 어떤 미친 인간이 죽은 채로 서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는 반사광이 없고 홍채는 풀려있었다. 죽은 동태눈을 사람 머리에 꽂아넣으면 딱 그렇게 생겼을 것이다. 이곳 저곳이 찢겨 이미 걸레짝이라 봐도 무방할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그야말로 산발이었다. 하얀 드레스는 이곳저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아름다운 몸 만이 그 광채를 유지하면서 그녀가 적어도 좀비나 시체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사령관님”

 

고개를 간단하게 끄덕이며 힘없이 말한 목소리는 내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 말을 한 후 콘솔에서 버튼을 몇 개 누르더니 곧 이어 초록색 머리의 메이드들이 모여들었다. 그녀들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콘스탄챠의 얼굴을 보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내 방으로 들어갔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녀들의 움직임과 달리 나는 몸을 비켜 그녀들이 방에 들어가게 방치하는 것 말고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이 초록색 머리의 메이드가 바닐라였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무튼 바닐라는 내가 나온 방에 들어가 나도 몰랐던 곳을 몇 번 터치했다. 그러더니 방 안에서 기괴한 기계소리와 함께 기계에 갈려나가는 고기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그 역겨웠던 냄새가 점점 스멀스멀 강해지더니 이내 참을 수 없을 만큼 기괴한 피비릿내로 가득 찼다.

 

냄새를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도망치 듯이 방 밖으로 나갔다. 내 방의 밖은 또 다른 거대한 방이 있었고 방의 벽 하나는 거대한 유리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바닥을 고급 카펫과 우아한 자주빛 벽지로 꾸며져 있었고, 다른 벽들에는 사람 키는 족히 넘을 정도로 거대한 책장과 장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문이 있었고, 그곳으로 도망쳤다. 

 

내가 있는 곳이 오르카호였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소에 하던게임 속 주인공의 모습 마냥 건장하고 튼실한 내 모습, 이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들, 또 사령관이라 불렀던 그 호칭까지. 누가 날 놀린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냐고? 그 죽은 동태눈은 사람이 낼 수 없던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까지 연기하여 나를 속이려 했다면 속아주는 것이 예의일 정도로 절망과 좌절 이외의 감정을 볼 수 없는 눈이었다. 이에 더해 내 방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마저 바닐라들은 익숙한 듯이 고요하게 움직였으나 그들의 손, 눈, 몸은 소름끼칠 정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곳은 게임이고, 저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은 바이오로이드일 것이다. 

 

나는 콘스탄챠를 불렀다. 순종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이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이곳이 어디이고, 자신은 누구인지 설명하길 요청했다.

 

“사령관님은 이곳, 오르카호의 주인이시고, 마지막으로 생존한 인류이십니다. 저는 사령관님을 보좌하는 바이오로이드, 콘스탄챠 S2 모델입니다.”

 

그래. 이곳은 오르카호다. 내가 하던 그 라스트 오리진. 게임 속의 세상이다. 마지막 인류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말을 곱씹던 나는 그녀에게서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알던 콘챠는 분명 주인님 주인님 하면서 상냥하게 대해주던 바이오로이드다. 그런데 사령관님? 기분탓일지 몰라도 좀더 거리를 두고자 하는 듯한 표현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곧 식사 시간이십니다. 방안에 계시면 곧 음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부디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몸을 떨며 내게 말을 걸었다. 말투에서부터 그녀가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난 지금 잠에서 일어난지 대략 1시간 정도 지났다. 그동안 계속 방 밖의 복도에서 서성이고 있었으니 누가 보아도 어색해 보이기는 했을 것이다. 바닐라들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사라졌고, 내 방은 기묘한 냄새 대신 상쾌한 바닷바람으로 대체되었다. 모든 일이 내 생각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녀들의 움직임은 지나칠 정도로 정갈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교육된 것처럼. 알 수 없는 상황에 두려움에 빠질 것 같은 나는, 나처럼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콘챠의 말에 따라 그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방의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곧 이어 또다시 내게 익숙한 아이가 찾아왔다. 흰 머리에 아름다운 굴곡을 가진 몸매. 소완이었다. 그녀는 내게 음식을 건냈다. 음식을 받으며 나는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제발 이 상황에 대해 무어라도 말해주길 바랬다. 게임 속 세계에 빠졌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데, 심지어 그 세계 속 상황은 내가 알던 게임과 전혀 다르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소완…이지?”

 

“…”

 

내 물음에 침묵으로 답했다. 차라리 침묵뿐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그녀의 눈도 콘챠와 마찬가지였다.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음식을 건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접시를 건내는 손은 덜덜 떨고 있었고, 그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음식이야 맛이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음식 먹은 것만 해도 용하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도, 나도 공포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전에 먹은 음식이 다시 올라올 것만 같다.

 

앉아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방을 나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단 한 명만이라도 내게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함 내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당장 내 방에 있었던 블랙 리리스에게도 물어보았고, 복도를 걷다 만난 리제, 다프네, 하치코 등 모든 바이오로이드에게 물어보려고 다가갔지만, 그녀들은 내가 다가가는 것을 눈치채자 마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분명 리리스, 리제 같은 애들은 나랑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려고 발버둥치던 애들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나는 두 번째로 엿됐다는 것을 느꼈다. 

 

착잡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내 방 옆에 있던 커다란 방(아마 이게 사령관실이었던 것 같다.)으로 돌아온 나는 의자에 기댄 채로 고민을 했다. 무슨 일이지. 왜 애들이 나를 전부 피하지. 나를 보기만 하면 오줌을 지리던 바이오로이드들도 있었다. 애당초 여기가 내가 알던 게임 속 세상이 맞기는 한걸까. 온갖 고민을 하던 나는 결국 사령관실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을 불러모았다. 콘스탄챠와 리리스, 두 명이 왔다. 일단 나는 내 당혹감을 감추고 싶었다. 분명 사령관인 내게 당황하면 이미 지옥도인 것 같은 이 오르카호가 얼마나 더 수렁에 빠질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일과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금세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

 

콘챠는 그나마 말을 했지만, 리리스는 그마저도 못한 채로 부들거렸다. 리리스와 나는 적게 잡아도 2미터는 떨어져있었는데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 것이 보였다. 콘챠도 말만 했을 뿐, 썩어들어가는 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풀린 동공은 더 풀렸고, 온 몸은 점차 파래졌다. 눈을 감은 그녀의 미간은 힘이 들어가다 못해 찌그러졌고, 리리스는 여전히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대략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콘챠는 몇 가지 도구를 리리스에게 건내고 그녀를 따라가라 말했다. 유독 리리스가 몸을 떨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유일하게 물꼬가 트는 느낌이 들어 그나마 속이 편해졌다. 그렇게 나는 리리스를 따라 방 밖을 나가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녀는 점점 몸을 떨다 못해 훌쩍이는 소리를 냈고, 난 대체 무슨 상황이 있었길래 그 당당한 컴패니언의 장녀 리리스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미쳤으면 조금은 편했을텐데

 

약 30분 가량 걸으며 나는 오르카호 내부가 얼마나 넓은지 세삼 깨달았다. 하긴 그 많은 바이오로이드와 ags를 수용하고, 심지어 잠수를 위해 물을 저장해놓는 공간까지 있어야 했을 테니 이 정도로 큰 것 당연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사령관실에서 나와 리리스가 나를 인도한 곳은 비밀의 방이었다. 무슨 놀이동산 마냥 입구에 ‘비밀의 방’이라고 떡하니 적어놓았으니 내가 오긴 전의 있던 사령관이란 놈이 얼마나 미친 놈인지 세삼 느껴졌다. 그러고는 리리스가 세 차례 정도 큰 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는 사이에 그녀가 들고 있는 도구들을 보았다. 가시가 징으로 박힌 줄들과, 몇몇 채찍들, 입가리개와 흉물스러울 정도로 징그럽고 거대한 성인용품들. 나는 대충 나 이전의 사령관이 이런 미친 플레이로 놀았던 새끼였을 것이란 생각에 올라오는 구토감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러는 사이 리리스는 비밀의 방 문을 열었고,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그 미친 광경을 서술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리리스가 열어준 문 안은 꽤 어두웠고,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의 등에서 나오는 빛으로야 간신히 문 바로 앞의 몇 미터 가량이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있는 정도였다. 문을 여니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이 내 몸 절반은 넘게 있었던 것으로 보아 꽤 깊었던 것 같다. 잠수함 내부가 미래적인 디자인을 뽐내는 것처럼 새하얀 것처럼 계단도 하얀색이었다. 하지만 비밀의 방 내부의 등을 키기 전, 문으로 들어오는 몇몇 빛으로만 보았을 때, 계단은 방 안으로 갈수록 새빨간 핏빛으로 변해갔다. 이 기괴한 그라데이션에 감히 호기심을 느끼고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자칫 넘어질 뻔하여 벽을 집었다. 질-퍽. 내가 아는 벽의 질감이 아니었다. 살코기를 집는 듯한 비릿한 촉감, 그러고 보니 아침에 바닐라들이 정리해줄 때 나던 그 냄새가 점점 미칠 듯이 내 후각세포를 때리기 시작했었다. 살덩어리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에 알 수 없을 정도로 기교하게 섞인 철분내, 그리고 몇 가지 화학 약품의 냄새가 사람이 역겨울 수 있는 최적의 냄새 조합을 만들어내기라도 하는 듯이 사악한 악취를 만들어냈다. 

 

리리스는 방 안으로 들어간 나를 보고 말 없이 콘솔에 버튼을 눌러 방의 불빛을 켜주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비밀의 방은 사령관실보다도 훨씬 컸다. 그리고 그 커다란 방의 벽은 참을 수 없이 역겨운 분홍색이었다. 대략 140cm x 50cm마다 분홍빛 사람 가죽이 벽에 못 박혀 장식되어 있었고, 그 가죽 끝은 주황빛 머리카락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머리카락들은 하나같이 땋은 머리가 있었고, 가죽의 분홍색 속살을 들쳐내니 창백한 살색이 전시되어 있었다. 더치걸이었다. 비록 벽에 전시되어 있는 그 가죽 덩어리에 머리 부분은 눈동자가 빼져 있었지만, 방 한 켠에 거대한 실린더 내부에는 그 주황색 눈동자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그 빌어먹을 분홍색과 살색의 향연이 역겨운 악취와 함께 벽 안을 장식하고 있었고, 방 위에는 돼지 도축장에나 어울릴 듯한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라인과 갈고리들, 또 거기에 뜨문뜨문 걸려있는 더치걸들이 보였다. 그 중 일부는 살아있었는지 간간히 발작을 일으키며 컨베이어 벨트와 갈고리 사이에서 차가운 금속음을 내게 만들었다. 그 컨베이어 벨트 끝에는 아무 장치도 없었다. 그래서 한 번 그 장치가 작동하면 갈고리에 매달린 더치걸들은 무력하게 컨베이어 벨트 끝으로 가 바닥에 철푸덕 떨어지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는 산처럼 쌓인 더치걸의 시체가 보였다. 그 외에는 몇몇 더치걸들이 행사장 옷을 입은 채로 옹기종기 모여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 뒤로 헤어진 마녀 모자와 은은한 푸른 빛의 장발을 가진 바이오로이드 개체들이 일부 보였다. 키르케였다. 할로윈의 그 끔찍한 c 구역으로 더치걸들을 몰아넣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바이오로이드말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자신의 손으로 더치걸 시체를 들쑤시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 손에는 알 수 없는 초록색 통이 있었고 시체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회수하고 있었다. 생긴 것을 보니 게임 속에서 오리진 더스트라고 하는 물체와 비슷하게 생겼었다. 그녀들이 회수한 더스트들은 방 밖으로 옮겨지고, 그 더스트들은 곧바로 제작실로 이어졌다. 초록색 더스트라 해봤자 이런 상황에서 좋은 품질의 바이오로이드를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고, 나중에 회수된 더스트가 옮겨진 제작실에 가 제작 로그를 살펴보았더니, 만들어진 대부분이 더치걸이었다. 

리리스가 얼마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저 아이는 약 2일 전에 낙태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원하신 상태가 되었으니 만족하실 것입니다.”

 

무슨 소리지? 낙태? 누가? 저 더치걸이? 누구 아이인데? 내 아이? 저 아이가 임신을 했었다고? 낙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리리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낙태된 상태를 좋아했다고? 임신을 시켰어? 저 조그만 애들을? 그러고 보니 비밀의 방 이곳 저곳에 분홍빛 가죽들 사이사이에 온갖 하얀 자국들이 있었다. 정액이었을 것이다. 몇몇 더치걸은 이 하얀 자국으로 뒤덮혀 있었고, 그 외의 아이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다들 그러했다. 뭔 짓을 하더라도 정액은 하루이틀이면 말라버릴 것인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내가 일어나기 직전까지도 이 미친 놈이 더치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쉽게 집작할 수 있었다. 


리리스의 그 표정 뒤에 숨어 있는 역겨움과 두려움을 나도 보았다. 내가 한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 참사를 보고 나는 참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졌다. 울고 싶었고 토하고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면 너머 이 아이들을 보며, 또 웃는 얼굴을 보며 같이 웃었던 내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멸망 전의 좆간 그 자체였다. 멸망 전에도 이렇게 하는 놈들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 이전 놈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내가 만든 지옥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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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반응보고 좋으면 더 써야지

결말은 애호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