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서버 종료라고..?”

 

 믿을 수 없어, 공지를 다시 읽어본다.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스마트퍼니에서 개발한 모바일 전략게임, 라스트 오리진의 서비스 종료 공지였다.

 

 금세기 최고의 MMORPG로 평가받는 인공히어로의 성공은 스마트퍼니를 게임 산업계의 초신성으로 만들었다. 

 

 ‘진짜 이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몰입감.’

 ‘살아 움직이는 NPC와 흥미로운 스토리.’

 ‘현실보다 자유로운 오픈월드.’

 

 '인공히어로 개발사' 그  타이틀 만으로 스마트퍼니의  차기작 소식은 게이머들을 열광시키기 충분했다. 

 그렇게 공개된 것이 ‘라스트 오리진’ 미소녀들과 함께 멸망한 세상을 탐험하는 전략게임. 

 정통 판타지 RPG를 만들던 개발사가 소위 말하는 ‘미소녀 게임’을 만든다니,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으나, 그 의문은 빠르게 종식되었다. 

 그도 그럴게, 인공히어로 개발 일등공신 복규동PD가 차기작의 총괄PD로서 참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 속 출시된 라스트 오리진은 게임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것이었다. 

 끊임없는 버그의 향연, 불친절한 튜토리얼, 발로 한 최적화, 들쭉날쭉 널뛰는 난이도 등의 조악한 완성도의 게임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실망으로, 또 실망을 분노로 바꾸기 충분했다.


 '난 재밌던데?'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무 즐거운 게임이었다. 

 멸망한 세계, 취향 저격 일러스트, 머리를 굴리고 굴려 뚫어내는 스테이지 등 흥미로운 요소들은 나를 저 세계로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라스트오리진은 2년 동안 나를 포함한 소수의 게이머들에게 '갓겜'으로 남아 서비스 되었다.

 그래, 그렇게 계속 서비스 될 줄 알았다. 

 

 ‘대체 왜? 내가 현질을 얼마나 했는데..’

 

 급히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가 봤지만, 그곳도 그저 불타고 있을 뿐.

 

 - 복규동 2부는 보여주고 가! 시1발.. [12] 

 - 제발 돌아와! 제발 돌아와! 제발 돌아.. [2]

 - 무슨 축제 중인가요? [8] 

 - 즐거웠다.. 애들아 [23]

 

 빠르게 게시글을 작성한다.

 

제목 : 아니 왜 서비스 종료하는거?

본문 : 내가 여기에 돈 쓴 게 얼만데.. 무슨 이유로 종료하는 거냐고!

 

댓글이 하나 둘 씩 달린다.

 

* 아 ㅋㅋ 그걸 알면 우리가 이러고 있냐고 ㅋㅋ

 ㄴ ㄹㅇ ㅋㅋ

 ㄴ ㄹㅇ ㅋㅋ

* 사실 망겜 여기까지 온것도 기적임

* 돈이 안 되니까.

* 이름하야

* 캬루베로스!

* 스마트퍼니 또 차기작 만든다던데, 개발 인력을 여기서 충원한다는 찌라시가 있음.

 ㄴ 그거 진짜 ㅈㄹ인게 ㅋㅋ 이 어플 프로그래머를 데려간다고? 돌았음? ㅋㅋ

 ㄴ 몰라레후.

 

 혹여나 다른 소식이 있을까, 게시판을 새로고침 해보지만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 ??? : 네놈들 게임은 망했어! [15]

- 잘가.. 에밀리쨩.. 미호쨩.. [8]

- 애들아 재밌었다. 갈갈한다. [24]

- 망한 기념으로 그린 아르망 그림 한 장 [42]

 

의자에 몸을 눕히고 애꿏은 천장을 바라본다.

 

‘아.. 시발... 실화냐’

 

그때였다. 조금 전 작성했던 게시물에 댓글 알림이 울렸다.

 

* 역시 병신같은 겜 처음부터 망할 줄 알았음 ㅋㅋ

 

 자신도 평소에는 병신게임이라며 자조섞인 욕을 꽤나 했었다. 

 그런데 종료 공지가 올라온 날까지 욕이라니, 마지막은 좋게 보내줘도 되지 않은가. 

 

* 역시 병신같은 겜 처음부터 망할 줄 알았음 ㅋㅋ

 ㄴ 곧 죽는다는데 이제라도 욕하지 말자..

 

‘그래 우리 좋게.. 좋게 가자...’

 

* 역시 병신같은 겜 처음부터 망할 줄 알았음 ㅋㅋ

 ㄴ 곧 죽는다는데 이제라도 욕하지 말자..

 ㄴ ㅋㅋ 병신겜이라 그런가? 지같은 유저들만 있네 ㅋㅋㅋ

 

‘이 시발련이...’


* 역시 병신같은 겜 처음부터 망할 줄 알았음 ㅋㅋ

 ㄴ 곧 죽는다는데 이제라도 욕하지 말자..

 ㄴ ㅋㅋ 병신겜이라 그런가? 지같은 유저들만 있네 ㅋㅋㅋ

 ㄴ 이 ^^ㅣ발아 좋게 좋게 말하자니까 ㅈㄹ이네? 지는 ^^ㅣ발 얼마나 뛰어난 게임 하길래 좆 지랄을 싸냐? 그지발싸개련이.

 ㄴ 적어도 이것보단 재밌는 게임함 ㅋㅋ ㅈㄴ웃기네 게임에 과몰입해서 씹오타쿠 등판했네 ㅋㅋㅋ

 ㄴ 이 ^^ㅣ발련아 몇 년을 했는데 과몰입하지, 존나 역하게 쿨찐짓하네? 개 븅신련.

 

 

*

*

*

 

그 시발련과의 키보드 배틀은 밤새 이어졌다.

 

@#$!....!#!@$

 ㄴ 같지도 않은 게임하느라 고생했네 ㅋㅋ 니 지능 레전드네 진짜

 ㄴ 지능 운운 ㅇㅈㄹ ㅋㅋ 꼭 이런 새끼가 아무것도 아닌 개백수임

 ㄴ 아닌데? 적어도 너보다 내 직업이 나을 듯 ㅋㅋ

 ㄴ 인증이 없으면 뭐다? 인터넷 망령 새끼가 ㅈㄹ은 ZZ

 ㄴ 너가 먼저 인증해. 그럼 나도 함.

 ㄴ ㅇㅋ 쫄보련ㅋㅋ 내가 먼저 해준다.

 

 그는 책장에 고이 모셔놓던 졸업장을 꺼냈다.

 

 ‘Sky는 아니지만, 그래. 이정도면 꿇리지 않는다... 아직 취업은 못했지만..’

 

 이름과 학과를 포스트잇으로 가린 후 사진을 찍어 게시글을 작성한다.

 

제목 : 본인 학벌 인증

본문 : 보안문제 있어서 직장은 공개 못하는데, 학벌은 인증해준다.

 

댓글 알람이 울린다. 그 새끼다.

 

* 당신이 서비스 오픈부터 플레이 해왔다는 사실. 게임의 대한 애정. 사생활 노출까지 감수하는 용기. 잘 봤습니다. 제가 찾던 인재입니다. 

 

‘뭐지..? 비꼬는 건가? 쿨찐 개역겹네 진짜..’

 

* 당신이 서비스 오픈부터 플레이 해왔다는 사실. 게임의 대한 애정. 사생활 노출까지 감수하는 용기. 잘 봤습니다. 제가 찾던 인재입니다. 

 ㄴ 아 지랄말고 인증하라고 ㅋㅋ 

 

 바로 답글이 달린다.

 

* 당신이 서비스 오픈부터 플레이 해왔다는 사실. 게임의 대한 애정. 사생활 노출까지 감수하는 용기. 잘 봤습니다. 제가 찾던 인재입니다. 

 ㄴ 아 지랄말고 인증하라고 ㅋㅋ 

 ㄴ 부디, 그 세계를 구원해주시길 바랍니다 10.

 

 ‘뭐라는거야..’

 

 갑자기 모니터가 잠시 깜박이더니,

댓글 끝에 적힌  '10' 숫자가 줄어든다.

 

 ㄴ 부디, 그 세계를 구원해주시길 바랍니다 9.

 

8 그리고 7.

 

새로고침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

 

ㄴ 부디, 그 세계를 구원해주시길 바랍니다 6.

 

5 그리고 4.

 

새로 나온 댓글 시스템인가 호기심이 들었다.

 

ㄴ 부디, 그 세계를 구원해주시길 바랍니다 3.

 

2 이윽고 1. 

 

띠링-! 댓글이 하나 달렸다.

 

* 뺑이 쳐라 병1신 ㅋㅋ

 

 모니터에서 엄청난 양의 빛이 쏘아진다. 그 빛은 온방을 하얗게 뒤덮곤 사라졌다.

 

 빛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손때가 탄 키보드만 외로이 남아있었다.

 

 

*

*

*

 

 

 “숨은 쉬는데? 살아 있는 것 같아! 벌써 죽어버린 줄 알았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겠는데?”

 

 “그리폰, 조금 더 정중하게 말하렴. 드디어 찾은 인간님인데... 우리 주인이 되실 분이잖아.”

 

 어딘가 날이 서있는 목소리와 상냥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린다.

 

 “흥, 주인은 무슨. 난 아직 주인이라고 인정 안했거든? ...어쨋든 그 주사부터 놔. 슬슬 숨소리가 간당간당해지고 있으니까.”

 

목옆이 따끔하더니 무언가 내 몸에 주입되고 있다.

 

 “으아! 시발 내 몸에 뭘하는거야!”

 “아! 깨어나셨군요!”

 “뭐야? 콘스탄챠, 인간이 말도 할 수 있어? 철충들은 말을 못하던데..”

 

그것이 그녀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동시에 머릿속을 울리는 한 목소리가 들렸다.

 

[System : ‘상태창’을 열어보십시오.]

 

“상태...창..?”

 

입을 떼자 반투명한 창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이름 : 김현식

직업 : 초보 사령관

칭호 : 병1신

스테이터스 :

[힘 : F ] [체력 : F ] [민첩 : F+]

[지능: D+] [매력 : F-] [운 : B+]

특성 : [전장의 눈 : A+]

 

퀘스트 : 오르카 호로 이동하십시오. [진행 중] 

[신체붕괴까지 30일 남았습니다!]

 

 나와 그녀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갑자기 허공에 나타난 상태창을 바라봤다.

 

 “...콘스탄챠? 인간들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걸..?”

 

 

*

*

*

 

 

이 세계에 도착한지 2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그런 일이 있었지.

 

 “저.. 저기 사령관님?”

 

 “..아! 미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 크흠! 그래서 네가 이번에 새로 전입한 T-3 레프리콘2236 맞지?”

 

“예! 맞습니다!”

 

 “그렇게까지 긴장 안해도 돼.”

 

거짓말이다. 사실 빡세게 군기가 들어간 모습이 보기 좋다.

 

 “예! 알겠습니다!”

 

 그래.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해주길 바래. 그래도 너무 과하면 부담스럽긴 해.

 

“긴장도 풀 겸, 내 옛날 얘기나 해줄까?”

 

“...예?”

 

 

*

*

*

 

 

그래, 나는 이 멸망한 세계에서

 

그 시..발련을.. 찾아야 한다.

 



-----------------------------------------------------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상태창 역겨운건 알지만

게임 판타지잖아요?

한번만 봐주세요.


글쓴이가 썻던 문학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