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난 발키리의 초점은 흐릿할뿐 그 어떤 말도 없다. 그녀가 아는 총명한 발키리는 온데간데 없이 침을 주르륵 흘린다. 

"토끼대작전이 공주님구출작전이 됬네." 

저택만큼이나 넓은 천장은 많은 곳으로 연결되어있다.

환기를 위한 구조일 것이다. 

이제까지 있던 방으로 발키리를 업듯이 끌어다 움직인다. 

천장을 비추는 얕은 빛들이 사라졌다. 

괴식을 하는 이들이 있던 그 곳이 아니라 그녀와 발키리가 있던 곳이다. 

그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와 귀를 때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지붕을 부시기라도 할듯 내리치듯 번개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레오나의 등에 흐르는 식은 땀. 

환풍구를 조심스레 열고 그 낡은 방으로 다시 뛰어내린다. 

질척거리는 소리 혹은 왁자지껄한 인간들의 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방문을 열고 나간 레오나가 권총을 쥔 채 라이트를 켜고 부엌으로 향한다. 

같은 구조지만 이전에 본 그 화려하고 잘닦인 복도가 아니라 먼지와 벌레가 함께 뒹구는 곳이다. 

'발키리와 이 이상한 일이 연관 있을거야.'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요리되었을 그 발키리말이다. 

텅 빈 부엌은 깜짝 놀란 벌레들 몇마리만 소리죽여 도망갈뿐 아무것도 없다. 

닦이고나서 한참을 쓰이지않은 식기들과 조리도구는 사이좋게 낡고 부식되어있다. 

창문 너머로 그 부엌에 딸린 준비실을 살펴보니 요리모를 쓴 백골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서 손님을 맞이한다. 

"음. 음." 

"동생, 정신 좀 차려봐. 사령관이랑 할 때처럼 넋놓고있으면 이제 평생 사령관 못볼수도 있어." 

이제 토끼인형같은건 필요없다. 

그녀만 정신을 차린다면 얼른 이 기괴한 저택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 대장님 언니님 언니님? 대장님? 누구 나 누구?" 

백치가 되어버린 것이 확실한 발키리이지만 그런건 오르카호에 가면 닥터가 어떻게든 해줄것이다. 

"돌아가자. 여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오래 있어선 안돼." 

"안돼. 안돼! 안돼에에에에에에에 꺄아아아아악!" 

대뜸 미친년처럼 소리를 빼액 지르는 발키리의 입을 막는다. "왜 그래 동생! 제발 좀!" 

바둥대는 그녀를 겨우 진정시키고 숨을 고르며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철퍽거리는 놈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니까. 

"좋아, 동생. 그럼 어떻게 하고싶어?" 

"언니, 대장.  나, 도와줘. 구해줘." 

잘 들어보니 발키리의 목소리가 두개로 겹쳐서 들린다. 

합성된 소리는 분명 그녀가 아는 동생인 발키리의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가 섞여있다. 

"죽고싶지않아. 죽여버릴꺼야. 살려줘. 모두 죽여버려." 

초점없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흔들어대며 머리를 쥐어싸매는 발키리를 품에 안는다. 

"어디부터 갈지 말해줘." 

그녀와 그녀는 알고있다. 

그녀가 무엇을 하면 그녀에게 허락받아 순순히 이 곳을 빠져나올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른 그녀가 순순히 그녀를 풀어주는 것일까? 

발키리의 손가락이 백골들 너머의 작동하지 않는 냉동창고를 가리킨다. 

"수상쩍은 곳이네. 좋아, 그럼 떨어지지말고 잘 따라와." 

쿵. 쿵. 쿵. 쿵쿵쿵쿵쿵쿵쿵쿵 

들어오기 전에 혹시 몰라 잠궈놓은 식당의 철문이 요동치고 떨어진 집기들이 쨍그랑소리를 내며 간신히 붙어있던 백골들이 진동으로 제자리를 잃고 분해된다. 

그 두꺼운 철문이 계속해서 불룩불룩 튀어나오고 주변의 벽까지 통째로 뜯길듯이 균열이 간다. 

"싫어! 싫어! 싫어! 아니야 난 아니야 내가 아니야" 

냉동창고쪽으로 뛰어가는 그녀를 급하게 쫓아 들어가고 얼마 못가겠지만 냉동창고의 문을 닫은 후에 잠근다. 

단단히 잠근 문을 확인하고 그녀를 찾으니 분명 들어올때 텅 비어있던 냉동창고는 갑작스레 고리에 걸린 고기들이 즐비하다. 

붉은 조명은 아까전까지 어두웠던 창고를 가득채우고 갑자기 생겨난 냉기가 허전한 하체를 스치고 고기들의 얕은 피비린내가 코 주변에 머문다. 

"또 시작이네. 미치겠어." 

그녀가 사라진 쪽으로 조금씩 걸어간다. 

돼지, 양, 소, 닭, 말, 개, 악어, 거북, 원숭이까지. 

그 외에도 수많은 동물들의 살덩이가 걸린 곳은 저택의 크기만큼이나 넓다. 

앞으로 나아가다 갑작스레 벽으로 막힌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레오나. 

조심스레 벽의 이음새를 매만지더니 어느 부분을 한참동안이나 더듬거린다. 

"찾았다." 

드르륵 벽의 작은 일부분이 움직이고 거기에 손잡이가 드러난다. 

한 손엔 권총을 들고 문에 어깨를 댄 후 

하나, 

둘, 

셋. 

순간적으로 돌입한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역시나 역겨운 인간들이다. 

헛구역질이 멈추지않는다. 

눈알부터 귀 다리 발가락 손가락 도대체 어느정도까지 분류해놓은것인가. 

발할라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발가벗은 나신이 동강동강 난 채로 전시되어있다. 

가격표와 유통기한이 아래에 적힌 채로. 

"미친새끼들. 사령관말대로 인류재건같은건 없는게 낫겠는데?" 

라비아타가 들었다면 그 큰 대검으로 꿀밤을 맞았겠지. 

역겨운 건 역겨운거고 동생을 찾아야한다. 

냉동창고보다도 더 넓은 그 곳을 레오나가 숨을 고르며 걸은지 얼마되지않아 그녀가 온 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들킨것인가. 

마침 전시된 그것들의 가장 아랫칸, 여분의 고기들을 담기 위해 비어있는 칸에 얼른 몸을 숨기고 귀를 쫑긋 세운다. 

"여기에 생체반응이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침입자가 몇명이랍니까?" 

"폭탄 터지고 부엌이 털리고 레오나가 탈출하고 동시에 일어난 일이 셋이니까 적어도 세명은 된다는데 정확한 숫자는 모르니까 조우시 바로 무전해라." 

"예. 형님." 

구둣발소리가 또각또각. 

그녀쪽을 스쳐지나갔다가 다시 왔다가 또 다시 스쳐지나가고. 

수많은 구둣발들이 창고를 찾아보더니 이내 철수무전과 함께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들은 그녀가 직접 탈출했을 것이라곤 전혀 염두에 두지않고있기때문에 시간을 끌기만 하는 은닉은 배제하였고 

침입자들이 얼른 그녀들을 납치해 갈 것에 대한 걱정만 가득했으며 그 때문에 그들의 수색은 점점 더 얇고 넓어져 가고있었다. 

 끈적거리는 핏물에 눈쌀을 찌푸리지만 그래도 덕분에 살았으니 큰 불평없이 다시 동생을 찾아나선다. 

안으로 갈 수록 고급기종들이 전시되어있다. 


발목을 잡는 누군가의 손. 


바로 총을 겨누었다 거둔다. 


"나. 저. 무서워. 죽일거야. 구해줘. 도와줘." 

"동생, 도와주려는데 자꾸 어디가면 못 도와주지." 

그녀처럼 가장 밑칸에 숨었던 발키리도 마찬가지 피범벅이다. 

"언니 빨개졌네. 이뻐. 빨간건 무서운 색이야. 빨간색 좋아 싫어 무서워 안돼." 

곧 다시 그 괴물이 있는 빈 저택으로 돌아가겠지. 

철문도 부셔먹을정도면 총이 있던말던 피하는게 좋다. 

"동생, 들어온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어?" 

"여...여 여여 여기로 가면 옷을 배출하는 공간 있어. 그치만 높아 높아서 떨어져 떨어져? 아파 아파아파아파 큰일나!" 

이제 조금 익숙하다. 

긍정이와 부정이가 같이 말하는 느낌이랄까. 

"그건 걱정없지. 언니한테 업혀." 

"떨어지면 아파! 아파! 어떻게? 큰일나! 할 수 있어?" 

말은 그렇게해도 조용히 업힌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한다. 


찰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