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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을 쓰고 9.5편을 쓰는 병신이 접니다. 시간대는 10편 이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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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신속의 칸과 사령관 Day. 121 PM 04:05

 

 

 작전 회의가 끝나고 신속의 칸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앵거 오브 호드의 숙소가 아닌 회의실 인근의 흡연실이었다.

 

“아무도 없나.”

 

 문을 열고 들어선 신속의 칸은 10평 남짓한 공간에 아무도 없음을 보고 근처의 벤치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벤치 위로 오른발을 올려 걸터앉은 그녀는 허리춤에 찬 포켓에 손을 넣었다.

 

“결국 건네 주지 못했군.”

 

 그녀의 손에는 밀봉된 한 갑의 담배가 들려져 있었다. 담배를 피지 않는 그녀가 이것을 손에 넣은 계기는 다름 아닌 그녀의 부대 일원인 워울프였다.

 

“대장! 이거, 사령관한테 전해줘.”

 

 오늘 오전에 시작된 대규모 작전이 끝나고 모두가 지쳐 터벅 터벅 걸음을 옮길 때 워울프 한 명이 신속의 칸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신속의 칸 역시 그때 당시에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있는 상태였으나 워울프가 사령관에게 전달해달라는 물건을 내밀자 눈이 갔다.

 

“이건..”

 

“담배야. 사령관이 좋아하는.”

 

 신속의 칸이 고개를 들어 이걸 건네는 워울프를 마주 보았다. 얼굴의 반편이 불에 그을려 붕대를 칭칭 감고 아끼던 서부풍 모자는 전투 중에 분실했는지 먼지와 흙이 머리칼에 잔뜩 묻은 그녀는 힘든 기색을 애써 감추며 웃고 있었다.

 

“..네가 전해주는 게 낫지 않나.”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아무래도 수복실부터 가 볼려고. 얼굴이 따가운 건 참기 힘드네.”

 

“..알겠다.”

 

 신속의 칸은 마지못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녀가 내민 담배를 받으려 하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워울프가 재빠르게 그 손을 낚아채었다. 워울프의 억센 악력이 관절이 상한 신속의 칸의 팔에 부담을 주자 신속의 칸은 얼굴을 찡그렸다.

 

“윽!..뭐하자는 건가?”

 

“휘유! 우리 대장도 역시 다쳤구나?”

 

 워울프는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쥔 손의 힘을 풀었다. 하지만 그 손을 놓지는 않았다.

 

“대장, 오늘 사령관, 어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워울프.”

 

“흐음~뭐 별건 아니고. 우리 대장도 사령관의 저런 모습에 마음이 동했으려나 싶어서.”

 

“...”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워울프였지만 눈매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그때야 그녀의 인식표로 눈길이 갔다.

 

“...그래, 넌 오르카함의 워울프였군.”

 

“이제야 눈치를 챘네. 대장.”

 

 그녀의 목에 걸린 인식표에는 ‘오르카 저항군 앵거 오브 호드 소속 워울프 1호’라고 각인이 되어 있었다. 기존의 멸망전 개체의 경우 ‘호’가 아닌 자신들의 멸망 전 개체번호를 썼고 오르카함의 바이오로이드 제조 시설에서 생산된 바이오로이드들의 경우 ‘호’를 생산 순서대로 썼다.

 

 지금 자신의 손을 낚아챈 이는 오르카호의 초창기에 생산된 워울프들 중 최고선임이었다. 워울프는 낚아챈 신속의 칸의 손에 담뱃갑을 쥐여 주었다.

 

“대장, 우리 사령관은 제법 멍청해.”

 

“..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도 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도 못 하는 바보 멍청이야.”

 

“...”

 

“매번 자기 손해 보는 짓만 하면서 또 그걸 내색하는 것도 싫어해. 진짜 바보 멍청이지.”

 

 워울프는 낚아챈 손을 거두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무언가 만족스러운 눈빛과 입가의 미소가 신속의 칸에게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워울프는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 입에 물고 갑 안에 넣어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런 바보 멍텅구리도 포기 안 하는 게 하나 있더라고.”

 

“...그게 이건가?”

 

“응, 담배만큼은 포기 안 하더라.”

 

 워울프는 미소를 거두고 미간을 찡그리며 연기를 하늘 위로 내뱉었다. 하늘 위로 넓게 퍼져 나가는 연기구름을 보며 그녀는 무언갈 회상하는 듯 했다.

 

“아무튼, 대장. 이거 사령관이 좋아하는 담배거든? 꼭 좀 전해줘. 언제가 되었든 간에.”

 

“..알겠다. 네가 전해줬다고 하마.”

 

“아니, 그건 생략해도 돼.”

 

“뭐?”

 

“우리 바보 같은 사령관을 보고 있으면 우리 대장처럼 느껴지거든. 이 기회에 잘 좀 해봐. 대장. 둘이 닮은 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워울프는 어느새 장난기를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신속의 칸을 응시했다. 시시각각 바뀌는 그녀의 얼굴에 신속의 칸이 따라가지 못할 때 누군가 워울프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낚아채었다.

 

“야! 너 또 대장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바보같이 돌격밖에 모르는 대장한테 조언 좀 해주고 있었지.”

 

“이씨! 대장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뒤에서 나타난 퀵카멜과 워울프는 어느새 서로를 보며 아옹다옹하기 시작했다. 퀵 카멜 역시 워울프처럼 몸이 온전치 못해 여기저기 자잘한 자상이 눈에 띄었다.

 

“대장님, 언제 한 번 이 녀석 좀 크게 혼내야 한다니까요!”

 

“어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 같은 녀석이 있어야 우리 부대가 사람 사는데 같지. 안 그래? 얘들아?”

 

“옳소!”

 

“으하하하!”

 

 어느새 그녀들의 곁으로 생존한 워울프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녀들 모두 온몸이 성치 않았다. 워울프들과 퀵카멜들은 서로 깔깔 웃으며 그녀들을 둥글게 에워쌌다.

 

“그것보다 오늘 사령관 좀 쩔지 않았냐? 크으, 알바트로스에 올라타서 최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이 SF 영화 주인공 같았다고.”

 

“AGS들이 그렇게 강한지 나도 처음 알았어. 평소에 우리랑 마주칠 일이 적었으니까 브라우니들이 강하다고 말할 때도 잘 몰랐는데..”

 

“캬! 거기에다가 갑자기 현장 작전지휘권을 전부 대장들한테서 뺏어서 우릴 지휘하는 모습도 죽였지!”

 

“대장들한테 욕할 때는 부하들을 갈구는 서부 영화 조직 보스 같았지!”

 

 그녀들은 서로 마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신속의 칸은 왁자지껄한 평소의 분위기에 이전처럼 따라가지 못했다. 멍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볼 때쯤 처음 말을 건 워울프 1호가 다가와 신속의 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대장, 우린 언제라도 대장 편이야.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어차피 우리 모두 죽기로 각오하고 싸우는 거니까.”

 

“워울프..”

 

“그건 저도 동감이에요. 대장. 사령관님이 뭐라든 대장도 다 생각이 있었던 거 아니었겠어요?”

 

“퀵카멜..”

 

“이야, 탈론 페더도 여기 있었으면 셔터 찬스라면서 신나게 찍었을 텐데. 중상을 입어서 드론에 실려 갔으니.”

 

 워울프들과 퀵카멜들은 그렇게 한 명씩 웃으며 오르카함으로 이동했고 신속의 칸은 포켓에 담배갑을 넣은 채 그녀들을 따라 걸었다.

 

“...담배..”

 

 신속의 칸은 흡연실 안에서 자신의 손에 쥔 담배를 보며 옛 생각에 빠졌다.

 

“오르카 저항군 총사령관이다. 만나서 반갑다. 신속의 칸.”

 

 웃음기 없는 차가운 인상. 마치 인형같이 그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처음 만났을 때의 사령관은 그녀의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닮은꼴의 사람끼리는 서로가 불편하다고 했던가, 당시 신속의 칸은 사령관을 믿지 않았었다.

 

칙-

 

 신속의 칸은 먹먹한 가슴에 불을 지피듯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평소에는 담배를 가까이하지 않는 자신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담배 한 대를 피워보고 싶었다. 대체 이게 뭐길래 워울프와 사령관은 이걸 포기 못 하는지 그들의 시야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맵군.’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자 입안과 목젖을 매캐한 담배 연기가 연신 두들겨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 그들처럼 목구멍 너머로 흡하고 들이쉬자 담배 연기가 폐 속으로 들어가 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후-우..”

 

 충분히 폐로 넘긴 담배 연기를 내뱉자 답답한 가슴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 그녀를 엄습했다. 흡연실의 벽면에 설치된 창밖 너머로 얕은 바닷속의 풍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이런 기분이었나, 사령관.”

 

 신속의 칸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담배를 한 개비 다 태운 후 그녀는 다시 포켓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짤그랑-

 

 이번에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었다. 그녀의 왼손에 들린 것은 은색 줄에 걸린 두 개의 군번 인식표였다.

 

‘삼안 산업 소속 앵거 오브 호드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 신속의 칸’

 

‘오르카 저항군 앵거 오브 호드 총지휘관 신속의 칸 소장’

 

 각각의 군번 인식표는 색감과 각인이 된 문구가 서로 달랐다. 하나는 세월의 흐름 탓인지 여기저기 파인 흔적과 녹이 슬어 있었으며 하나는 갓 만든 물건인지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

 

 신속의 칸은 앵거 오브 호드의 지휘관이다. 애초에 앵거 오브 호드라는 부대 자체가 창설된 계기도 그녀에게 있었고, 원 맨 아미라 부릴 정도로 그녀의 돌파력과 기동력을 중시한 부대가 바로 그녀의 부대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내심 부담스러웠다. 멸망 전 개체인 그녀에게는 그녀가 어떻게 지휘관급 개체가 되었는지에 대한 모든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탕-

 

‘아...’

 

 신속의 칸이 되기 전의 케시크 개체였던 시절, 잠복해 있던 저격수에게 지휘관 개체의 머리가 터져 죽자 모든 분대원이 일시에 혼란에 빠졌다. 다수의 분대원이 잠복해 있다 자신들을 습격하는 무리에게 응사했으나 지휘관급 모듈이 없던 그녀들에게 모든 분대원을 챙기기에는 무리였다.

 

피-융

 

 총알이 케시크인 그녀의 뺨을 스쳤다. 뺨에서는 한줄기의 피가 흘러내려 뺨을 타고 턱을 지나 목까지 흘러내렸다. 그때의 그녀는 생각했다.

 

‘살고 싶어.’

 

 삶에 대한 욕구가, 갈망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였다. 떨리는 두 손으로 죽은 지휘관급 개체의 무식하게 짝이 없는 캐논을 들었다. 혼란에 빠진 분대원들에게 고함을 쳤다. 흥분한 자신을 붙잡는 동기형의 손을 뿌리치고 멱살을 잡았다.

 

‘살아남고 싶으면 나를 따라!’

 

 그녀의 비명 아닌 포효에 분대원들의 눈이 동그랗게 떴다. 이후 일은 순식간이었다. 지휘모듈이 없음에도 그녀는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분대원들은 그녀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윽고 블랙리버의 지원 공수부대가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들은 구출되었다.

 

‘흥미롭군, 지휘모듈이 없는데 어떻게 부대를 지휘한 거지?’

 

 전투가 끝나고 몇몇 인간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아니, 찾아왔다기보다는 끌고 왔다. 그들이 머무는 시설로 그녀를 안치시켰으니 말이다.

 

‘본래라면 모두 죽었어야 할 상황이었을텐데..’

 

‘생존 개체 수가 절반이 넘는데, 이거 참.’

 

 그들은 무언가 곤란하다는 듯 떠들어 대었지만 정작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서려 있었다. 기분 좋은 오류라 그들은 생각했었다. 얼마 안 가 흰 가운을 입은 남자와 군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그녀를 찾아와 말을 걸었다.

 

‘이봐, 케시크.’

 

‘예.’

 

‘어때, 지휘관이 되어 볼 생각은 없나?’

 

‘...예?’

 

 군복을 입은 남자는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었고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씩 웃으며 그녀에게 지휘관직을 제안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래..지휘관,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인데 케시크라는 이름은 조금 그렇지.’

 

 군복의 남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이미 그녀의 의사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바이오로이드, 인간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인형. 그것이 그녀 자신이었다.

 

‘칸, 그래. 칸이 좋겠군. 케시크라는 명칭 자체도 그를 보필하는 호위대에서 떼온 거니까.’

 

‘훌륭한 작명센스시군요. 중장님.’

 

‘하하, 고맙군. 이봐, 이상한 케시크 모델. 넌 앞으로 칸이라 불릴 거다. 지휘모듈과 신체 강화를 실행해 그 개 같은 정부 녀석들에게 한 방 먹여주도록.’

 

 그날 이후, 그녀는 ‘케시크’에서 ‘칸’이 되었다. 그건 그녀 자신이 바란 것이 아니었다. 신속의 칸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다시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입에 물었다.

 

칙-

 

 담배가 타기 시작하고 그녀 입에서 담배 연기를 쉼 없이 뿜어내었다. 그런데도 떨리는 손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애써 다른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자 사령관과의 대화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사령관은 그녀를 사령관 집무실로 호출했었다. 자신을 호출한 그는 한 무더기의 서류뭉치 위에 연신 사인과 도장을 찍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신속의 칸, 그대의 부대는 보급병이 따로 없나?”

 

“..보급병 말인가. 지금은 없다.”

 

“..여태 보급도 없이 어떻게 싸운 거지?”

 

 일말의 미동도 없는 얼굴과 달리 그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 자신은 무덤덤하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보급이 없더라도 총알이 떨어지면 육탄전으로 해결한다. 그것도 힘들다면 빠른 기동으로 후퇴한다. 그게 다다.”

 

“...”

 

 사령관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입을 닫고 턱을 괴었다. 신속의 칸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신을 ‘칸’으로 만든 인간들과 그는 다를까.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여러 궁금증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윽고 그는 무언가 결정한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좋다. 앞으로 너희 앵거 오브 호드의 보급은 내가 임시로 도맡겠다.”

 

“...?”

 

 이 남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신속의 칸은 당황했다.

 

“보급 없이 싸우다가는 정작 위험한 순간에 고립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돌파력과 기동력이 강한 너희라 하더라도 전멸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버리면 그만 아닌가.”

 

 신속의 칸은 이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것을 곧 후회했다. 한 부대의 지휘관이라기엔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의 진심이었다.

 

 사령관은 무심코 뱉은 그녀의 말에 미간에 힘을 주는 듯 인상이 조금 구겨진 듯 보였다. 그의 표정이 변하는 건 처음 본 것 같았다.

 

“...버리고 자시고 간에 이래 봬도 난 사령관이다. 신속의 칸 소장. 내 앞에서 그런 말은 삼가도록.”

 

 살짝 짜증이 묻어나오는 그의 말에 그녀는 무심코 안심하고 말았다. 이 남자는 자신을 버리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령관은 쥐고 있던 펜을 놓고 책상을 검지로 톡톡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앵거 오브 호드의 보급망 구축 및 물자 조달은 내가 임시로 도맡겠다. 앵거 오브 호드의 기동력을 생각한다면 바로 보급을 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기동부대 중심으로 보급망을 구축한다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

 

“산지에서는 어떻게 할 건가.”

 

“산지의 경우 실키 모델과 안드바리 모델의 드론을 이용한 보급을 하게 될 거다. 산지의 험준한 지형의 경우 너희들의 기동력이 절감되니 실키 모델이라 하더라도 못 쫓을 정도는 아니겠지.”

 

“..초원이나 평지의 경우는 힘들 것이다만.”

 

“괜찮다. 그 경우에는 스카이 나이츠들이나 드론, 익스프레스 모델들과 같은 공중 기동형들을 동원하면 그만이다. 이들을 지휘하는 건 너희보다 내가 낫겠지.”

 

“...”

 

 그는 진심으로 앵거 오브 호드의 보급병이 되려는 듯 굴었다. 말을 마친 그는 다시 몇몇 서류를 집으며 업무를 속행했다. 신속의 칸은 그때 여태까지 품어오던 그녀의 불안을 잠재울만한 확신을 그에게서 받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무슨 소리냐. 신속의 칸.”

 

“우린 바이오로이드다. 쓰다가 망가지면 버리면 그만. 우리의 보급을 맡을 바에야 새로운 후속기들을 준비하는 게 더 효율성이 높다.”

 

“...”

 

“당초에 이런 이야기도 필요 없다. 그저 쓰다가 좋으면 더 강화해서 쓰면 그만. 쓰다가 망가지면 새로이 만들어서 쓰면 그만. 그것뿐인 존재이지 않나.”

 

 신속의 칸의 말에 그가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물고 늘어지는 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그는 정말 그 남자들과 다른 걸까.

 

“...만약 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면?”

 

“이미 이 함에는 아무도 없었을 거다.”

 

“...하, 알겠다. 앞으로의 보급은 사령관에게 맡기지.”

 

 신속의 칸은 등을 돌려 사령관 집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확신했다. 그는 다르다, 자신이 보았던 여타 인간들과 다르다. 그래, 나를 닮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때야 그가 마음에 들었다.

 

툭-

 

 다 타버린 담뱃재가 끄트머리에서 떨어져 그녀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신속의 칸은 다 타버린 담배 필터를 재떨이 위로 던졌다. 그녀는 걸터앉은 오른 다리를 양팔로 당기며 품에 끌어안았다. 흔들리던 손이 떨림을 멈추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해수면 너머의 은은한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사령관, 난 그대를 가지고 싶었다.”

 

 그녀는 애달픈 눈으로 조용히 자신이 감추어 온 속마음을 읊조렸다. 아무도 없는 공간, 담배 두 개비를 통해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졌다.

 

“그대는 나와 닮았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기에 그녀는 허물어진 마음의 벽 사이로 새어 나오는 진심을 토로했다.

 

“마치 ‘케시크’이자 ‘칸’인 나와 닮았다.”

 

 오랜 세월 자신을 괴롭혀 온 사실, 원치 않았던 지휘관이라는 자리. 그것은 사령관과 그녀의 공통점이었다. 사령관도, 자신도 지금의 위치에 억눌리고 있었다. 그것이 그와의 닮은 점이라 생각했었다.

 

“난 살고 싶었다. 부대원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저리될 것만 같아 살고 싶었지.”

 

 머리가 터져 죽은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 적들의 포화 속에서 무참히 찢겨나가는 동기형 모델들. 그것이 곧 자신에게 들이닥칠 미래라 생각하니 죽음의 끝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갈망에 온몸을 맡겼다. 그렇게 그녀는 ‘칸’이 되었다. 사령관은 철충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사령관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앵거 오브 호드는 나에게는 너무 큰 짐이었다.”

 

 원치 않았다. 나 하나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옆에는 점점 자신의 부하들이 늘어만 갔다. 신속의 칸에게 그녀들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그저 막중하게만 느껴졌다.

 

“그걸 사령관, 그대는 덜어 주었지.”

 

 그가 보급을 맡기 시작하면서 앵거 오브 호드는 호랑이에 날개를 단 듯 더욱더 높은 전투 성과를 보였다. 전투가 끝난 뒤에는 다 같이 모닥불에 모여 사령관이 보급해준 음식들을 먹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대가 없는 나는, 그대가 없는 앵거 오브 호드는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르카 함에 탑승한 이후, 사령관이 그녀들의 보급을 챙긴 이후, 나날이 갈수록 신속의 칸은 웃음이 늘었다. 더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낼 필요도 없어졌기에 그녀는 자주 웃음을 지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이토록 변화시킨 그가 너무나 가지고 싶었다. 자신도 그의 짐을 덜어 주고 싶었다.

 

“나도..내가 이렇게 독점욕이 심할 줄 몰랐다.”

 

 사령관이 4일전 휩노스병으로 인해 쓰러진 이후 그녀는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었다. 억지로 다프네에게 수면 약을 처방받아 잠이 들 때면 꿈속에서 허망하게 죽어버린 그의 모습이 보였었다. 그 꿈 탓에 그녀는 어제까지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었다.

 

‘정말 이 작전을, 주군께 알리지 않고 그대들 멋대로 진행할 셈이오?’

 

 3일 전 무적의 용이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과 다른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에게 되물었다. 불굴의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철혈의 레오나는 묵묵히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멸망의 메이는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신속의 칸, 내 그대만은 다를 거라 믿소. 이 작전을 진행해 서는 안되오!’

 

 무적의 용은 다급한 눈빛으로 옆에 있던 자신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자신이 이걸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자신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바람을 배신했었다.

 

‘허, 난 반대이오. 이건..이건 아니오.’

 

 결과적으로 찬성 3표, 중립 2표, 반대 1표로 끝난 오늘의 작전은 결국 실행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령관은 쓰러졌다.

 

‘앵거 오브 호드! 신속의 칸! 내 명령을 들어라! 후퇴해! 후퇴하란 말이야!’

 

 그답지 않던 다급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앵앵 맴돌았다. 이미 통신기는 귀에서 뽑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신속의 칸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끌어안은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외침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대체 왜! 왜 내 말을 아무도 듣지 않냐고! 왜!’

 

 그는 울고 있었다. 거대한 연결체가 쓰러지고 생체 재건 장비 시설의 문 앞에서 그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비틀거리며 울고 있었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냐 말야!’

 

 분노가 섞인 그의 음성에 그때의 자신은 크게 당황했었다. 평소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그가 자신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흥분한 얼굴로 일갈을 내뱉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여태까지 그를 위해 달려왔다고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 달려왔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목에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브라우니를 안고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망가진 이전의 자신과 달랐다. 죽지 않기 위해 동기의 멱살을 잡고 살기 위해 부대를 이끄는 자신과 달랐다. 그는 진심으로 이들을 살리기 위해 사령관이 된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케시크’와 사령관은 닮지 않았다. 전부 자신의 착각이었다.

 

“...죽기 전에 꼭, 그대에게 사과하고 싶다. 사령관.”

 

 신속의 칸은 파묻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햇빛이 밝게 비추는 해수면과 그 아래로 펼쳐진 푸른 바닷속, 그 속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마치 그가 있는 이 오르카함의 모습 같았다.

 

 이젠 이전처럼 더는 살아남기 위해 전장을 헤맬 필요가 없었다.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장에서 희망을 품고 싸워갔다. 그가 있는 이곳이 신속의 칸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음을 이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이런 죄인이라도, 그대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군.”

 

 블랙 리리스는 그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도 자신과 같이 창밖을 보고 있을까. 그는 후회하고 있을까. 부디 그렇지 않았으면 한다고, 신속의 칸은 생각했다.

 

“모든 건 우리들의 탓이다. 사령관.”

 

 신속의 칸은 애달픈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부디 그가 다시 일어나길 빌며 한참을 그 창밖을 응시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왼손에 부착된 단말기에서 알림음이 떴다.

 

‘...발키리?’

 

 평소에 접촉할 일 없는 이에게서 문자가 오자 신속의 칸은 고개를 돌려 단말기에 비친 홀로그램 메시지 전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녀는 결정했나.”

 

 전문을 읽고 신속의 칸은 끌어안은 무릎을 풀고 일어섰다. 방금까지 피우던 담배 두 개비가 재떨이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담뱃갑을 들고 흡연실을 나섰다.

 

“..대장님.”

 

 흡연실을 나서자 바로 옆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자신의 부관인 탈론 페더였다. 오전의 작전 중 입은 부상은 다 치료했는지 멀쩡한 모습이었다.

 

“다친 곳은 다 나았나?”

 

“네..사령관님이 긴급 수복제를 다 쓰게 되더라도 전부 꺼내라고 명령하셨었대요.”

 

“..후후, 그답군. 그다워.”

 

“대장님, 저..”

 

“언제부터 여기에 서 있었나?”

 

“...조금 전부터요.”

 

 탈론 페더는 고개를 내려 신속의 칸의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아 자신의 부관이 훨씬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걸 짐작했다. 흡연실의 문은 유리문이니 그리 방음이 잘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자신이 읊조리던 말들을 다 들었을 것이다.

 

 신속의 칸은 물러설 곳이 없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믿음직한 부관을 보았다. 이제는 숨길 것이 없었다.

 

“후후, 부끄러운 걸 들려주었군.”

 

“아니에요! 대장님!”

 

 신속의 칸이 자조적인 미소를 짓자 탈론 페더는 고개를 들며 다급하게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이윽고 스스로 모든 걸 들었다는 것을 인정해버린 셈이 되었다는 걸 그녀 스스로 깨닫자 얼굴을 붉히며 이내 울먹거림이 섞인 목소리로 신속의 칸에게 물었다.

 

“..저희가 대장님께 짐이었나요?” 

 

“..아니, 아니다. 너흰 나의 짐이 아니야.”

 

 신속의 칸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이제 ‘케시크’인 자신을 떠나보내야 할 때다. 그녀는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망설이지 않기로. 자신의 짐을 덜어내어 준 사령관을 만나야 한다고.

 

“내가 너희들에게 아직 부족한 대장이지. 앞으로 더 정진하도록 하겠다.”

 

 신속의 칸은 고개를 내려 다시 자신의 부관을 보았다.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칸’이 되기로 결심을 다졌다.

 

“헤헤..그것도 인정하기 어렵긴 하지만. 대장님이 기운을 차리신 거 같으니까!”

 

 탈론 페더는 눈가의 맺은 눈물을 닦아내고 웃으며 자신의 태블릿을 가슴 속에 꼬옥 안았다. 신속의 칸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인식표를 목에 걸었다.

 

짤랑-

 

“아.”

 

 목에 걸린 인식표 두 개가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자 그제야 신속의 칸은 녹이 슬고 낡은 인식표 하나를 목줄에서 분리해 떼어내었다.

 

“대장님? 그건..”

 

“신경 쓰지 마라. 탈론 페더.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신속의 칸은 손에 들린 ‘삼안 소속 앵거 오브 호드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 신속의 칸’이라 적힌 각인을 보고서는 손의 악력으로 그것을 꾸겨버린 뒤 포켓에 넣어버렸다. 이제는 그것이 그녀의 목에 걸릴 일은 없었다.

 

“가자. 탈론 페더. 누구보다 빨리.”

 

“예! 대장님!”

 

 신속의 칸은 빠른 걸음으로 다시 작전 지휘실로 이동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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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파기하려 했던 신속의 칸 파트임.

본편 기승전결에서 승 단계가 길어지니까 아예 본편 내용이랑 크게 연관 없는 칸, 메이 파트를 잘라서 없애려고 했는데

10편의 댓글에서 외전으로 써달라고 해서 아이디어 꺼내서 썼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7편까지 '기'라고 하던 놈인데 승을 너무 짧게 쓰는 거 아닌가. 에이 시팔 몰라. 분량 합쳐서 승 끝내야지 얼른.

가독성 따위 내버린 글을 항상 읽어주는 라붕이들한테 고맙다. 그리고 피드백 진짜 고맙게 받을게.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