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 있게되면 가장 먼저 잃게 되는 것은 말이다.

굉음과 신음소리가 가득한 이 지옥에 서있노라면 어느샌가 숙연한 분위기만이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처럼 온 땅을 적신다.


그것은 두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지는 법칙이다.


"저희의 목표는 참호를 나가 후방으로 가서 본대와 합류하는 것이에요."


자신을 따라오라던 2022번 노움이 그제서야 입을 열고 툭 던지듯 말을 꺼내놓았다.


"안타깝게도 33호 참호는 현재 돌파당한 상태입니다. 우측에 폭격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동부 최전선이 돌파당하면서 32호 참호까지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통신을 들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가리키며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것이 절도있는 품위조차 느껴지게 하였다.


"현재는 전파장애로 통신을 받을 수 없지만 이아폰은 계속 끼고 있도록 하세요. 참호에 가까워지면 무언가 연락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나는 그녀의 손에 들려진 이어폰과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분대장이상의 직위만 가질 수 있는 통신용 장비였다. 그녀의 친절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어폰과 마이크를 착용하며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도 이어폰에 눌러붙은 핏자국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널린게 시체고 함께 잠들기엔 아까운 물건들일테니.


그녀의 말대로 참호가 돌파당했다면 무척 곤란한 문제다.

참호는 기본적으로 다른 참호와도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돌파당했다면 즉각적으로 함정을 설치하거나 통로를 폭파시켜 침입을 차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33호 참호는 하늘에서 떨어진 철대가리 놈들에게 약 1달이나 저항한 강력한 방어선이다. 아직까지 32호 참호와 연결된 통로를 찾기는 나이트앤젤 대령님에게서 가슴찾기와도 같을 것이다.


결국 길은 하나밖에 없다.

2022 노움을 따라가면서 살짝 고개를 돌려 본대가 있을 후방을 바라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온했을 대지에는 폭발음과 섬광이 여기저기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32호 참호에서도 저항은 이어져 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저항이 한창인 전선을 뚫고 32호 참호로 도달해야한다. 그것도 참호를 벗어나 격전지의 위를 가로지르는 수 밖에 없다.


미친짓이다. 말 그대로 미친소리, 그 자체.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새로운 분대장은 이 미친소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 여길 가로질러서 말입니까?"


나의 말에 2022번 노움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듯한 눈빛은 곧이어 포탄이 내려앉는 전선으로 이동하였다. 그녀도 이 계획이 미친것임은 알고 있겠지.


"... 그럴 수 밖에 없겠지요"


그녀의 말이 떨리듯이 새어나왔다. 철충은 멍청하지 않다.

인간님들이 제1목표라고 해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정도는 알고 있다. 이웃집 건너가듯이 가볍게 지나가기엔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큰 장애물이다.


과연 그래서 서쪽으로 가는것인가.

동쪽에서 불어오는 피비린내나는 바람이 33호 참호에서 미처 퇴각하지 못한 바이오로이드들의 최후를 알려주는 듯 했다.


우리도 가능하면 철충이 적으리라 예상되는 서쪽으로 도망치지 못하면 이들과 운명을 함께할 것이다.


우리는 서쪽으로 참호속을 미친듯이 달려나가며 말을 아꼈다.

역시 전장에서 가장 먼저 잃게 되는 것은 말이다.





핸드폰으로 써서 너무 쓰기 힘듬

나머지는 낼 쓰던가 해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