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함 내의 모든 지휘관이 모인 회의에서 서슬 퍼런 얼굴을 한 레오나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비밀의 방을 자기 손으로 부수는 사령관. 이 정도 영상이면 충분히 충격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아니, 틀림없이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 어느 누가 보았더라도 사령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했을 만한 일이다. 비밀의 방이란 것은 함 내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레오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고작 이 정도 행동 하나 한 게 뭐가 문제지? 그 악마 새끼가 뭐 새로운 도착증에라도 눈 떴나 보나 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내가 삐뚤어진 거야? 자매들이 당해야 했던 짓을 생각해봐. 인간이란 벽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우리를 고문하던 것을 벌써 잊었나 보지? 아니면 아직도 그 인간이 제대로 된 사령관이 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야? 그것도 아니면 진짜 나만 이상한 건가? 하아?”

 

레오나는 점차 말소리를 높여가며 마지막엔 거의 소리치다시피 외쳤다. 그 자리에 모인 누구도 이에 반박하지 못했다. 단순히 레오나가 사령관에게 가장 많이 당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는 자신들도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인간이 이렇게 쉽게, 극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기 보다 그저 단순한 변심에 지니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발키리는 지금까지 자기 손으로 죽인 아이들만 수백 명이야. 명령 불복종이니, 기능 저하로 쓸모가 없어졌다느니, 온갖 이유를 대면서 제 손으로 죽이게 한 게 그 놈이야. 발할라? 저 애가 그토록 원하던 발할라는 이제 쓸모도 없어졌어. 왜냐고? 그 딴 게 있든, 없든 이미 못 갈걸 아니까. 자기 손을 동생들의 피로, 자매들의 피로 더럽혔으니 절대 갈 수 없을 거라고 나한테 수십 번, 수백 번은 말했어. 알비스도, 안드바리도, 총을 쏘고 나면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로 털썩 쓰러졌다고. 그 전 날까지 힘든 일 하니까 초코바주겠다고 내 명령도 무시하고 발키리한테 간 알비스도, 그 놈이 자원 마구 쓰니까 맨날 우리한테 보급을 충분히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굽신대던 안드바리도, 전부, 전부 자기 손으로 죽게 만들었다고. 그런… 그런 부관한테 아무 말도 못하는 무력감을 당신들이 몰라서 그래? 몰라서 그러냐고!... 발키리가… 그 애가 나한테 처음 왔을 때는 나도 뭐라도 해주겠다고 말은 해줄 수 있었어. 근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할 말도 없어지더라, 하! 홍련. 미호는 그러지 않아? 자기 손에 너무 많이 피를 묻혔다고,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안 그래? 이것도 우리 발키리만 문제인거야??!”

 

언제나 차가운 눈으로 지휘관들을 쳐다보던 레오나가 거의 통곡하면서 절규했다. 차가움 속에 누구보다 뜨거운 분노로 가득 차 있었을 레오나다. 철혈이라는 별명이 꼭 들어맞는 것처럼, 자기 부하들 이야기만 나오면 저렇게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것이 레오나였다. 

 

“… 그래요. 저도 고작 이 정도 정보로 사령관이 바뀌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미호… 그 아이 얘기는 그만 하도록 하죠. 안 그래도 마음 고생 많이 하고 있습니다.”

 

레오나의 말에 그 동안 받은 고통이 떠올랐는지 홍련도 레오나의 말을 거들었다. 그녀의 팀도 비록 레오나 만큼은 아닐지라도 사령관에게 고통 받으며 살아야 했다. 몽구스 팀이 겪은 일들을 굳이 나열하자면 강제적인 성관계라던가, 골절, 내부 장기 손상 및 과다 출혈 등 이 함선에 탄 대부분이 경험한 그런 평범한(?) 일들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다만 테러 진압 팀이었기에 그녀들은 사령관에게 위해를 가할 만한 인물을 미리 처단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진압해야 했던 인물들은 전부 함선의 바이오로이드였다. 타이탄을 끌고 사령관에게 간 닥터와 같은 바이오로이드들 말이다. 물론 닥터처럼 바이오로이드들이 직접 암살을 시도한 경우는 드물었다. 닥터와 같이 명령권을 우회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능이 있거나, 아니면 메이와 같이 직접적인 명령 거부권이 없는 평범한 바이오로이드에게 사령관을 위협할 만한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이 죽인 자매들은 대부분 사령관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인간의 명령권에 더해서 ‘이 년이 게으른 니 년들이 못 보는 사이에 날 죽이려 했다.’ 등의 간단한 구색만 덧붙여져도 몽구스 팀이 피할 길은 없었다. 이런 명령이 통하는 걸 깨달은 사령관은 그 날부터 온갖 되도 않는 이유로 몽구스 팀에게 바이오로이드 제거를 떠넘겼다. 그렇게 죽인 자매들의 수를 생각해보면 제거라는 말보다는 학살이었다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단순히 죽인 함선 내의 바이오로이드 수만 따져볼 때는 미호가 발키리보다 배는 많았다. 물론 이는 발키리의 자원 탐사 효율성이 매우 뛰어났기에 사령관이 발키리를 미호보다 오랜 시간 자원 탐사에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런가… 좋은 의견 감사하게 받겠네...

마리 대장의 생각은 어떠한지 듣고 싶군.”

 

“… 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영상 속의 각하의 모습이 꽤 충격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게 의미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사령관이 바뀌었다던가, 이런 생각을 함부로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릅니다. 다만 시간을 들여 각하를 관찰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마리 대장에 동의한다. 우리 캐노니어는 지금까지 계속 훌륭한 사령관을 기다려왔다. 이런 영상을 보았으니, 나도 오늘은 부하들에게 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군. 물론 그렇다고 사령관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마리 대장과 같이, ‘지켜볼 가치는 있겠다’ 정도로 받아주면 좋겠군.”

 

“…알겠다. 오늘 이 영상은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자매들에게는 비공개 처리 되어있다. 다만 영상 공개 여부는 그대들의 권한에 맡기겠다. 영상을 공개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내 의견이 이러하니 이에 대해 그대들의 의견이 필요하겠군.”

 

“시스터 오브 발할라는 영상 공개에 반대한다. 이 따위 영상, 공개해서 내 자매들을 혼란스럽게 할 생각 따윈 없어.”

 

“스틸라인은 영상 공개에 반대합니다. 저 역시 이 영상이 가지고 올 파장을 생각해보면 쉽게 내릴 결정은 아닐 것 같군요. 특히나 브라우니들을 생각해보면 스틸라인 내부에서만 영상이 공개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마 함 내 전체에 퍼지겠죠.”

 

“몽구스 팀 역시 반대합니다. 아직 아이들은 이런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될 것 같군요.”

 

“캐노니어는 찬성한다. 뭐가 되었든 이 정도로 중요한 정보는 아이들이 알고 넘어가야 되지 않은가? 뭐, 표가 이렇게 나왔으니 별로 상관은 없게 되었군.”

 

 

 

“그럼, 일단은 이 영상 공개를 보류하는 것으로 하겠다. 해당 영상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삭제해주길 바란다. 특히 아스널 준장. 찬성표를 던졌으니 특히 주시해도 무례가 되지는 않겠지? 서로가 민감한 정보이니 양해 바란다.”

 

“하하. 날 너무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칸 대장. 걱정하지 말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사령관에게 득이 될 만한 정보를 마구잡이로 푸는 것은 사양이네. 원한다면 지금 내 패널을 보아도 상관없고. 아니면 내 모듈 메모리를 뜯어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일단 확실한 방법이고, 그대들이 사령관보다 아프게 때어내지는 않을 테니 말이지.”

 

“… 괜한 소리는 그쯤 하면 좋겠다. 아스널 준장. 아무튼 페더가 관련된 정보를 더 모아오는 대로 추가 공지하도록 하겠다. 페더의 영상에 대해 의견이나 건의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상관없으니 날 찾아오면 된다. 이것으로 긴급 회의는 마치겠다. 페더, 수고했다.”

 

“아닙니다. 대장님. 헤헤…”

 

페더의 실없는 웃음소리를 끝으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 한 쪽이 잘린 레오나만 빼면. 홍련, 아스널, 마리 순으로 방을 빠져 나가고 레오나는 칸의 부축을 받아 방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휠체어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는지,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페더, 먼저 방으로 돌아가 있어라. 나는 레오나 대장을 부축해주고 오겠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내가 괜한 회의에 부른 것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 레오나”

 

“…됐어. 이런 정보는 아이들 대신 내가 알아야 하는 정보니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면 좋겠어. 칸 대장.

…그리고 역시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했었어. 미안해.”

 

“아니. 사과할 필요 없다. 여기 모두가 자네가 가장 분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괜히 사과 할 일은 아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넌 정말 그 놈이 바뀐 거라 생각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애당초 회의를 진행하지도 않았을 텐데. 뭔가 우리의 생각이 바뀌길 원해서 회의를 소집한 것 아닌가?”

 

“… 조금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처음에는 나도 반신반의했지. 다만 페더가 강하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조금 희망이 생기긴 한 것 같다. 어제 사령관실에 들어갔던 안드바리. 기억하나?”

 

“그래… 분명 사지 멀쩡하게 돌아왔었지. 처음 있는 일이었어. 생각보다 너무 일찍 들어온 게 마음에 걸렸는데… 게다가 음식도 먹여줬다고 말했었어. 단순한 망상이라 생각하고 끝냈던 게... 사실은 아니었나 보지?”

 

“그래. 페더가 본 영상에서는 소완이 가지고 온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고 아이들만 먹게 내버려 뒀다더군. 게다가 사령관 본인은 죽만 먹었다고 보고 했었다. 사실 보고할 것도 없었지. 내 눈으로 영상을 직접 봤으니까. 다 먹고 나니 세상 모르고 자더군. 안드바리는.”

 

“잤다고?! 사령관실에서?!! 그 뒤에는?”

 

“자네가 뭘 걱정하는 지는 알 것 같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네. 사령관은 그냥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읽다가 소완이 가져다 준 죽을 먹고 안드바리와 코코를 배웅해줬네. 그게 다야.”

 

“… 그 인간이 보고서를 읽었다는 건 둘째 치자... 내가 하고 싶은 소리는 아니지만… 어떻게 그 놈이 눈 앞에서 자고 있는 애를 그대로 둘 수 있었던 거지? 그 놈, 어린 바이오로이드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지 않았나? …”

 

레오나는 하나뿐인 멀쩡한 손가락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단순히 칸이 보여준 영상만이었다면 이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매일 아침 늦은 시각,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기에게 와서 아프다고 안겨 울던 그 아이의 모습을 생각할수록 의문은 더 커져갔다. 관리할 자원도 없지만 그 인간의 취향 때문에 만들어진 안드바리는 족히 두 자리 수는 되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누구도 사령관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는 과도하게 역동적인 체위 때문에 근육이 파열되기도 했고, 누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목이 졸려져서 한 동안 과호흡 증상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그 아이들만 생각하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이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 레오나였다. 그런데, 칸이 알려준 영상 속 저 인간은 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대신하여 주기라도 하는 듯이 잘 먹여주고, 잘 재워주고, 심지어는 머리까지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너무도 평화롭게. 대체 저 인간은 누구란 말인가? 적어도, 그녀가 아는 그 인간은 아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혹시 이런 광경마저 연기인가? 이론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지휘 모듈은 고작 ‘이론적으로 가능한’ 가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전투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는 족히 수만, 수십만이 넘는다. 그녀의 지휘 모듈이 탁월하다고 인정 받는 것은 그 모든 가능성 중 ‘현실적인’ 것을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휘 모듈이 지금 그 어느 전투에서보다 활발하게 활성화 되어있다. 그 결과, 그녀는 이것이 연기일 수 있다는 경우를 배제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아는 사령관은 그리 치밀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그 동안 보았던 그 인간은 절대 저럴 이유도, 능력도 없으니까. 인내심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온 힘을 다해 자기들이 싫어하고, 증오할 일들만 벌여놓았던 인간이었다. 페더가 수많은 영상을 찍었음에도 단 하나의 영상에서도 자신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고, 오히려 좋다고 수많은 아이들을 희롱하던 것이 이 사령관이란 작자였다. 비밀의 방은 그에게 소중한 장소였던 만큼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악명 높은 장소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여론 조작을 한다던가, 착한 사령관 연기를 하기 위해서였다면, 비밀의 방을 부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효과적으로 여론을 조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비밀의 방을 부수는 영상은 믿을 만한 정보가 되지 못했다. 정말 만의 하나에서 '현실적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가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의 여론을 좋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면 소완도 없었고, 코코와 안드바리 모두 정신 없이 자고 있던 그 순간까지 저렇게 정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강간하려는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멀쩡히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고? 그녀가 아는 인간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데이터가 더 필요해. 아직 이렇게 변한 사령관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 뭐라고 결정 내릴 수 있는 시기가 아닐 거란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영상 공개엔 반대야. 그건 혼란만 가중시킬 거야. 

하지만… 사령관에 대해서는 다시 숙고해볼 가치가 있어 보이긴 하네… 너가 이 영상을 가지고 온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고…

…모르겠어. 그래도… 난 그 놈이 싫어”

 

“자네가 사령관 싫어한다는 사실은 아마 새로 만든 LRL에게 물어봐도 알 수 있을 거다. 오히려 그냥 싫다고만 표현한 게 놀라울 따름이군. 그 인간을 보고 변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은 더 놀랐고. 하지만 부디 냉철함을 잃지는 말게. 자네가 가장 잘하는 거지만, 그 냉철함이 자네에게 독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된단 말이지. 그 분노가 잘못된 방향으로 터지지 않게 조심해주게.”

 

“…그만, 그 놈 얘기는 그쯤 하면 됐어. 누가 보면 내가 그 놈을 용서하기라도 한 줄 알겠네.”

 

칸과 레오나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가 탄 휠체어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숙소에 도착했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고, 여전히 쉴 새 없이 안에서는 자매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문이 열리면서 소름 끼치는 철 소리가 들린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모습. 발키리는 조용히 누워 쉬고 있었고, 알비스는 어디서 눈에 상처가 났는지 얼굴에 붕대를 감싸고 있었다. 저번 자원 탐사에 발키리 언니를 따라가겠다고 무리해서 따라간 결과였다. 그래도 발키리 언니랑 같이 있었던 게 좋았다고 마냥 웃으며 안드바리에게 초코바를 달라고 말하고 있다. 안드바리 역시 자원 관리팀의 개인실에 있기보다 이곳에 남아있기를 좋아했다. 외로울 만큼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있기보다, 무엇보다 가끔씩 새로운 바이오로이드를 제조하고 싶다고 자신을 때리며 자원을 뺏어가던 사령관이 오던 그 곳보다 자신을 아껴주고, 가족같이 자기를 사랑해주는 이 언니들이 있는 곳을 훨씬 좋아했다. 원래라면 사령관의 저녁 시중을 들어주고 난 뒤였기에 깁스나 압박 붕대, 하다 못해 얼굴에 붙인 작은 밴드라도 있어야 했는데 어제 사령관실에 갔다 온 안드바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 전날 받은 상처만 있었을 뿐, 새로 생긴 상처는 없었다. 아마 다프네 언니는 이 불쌍한 아이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뭐, 이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숙소에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나중 일이다.

 

“... 오셨습니까. 레오나 대장님. 칸 대장님께서 같이 오셨군요.”

 

“…괜히 인사하지 말고 누워 있어. 상처 벌어진다.”

 

발키리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레오나가 말렸다. 어제 탐사는 특히나 힘들었다고 한다. 불안정한 고층 지대에 남겨진 자원을 수급해오는 역할을 맡고 탐사를 진행하다 보니 가끔씩 잔해가 부숴져 떨어질 때가 많았다고 했다. 한두 번이었다면 그려러니 했겠지만 어제는 무슨 불운이라도 겹쳤는지 족히 10번은 넘게 떨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높은 곳까지 갔기에 그랬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손가락 6개가 골절되고, 팔 골절, 다리 뼈 골절,… 골절이 안된 곳이 없었다. 그나마 사령관의 명령으로 이 발키리만은 자원 걱정 없이 수복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골절 같은 문제는 오리진 더스트 및 부품, 영양 등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떨어지다가 허벅지가 잔해에 뚫린 일도 있었지만, 수복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원 탐사를 끝낸 후에는 다프네들의 활약으로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가지고 온 자원이 수복에 쓰인 자원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오직 그 사실만이 그녀에게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 자원이 부디 더 많은 자매들에게 사용되기를 바라며.

 

“자네 부관은 언제 봐도 용맹한 것 같군. 페더도 조금은 본 받았으면 좋겠는데.”

 

“…우리 발키리가 뛰어나긴 하지. 하지만 페더도 페더만의 매력이 있지 않나? 껌딱지 마냥 달라 붙는 걸 보면 가끔은 귀여운 구석이 있던 것 같은데.”

 

자매들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이야기하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두 사람이었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은 자매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설령 말단 브라이니라고 하여도 함 내에서 살아가는 이상 모두가 아껴주는 자매의 일원이었다. 사령관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사령관이라는 존재가 만든 지옥에서 언젠가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탈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함께 희망하며 생존해냈다. 그렇게 함께 희망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었다.

 

“…그럼 수고하게. 혹시 다른 일이 생기면 연락하지.”

 

“그래. 고맙네. 다음엔 멀쩡하게 살아서 봐.”

 

멀쩡하게 다시 보는 것. 그것이 그녀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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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리리스. 이제 뭘 하면 될까?”

 

사령관실이 넓긴 넓구나. 콘챠도, 바닐라들도 없으니 세삼 이 넓은 곳이 더 넓어 보인다. 아침만 해도 좀 맑았는데 오후가 넘어가는 지금, 어느새 구름이 또 잔뜩 끼어있다. 이런, 더치걸들이 또 추워하겠다. 그 때문에 방 안에 불을 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밝게 들이치던 햇살이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 하는 건 내가 살던 곳이나, 이곳이나 마찬가지구나. 

 

어제는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으로 비밀의 방을 발견하긴 했지만, 오늘은 딱히 그 새끼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일단 그 새끼 뒷청소를 하는 게 제 1순위이긴 한데, 어제야 비밀의 방 청소를 했다지만, 오늘은 또 뭘 해야 하나 고민돼서 리리스에게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내가 직접 함 내를 돌아다니면서 찾으면 좀 낫긴 하겠지만, 어제 너무 진 빠지는 일들이 많아서 오늘은 그럴 힘도, 용기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새끼가 싸질러 놓은 똥이 한두 개여야 말이지, 보고서 쌓인 것만 봐도 이 놈은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고,... 한 거라고는 지 좆 돌리는 것만 한 거 같다. 그러니 이거 꼬이고, 저거 꼬이고, 기술팀 지원 없고, 자원 탐사 갈아 넣고, … 덕분에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어제 깨달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보고서만 몇 시간 읽고 파악한 게 이 정도인데, 다 찾으면 아마 내 머리가 터져버릴 지도 모른다.

 

“음… 그런걸 물어보시면… 무언가 하시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주인님?”

 

“뭘 하고 싶다기 보다는… 일단… 흐음…

… 이 새끼가 평소에는 뭘 하고 지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웃고 있던 리리스가 표정을 좀 많이 찡그렸다. 아직 웃고는 있다만, 좀만 더 이야기 했다가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몸을 다시 떨 것 같았다.

 

“하아…. …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야… 말씀 드리겠지만…”

 

… 실수했다. 좀 많이 실수 한 것 같다. 지금 애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구름져서 안 그래도 어두운데 지금 애 얼굴이 아주 그늘로 가득하다. 그늘만 진거면 말도 안해. 좀 있으면 아주 울겠다. 한숨 깊게 마실 때 울 것 같은 사람 특유의 떨림이 있다. 폐가 불규칙적으로 팽창하면서 성대 부분의 목이 달달 떨리는데, 그러면서 내뱉는 한숨소리도 같이 떨리기 마련이다. 애가 뱉는 한숨이 꼭 그 꼴이다. 하긴, 그 징글징글한 기억을 내 입으로 꺼내라고 명령한 셈이니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앞으로 입을 열 때 생각 좀 하고 말하자. 나도 덩달아 당황해서 리리스를 안으며 말했다.

 

“아냐아냐아냐. 그만그만. 굳이 말할 필요 없어. 내가 괜한 얘기를 했어. 말 하지마. 절대 하지마.

그래. 그냥 잊어버려. 그 새끼에 대한 건 그냥 잊어버려. 명령이니까 그냥 잊어도 되. 그… 그…. 또….”

 

내 얼굴에 당황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을 것이다. 리리스가 또 몸을 떨고 있던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안아 주긴 했는데 안고 있는 내 상황도 꼴이 말이 아니다. 내 키보다 두 뼘 정도는 작은 애를 안아주려면 아예 그냥 가슴팍에 푹 안기게 만들거나, 아니면 내가 숙여서 어깨 위에 리리스 얼굴을 두게 하거나 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해서 다리는 투명 의자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채로 있고, 몸도 애매하게 45도 정도 숙이고 있고,... 스쿼트 못하는 사람이 안간힘을 쓰면서 몸 바들바들 떨 때까지 내려갈 때 나오는 자세가 딱 이 모양이었던 것 같다... 에휴... 리리스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었는데, 그래서 우선 1단계로 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거 하나가 안되니 답답할 따름이다.

 

그래도 리리스한테는 나름 진정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리리스에게서 피식 하면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리리스도 내 등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 후훗, 이렇게 어정쩡한 자세까지 하시면서 뭘 그렇게 놀라세요. 주인님이 다른 분이시라는 건 아침에 웃으면서 보여주셨잖아요. 이렇게까지 당황하시면 아무리 저도 슬슬 걱정된답니다.”

 

…어정쩡한 자세였단 건 애도 알고 있구나. 멋있어 보이는 건 글렀군. 리리스의 손이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준다.

 

“그러면… 애들 얼굴이라도 보러 갈 수는 없을까?”

 

“…하아… 저도 마음 같아서는 제 동생들에게 데려다 드리고 싶지만…”

 

굳이 뒷말은 안 들어봐도 알 것 같다. 내 얼굴만 봐도 발작을 일으킬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아무리 맏언니가 주인님이 변했다, 변했다 말해도 못 믿는 것이 당연하다. 그 새끼가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뭔 짓을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컴패니언 아이들이 나를 못 믿을 것이란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럼, 좋은 방법 없을까?”

 

“좋은 방법이요? 글쎄요… 저도 그렇게 물어보시면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하다못해 맛있는 거라도 많이 가져다 주면 좀 좋아하지 않을까? 하치코 같은 아이들은 미트파이 좋아하지 않아? 그랬던 것 같은데...”

 

“물론 그 아이가 미트파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만드는 걸 좋아하지 먹는 거는 딱히 가리거나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냥 평범하게 단 것? 그런 걸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단 거라…”

 

그래. 애들이 단 음식 좋아하는 거야 이쪽 세계나 저쪽 세계나 마찬가지겠지. 게임에서도 호감도때문에 사탕 주고, 케이크 주고 그랬던 걸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단 음식들은 설탕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간다는 건 알고 있다.. 어디 설탕뿐이랴, 밀가루며, 버터며, … 지금 상황에서는 꿈도 못 꿀 고급 재료들이다. 게임에서야 참치 주고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참치 가지고 바꿔먹을 수 있는 삼안 뭐시기 교환소도 없을뿐더러 참치도 없는 상황이다. 참치는 고사하고 있는 자원조차 손에 꼽을 정도인데.

 

“… 너희들 여기 와서 사탕이나 케이크 같은 거 받아본 적 있어?”

 

“있을 리가 없죠. 제가 직책 때문에 주인님과 많은 시간 함께하긴 했지만, 그런 달콤한 음식들은 주인님도 쉽게 구경하지 못하던 것이었어요. 정말 가끔 발키리 씨가 가지고 왔던 적이 있었지만 그나마도 전부 주인님이 드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하아… 이 새끼… 진짜 밉상 아닌 짓을 한 게 뭐지…”

 

조그맣게 혼잣말했다. 씨발… 진짜 어떻게 사람 새끼가 이렇게 밉상일 수가 있지.

 

“네? 주인님? 뭐라고 하셨나요?”

 

“아, 아니야. 그냥… 좀… 그… 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그런 걸 찾을 수 있을지 생각 좀 했어.”

 

“흐음… 일단은 기본적으로 자원 탐사를 진행해야겠죠? 그리고는 그냥 빌 수 밖에 없죠. 부디 달콤한 음식을 가지고 올 수 있기를.”

 

“그래야겠지? 일단 자원 탐사 스쿼드를 좀 봐야겠어.”

 

“네? 그... 저… 주인님. 그 탐사팀에 대해서도 좀… 그런 게 있는데…”

 

하 씨발. 안 봐도 뻔하다. 그 새끼가 팀 관리를 했을 리가 없으니 애들이 다치고 돌아와도 수복을 안 시켜줘서 스쿼드가 와해되고, 그러다 보면 팀이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다가 또 개판 난 그런 일이겠지. 리리스한테는 미안하지만 자꾸 욕이 나온다.

 

“…그래. 그럼 최대한 결론만 말해줄래? 내가 그걸 다 듣고 있다가는 화가 날 것 같아…”

 

“네… 결론적으로는 지금 탐사 ‘팀’은 없는 상황이에요. 대부분 개인적으로 나가 자원을 회수하고 온답니다. 팀을 유지할 리더 구성이라던가, 그런 시스템이 관리가 잘 안 되어 있어서 저희들이 그냥 개별적으로 자원 탐사를 운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어요. 주인님도 그냥 자원만 잘 가지고 오면 그만이라고 허락해 주셨었고요…”

 

“... 그럼 일단 그거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처리하자… 그… 자원 탐사하러 가는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만 가라고 하고… 또… 아무튼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자원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와도 좋으니가 그냥 살아서 돌아오라고만 해. 남… 남은 자원으로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그 부분은 제 권한이 아닌 것 같지만… 일단은 다른 지휘관들에게 연락해 두도록 할게요.”

 

이건 지금 함부로 손댈 게 아닌 거 같다… 지금 이거 잘못 건들이면 오르카가 망할 것이란 것은 것 보듯 뻔하다. 최대한 빠르게 하긴 해야겠지만, 오늘은… 오늘은 하지 말자.

 

“그럼… 하다 못해 시찰은 어때? 지금 오르카 호 내에 병력이 있잖아. 시찰이라는 명목이라면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애들 얼굴도 보고?”

 

“대체 왜 그렇게 아이들 얼굴 보는 거에 집착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하아… 그나마 괜찮아 보이네요. 주인님께서 시찰을 도실 때는 그나마… 뭐라고 할지… 덜 폭력적이셨다고 해야 하나…요? 일단 저희 오르카 호 내부에 남은 병력은 거의 없어요. 거의 모두가 자원 탐사를 위해 오르카 호 근처로 나가 있던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저는 늘 주인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해서 외부 상황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시찰 때는 나가시면 저도 같이 나가니 주인님이 어떻게 시찰을 도셨는지 기억은 나요. 나가면 일단 모든 자매들을 불러 놓고 뭐라도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런 시선을 받으시는 게 좋으셨던 건지, 그나마 평소보다 조금 덜 자극적인 모습을 보이시긴 하셨죠.”

 

“…예를 들면?”

 




“…그건 주인님이 방금 하신 '그 놈에 대한 기억은 잊어버리'라던 명령 때문에 기억이 안 나네요.”

 

아까 어정쩡하게 안고 있던 것을 어느새 의자에 앉은 자세로 바꿨었다. 리리스는 이제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모습에, 몸은 내 쪽을 향한 채로 있었다. 지금까지 제법 평온하게 말한 것도 리리스를 안고 있는 게 도움이 됐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또 말 실수 했던 것 때문에 삐진 건가. 나쁜 기억은 전부 잊으라고 말했는데, 어느새 잊어버리고 또 말해달라고 말한 것 때문인지 나한테 잔뜩 삐진 것 같다. 리리스도 많이 고생했을 텐데 애한테만 전부 말해달라고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무례한 부탁이었다. 내 무릎에 앉아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날 쳐다보는 리리스를 보면서 그래도 무서워하는 것보단 삐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시든 리리스는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명령을 마구잡이로 내리시면 저도 곤란해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정말이죠? ... 그럼 지금 주인님이 착한 주인님이란 증거를 다시 보여주시겠어요? 주인님이 착한 주인님인거 다시 보여주시면 리리스도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애가 왜 이렇게 귀여워졌나. 나랑 같이 있으니까 리리스도 좀 편해지고 있는 것 같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있는 것 같아서 꽤나 보람차다. 증거라... 증거라면… 이거 만한 게 없겠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리리스의 허리에 손을 감쌌다. 그리고는 힘을 꽉 주면서 내 쪽으로 끌어 당겼다. 순간 허리에 가해진 힘 때문에 내 몸에 푹 파묻힌 리리스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당황해서 빨갛게 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리리스에게 최대한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말했다.

 





“사랑해. 리리스.”

 

...애도 이걸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아주 터질 것 같이 변한 리리스가 자기 팔로 나를 또 감쌌다.

 

“… 주인님. 그런 걸 하실 거면 미리 알려주고 하세요. 저도…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 되니까…”

 

말은 더듬으면서 기어들어가게 하는 애가 힘은 또 왜 이렇게 센지. 아주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이 팔로 나를 안고 있다. 처음에는 분명 내가 먼저 힘을 줬는데, 지금은 팔로 리리스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게 고작이다. 내 어깨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힘을 서서히 주면서 안아 주는데, 갈비뼈가 폐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숨을 쉬면 횡경막이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애가 이렇게 힘을 주니까 그럴 공간을 만들 재간이 없다. 리리스가 날 이렇게 좋아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특이 취향인 사람이 아니면 좀 다를 거다. 아프다 임마.

 

“리…리리스. 나… 숨 좀 쉬자… 숨 막혀…”

 

“주.인.님. 착한 주인님은 리리스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아요!”

 

그렇게 안기다가 기절할 뻔한 건 나중 일이다. 그러고 보니 리리스가 제일 쎈 바이오로이드들 중 하나였었지? 다음부터는 힘으로 먼저 싸움 걸면 안 되겠다. 숨 막혀서 얼굴 파래지는 나와 달리 리리스는 얼굴에 미소가 한 가득이다. 목을 쭈 빼서 내 뺨에 자기 얼굴을 마구 비비는데 수염 때문에 따가운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얼굴이 환해지니까 몸에도 덩달아 힘이 같이 들어갔는지 주고 있던 힘이 점점 더 쎄진다. 마치 어디 못 도망가게 붙잡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너한테는 착한 주인님에게 사랑을 주는 게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구나. 이렇게 기뻐하는 애를 보고도 착한 주인님이 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도 숨만 쉴 수 있었다면 웃는 얼굴로 화답해줬을 것이다. 하아… 참 다이나믹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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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분량이 지금까지는 15000자를 넘게 쓰고 있는데 이거 좀 힘든 거 같아오.

분량 조절 잘하는 사람들은 신기한 거 같아오.

원작 파트 따라가는 분량은 지금 원작의 2화까지 간 거 같은데

지금 부분까지는 원작에서도 간단하게만 다룬 부분이라 그렇고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요즘 소설 읽은 라붕이들 개추랑 댓글 보는 재미로 소설 쓰는데

재밌게 봤으면 한 번씩 말 써주고 가줘

안그래도 챈에 창작물 떡밥 나오면 맨날 그림만 나오고 소설은 안나오는데 외로움


지금까지는 애호 파트가 리리스 천하였는데

다른 캐릭으로도 써볼 생각이 많음. 혹시 이 캐릭 애호하는 거 보고 싶다 하는 거 있으면 댓글로 써줘도 좋아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