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탄 - 1

불발탄 - 2

불발탄 - 3

불발탄 - 4

불발탄 - 5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 몸을 누르는 노움의 무게가 상황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레프리콘 상병님!"


뒤에서 라이플의 연사소리가 요란스럽게 다가왔다.

그제서야 노움의 등 뒤로 다가오는 거대한 살의가 눈에 들어왔다.

큼직한 어깨. 어디를 노리는지 알 수 없는 붉은 안면. 몸을 덮는 큼직한 방패까지.


팔랑스.

램파트 개체에 기생한 철충의 방패병.


참호까지 쳐들어온 철충들은 소수지만 착실하게 진입하여 혹시라도 참호 안에 숨어있을 바이오로이드들을 척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왼쪽에 장착된 머신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노움의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시켜 주었다.

다행히도 뒤에서 브라우니의 라이플이 불을 뿜는 동안 팔랑스는 방패로 자신의 몸만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끌 수는 없을테니, 나도 뭔가 해야한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경기관총을 집어들고 앞으로 난사하였다.


"레프리콘 상병님! 저 새끼..."


알고 있다. 저 더럽게 큰 방패를 들고 잘도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걸음. 그리고 한 걸음.

방패로 몸을 보호하면서 착실하게도 한 걸음씩 나아오고 있었다.


"이런 씨..."


욕이 입술을 뚫고 세어나왔다.

브라우니가 장전을 마치고 다시 총을 쏘는 사이에 노움을 잡고는 뒤로 끌며 조금씩 후퇴해나갔지만, 역시 팔랑스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대로라면 다 같이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얼음장에 머리를 박은 듯이 두통과 혼란이 뇌를 뒤집었다.

저 거지같은 방패만 어떻게든 치워도 미래가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참호의 통로 안이다.

좌우는 벽으로 막혔고 위로 도망치는 사이에 팔랑스의 머신건이 다시 불을 뿜을 것이다.

팔랑스와 전투하는 대표적은 방법은 방패가 가리지 못하는 측면을 공격하는 것인데, 옆이 벽으로 막힌 이 참호에서 팔랑스는 말도 안되는 존재감을 자랑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엇보다 든든하던 존재가, 이제는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존재로 변해버렸다. 

좆같은 참호. 진작에 부셔버렸어야 했는데


말도 안되는 욕설을 속으로 삼키며 신음이 세어나오는 노움 병장을 굴리듯이 끌어당겼다. 

그렇기 때문에 손으로 만질 수 있었겠지. 차가운 감각이 손가락과 손바닥에 세겨지듯 느껴졌다.

그녀의 허리춤에 있던 발포 콘크리트 수류탄에 눈길이 닿았다.

1초, 아니 2초 정도일까


짧은 고민끝에 그녀의 허리에서 수류탄을 꺼내들고는 핀을 뽑고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수류탄이 터지는 건 5초 뒤.'


저 지옥같은 포격밭을 뚫으면서 몇 번이고 본 장면이다.

나도 따라할 수 있을거다. 틀림없이.


1초, 2초. 그리고 3초.

볼링볼처럼 수류탄을 바닥으로 길게 굴러보냈다.

목적지는 팔랑스의 발 밑.

다행히도 나의 볼링 재능은 볼링장의 반짝이는 레인 위가 아니라 흙먼지 풍기는 참호 안에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볼링공 대용도 차가운 철충의 발 아래에서 빛을 발했다.


펑!

짧은 폭발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를 뒤로 하고 팔랑스가 등을 보이며 앞으로 굴렀다.

팔랑스의 발 뒤꿈치에서 터진 발포 콘크리트는 참호의 통로를 막듯이 바닥에서 피어올라 팔랑스를 밀어올리듯 하늘로 향해 곧게 자리잡았다.

그 덕분에 방패의 무게중심을 버티지 못한 팔랑스는 방패를 바닥에 깔고 그 위로 몸을 드리누었다.


"쏴요, 브라우니! 쏴요!"


나의 외침과 발포음에 브라우니도 라이플의 발포소리로 답했다. 

아마 뭔가 말한거 같긴한데.

그런걸 들을 여유는 없었다. 혹시라도 팔랑스가 다시 일어나기 전에 확실하게 조져야한다.

다행히도 군납비리가 없는 우리의 총탄은 확실하게 효과를 보였다. 발포 콘크리트 옆으로 피해 도망치려는 조그마한 철충의 기생체를 쏴 죽이면서 찰나의 전투가 끝이 났다.


붉게 가열된 경기관총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노움의 상태를 살폈다.


"노움 병장님!"


다시 보니 배에 감은 붕대는 이미 붉은 색으로 변해버렸고, 바닥을 구르고 등 뒤로 팔랑스의 머신건까지 받은 피해는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호흡은 불안하다 못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눈에는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녀는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다.


"...드...을..."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둠브링어의 폭격이 멈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움의 작은 목소리는 확실하게 귀에 들어왔다.


"네! 듣고 있어요!"


그녀의 눈빛은 이미 허공을 보고 있다. 가망이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 만큼은 어떻게든 들어야 했다.

그러나


"자매...들..."


그녀는 이미 우리조차도 보지 못하는 듯 했다.


"우리... 아이들..."


그녀는 가까스로 팔을 들어올려 허공을 쓸어내리듯 손가락을 그려내렸다.

마치 그 곳에 누군가라도 있다는 듯이. 

뺨을 쓰다듬는 듯한 따뜻한 손길이 차가운 공기만을 감싸안고 있었다.


"우리... 가족..."


어느새 옆에 선 브라우니가 말을 잃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을 본 이는 이제 우리 둘 뿐이다. 

차라리 이게 잘 된 일이지도...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총을 쥐어 들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참호벽을 발로 들이박았다.


"아 씨발..."


나의 욕설에 브라우니는 정신을 차린듯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내게 뭘 원하는 걸까.

브라우니는 눈가를 구기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 보냈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리의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었다.


"브라우니."


"예, 옙!"


브라우니는 눈을 소매로 훑으며 대답했다.


"출발할... 준비하세요."


지금은 시간이 없다. 팔랑스는 혼자 움직이는 개체가 아니다. 각잡힌 대열로 움직이며 진격하는 존재들이다.

지금이야 잠시 정찰을 위해 흩어졌을 수 있으나 분명히 이 놈을 제외한 다른 철충들도 참호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처음 노움을 꿰뚫었던 탄환은 머신건이 아니다.

그 깊고 불길한 소리는 저격총에 가까웠다. 장거리 저격을 노리는 철충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둠 브링어의 폭격음이 멎었다. 폭격이 성공했는지, 실패로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을 생각한다면 서둘러 이동할 타이밍이다.


"노움 병장님은... 어떻게 합니까?"


"... ..."


우리 바이오로이드는 인식표, 통칭 군번표가 없다. 그런 것은 인간님들을 위한 물건이지, 소모품인 우리에게 인식표란 물건은 의미가 없다. 단지 총기번호와 같이 인식번호가 남아있을 뿐.

그것도 죽게되면 자동으로 소실되는 것이다.

그녀의 시체는 아무도 구해주지 않고, 꺼내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영원히 썩겠지. 


"출발할 준비하세요. 아직 근처에 철충이 남아 있을 겁니다."


입술을 이빨로 물어뜯으며 입을 열었다. 나의 말에 브라우니는 잠시 눈빛이 흔들리더니 고개를 떨구고 총을 주워들었다.

그 사이에 나는 노움의 눈을 감겨주고 먼지투성이가 된 머리카락을 털어주었다.


'미안해요.'


우리는 살아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죽기에는 너무 많은 목숨들을 잃었다. 그 모든 것을 무의미로 만들 수는 없었다.

다시 남쪽으로, 32호 참호를 향해 진격해야 한다. 그렇게 거짓된 사과를 입에 머금은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이오로이드도 지옥에 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확정적일 것이다.

나의 자매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도, 분노를 느끼지도 못했다. 오히려 짐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죽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뒤늦게 고통에서 해방되어서 다행이라고 느꼈으리라는 변명을 머리속에 올려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변명을 나 자신에게 주입하려고 하고 있었다. 뛰면서도 멀미가 나듯이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존나 오랜만에 글썼다.

미안하다 사실 빨리 쓰려고 했는데 쥬라기 월드 에볼루션이 너무 재밌어서 이거하느라 글 못썼음

하다보니까 이젠 쥬라기 월드 정주행까지 하고 싶어지는데 참고 왔음.

이벤트때 유입되어서 공략보고 미친놈처럼 달려서 그런가 이벤트 끝나니까 많이 허무해져서 그런것도 큰듯

그래도 다음 이벤트 금방 오더라. 헤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