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라인 부대는 늘 수가 가장 많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된 T-2 브라우니가 주력인 부대인만큼, 수가 많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멸망 전엔 그 이유로 스틸라인은 늘 최전선에 섰다.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죽으면 다시 만들어 채우면 된다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불굴의 마리는 늘 자신감에 차있었다.

가성비가 뛰어나 인간에게 늘 쓸모있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병사들 하나하나의 생각은 모르겠으나, 마리는 좋아했다.

허나, 인류는 멸망하고,

가성비가 좋다는 뜻은 퇴색되었다.


가성비란 무엇인가.

가격 대비 성능의 줄임말이다.

즉, 가격에 비해 성능이 나온단 말인데, 

그 가격을 정해주는 인류가 단 하나인 지금은,

스틸라인이 늘 선택받았던 이유는 없어져버렸다.




"각하, 오늘 전투에서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마리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사령관이 전 부대를 지휘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여태 다칠지언정 사상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멸망 이후라 세력을 불리기 위해 병력을 불리면서도, 사상자는 최소화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령관은 늘 수비적인 전략으로, 국지적인 승리를 거둬갔었다.

허나, 이번엔 스틸라인이 작전을 진행하던 도중, 브라우니를 무려 4명이나 잃었다.


"...몇명이나 죽었어?"


그 말을 들은 사령관 역시, 표정은 마리 못지 않게 일그러져있었다.


"총 4명입니다. 각하, 그들의 화장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최대한 성대하게 치룰게. 그리고.."


사령관은 말을 끝맺더니, 마리를 안고, 어깨를 토닥였다.


"각하.."

"네 잘못이 아니야. 심하게 자책하지 마."

"..네."


늘 당당하게 걸으며, 앞을 똑바로 보고 걷던 마리는,

오늘따라 유독 고개를 떨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 마리는 술에 절여진 채로 수복실로 실려왔다.



술에 취해 기절했다가 반나절만에 일어난 마리는, 웬 사람같은 AGS가 침대에 누워서 쉬고있는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쿠후후.. 불굴의 마리양! 반갑습니다! 혹시.. 머리카락 한올만 받아가도 괜찮겠지요?"


수복실엔 Mr. 알프레드가 수리를 받고있었다.

병상에 누워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사람도 없겠다 Mr. 알프레드는 누워서 쉬고싶었는지 침상에 제대로 누워있었다.


"..알프레드라고 했었던가. 한마디만 묻겠다."

"물론이지요! 그리고, Mr. 알프레드입니다!"

"아니.. 아니다."


마리는 말을 꺼낼지 말지 망설이다,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푹 쉬었다. Mr. 알프레드는, 그 불굴의 마리가 왜저렇게 풀이 죽어있는지 궁금해졌다.


"저기, 마리양, 저도 마침 질문이 있걸랑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아, 감사합니다! 왜 술에 취해서 여기까지 오신겁니까? 정확히.. 술을 마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브라우니가 죽었다. 각하 휘하로 들어간 이후로 처음 겪는 죽음이지."

"브라우니라면... 쿠후후, 함선 내에 정말 많이 보이는 T-2 브라우니 개체겠군요?"


마리는, Mr. 알프레드의 쿠후후, 하고 웃는 부분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지금 비웃은건가..?"

"예?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허나, 곧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깨달은건지, 이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 아니다. 미안하군."


Mr. 알프레드는 마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이내 잠시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상담이 필요하신 것 같군요.. 괜찮다면 저라도 상담을 하고싶지만, 저는 아무래도 상담엔 영 젬병이라서요! 쿠후후, 코헤이 교단의 아자젤님을 찾아가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마리는 들은건지 만건지, Mr. 알프레드의 말에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Mr. 알프레드의 발광체는 이내 웃는듯한 표정으로 빛났다.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날개 달린 코헤이 교단의 대천사, 아자젤...

의 늘 옆에 있던 베로니카가 물었다. 어째서인지 오늘은 혼자였었다.


"용건을 말씀하세요."

"그저, 상담을 하러 왔다."


이내, 베로니카는 마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헝클어진 머리, 정갈하지 않은 옷 매무새. 초점을 잃은 눈.

베로니카는 곧바로 마리를 고해실로 인도했다.



"잠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마리를 앉혀놓고 어디론가 떠났다.

고해실 안엔 이미 누가 있었는지, 말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마리는, 상담하면서 할 말을 미리 생각해두기 시작했다. 


사실, 이젠 고해실이 고해성사하는 곳이 아닌, 사실상 아자젤의 심리상담실로 바뀐 수준이였고, 아자젤 본인도 고해성사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단, 타인의 상담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부쳤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상담자분은 들어오세요."


곧이어, 아자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해실 안은 종교적인 느낌이 강한 촛대와 초 하나가 있었고, 그걸 중심으로 아자젤과 마리는 마주앉았다. 보통 고해성사라 하면 생각나는 벽은 없었다.


"무슨 일로 여길 찾아오신 건가요?"


막상 와서 앉으니, 생각해두었던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있던 일을 말하기로 했다.


"오늘 브라우니가 4명이나 죽었다. 내.. 실책이였다.

사령관 각하가 오고 난 뒤로, 처음 생긴 사상자였지."


그 말을 들은 아자젤은, 방금 전과 다르지 않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속해주세요."

"...그 날 이후로, 늘 꿈에 죽은 브라우니 4명이 나타난다. 내 탓이라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브라우니들에겐 오늘 당장 살지도 불투명해졌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불안이, 다시 가지를 뻗어나갔을 것이야."


..마리는 점점 감정에 북받쳐 이야기를 쏟아내는 수준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이야기한건지, 멸망 이후 사령관을 만나기 전까지 이야기까지 모두 쏟아냈다.

아자젤은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였다.


"..그 이후로, 내 앞에 붙은 수식어인 불굴이라는 말은, 더이상 내겐 유효하지 않았다.. 사령관 각하를 만나고, 다시 불굴이라는 말이 걸맞게 돌아갔지만, 이제 난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잃었다.. 난, 그저 마리 4호에 불과했다."


앞에 아자젤이 있단것도 반쯤 잊은 채, 말을 다 한 마리 4호는, 갑작스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미안하군.. 나 혼자 말해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들어주어 고맙군.."


아자젤은, 머리 위의 링을 빛내고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사실, 마리님이 오기 전, 2056 브라우니가 찾아왔습니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노움 자매들의 의견을 총합해 절 찾아오셨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물론이지요. 스틸라인의 일원들은 그 일 이후로, 마리님과 사령관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아자젤은 그렇게 말하며, 마리 4호의 앞에 한 편지를 내려놓았다. 봉투엔 2056 브라우니의 글씨로 불굴의 마리님께 라 적혀있었다.


"이건.. 내 앞으로 온 편지군.."

"읽어보시지요. 전 뜯지 않았습니다."


'스틸라인 부대 지휘관 불굴의 마리님께.

승리! 2056 브라우니가 자매들의 의견을 종합해 편지를 썼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희들은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건 사실입니다. 사령관님 휘하로 부대가 들어가기 전까진, 희생자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우리 스틸라인 부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늘 가성비로 인해 선택받은 우리였던 만큼, 절대적인 가치가 사라진 지금은 우리 스틸라인 부대는 정확히 어떤 이유로 전선에 나가는 지에 대한 것에 대한 고민이였습니다.


허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해서, 우리가 싸우지 않을 것은 아닙니다. 이건 스틸라인 자매들의 의견을 종합해 내린 결정입니다. 저희는 모두가 죽어나가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사령관님을 지키고, 마리님의 지휘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장점인 가성비는 사라졌지만, 다른 것들 중에서 하나가 사라진 것 뿐입니다. 압도적인 머릿수와 최후의 인류에게 선택받았다는 자긍심 만큼은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만일 저희가 모두 죽더라도, 사령관님은 저희의 죽음에 가치를 새겨주실 겁니다. 최후의 인류를 위해 열심히 싸운, 최후의 용사로 말입니다! 그러니, 마리 대장님도 침울해하시지 마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희 브라우니들이 언제 죽더라도, 사령관님은 저희의 가치를 새로 써주실 겁니다! 그 점에서, 저희 스틸라인 부대원들은 자랑스럽습니다! 스틸라인 부대 소속이자, 우리 부대가 사령관님의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점이 말입니다.'


"...내가 멍청했군."


수치스러웠다.

가장 의심을 가지지 말아야 할 대장이,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이란 것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말았다.

그 의심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걸 망각하고 있었다.


"편지 내용은 어땠나요?"


아자젤의 표정은, 마치 마리의 생각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당신이 무엇을 했든, 반려..인간 남성은 당신에 대한 신뢰를 보내주실 겁니다. 당신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자신감을 잃지 말아주세요."


불굴의 마리는 머릿속이 다시 한번 맑아졌다. 눈은 이전보다 더 총명해졌고,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당당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일어섰다.


"고맙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2056 브라우니의 생활관을 찾아가야겠군."

"네. 언제 어디서나 아자 아자 아자젤입니다. 자매님."



그리고, 생활관은 초토화가 되었다.


"이런, 망했지 말입니다!!"

"이 밤에 군단장 생활관 방문이라니.."


갑자기 불굴의 마리가 생활관에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대엔 비상이 걸렸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노움들은 하나같이 관물대의 간식을 숨겼고, 이불의 각을 전부 맞추어 넣어놓았다.

이프리트 또한 조는 모습을 버리고 빠릿하게 움직였고, 그 임펫조차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레드후드 연대장조차 생활관에 방문해, 분대원들의 관물함 정리를 도울 정도였다.

허나, 그 자리엔 2056 브라우니는 보이지 않았다.

연대장은 브라우니를 찾아, 자리로 데려오고 싶어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2056 브라우니의 관물함은 비우지 못하고, 이불 정리만 겨우 했다.


"승!리!"

"부대 쉬어."

"쉬어!"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나를 바로잡아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말하고선, 마리는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 품에 안고, 목례를 했다.

그 광경에, 모든 부대원들은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난 이전에 브라우니를 총 4명이나 잃고,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불굴의 마리라는 이름은 퇴색되었고, 절망감에 빠져 부대원들을 관리하지 못했지. 하지만, 너희들의 생각을 듣고, 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고맙다. 이 말과 소정의 포상을 주려고 여길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목례를 하고, 품에서 휴가증을 미친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군단장의 포상휴가 14일을, 분대원들에게 뿌려댔다.

말 그대로 휴가증 헤는 밤이였다.


"다음 여름에, 이 휴가증으로 해당 분대는 내내 쉴 수 있게 해주겠다. 이상!"

"승리!"


그리고 생활관 내엔 함성소리로 뒤덮혔다.


불굴의 마리는 그 이후로, 갑판에 올라가 달을 보았다.

지평선에 걸쳐 휘황찬란하게 떠오른 만월은, 밝은 빛으로 바다를 비추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불굴의 마리 뒤를 사령관과 2056 브라우니가 따라 올라왔다.


"각하. 그리고 2056 브라우니."

"승리! 마리 대장님, 표정이 밝아지셨지 말입니다."

"마리. 괜찮니?"

"물론이지 말입니다. 그리고, 브라우니 넌 아까 생활관에 없더구나. 널 보러 찾아간 것이였는데 말이지."

"하하.. P.X 한번 들렀지 말입니다.."

"괜찮다. 여기, 네 휴가증이다."


그렇게 브라우니의 손에 쥐여지는 포상 휴가증.


"네 덕에, 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고맙다."


마리는 다시 한 번, 모자를 벗어 목례했다.

사령관은 옆에서 눈치를 보다, 소완에게 와인과 적당한 안주를 갑판으로 가져오라 말했다.


"각하, 이건.."

"와인이랑 안주지. 같이 먹을래?"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전.. 이제 내려가도 되지 말입니다?"

"아니, 너도 이리와 사령관 각하와 마시자."


이내, 브라우니의 얼굴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네! 불굴의 마리 대장님!"



5000자 채우는거 힘들구나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정신없이 써서 어색할수도 있어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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