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간에 넣은 ost와 꼭 같이 봐 주세요










호밀이 이슬을 머금고 기지개를 켜자, 황금 들판이 일렁인다. 




온 만물이 제 할일을 준비하며 부스럭 거릴 즈음에도 붉은 벽돌집에 사는 잿빛머리 남자는 아직 꿈에 취해 있다. 



싸리빗이 바닥을 누비는 소리가 집 안을 수줍게 메운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남자가 슥삭슥삭, 하는 규칙적이고 기분 좋은 소리에 뒤척인다. 



침대에서 가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 특유의 숲을 그대로 머금은 듯 한 향기가 난다. 잿빛머리 남자가 이내 천장을 똑바로 보고 눕는다. 



실눈을 떠 보지만 언덕배기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햇살이 생각보다 눈부셔 이내 눈꺼풀을 찡그리고 만다. 



싸리빗 소리가 멎는다. 



그 빈 자리를 이번에는 눈부실 정도로 향긋한 커피 향이 대신한다. 



잿빛머리 남자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짓는다. 



아차 싶었는지 이불을 끌어 당겨 입을 가린다. 



게으름 피우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커피 향이 점점 남자에게 걸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또각 또각 하며, 커피 향은 참 조신하게도 다가온다. 



하얀 앞치마를 허리에 수줍게 두른 갈색머리 여인이 온 집안에 커피 향을 가득 칠하고는 마침내 남자 옆에 앉는다.




"일어나요, 게으름뱅이 주인님. 계속 누워 있으면 아침 안 만들어 줄 거에요."




여인이 커피를 침대 머리맡의 테이블에 놓고 남자의 얼굴 반을 덮고 있던 이불을 살짝 걷는다. 잿빛머리 남자가 씨익 웃는다. 



하지만 눈은 장난스럽게 감고 있는 그대로다.




"5분만."




남자가 등을 돌리고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자 갈색머리 여인이 숨죽여 웃고는 허리에 메고 있던 앞치마를 푼다. 



사르륵, 하는 소리가 남자의 귀를 간지럽힌다. 



이내 매트리스가 삐그덕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잦아든다. 



갈색머리 여인이 이불 속으로 쏙 들어온다. 



여인의 따뜻한 손이 남자의 허리를 감는다. 



스윽 스윽 하며, 손이 무언가를 스다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따뜻한 감촉이 예고도 없이 배의 맨 살에 닿자 남자가 살짝 놀란다. 



여인의 손이 한동안 배꼽 주변에 머물더니,




"아하하하! 드리아드! 그만해 그만!"




강아지풀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남자의 맨 살 위에서 뛰놀기 시작한다. 



남자가 침대 위에서 요동친다. 



여인의 손은 사정 봐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배를 실컷 농락하고는 이윽고 가슴팍과 겨드랑이 까지 올라간다. 



남자는 더욱 격하게 웃으며 꿈틀거린다. 



당하고만 있던 남자가 갑작스레 팔로 여인을 휘감는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여인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사이 남자는 기세를 몰아 여인의 입술을 탐욕스럽게 훔친다. 



가장 부드러운 살과 살. 점막과 점막이 서로를 비비며 상대의 체온을 확인한다. 



여인은 숨이 차 죽을 지경이다. 



볼이 발그레 해지고 목에서 자기도 영문을 모를 달콤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여인이 뭐라 말을 해 보려 하지만 혀 까지 꽁꽁 묶여 버린다. 



여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미약하게 남자의 가슴을 콩 콩 치는 것 밖에는 없다. 



실컷 서로에게 묶여있던 혀가 이내 풀어진다. 



여인은 잠시 방심해 버리고 만다. 



남자의 입이 자신의 귓바퀴를 탐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카랑카랑한 신음이 또다시 새어 나온다. 



귀를 바알개질 정도로 실컷 유린한 입은 이번에는 목과 쇄골을 뱀처럼 훑는다. 



여인의 폐에서 숨이 터져 나온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이불을 쥐어 뜯는다. 



갈 곳을 잃어 방황하던 갈색머리 여인의 눈동자가 겨우 남자의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어우. 몇시지 지금? 빨리 콤바인 손봐야 하는데."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분주히 옷을 갈아 입으려 한다. 



그의 양 볼과 광대에 장난기가 가득한 것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남자의 등만 바라보는 여인은 알 턱이 없다. 



잠옷 상의를 벗어 침대에 휙 던지고 와이셔츠를 입으려는 찰나, 



남자의 단단한 가슴팍에 하얀 깃털 같은 여인의 손가락이 앉는다.




"드리아드?"




잿빛 머리 남자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여인의 손이 남자의 바지 속으로 쑥 들어온다.




"가지 마요……."




하얀 깃털같은 손가락이 올빼미처럼 슬쩍 다가와 굵은 나뭇가지에 살며시 앉는다. 



그 황홀한 고양감이 갑작스럽게 남자의 말초를 자극한다. 



커피 향내 가득한 아침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극이다.



여인이 호밀밭 처럼 넓은 남자의 등에 얼굴을 기대려는 찰나, 



남자가 획 뒤로 돌아 여인을 침엽수를 휘감는 칡덩쿨처럼 단단히 끌어안는다.



눈 깜짝 할 새 조여든 횡경막에서 올라온 숨이 하아, 하고 여인의 입술로 새어 나온다.



황금을 품은 여인의 눈동자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가득 들어온다.



여인의 발꿈치가 땅에서 떨어진다. 



나뭇가지에서 날아오른 올빼미 처럼. 



그러나 여인 자신의 의지는 아니다. 



샹들리에는 다음 무대를 위해 들어올려진다.



여인은 탈곡을 기다리는 짚 뭉치 처럼 하얀 침대 위에 툭, 던져진다.



갈색 암사슴을 노리는 잿빛 늑대가 침대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온다. 



사슴의 눈망울 속엔 두려움이 아닌 기대가 가득하다.



맥박이 엉키고 체온이 섞인다.



호밀밭이 춤춘다. 바람 때문일까? 



치마 폭 사이로 늑대 무리라도 지나가는 걸까.



하얀 눈밭도 일렁이며 콧노래를 부른다. 



뱁새가 벽돌 집의 굴뚝에 앉았다 놀라 달아난다.



집 안에서 갑작스럽게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가 이를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아침을 만끽한다.



커피 향은 서서히, 그보다 향기롭고 달콤한 향으로 집 안이 메꿔지자 스스로 물러난다.



온통 무례할 정도의 단 내 뿐이다. 



해가 더욱 환하게 뜬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그렘린 양이 다음 주에나 올 수 있겠다고 전해드려 달라 했어요.”




갈색머리 여인이 샤워를 마치고 얇은 셔츠를 입으며 말한다. 




“그렘린? 아아 참. 장비를 봐 주러 오기로 했지. 흐음…. 일정이 빠듯 하겠는걸.”




잿빛머리 남자가 부엌의 테이블 앞에 앉아 턱을 쓰다듬는다. 



면도가 덜 된 잿빛 수염이 거칠거칠하다. 




“죄송해요 주인님. 듣자 마자 알려 드렸어야 하는 건데….”




“아냐. 나도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 알려줘서 고마워 드리아드.”




남자가 살짝 과장되게 손을 흔들며 말한다. 여인은 그제서야 미소를 되찾는다.



종이 신문이 바스락거리며 넘어간다. 그리운 얼굴들이 많네. 



남자가 신문을 볼 때 마다 하는 말이다. 신문의 마지막 장이 넘어갈 때 즈음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붉은 고기 스튜가 남자 앞에 차려진다.



여인이 남자 맞은편에 놓여 있던 의자를 굳이 남자 옆으로 들고 와 앉는다.



스푼이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린다.




“보르시가 입맛에 맞으신가요?”




여인의 물음에 남자가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린다. 



갈색 머리 여인이 밝게 웃는다.



붉은 스튜가 두 남녀의 혀를 간지럽힌다.



아침의 달콤했던 정사와도 같다.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저절로 눈이 감긴다.



은빛 스푼의 지휘에 맞춰 스튜의 온갖 재료들이 합창한다.



앙코르를 요청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식사 후의 노곤함은 마치 특권 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는 것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잿빛머리 남자는 질긴 인디고 원단으로 만든 멜빵바지를 느릿 느릿 입는다.



여인은 벌써 외출 채비를 마쳐뒀다.





"어머나...."



소중한 자신의 도구를 챙기려 창고로 들어간 여인이 무언가에 놀라 손을 입에 모은다.



"왜 그래?"



잿빛머리 남자가 창고로 들어온다. 여인이 뾰로통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주인님... 깜짝 놀랐잖아요."



여인은 자신의 키 만한 커다란 낫을 낯설다는 듯 매만진다. 본래 은빛으로 빛나야 할 날이 회백색의 낯선 재질로 바뀌어 있다.



"어.... 별로야? 그거 그렘린 공방의 아이들이 꽤 고생해서 가공한 건데."



"아니요, 한눈에 봐도 전보다 훨씬 날이 잘 들 것 같긴 해요. 그치만.... 기분이 좀 이상해서요. 익스큐셔너 의…. 맞죠 주인님?"



여인이 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남자가 안절부절 못 하자 여인은 씨익 웃어보인다.



"자매들과 수없이 베어 버린 녀석이 제 도구의 일부가 되다니, 정말 묘하네요."



"그 자식이 우릴 얼마나 괴롭혔는데. 이렇게라도 갚아줘야지. 억울하면 찾아오던가?"



"못 말려 정말."



갈색머리 여인이 낫을 벽에 세워 두고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황금색 눈이 가까워지자 남자는 양 팔을 활짝 벌린다.



따뜻하고 느릿느릿한 포옹이 이어진다.




외출 채비를 모두 마친 두 남녀가 길고 긴 농로를 지난다.



일직선으로 끝없이 이어진 길 양 옆으로 광활한 호밀밭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조용하던 평원에 요란한 2행정 엔진의 가르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참새들이 놀라 와르르 흩어진다.



남자의 검은 바이크가 털털거리며 자갈들을 수없이 밟으며 달린다.



텅 빈 사이드카가 통 통 튕기자 남자도 들썩거린다.



여인은 그리 높지 않은 고도에서 천천히 날며 이 광경을 느긋이 지켜보고 있다.



여인의 연보랏빛 날개가 요정의 그것처럼 고요하다.



적당히 따스한 기분좋은 바람이 두 남녀를 매만지며 지나간다.



호기심 많은 멧비둘기 무리가 스치듯 여인 주위를 맴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온 새들에게 놀란 여인이 손을 휘휘 저어보지만 비둘기들은 아랑곳 않는다.



남자가 깔깔거리며 그 광경을 바라본다.



그의 고글에 여인의 부푼 볼이 비친다.



남자가 경적을 한두번 울리고 나서야 비둘기들은 여인에게서 멀어진다.




마침내 바이크가 가랑거림을 멈춘다.



길 양 옆으로 깔끔하게 베어져 밑단만 남은 호밀들이 주욱 펼쳐져 있다



쥐를 입에 물고 있던 갈색 밍크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화들짝 달아난다.



물론 둘 다 그 광경을 보진 못했다.



텅 빈 밭 한 가운데 붉은 콤바인이 눈에 띈다.



"콤바인까지 누가 먼저 가나 시합!"



잿빛머리 남자가 내달리기 시작하자 여인도 황급히 뒤를 따른다.



깔깔거리며 달리던 남자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우당탕 넘어진다.



"어떡해! 괜찮으세요 주인님!?"



남자가 축 처진 채로 일어나지 않자 여인이 하얗게 질려 뛰어온다.



"드리아드...."



"많이 다치셨어요?"



"어디 가서 오늘 일 말하면 안돼...."



남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여인은 그제서야 안심한다.



여인의 손을 잡고 남자는 비실비실 일어난다.



붉어진 얼굴이 오늘 먹은 보르시 같다고 여인은 생각한다.



"방심했지!?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호탕하게 웃으며 잿빛머리 남자가 다시 내달린다.



여인이 질겁하며 뒤를 쫓는다.



남자는 다리가 풀려 또 한번 우당탕 넘어진다.




콤바인의 우렁찬 소리가 광활한 호밀밭을 울린다.



멀리서 마음 놓고 있던 참새 무리가 콤바인이 다가오자 지레 놀라 다시금 푸드덕 날아오른다.



해가 중천에 떠 제법 더워지자 남자는 연신 땀을 흘린다.



후줄근한 멜빵바지에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때 마다 콤바인에는 황금 낱알이 쌓인다.



멀리 맞은편에서 홀로 작업하는 여인은 잠자던 멧밭쥐가 눈치채지도 못 할 정도로 조용히 낫을 다룬다.



사각 사각 하는 소리가 얌전히, 규칙적이고 빠르게 울린다.



콤바인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여인을 잿빛머리 남자는 빠안히 쳐다본다.



시선을 느끼고 여인이 남자를 바라본다. 수줍게 방긋 웃는다.



"드리아드!"



남자가 큰 소리로 여인을 부른다.



"내기할래? 누가 먼저 작업 마치나!"



여인이 저 먼 발치에서 무어라 뭐라 외치지만 콤바인 털털거리는 소리에 이내 묻힌다.



"잘 안 들려!"



여인이 숨을 흡 하고 들어마신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뱉는다.



남자는 영문을 몰라 여인을 바라본다. 여인도 남자를 빤히 바라본다.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저 먼 곳 호밀밭의 끝을 바라보더니,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빠르게 낫을 돌린다.



"어어?? 반치...ㄱ 에이 그래! 시작! 시작!"



남자가 엔진의 출력을 높인다. 카라랑 하는 구식 내연기관의 울림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이미 앞서가 버린 여인과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사각 사각, 빠르고 조용하게 호밀들은 어머니 대지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눈꽃처럼 내려앉는다.



태양이 정점에서 점점 내려온다.



발개진 두 남녀의 볼 만큼이나 하늘은 물들어간다.



밭의 끝에서 먼저 만세를 부른건 여인이었다.




"아우 어깨 아파라!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요. 제가 이긴 것 맞죠 주인님?"



여인이 방긋방긋 웃으며 콤바인으로 다가온다.



"주인님?"



남자는 대답이 없다. 대신 호밀밭에서 멀지 않은 곳의, 나무와 풀이 무성한 언덕배기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무슨 일 있으신-"



"쉿!"



남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콤바인 한켠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가방에 손을 뻗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방을 열자 검고 흉흉한, 사람 키 만한 라이플이 섬뜩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인은 낫을 든 손에 잔뜩 힘을 준다.



"제가 확인해 볼 게요."



"뒤로 가 있어 드리아드."



"하지만-"



"부탁이야. 물러나 있어 드리아드."



여인이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물러난다.



주변은 생명이 전부 죽은 듯 고요하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바닥에 엎드리며 양각대를 지면에 놓는 소리가 작게 울린다.



총몸에 각인된 '저항군 사령관' 이라는 문구가 번뜩인다.



잿빛머리 사령관이 커다란 스코프에 천천히 한쪽 눈을 붙인다.



풀숲의 한 구석이 일렁인다.



사령관과 드리아드 둘 모두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곳을 주시한다.



"드리아드."



"네, 주인님."



"초탄으로 제압이 안되면...."



"알겠습니다 주인님."



드리아드의 양 날개가 출력을 높인다.



요정의 양 날개가 고요히 분노한다.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지면을 딛은 다리에 힘을 가득 싣는다.



빠드득, 하고 돌이 우그러드는 소리가 난다.



심장 뛰는 소리가 울린다. 쿵, 쿵, 쿵. 뭔가에 놀란 찌르레기들이 나무에서 퍼뜩 달아난다.



새들이 떠나간 나무가 기우뚱 거린다. 이내, 와드득 뭔가에 밟혀 천천히 쓰러진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자 흙먼지가 온통 자욱히 날린다.



둘은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본다.



흙먼지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 사이로, 검붉은 빛이 번쩍거린다.



어딘가 성치 않아 보이는 거대하고 기괴한 금속 괴물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사령관은 지체할 것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인류의 분노를 모아 놓은 듯 한 천둥이 울린다.



사령관의 대물 저격총에서 튀어나간 총알이 순식간에 금속 괴물의 가운데를 뚫고 거대한 구멍을 만든다.



괴물은 비틀거린다. 비대하고 흉측한 몸뚱이가 천천히 그들 쪽으로 향한다.



드리아드는 기다리지 않았다.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른 그녀의 낫이 섬뜩히 빛난다.



금속 괴물이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려다 균형을 잃고 기우뚱거린다.



드리아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든다.



놈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는 사소한 사실 같은건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금속이 금속을 베어 가르는 끔찍한 소리가 황금 평원에 울려퍼진다.



깨져버린 고요함에 산짐승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멀리 달아나기 시작한다.





"레오나 님이 조사를 위해 곧 방문하신다고 해요."



하늘이 짙은 남보라빛으로 물들고,  벽돌집의 굴뚝에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갈색머리 여인이 침대에 웅크린 채로 말한다.



"레오나 담당 순번이 벌써 왔어?"



잿빛머리 남자가 샤워를 마치고 편해 보이는 셔츠로 옷을 갈아입으며 말한다.



"네. 철충(鐵蟲)과의 전쟁이 끝나고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는데…. 고생이 많으세요 레오나 님도…."



낮의 일 때문에 탈진해, 침대 위에 누워 회복중인 여인이 기운 없이 답한다.



남자가 부엌으로 들어간다. 주방 도구들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집 안을 채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한 향기가 여인의 콧 속을 간지럽힌다.



"죄송해요 주인님. 마음 고생도 많으셨는데 저녁 준비까지...."



"아니야. 드리아드도 많이 놀랐을 텐데.”



침대 머리 맡 테이블 위에 조촐한 저녁상이 차려진다.



비뚤비뚤하게 잘라진 소시지들과 호밀로 만든 베이글, 그리고 감자 스튜.



드리아드를 부축해 일으켜 준 뒤 둘은 조용히 식사를 시작한다.



나무 스푼이 그릇 위에서 달그락 거린다.



소시지가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소리가 둘의 귀를 간지럽힌다.



"주인님, 이 소시지 말이죠. 간이 정말-."



드리아드가 간신히 꺼낸 한 마디는 남자의 통신용 단말기에서 나오는 요란한 소리에 묻혀버린다.




"...발키리님의 연락입니다 주인님."



"응. 연결해줘."



옛 전우의 연락에 남자가 단말기를 받아 식탁 위에 툭 던져놓는다.



"잘 지냈어?"



"오래간만입니다 사령관 각하."



근 몇년간 듣지 못했던 옛 전우의 목소리와 얼굴이 단말기로 나온다.



"레오나가 곧 올거란 소식은 들었어.  혹시 발키리 너도 같이 오니?"



"예. 레오나 님 께서 혼자 오겠다고 하신 걸, 보좌를 핑계로 동행하게 됐습니다.



"번거롭게 했네."



"별 말씀을."



무뚝뚝한 인상의, 한쪽 눈동자만 회백색을 띈 화면 속 여인이 힐끔 옆을 바라본다. 갈색머리 여인이 어색하게 웃는다. 화면 속 여인은 싱긋 웃고는 잿빛머리 남자를 다시 바라본다.



"호밀은 이제 곧 추수 해야 할 시기인가요?"



잿빛머리 남자는 머리를 긁적인다.



"이제 곧이 아니라 벌써 탈곡까지 끝났어야 해. 내가 게으른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좀 심했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 들었습니다. 여전하셔서 다행입니다."



"야아! 세상에! 발키리가 날 멕였어! 드리아드, 들었지? 레오나 오면 다 말할거야."



잿빛머리 남자와 화면 속 여인이 깔깔 웃는다. 갈색머리 여인도 웃는다. 힘없이.



화면 속 여인과 잿빛머리 남자는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만난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둘의 표정이 꽤나 굳어 있음을 느낀 여인은 짧게 한숨을 내쉰다.



갈색머리 여인이 감자 스튜의 마지막 한 술을 뜨고 나서야 화면 속 여인과 잿빛머리 남자는 긴 대화를 마무리짓는다.



"자세한 건 현장 조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겠습니다. 각하, 그럼 다음번에 직접 찾아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 발키리."



화면 속 여인이 절도있게 경례를 마치자 단말기가 픽 하는 소리와 함께 꺼진다.



"다 먹었네? 좀 입맛에 맞았어?"



잿빛머리 남자가 다시 침대로 다가간다.



여인은 싱긋 미소짓는다.



남몰래 침대를 꼭 쥔 손이 아프다.





"드리아드,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깊은 밤, 침대에 조용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남자가 문득 말을 꺼낸다.



남자의 어깨에 기대 볼을 부비던 여인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부스스한 잿빛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져 있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눈에는



어딘지 모를 불안함이 가득하다.



"내가 속단한 탓에, 다 끝났다고 믿었던 과거의 파편들이 우리 등을 찌르면 


 어떡하지?"



"그럴 리는 없어요, 주인님."



"정말로?"



"그럼요."



여인이 남자의 가슴팍에 살며시 손을 올린다.



심장이 따스해 짐을 느낀다. 남자도 여인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갠다.



사아, 하고 바람을 타며 나뭇잎이 춤추는 소리가 소란스럽게도 울린다.



"다른 곳에서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렇지 않을거에요. 나의 주인님. 녀석들은 구심점을 잃고 자아를 상실한 빈 깡통에 지나지 않아요. 움직이는 게 고작인 녀석들이 뭘 할 수 있겠어요?"



"드리아드도 봤잖아? 낮의 그 자식, 자기 무기만은 멀쩡했어. 몸도, 다리도 엉망진창이었지만 누군가를 죽일 능력은 충분했다고. 만에 하나 남은 녀석들이…."



"주인님…."



잿빛머리 남자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럼에도 쉬이 펴지지 않는다.



여인은 남자의 팔 사이로 파고들어 스스로 품에 안긴다.



올빼미 우는 소리는 이제 남자의 심장 고동에 가리어 들리지 않는다.



"드리아드…. 만약에 내가, 다시…."



남자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다시… 사령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드리아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여인의 얼굴을 그제서야 바라본 남자가 말을 잇지 못한다.



"아냐, 아니야. 그냥 해 본 말이었어. 미안해. 울지마, 응?"



여인의 몸이 떨린다. 남자는 셔츠의 가슴팍이 젖어듦을 느낀다.



"내가 미안해 드리아드. 난 너를 떠나지 않아. 정말이야."



여인의 손이 남자의 셔츠를 갸냘프게도 움켜쥔다.





"언제까지고 이 생활이 이어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아요."



한참을 울먹이던 여인이 힘들게 입을 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가 말 해 보지만 여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만의 것이 되기엔 너무나도 크신 분…."



여인이 남자의 손을 꽉 잡는다. 남자가 살짝 아프다고 느낄 정도로.



"주인님, 당신의 평범한 나날의 시작이 제 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때, 벅차는 이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몇날 며칠을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는지 아시나요?"



남자의 손이 끌어당겨져 여인의 심장으로 다가간다.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당신과 단 둘이, 머나먼 개척지로의 여행을 시작하려 했을 때, 문득 뒤를 돌아보았어요. 수많은 자매들의 시선을 느꼈죠."



가슴팍에 머물던 남자의 손은 이제 여인의 볼로 향한다. 천천히.



“어느날 주인님께서 그녀들 중 하나에게로, 혹은 그녀들 모두에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신데도 전 당신을 절대 원망하지 않을거랍니다. 단지 지금까지의 분에 겨웠던 행복을 기억하고, 감사하겠죠."



여인이 지긋이 눈을 감는다. 잿빛머리 남자는 여인을 바라본다.


남자의 눈에서 별똥별 같은것이 뚝 하고 내려오다, 하얀 침대보 어딘가로 사라진다.



"드리아드?"



"네, 주인님."



여인이 천천히 다시 눈을 뜬다. 남자의 눈동자가 여인의 망막을 가득 적시는 것을 느낀다.



"무책임한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아. 영원히 너의 곁에 있겠다는 말은, 나는 할 수가 없어."



여인이 살짝 고개를 떨군다. 남자는, 그런 여인의 턱을 손가락으로 잡아 올려 다시금 눈을 맞춘다.



"그러나 나는 지금 네 곁에 있어. 눈앞의 나를 봐. 거창한 사령관 같은 사람이 아니야. 그저 너와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평범한 농부를 봐. "



"주인님…."



"우리는 이제 시작이야. 그렇지?"



둘의 입이 천천히 포개진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유리구슬이 누구라 할 것 없는 턱을 지나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내가 걸어온 모든 날보다 지금의 하루를 사랑해."



"정말이신가요? 정말로 그러신가요?"



"내일도, 모레도 내 품 안에 있을 너를 사랑해. 눈앞의 남자는 지금 너의 곁에 있어. 불안해 하지 마. 의심하지 마."



나의 주인님. 여인은 다시금 남자의 입술을 탐한다. 갸날픈 손가락이 잿빛 머리카락을 해집는다.



"내 품 속의 태양. 이것 하나만 말해 줘요."



여인이 잿빛머리 남자에게로 더욱 파고든다. 슬며시, 그의 허리 위로 올라간다.



"당신의 나를, 이전까지의 모든 날 만큼 사랑해 주실수 있나요…?"



여인의 몸이 천천히 남자에게로 포개진다. 심장과 심장이 맞닿는다. 두 고동이 겹친다. 



남자는 천천히 입을 뗀다. 여인은 그 입을 아스라이 바라본다.



"나의 너를, 내 모든 날 보다 사랑할게."







두 사람 사이의 고동이 커진다. 숨결이 숨결을 타고 춤춘다. 두 남녀의 입 속 리본이 매듭지어지고, 풀리기를 반복한다.



타액이 목적지를 잃고 그저 서로에게로 흐른다. 갈색 머리칼에 파묻힌 남자의 손이 뜨겁다.



여인의 뜨거운 숨결이 남자의 쇄골을 태운다. 그러다 이내 쇄골 위는 하얀 상아들의 무도회장이 된다.



거위털 베개 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여인의 입술이 자국 자국을 남기며 남자의 쇄골에서 윗가슴으로, 단단한 배를 누빈다.



잔뜩 기대를 머금고 거칠고 단단한 손이 여인의 갈색 머리를 가득 쥔다.


여인은 기대에 부응한다.



잿빛머리 남자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천천히 숨통을 트이려 든다. 여인은 처음에는 손으로, 이내 사랑하는 남자의 바짓자락을 입으로 물고는 그대로 내려버린다.



여인의 목이 갈망으로 타들어간다. 눈앞의 기둥이 동맥에 붉은 피를 가득 머금고 요동친다.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에 입맞춘다. 남자는 조용히 환호한다.



여인의 보드라운 혀가 기둥에 새겨진 모든 핏줄기를 훑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뚜렷이 그 자취를 남기려 든다. 



기둥이 혀로는 도저히 품을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른다. 여인은 이제 자신의 입 가득이 그것을 품는다. 그러나 기둥은 오히려 더욱 그 기세를 더한다.



이제는 무엇도 이 열기를 식힐 수 없다. 여인의 탐욕이 남자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들다, 이내 숨가빠하며 뱉기를 반복한다. 



남자의 거친 손이 여인의 머리칼을 더욱 움켜쥔다. 여인은 남자가 자신의 고삐를 쥐고 당기는 것을 느낀다. 광야를 누비는 말처럼 숨가삐 달린다.



남자의 허리가 한번, 두번 연달아 뛰어오른다. 기어이 백탁액이 길을 잃고 아무렇게나 흩뿌려진다. 여인은 그것을 입 속 가득히 소중히 머금고, 삼켜버런다.



남자가 가쁜 숨을 내쉬는 것을 본 여인은 잠시 일어나 바로 곁의 화장대로 향한다. 



분홍빛 손수건을 집어들어 조용히 입가를 닦는다. 



남자는 잔뜩 방심한 여인의 등허리를 바라본다.



잿빛 늑대가 눈동자 가득이 검고 검은 욕망을 품는다. 



잔뜩 방심한 먹잇감을 낚아채는 건 나뭇가지에 메달린 사과를 따 오는 것만큼이나 쉽다.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여인은 곰 덫처럼 억센 양 팔에 몸의 주도권을 내주고 만다. 



번쩍 들어올려져, 남자에게 붙들린 채로 침대에 엎어진다.



엎드린 채로 포개진 두 남녀 사이에 뜨거운 숨이 오간다.



뜨거운 혀가 여인의 귀를 파고든다. 여인의 손이 쥘 것을 찾아 침대보를 헤맨다.



안타까운 신음이 새어나온다.  여인의 허리가 조금씩 들어올려지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달아오른 귓바퀴 때문에 여인은 남자의 손이 자신의 등허리를 지나 갈라진 꽃잎을 향하는걸 눈치채지 못한다.



그 덕에 남자의 손가락이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르자 여인은 새된 비명을 내지른다.



흐드러지게 핀 꽃잎 사이에 철철 꿀물이 흐른다. 손가락이 꽃 속에 숨겨진 동그란 암술을 누비기 시작하자 여인의 온몸이 발그라이 물든다.



여인의 동그란 엉덩이가 필사적으로 하늘을 향하려다 남자의 무게를 못이겨 가라앉는다. 



여인의 숨이 점점 가빠지자 남자는 여인을 옆을 보게끔 돌려놓아준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휴식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였음을 여인은 곧 눈치챈다.



남자의 빈 손이 여인의 탐스러운 젖가슴을 움켜쥔다. 여인은 다시금 새된 소리를 낸다.



동그란 젖가슴의 가장 뾰족한 부분을 마치 캔버스에 유화를 칠하듯 조심스럽게도 누비고, 쥐고, 쓸어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여인의 혀가 전의를 상실하고 늘어진다. 남자는 전혀 여인을 봐 줄 생각이 없다.



여인이 조금씩 몸을 떨기 시작한다. 스타카토로 춤추는 신음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에서 새어나온다.



고동치는 심장만큼이나 여인은 경련한다. 젖가슴을 쥐고 있던 남자의 손과 억센 팔이 여인의 허리를 단단히 묶는다.



새된 비명이 침대를 흔든다. 애액이 침대보를 적신다. 수 차례 경련하던 여인은 침대에 축 늘어진다.



곧바로 자신을 침대에 바로 눕히고는 검고 흉흉한 기둥으로 꽃잎을 겨누는 남자를 보고 여인은 기절할 듯 놀란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남근이 자신을 꿰뚫는 감각에 여인은 다시금 요동친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극이 척수를 타고 뇌를 태운다.



턱이 도저히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뜨겁고 축축한 것이 하얀 침대보를 적시고 적신다. 



고동, 거친 숨소리,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   



두 남녀의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캔버스는 색을 입고 구겨지기를 반복한다.



숨가쁜 환희를 여인은 전장의 나팔수처럼 내지른다. 


잿빛 기사는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타고 있는 말의 고삐를 쥐고 내달린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것을 둘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여인의 허리가 떠오른다. 손이 침대보를, 베개를, 잿빛머리 남자의 온 머리칼과 어깨, 굵은 팔뚝, 허리를 움켜쥐고 펴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의 움직임은 멎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처럼.



풀썩 쓰러져, 가쁜 숨만을 내쉬고 들이마시길 반복한다.



남자의 이마에서 뜨거운 것들이 떨어진다. 그 뜨거운 것들은 이미 온 몸을 적신지 오래다. 



여인의 눈은 반쯤 풀려 무엇을 보는 지도 모를 지경이다. 



쌔액 쌔액 하고, 꿈같은 강렬한 자극을 음미하고 또 음미한다.



갈라진 음부에서 회백색의 것이 넘쳐 흐른다. 



조금 일찍 정신을 차린 남자가 보드라운 수건을 가져와 여인의 꽃잎을 정성스레 닦아준다.



그 사소하지만 사랑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친절함에 여인은 미소짓는다.



하얀 나뭇가지 같은 팔로 남자를 끌어안는다.



입술과 입술이 또 한참을 서로를 누빈다.





"드리아드?"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여인이 일어나자, 조용히 엎드린 채로 남자가 불러세운다.



"어디 가?"



"목욕물을 준비할게요. 금방 데울 테니 기다려 주세요."



발가벗을 채로 느릿 느릿 욕실을 향해 걷는 여인을 남자는 물끄러이 바라본다.



타박 타박 하고 나무 바닥을 밟는 소리. 



저벅 저벅, 쿵 쿵 하고 바닥을 울리는 소리에 묻혀버린다.



"앗, 주, 주인님?! "



"어디 가…."



"목욕, 목욕물을 받으러- 꺄앗!?"



"누가 가라고 했어?"



"앗, 죄, 죄송…! 아앗! 앗…. 꺅!"



눈 깜짝 할 새 벽으로 몰린 여인이 새된 비명을 지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의 가느다란 허리를 움켜쥔 팔이 더욱 조여온다.



남자의 오른손이 여인의 배를 훑고 올라 동그란 젖가슴을 향한다.



여인은 종전의 감각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러나 반항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히 양 손으로 벽을 짚고, 다가오는 차례를 기다린다.



눈앞의 먹잇감이 도망칠 의지를 잃은 것을 확인하자, 남자는 식사를 준비한다.



이번에는 배려 따위는 없다. 곧바로 양 손이 여인의 가장 은밀한 곳과, 얇고 민감한 곳을 춤춘다.



여인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미 한계를 넘어버린 쾌감에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벽을 짚은 손이 주르륵 미끄러지고, 다시 벽을 짚기를 반복한다.



남자의 팔이 자신의 허리를 당기는 것을 느끼고, 여인은 마른 침을 삼키며 뒤를 각오한다.



그리고 각오한 것 보다 훨씬 큰 자극이 자신의 음부로부터 밀어닥치자, 여인의 발가락이 마룻바닥을 공허이 움켜쥐려든다.



"으으앗…. 앗, 아앗…!"



"사랑해, 드리아드."



"저도… 저도, 아앗, 앗, 아아앗!!"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빨라진다. 여인의 손이 벽에서 떨어지는 횟수가 많아진다. 고개가 절로 떨궈진다. 



남자는 이번에도 봐 줄 생각이 없다. 여인의 손이 마침내 더 이상 벽을 짚지 못하게 된 걸 확인하고도 짝 짝, 하는 외설스러운 소리는 통 느려지지 않는다.



허리에 까지 힘을 잃고 여인의 상반신이 통째로 축 늘어지고 나서야 남자는 굵다란 것을 여인에게서 잠시 거둔다.



그리곤 어깨를 잡고 여인을 휙 돌린다. 오갈 곳을 잃은 황금빛 눈동자가 애처롭다.



바들바들 떠는 얇고 부드러운 여인의 몸을 통째로 벽으로 몰아댄다. 



통제력을 잃은 한쪽 다리를 그대로 집어들어 올리자 다리 사이의 갈라진 틈에서 투명하고 진득한 것들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붉고 굵은 것이 막힘 없이 여인의 음부를 뚫는다. 여인의 턱이 솟구친다.



이제 둘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 같은 것이 아니다. 호밀밭에서 뛰쳐나온 두 짐승만이 있을 뿐이다.



누가 이 광경을 보고 감히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그 어두움이 절정을 지난 밤하늘은 서서히 또다른 색을 입기 시작한다.



벽난로의 장작이 타들어가고, 침대는 끊임없이 삐걱거린다. 잠을 설친 새들이 지저귄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남녀는 타오르는 사랑 속에서 끊임없이 춤춘다.



바람이 분다. 어디에서 온 바람인지도 모를 바람이 분다.   



붉은 벽돌집의 굴뚝에 희고 검은 연기들이 솟구쳐 오른다. 



벽돌집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새로운 새벽을 맞이할 것이다.



달이 가라앉는다. 이제는 정말로 밤이 끝을 고하려 한다.



침대에 기절하듯 쓰러진 두 남녀에게도 또다른 하루가 다가오려 한다. 



그 하루는 어제보다 더 밝을 것이다.



그들 자신이 이전까지의 삶을 어두운 밤이라 평가하리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이 새벽을 맞이하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은 마치, 새벽 귀퉁이에 앉은 이제 막 봉오리를 맺은 꽃이다.



새벽이 밝아온다.



그와 그녀의 새벽이.




호밀이 이슬을 머금고 기지개를 켜자, 황금 들판이 또 한번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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