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둘..셋…"


차가운 냉기가 감도는 보급창고 안, 

천장에 매달린 작은 조명이 옅은 빛을 뿜는 가운데,

검푸른 머리의 여자아이 하나가 커다란 상자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작고 흰 손으로 자신의 몸무게보다 세배는 더 나갈 것 같은 상자들을 새던 안드바리의 눈가에 작은 그늘이 생겼다.


"왜 자꾸 참치캔이 비는걸까요…"


그녀는 손 끝으로 타블렛을 톡톡 두드리며 다시 한번 높게 쌓인 상자의 갯수를 해아렸다.

침착하게 다시 하나 둘 셋… 한번만 더 하면 다섯번째인데, 어째서 이번에도 맞지 않는 것일까.


"하아...역시 모자라요.."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숨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초조함을 느낀 안드바리는 손톱을 잘근 물어 뜯었다. 

참치캔 68개, 단순한 누락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도 많았다.

그것이 안드바리의 잘못이던 아니던, 자원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그녀의 실책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안드바리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대신 침착하게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음...참치캔 68개면..멸망 전의 유산상자를 사기에는 부족하네요..”


그녀는 어리지만, 물자를 관리하는 일에 관한 능력만은 성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아마 지금의 사고는 그녀의 잘못이 아닐것이다. 

오만한 생각이라고 느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그녀의 실수로 자원이 사라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음… 히루메 언니는 식사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고..”


누굴까, 다양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마치 안개처럼 조금도 진실이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서지 않자 안드바리는 눈썹을 찡그렸다.


"으우...아껴써야 한다고...말..했는데에…"


물론 참치캔 68개는 그녀가 관리하는 물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부족한 추운 설원에서 나고 자란 안드바리에게는 그 작은 물자조차 너무도 소중했다.

잠시 생각하던 안드바리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2




"읏챠...끝났다!"


안드바리는 뿌듯한 얼굴로 손을 톡톡 털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조잡한 솜씨로 만들어진 올가미가 놓여 있었다.

본래 그것은 먹을 것이 부족한 설원에서 작은 짐승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녀가 잡으려는 것은 눈토끼 따위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크게 다치진 않겠죠."


한번 더 덫을 살피고 일어선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범위 안에 들어온 것을 꼭 조이고 위로 들어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 덫은 자칫 잘못하면 어딘가에 부딫혀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아냐! 이 정도는..해야해요!"


하지만 안드바리는 무언가를 떨쳐내듯 크게 고개를 저었다. 

베어먹은 듯 파여있는 참치캔 박스를 보자 마음이 다잡아진다.

유치하고 원론적이지만 전쟁중에 물자를 빼돌리는 것은 엄연한 중죄다.

그녀는 올가미의 크기를 바이오로이드의 발 사이즈에 맞게 조절하고 그 위에 참치캔을 하나 올려두었다. 

주변에 뒹구는 먼지로 늘어진 밧줄을 가리니 제법 감쪽같다.


"하암...졸려...”


작업을 마치자마자 밀려오는 노곤함에 눈을 깜빡였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평소 같으면 이미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안드바리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끌고 숙소로 향했다. 

새까만 어둠에 쌓인 방은 마치 거대한 장막이 내려앉은 것처럼 고요했다. 

그녀는 먼지 먹은 몸을 조심조심 씻어낸 뒤에 옷을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몸이 녹아버릴 정도로 피곤했는데도 보급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으우..참치이…”


물론 사령관은 안드바리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며 감싸주겠지,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언제까지 잘못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녀는 내일은 꼭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 하며 베개를 꼭 껴안고 겨우 겨우 잠을 청했다.





3




"흐아아암…"


안드바리는 졸린 눈을 비비고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눈꼬리에 붙은 눈곱을 때어내고 세수를 하자 정신이 조금 든다.

하지만 몇시간도 자지 못한 몸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으응..일하러 갈 시간이네요.."


우유 한컵과 에너지바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긴 복도를 걸었다.

몸이 기억하는대로 걷다보니 어느세 익숙한 방문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닫힌 문에 부러 끼워둔 종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좁혀졌다.


"설마…."


이렇게 빨리 잡을 줄이야.

안드바리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범인이 나타난 것을 확신하며 보급창고의 거대한 철문을 밀었다.


"잡으면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문을 열자 퀘퀘한 먼지 냄새가 몸을 적셨다.

창고 깊은 곳에서는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안드바리는 그 소리의 의미를 알고 고양이처럼 몸을 곤두세웠다.

천장까지 닿도록 쌓인 커다란 상자들로 이루어진 벽을 지나자 곧 올가미를 설치했던 장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 거꾸로 매달린 사령관이 있었다.


"....!? 사령관님?"


"아! 안드바리 왔구나? 하하, 이거 좀 풀어주지 않을레?"


안드바리는 황망한 얼굴로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고 있는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


"아..미안미안..이번에 파티마가 새로운 유산 상자를 들여놓는다고 해서..따악 한번만…"


"........"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쉰 안드바리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어른이 대체 왜 그러는거에요!' 라는 투덜거림을 겨우 삼키며 그를 매달고 있던 밧줄의 매듭을 풀었다.


"아야야야…"


사령관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구기며 이마를 문질렀다. 

오랫동안 천장에 매달려 있던 탓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나며 어지럽다.

그때, 바닥에 주저앉아 발목을 돌리고 있던 그를 보던 안드바리의 얼굴이 점점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혹시 크게 다치신거에요..?"


"어어? 좀 어지럽고..발목을 삐긴 했는데 이 정도는 뭐...헉,바리야?"


"흐...으아앙…"


사령관은 난감한 얼굴로 울먹거리는 안드바리를 바라보았다.

고의던 아니던,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다치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불안감을 느낀다.

하물며 그 대상이 사령관이라면 더 말할것도 없다.

사령관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과, 

자원을 몰래 가져간 것에 원망으로 

울음을 터트린 안드바리의 회로가 불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이고야...큰일 났네.."


사령관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는 안드바리를 안아올렸다.





4


"그래그래, 이제 참치도 자원도 함부로 안 쓸게…"


"훌쩍...진짜….약속하시는거죠?"


"그래, 진짜 약속이야."


"진짜진짜진짜로요?"


"정말정말정말로 약속할게.."


"크흥..그러면 여기, 저랑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하고 울먹거리는 안드바리의 손에는 손가락으로 만든 작은 고리가 걸려 있었다.


내일 파티마가 새로운 상자를 들고 온다 했는데 어쩐다,

하지만 묘한 의지로 불타는 안드바리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차마 그녀가 내민 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자 여기 손가락 걸고..이제 된거지?"


"....도장까지 찍어주세요."


"그래그래."


결국 사령관은 안드바리와 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어줘야만 했다.

사령관의 약속을 받아낸 안드바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내일 새로운 금고를 사지 못하게 된 것은 조금 아까웠지만,

안드바리의 미소를 보니 그런 아쉬움도 눈 녹듯 사라지는 듯 했다. 


"이제 자원도 낭비 안하고.. 아껴쓰는 착한 사령관이 되셔야해요."


"그래그래, 알겠어."


그 말에 안드바리는 울음을 그치고 미소지으며 사령관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고,

그 역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안드바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물론 파티마의 금고에 눈이 먼 사령관이 안드바리와의 약속을 어기고 참치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먼 나중의 이야기.....








쓴 이유, 쓰다보니 지략 대결은 사라져버림..



매운맛만 쓴거같아서 달달한 일상물도 좀 써왔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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