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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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탄 - 10

불발탄 - 10.5

불발탄 - 11



(사진 출저 : https://arca.live/b/lastorigin/6009861) 군대에서 부식으로 나오는 쌀국수 존맛이었는데 힝




"이야, 이거 진짜 맛있지 말입니다!"


브라우니는 호들갑스러운 말투로 입안으로 과일을 집어넣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부식이 나온 것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입안에 군침이 돈다는 게 정말 간만에 실감이 갔다.


"그러게요. 당분간은 좀 여유로웠으면 좋겠는데..."


나도 모르게 염원을 입안에 담았다. 누가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에이, 철충놈들도 잠시 물러간 느낌이고, 당분간은 좀 여유롭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부식도 나오는 것 아니겠슴까?"


브라우니는 히죽거리며 나의 기분을 북돋아주었다. 오랜만에 나온 부식인데 이렇게 침울해져 있는 것도 좋지는 않지.


"그래요. 브라우니. 고마워요."


나도 작게 웃어 보이며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여전히 브라우니는 웃는 얼굴로 마주해주더니 다시 과일에 미친 듯이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우니, 설마 하지만 다 먹지는 마세요? 있다가 분대장이랑 막내도 줘야 하니까요."


"알겠슴다!"


다행히도 브라우니는 곧 손을 멈추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에 마음까지 살짝 들뜨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일까요..."


밖에서는 브라우니들이 모여서 소란이라도 피우는지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막사의 창문 너머로 내리쬐는 햇살은 말로만 듣던 어머니의 손길과 같은 포근함을 담고 있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려던 때에,


"고생하심다!"


막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오! 부식입니까?"


"어서 와요. 분대장 몫만 남겨두고 챙겨드세요."


"와! 감사함다! 잘 먹겠습니다!"


브라우니는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과일을 향해 몸을 던지듯이 날라와서 입 안으로 과일을 쑤셔 넣고 있었다. 우리 분대의 막내는 몇 달 전에 사령부에서 생성된 개체로 부대에 적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던 자매이다.

당연히 몇 달간은 철충과의 전면전으로 바빴기 때문에 과일 같은 부식들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번이 처음 먹어보는 과일인 만큼 들뜨는 것도 이해가 갔다.


"천천히 먹어요. 체하겠어요."


"히히히."


브라우니는 아까 나갔던 자신의 선임병과 같은 목소리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을 받아내고 있었다.


"레프리콘 상병님은 어머니 같지 말임다!"


"풋, 제가요?"


우리 바이오로이드들은 어머니가 없다. 패드립이 아니라 진짜로 없다.

유전자 씨앗을 개량해서 만들어지는 우리는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지만 상품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역시, 왜이리 말을 안듣는가 했더니 우리 막내 브라우니는 불효녀였군요."


"그, 그렇게되는 검까?"


브라우니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마저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그러심까..."


브라우니는 볼을 부풀리며 내게도 과일을 내밀었다. 역시 착한 아이야.

그녀가 내미는 과일을 받아들며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을 질문해보았다.


"후후...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분대장은요?"


아까 탄약 창고 작업이 끝나고 도구를 정리하러 간다면서 먼저 막내와 같이 자리를 이탈했으니 당연히 같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노움 분대장이 보이지가 않았다.

막내를 혼자 보낼 분이 아닌데...


"아 노움 분대장은 못 오지 말입니다."


"예?"


브라우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과일을 베어먹으며 대답했다. 뭔가 일이라도 생긴 걸까? 


"창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엥?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그럼..."


"레프리콘 상병님이 버리시지 않았습니까."


"어...?"


브라우니는 아까까지의 모습과 다르게 거짓말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눈빛만이 아니다. 입, 손길, 몸짓조차도 나를 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원망과도 같은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거리는 자세로 자리 잡고 말았다. 동시에 손에서도 힘이 풀리면서 과일도 어디론가 굴러가버렸다.


"무... 슨 말을 하는 거예요?"


"... 왜 모르는 척하십니까?"


브라우니는 천천히 과일을 손에서 내려놓으며 말했다.


"참호에서 죽어가는 노움 병장을 두고 오셨잖슴까."


참호...?


"노움 병장은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걱정했는데."


참호에서 노움 병장...?


"아... 니야."


"노움 병장은 마지막까지 우리 자매들을 걱정했는데."


"우리 분대... 분대장은..."


우리는... 레프리콘이 분대장을...

맡고... 있었... 나?


노이즈가 걸린 것처럼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분명히 레프리콘이 분대장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번호도 기억나지 않는다. 진짜로 레프리콘이 분대장이었...나?


'1699번 레프리콘, 저는 2022번 T20S 노움입니다. 이제부터는 제 분대에서 합류하도록 해요.'


"어..."


어디선가 끼어맞춰진 듯한 기억이 흘러가듯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시선이 발로 향했다. 

후들거리는 무릎에 눈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머릿속이 더 엉켜진 느낌이다.

누군가가 분명히...


'... 알겠습니다. 1699번 레프리콘, 합류합니다.'


맞아. 나는... 새로운 분대원이 되었어.

내 분대장은 노움... 병장이야.


갑작스러운 기억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힉...!"


내 눈앞까지 다가온 브라우니가 원한조차 품은 듯한 눈빛으로 내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정말로 코앞까지 다가온 거리인 탓에 그녀의 눈동자 연갈색의 홍채까지도 보이고 있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브라우니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내가 버렸다고?

우리 분대장을?


"저, 저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우리 막내가 아니었다.

저런 막내, 본 적이 없다.

아니 바이오로이드조차 맞는건가?


"레프리콘 상병님 때문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후들거리는 다리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했고 뒷걸음질 치는 발도 멈추지 않았다.


"고의가... 아니었어요..."


거짓말이다. 나는 알면서도 그녀를 버렸다.

그녀의 죽음에 안심했다.


심지어 그녀가 나를 감싸줘서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녀는 총탄에 죽어가던 때까지도 나를 지키려고 했는데.


"분대장님이 여기까지 찾아왔잖슴까."


뭐?

그제서야 그녀의 시선이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내 뒤에,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렇게 느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엔,


"히익!"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피로 철갑칠을 한 그녀가 서있었다.


"노, 움... 병장... 님..."


나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빛을 잃은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원망하지도, 나를 증오하지도 않는 듯한 눈빛은 그저 나를 쳐다볼 뿐이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고의가... 죄송...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사과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녀의 눈빛을 감당할 수 없어...

그제서야 그녀는 입을 여는 듯했지만,


- 투두두둑...


그녀의 입에서는 시뻘건 피만이 쏟아져 나와 바닥을 적셨다.

바닥을 때리듯이 쏟아져내린 피들은 튀기다 못해 내 몸을 향해 튀어 올랐고, 온몸은 땀과 함께 피로 물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피들은 너무나도 차가워서, 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미안... 해요... 미안..."


나는 여전히 듣지도 못할 사과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제서야 내 등 뒤로 다가온 브라우니가 천천히 내게로 손을 뻗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제 나를 벌하려는 듯했다.

이렇게라도... 벌을 받을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레프리콘 상병님!"


"허억!"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자 어제 잠들었던 간이 천막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꺄아아악!"


"으아아아악!"


막내 브라우니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마주치자 갑작스럽게 폐 안쪽부터 떨리는듯한 비명이 목을 뚫고 터져 나왔다. 그 탓에 옆에서 날 지켜보던 브라우니도 똑같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왜 그러심까!"


"아..."


그제서야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여기는 22호 참호의 간이 천막이다. 어제 아침이 되어서야 우리는 참호에 들어왔고... 그리고...

머리가 띵하고 목이 들러붙듯이 끈적거린다. 특히 온몸을 적신 땀은 침낭까지도 축축하게 만들고 있었다.


옆에 있던 수통의 물을 들이 켜마신 나는 다시 머리속을 정리해보았다.


오후에 철수 작업을 마치고 철수를 진행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점심까지 취침을 허락받았다.

그 덕분에 나는 이미 잠들어버린 브라우니의 옆자리에 침낭을 깔고 누웠고 그대로 잠들었다...


그제서야 주위의 환경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비명을 들은 자매들은 침구류와 짐을 정리하면서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손은 놀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꽤 바쁜 상황인듯하였다.


"아니에요. 미안해요. 안 좋은 꿈을 꿔서..."


"아닙니다. 좀 살살 깨울 걸 그랬나봄다... 너무 안 일어나셔서..."


브라우니도 아마 침구류를 정리하고 짐을 챙기던 도중이었는지 군장을 싸고 있었다.


"아, 철수 준비를 하라고 하던가요?"


"그렇슴다. 어차피 짐이 많은 것은 아니니까 대충 짐만 정리해서 군장 싸고 이동할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브라우니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리고 내 군장을 꺼내 침낭과 물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33호 참호에서 도망치듯 떠나온 탓에 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들은 거의 없었고, 곧 완전히 싸매어진 군장을 내려놓고 잠시 세수를 하기 위해 간이 천막 밖으로 몸을 돌렸다.


어느새 해가 중천까지 떠올라 있었다. 순식간에 잠들었던 것인지 정말 오래 잠들었던 것 같긴 한데...

꿈 때문에 오히려 몸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부식이라면 정말 2개월은 전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행복했었...나?


아까의 기분이 다시 다리를 타고 되살아나 배 안을 쑤셔왔고 참을 수 없는 역겨움에 구토가 올라왔지만 간신히 목 안으로 넘기고 입안의 침을 모아 땅으로 뱉어내며 참아내고 있었다.


"후우..."


가까스로 심호흡을 해내며 세수를 끝마치자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프리콘 상병님~!"


아마 브라우니겠지. 이제야 이 참호에서 철수할 시간이 된 모양이다.

다른 말로 하면 23호 참호가 더 이상 못 버티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21호 참호까지 후퇴하고 나면 그 뒤에는 레드락 군항만이 남아있게 된다.

듣기로는 인간들도 모두 거기에 있다고 하던가.


브라우니가 부르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다시 꿈의 기억과 각오를 되새겼다.

나의 존재가 인간들의 전쟁을 위한 도구로 태어났을지언정, 앞으로의 나의 존재가치는 내가 스스로 정할 것이다.


노움 병장의 말대로, 마지막 남은 가족을 지키겠다.

비록 그녀가 용서하지 않을지 몰라도.

아니 그녀가 용서할지라도 이것은 내 최소한의 속죄가 될 것이다.

나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온 탄환이 되겠다.








설연휴간 근무가 있어서 좀 늦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도 많아서 좀 피곤했던 탓에 몸도 별로 좋지가 않네요 ㅠ

남은 3회는 거의 5천자 정도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만약 문자수를 못채우면 분량조절 실패로 예상하고 4회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네요.

아마 결말은 2화정도부터 생각했던 결말이 있어서 그렇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첨엔 레프리콘 애끼려고 시작했던 글이 12화까지나 올 수 있었습니다.

장문을 쓰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4년전에 글을 쓴게 마지막이라 복귀작으로 써서 솔직히 글이 제대로 써질까 고민이 많았었는데 그래도 항상 관심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