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이야기 진도를 뺄 겁니다. 원작과 다른 진행도 나오겠지만, 캐릭터를 최대한 고증하도록 할 테니 염려하지 말아주세요.

최종본은 이전과 다를 수 있으며, 질문이나 고증 지적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홍위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자신에게 올라탄 불개 처녀를 쳐다보았다.


어떤 일을 겪어도 더는 놀라지 않으리라 

다짐한지 몇 각도 채 지나지 않아 

더 크게 놀랐으니, 어찌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있으랴?


" 헥헥, 이분이 우리 주인님이 되실 인간님이야? 반가워, 주인님, 난 펜리르! 주인님, 

나 배고픈데 혹시 먹을 거 있어? 고기면 더 좋고!"


팽리루 奟囄㪹 라....

(뜻: 굳세고 크니, 과연 약탈하러 찾아오는구나.)
...과연...이름 값을 하는 것이렸다. 


홍위는 기세가 넘치는 불개처녀를 보고 

괜시레 왕이던 시절, 여진족 족장들과 사냥나갔을 때 보았던 야인들의 늠름한 기세를 떠올렸다.


하지만 기분이 상하거나 위협은 느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길들여지지 않고 거친 면모에서 

감출 수 없는 싱그러운 매력이 돋보였다.

풍성한 개털 같은 적발은 윤기가 넘쳤고

그 움직임에는 야생의 활력이 살아있었다.


"음...그래, 여는 아마 네가 말하는 

인간이 맞을 것이로다."


"와아아, 주인님! 주인님! 배고파! 고기 있어?"


불개처녀는 환하게 웃으며 홍위의 몸에 더욱 끈질기게 달라붙어왔다.


이거 참,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랗게 밝은 미소와 활기로 가득찬 처녀가 

실망하는 얼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을 것만 같아, 

홍위는 어떻게 하면 불개 처녀를 잘 달래서 진정시킨 후에 

차분히 해야 할 일들을 이어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음...여에게는 송구스럽게도 고기가 아직..."


"안돼요, 펜리르. 

주인님이 당황스러워하시는 게 안 보이나요?"


차분하고 염려하는 듯한,

살짝 깊고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아까 그 흰 괭이가 아니던가.


두 귀는 쫑긋하고 앙증맞으니 보기 좋고, 

머리칼과 입은 의복은 희니 마치 백합과 같아라.

태도는 고고하고 크고 섬세한 눈매는

부드러우며, 

섬섬옥수 같은 손맵시에는 자못 자제함을 겸비하니 

실로 귀한 집의 자제라 해도 마땅하리라.

역시 상앗빛처럼 흰 꼬리는 

윤기가 흐르고 

바람 따라 살랑이는 것 같이 

사내의 마음을 부드럽게 홀리는구나.


옛 고사에 괭이는 영물이라 한 연유가 바로 저것이었던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보내었기에 저런 미녀로 화한 것일까?


홍위는 궁궐에 있을 때부터 티를 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홍위는 고양이의 등과 배를 쓸어주거나 꼬리를 만지작거리거나 턱을 긁어주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유독 홍위가 왕좌에 앉아있을 무렵에는, 

쉴새없이 많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기 때문에 

궐에서 괭이를 기를 시간조차 없었던 게, 

홍위의 십팔년 인생의 비극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조화란 말인가?

고고하고 차분하니 자못 품위가 있는 

괭이 처녀를 본 홍위의 머릿속에는 

빠른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거기 괭이 처녀, 

낭자의 존함을 여쭈어도 될런지?"


" 주인님, 저는 주인님의 경호를 맡게 될 CS페로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반갑습니다."


 패로 霸櫓 (으뜸가는 방패) 라...

일전에 곤수단차 袞守斷䶥 (곤룡포를 수호하고 악한 것을 끊어낸다.)낭자와 

하루패이아 遐慺霸理亞 (멀리 있는 것에도 정성을 다하니, 으뜸가는 통치에 버금가는구나) 낭자로부터 들은 바가 틀린 바는 아니었구나.


"과연 주인의 방패를 자처하는 건패니온

建䩗伲稳(두목을 세우고,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의 일원에 걸맞는 훌륭한 이름이로군."


홍위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 패 낭자, 내가 초면에 너무 무례한 질문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야 있겠지만, 

부디 패 낭자가 너그럽게 헤아려주길 바라오.

혹시 여가 패 낭자의 그 아름다운 귀와 꼬리를 잠시 만져봐도 괜찮겠소? 

패 낭자가 괘념치만 않는다면야, 여로서는 꼭 그래보고 싶었소."


홍위는 이런 말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손을 꼼지락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 절대 궁궐에 있을 때 사가에서 기르는 괭이들이 부러워서 만져보고 싶었다고는 말 못하겠군...여도 참 주책이 많아..."


"아..아름답다라고 하기까진....아...

꼬리...말씀이신가요? 

미,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꼬리엔 신경이 연결되어 있어요.

...과격하게 만지지 말아주세요."


낭자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붉어지는 것을 본 홍위는 허둥지둥 미안하다고 사과하려 했으나 이 왠걸? 

낭자가 살포시 속삭여오는 말에 

홍위는 안도하고 손을 뻗었다.


"....흐..하지만...정녕 쓰다듬어주시고 싶으시다면...최대한...부드럽고 상냥하게...쓰다듬어 주세요...알았죠?"


"걱정하지 마시오. 낭자의 마음은 충분히 

헤아렸으니, 나도 최선을 다하리이다."


홍위는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손을 뻗어 부드러운 꼬리를 쓰다듬었다.


"흐으..." 

패 낭자의 얼굴이 홍시마냥 붉게 물드는 것은 참으로 절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타고난 것일지도 모를 홍위의 손놀림은 보통이 아니다. 


" 음......."


마치 옛 병법서에 나온 것처럼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홍위의 손은 의도치 않게 페로의 민감한 부분들을 누구보다도 상냥하게 어루만지며 

페로의 감각들을 세세히 일깨우고 있었다.

선조들처럼 활줄을 당기는 감각은 허튼 일을 하지 않고 홍위의 손가락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 ...주인님..." 


정신없이 쓰다듬으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있던 손놀림을 멈추고 

홍위는 얼굴이 붉어지고 숨을 쌕쌕이는

패 낭자를 보았다. 

패 낭자의 저 부드러운 꼬리...살랑거리면서 마치 노래를 부르기라도 하듯 요염하게 흔들렸다.


위험하다.  


더 이상은 선을 넘으면 안된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홍위의 안에서 경종을 울렸고, 

홍위는 침을 삼키고 손을 떼어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 패 낭자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여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이건 마치 한량이나 불한당 같지 않은가?"


홍위는 인생에서 두번째로 여인을 대할 때 죄책감을 느꼈다.


"너무 미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네 처지를 잊기라도 한 것이냐, 


이홍위, 이 부끄러운 놈아.


너만을 기다리던 아내 셋을 버려두고

너 혼자 즐거움을 누릴 생각이었더냐?"


번민하는 마음 속에서 끝임없이 이어져 오는, 

그가 전생에도 놓을 수 없던 몇 안되는 

미련이자 죄책감이 다시 한 번 그의 귓가에서 속삭여 대었다.


홍위의 마음에서 기쁨이 싹 가셨다.


홍위는 부드럽게 페로를 쓰다듬던 손을 떼고는, 

다시 몸을 가다듬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는 패 낭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패 낭자, 아까 일은...내가 실례가 많았소...

미안하오..."


" 아니에요, 주인님...그저...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만 쓰다듬어주셨으면해요...사실...좋았어요. 무척."


페로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그렇게 말했다. 


" 다행이구려."

홍위는 개운치는 않았지만 

미소를 지어 보이며 화답했다.


"아! 주인님, 그러고 보니까, 만나러 갈 분들이 있으시다 하셨잖아요, 맞죠?" 

페로가 여운에 취해 가만히 멍때리고 있다가,

정산을 겨우 차리고는 급하게 홍위에게 말했다.


홍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안 그래도 저희가 그 문제로 

주인님을 찾아뵌 거에요. 

포츈과 닥터가 급히 주인님을 찾았거든요.

빨리 저희를 따라와주세요. 

저희가 금방 가야할 곳으로 모셔드릴게요.

아, 펜리르, 그만 좀 하고 가요! 

주인님은 고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실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