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에 한 소녀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의 홀로 있는 등대, 그 곳에 어울리지 않는 명랑한 소녀가 홀로 등대를 지키고 있었다. 소녀는 바깥의 사태가 어떨지 회사에서 자신을 찾아주길 근무일지와 시계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그렇게 소녀는 오늘도 등대를 비추며 버텨간다.


틱-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소녀의 일과는 똑같다. 근무일지와 등대를 비추는 것. 내심 두렵지만 그럼에도 소녀는 회사에서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린다. 등대의 불빛을 보고 누군가가 오길 바라며.


톡-


근무일지에 덧씌워진 기록도 너덜너덜 해질쯤, 먹고 남은 참치캔에서 비릿한 단백질 썪는 냄새와 캔의 녹때가 찌들 때 소녀의 마음 역시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불안감, 초초함, 불확신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져 가고 힘들어져 간다. 그럼에도 소녀는 등대에 빛을 비추러 간다. 자신의 존재의의인 빛을 의지하려고


틱-


등대를 둘러보던 소녀는 서재를 찾게 되었다. 많은 책들을 보며 바스러진 근무일지를 뒤로하고 독서로 하루의 일과를 찾는다. 앨리스, 라푼젤, 다이달로스, 탑을 오르는 아이, 소녀는 새로 찾은 즐거움으로 책의 내용을 공상하며 자신을 꾸민다. 이 등대를 벗어나면 동화처럼 될 자신을 상상하며.. 


톡-


소녀의 눈에 들어온 책은 용살자 영웅담이라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탑을 지배하는 드래곤을 토벌하는 용사의 무난한 이야기였지만, 소녀에겐 그런 이야기만큼 흥미있고 재밌는 이야기도 없었다. 소녀는 언제부턴가 근무일지 대신 책을 놓지 않으며 항상 꿈꾸기 시작했다. 


틱-


소녀는 꿈을 꾸었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대검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쓰고, 그 피로 자신의 갑옷과 무기, 자신이 정복한 탑에 이름을 새기며 나아갔다. 


소녀는 용의 잔해를 들며, 자신의 사냥을 자축했다. 수많은 싸움을 보여주는 듯한 상흔, 그 상흔으로부터 흘러내리는 혈액과 바닥에 낭자한 핏자국, 부러진 한쪽 뿔은 자신의 업적을 증명하는 용살자의 인장이기도 하였다.


끼긱-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였지만 아무도 없는 고요한 장소였기에 어느 무엇보다 크게 들렸다. 소녀는 예민하게 놀라 눈을 떳고, 그 소리가 등대에 있을 때 부터 있었던 시계의 수명이 다 된 소리인 것을 인지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불안감과 당혹감을 느낀 소녀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보았고, 그것은 드래곤의 잔해가 아닌 그저 자신이 보던 꼬깃꼬깃한 만화책만 들려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눈을 감았다 이내 다시 떳고, 그제서야 자각한다. 더 이상 뭘 상상할지 모르겠다고, 무엇을 공상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고


소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읽던 책 자신이 예쁘게 꾸민 소방도끼를 내던졌다.


벽의 곳곳엔 패인 자국과 흠집이 나있었다. 놀이에 심취한 소녀가 열망을 가지고 휘두르며 연습한 난무의 흔적, 그리고 깨진 거울과 그 속으로 무수히 비치는 밤의 풍경.


소녀의 뒤론 곰인형이 나뒹그러져 있었다. 귀가 뜯어지고, 몸체 곳곳엔 솜뭉치가 터지며, 털은 벗겨지며 실밥은 이리저리 흘러나왔다.


꿈, 상상 이런 것이 소녀에게 위안을 주었지만, 결국에 소녀는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이젠 무엇으로 시간을 버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의미를 모르겠다고 그렇게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하며, 소녀는 깨지도 잠에 들지도 못한 채 불빛이란 의무에 홀로 등대에 묶여있다. 지금은 그 빛마저 꺼진 등대에 울음소리마저 바닷바람에 휩쓸려 어스러져 간다.



요즘 통 잠이 안와서 써봐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