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이 펜을 잡게 된 계기는 평범한 탐색으로부터였다. 아르망이 가져온 구시대의 타블렛과 펜. 사령관은 홀린 것처럼 그것을 잡아들었다. 마치 예전부터 해왔다는 듯이 능숙한 자세로 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림 그리기는 일에 지친 사령관에게 비밀스러운 취미가 되었다. 자존감이 낮은 탓에 부관에게도 숨기는 은밀한 사생활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비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탄로나게 되었지만.

 

사령관은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모티브는 질리지 않는 외모의 콘스탄챠. 창가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슥슥 선을 그리니 어느덧 실제 대상 만큼이나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림에 너무 열중했던 탓일까. 콘스탄챠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펜을 잡고 있던 사령관은 결국 그것을 들키고 말았다.

 

“주인님...?”

 

사령관은 화들짝 놀라며 타블렛을 등 뒤로 숨겼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후후, 숨기신게 뭘까요? 제게도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이상한 곳에서 고집이 강한 콘스탄챠에게 걸린 이상 더 숨길 수는 없으리라. 사령관은 홍당무가 된 채로 천천히 타블렛을 건네주었다.

 

“ㅁ, 미안해... 차 마시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의미심장한 미소로 그것을 받아든 그녀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사령관은 무릎이라도 꿇을 각오를 했다. 굳었던 눈동자가 그림을 보더니 크게 팽창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감탄사.

 

“어머, 주, 주인님! 이런 재능을 갖고 계셨군요! 영광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반응이 좋자 잔뜩 쫄아 있던 사령관의 어깨가 조금은 풀렸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되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진짜... 마음에 들어...?”

 

“그럼요!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요. 다른 자매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어요.”

 

“그럼 다행이네... 네 패널로 파일 보내줄까?”

 

“네! 주인님께서 그려주신 그림이라면 거절할 리가 없죠.”

 

사령관이 화가 수준의 그림 실력을 가졌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콘스탄챠의 바탕화면이 누군가에게 목격되고, 대답을 들을 자가 또 다른 자에게 이야기 하고... 그렇게 이야기가 들리자 가장 먼저 사령관을 찾아온 사람은 아르망이었다.

 

“폐하! 폐하! 어서 절 그려주시죠!”

 

어린 소년이 된 자신을 본 마리와 비슷한 눈빛과 거친 호흡...

사령관은 겁에 질려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폐하께서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가끔 보고서나 종이에 그린 낙서나 그림. 심상치가 않았어요! 그래서 탐색에서 타블렛을 가져와 폐하께 선사 드린 것입니다! 후후, 저, 아르망이야말로 폐하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인물. 그러니 폐하의 그림을 꼭 받아가야겠습니다. 

비록 첫 타자가 콘스탄챠 양이 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정도는 예측 범위였어요! 자, 어서! 이 아르망에게 폐하의 예술혼을 불태워 주세요!”

 

심상치 않은 광기에 짓눌려 공포에 떨고 있던 사령관을 구한 것은 샬럿이었다.

 

“폐하앙~! 제 아름다운 몸을 화폭에 담아주시와요~!”

 

언제나와 같은 수영복을 입고 사령관실을 습격한 샬럿. 

아르망은 쯧- 하며 혀를 차더니 앞을 가로막았다.

 

“후후, 추기경? 당신의 볼품없는 몸매보다는 제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경박한 년. 제 수수하고 아름다운 외모야말로 폐하의 그림체에 어울립니다!”

 

“ㄱ, 경박한 년!? 빨간 모자 난쟁이 같은 기지배가! 이건 양보 못 해요!”

 

방안은 곧 두 금발 미녀의 날카로운 말싸움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더 겁에 질려버린 꼬마 사령관은 책상 아래로 숨어버렸다.

 

두 사람은 그제서야 사령관을 달래기 위해 싸움을 멈추었다. 

 

“ㅍ, 폐하? 저희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흥, 그런 입에 발린 말로 되겠어요? 후후, 폐하~? 가슴 만지실래요?”

 

샬럿이 아르망을 밀쳐내더니 야릇한 목소리로 유혹했다. 살덩이가 출렁이는 소리가 사령관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ㅊ, 천박하긴! 그 칠칠치 못한 가슴 좀 치우세요. 거슬립니다.”

 

“칫, 당신은 가지지 못한 풍만한 가슴이죠.”

 

얼굴이 빨개져서는 샬럿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는 아르망.

샬럿은 우습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약을 올렸다.

 

“둘 다 그만해...”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된 사령관.

 

“아하하, 폐하. 이제 안 싸울게요. 그러니 이제 나와주세요. 네?”

 

“맞아요, 폐하. 이번 순서는 제가 넓은 아량으로 양보할 테니, 부디 착한 아이로 돌아와 주세요!”

 

짧은 침묵이 흐르고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진짜... 안 싸울 거야...?”

““그럼요!””

 

그렇게 둘의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흥, 이번엔 폐하를 생각해서 한발짝 물러난 거에요, 추기경. 다음에는 당신이 양보하세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일이었어요. 뭐, 생각은 해보죠.”

 

“저게 끝까지... 크흠... 폐하, 나중에 뵐게요.”

 

샬럿이 부들대며 나가고, 방안에는 마침내 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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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이 떡상각이래서 써봤는데 음... 재미있나...?

재밌다고 하면 계속 쓰고... 아님 말고 ㅎㅎ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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