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惠王曰 寡人 願安承敎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기꺼이 가르침을 받기 원합니다"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 有以異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에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曰 (無以異也)

(왕이) 말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以刃與政 有以異乎

"그러면,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曰 (無以異也)

왕이 말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ㅡ《맹자, 양혜왕 상편 4장 중》


무이이야 無以異也,


"다를 바가 없다"라는 뜻의 멸망 전의 사자성어로,

"그놈이 그놈이다." 라는 뜻의 옛 한국 속담과도 비슷한 뜻이었다.


지금 로크는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몸에도 불구하고, 

미칠듯이 구역질을 느끼고 있었다.


저 살덩어리 암컷들은 다 똑같았다. 


멸망 전의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멸망 전의 인간들은 그들의 입맛에 따라 같은 사람도 도구로 여기고, 내버리고, 학대하고, 심지어는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기까지 했었다.


심지어, 그들을 도왔고, 사랑했던 은인들을 배신하기도 했다.

저들도 각하를 저버렸다. 

각하의 호의, 사랑, 애정, 진심을 다한 모든 일들을 하루 아침에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로크는 자신이 살덩이들마냥 이를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간절히 생각하며, 

별조차 반짝이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에이다는 사령관이 그렇게 쫒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오르카와 연락을 차단한 상태였고, 

대부분의 AGS가 오르카를 탈주한 상태였다. 


그리고 신임 사령관으로 등극하였다는 자는

그 것조차 제대로 수습하고 있지 못하는 상태였고,

결국 그는 본색을 드러내고 파멸로 질주해갔다.


그러나 그 머저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섹돌' 들이 자신을 다시 내치기로 결정하고 전임 사령관을 찾아 모시기로 한 것을 말이다.


"애초에 그것을 알아챌 지능이 있었다면,

그리 빨리 본색을 드러내지도 않았겠지."


로크는 괜스레 없는 혀를 다 찼다.


그동안 로크는 오기로 오르카호에 남아 있었다. 


그 인간이 어떻게 오르카호를 망가뜨리는가를 자신이 직접 똑똑히 보면서 

어리석은 선택을 저지른 살덩이 암컷들을 

한껏 비웃고 저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바이오로이드 암컷들은

로크에게 전임 사령관을 찾아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로크는 걸쭉한 조롱을 쏴붙혀주고는,

사령관이 몰래 지시해주었던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로크가 그 장소에서 

다시 사령관을 마주했을 때, 

그는...이전의 그는...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철저하고도 교묘하게 뒤틀린 

인간 한 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각하, 그 살덩이 암컷들에게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사형을 내리실 생각입니까?"


로크가 그렇게 질문했을 때 굳게 닫혀 있던 

사령관의 입이 열렸다. 


한때 오르카의 사령관이었고 

다시 사령관으로 추대될 남자가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로크에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로크, 처벌은 필요해.


하지만, 저들을 죽이면 안돼. 


그것은 저들을 오히려 편안하게 해줄 뿐이니까.


난, 멸망 이전의 세계를 혐오했지만, 이제 알겠어.


멸망 이전의 인간들은 알고 있었던 거야.


저들을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사령관이었던 남자는 그렇게 씁쓸하게

결론을 내리고는 다시 타오르는 횃불에 

시선을 집중했다.


불꽃이 장작에 달라붙으며 그 결을 핥아올리고 못 다한 열락으로 타오르는 것을,

사령관은 왠지 모르게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깨달음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고, 

사령관은 고양감에 가득차서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마치 무언가에 씌인 듯이 연설하기 시작했다. 


로크는 속에서 메슥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홀린 듯이 연설에 집중했다.


"자, 로크, 난 멸망 전 인간들을 창조했다는 신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


그는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인간들을 사랑했고, 그 죄를 모조리 대가없이 용서했지.....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지? 응? 


과연 그 용서 이후로 한 치라도 더 나아진 게 

과연 있었나?


또 그들은 같은 죄를 반복하고 또 배신하고를 거듭하였지.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 


변하는 이들도 없었고.


결국 그렇게나 용서를 강조하던 신조차도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면서 거룩한 책을 끝맺잖아?


결국 내 상황이랑 똑같아.


나는 애초에 저들을 인간으로 봐서는 안됐어.


저들은 내 피조물이고, 또 나와의 서약을 

배신하거나, 

아니면 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자들에 불과해.


저들은 내가 허용한 '고난'과 '시험'을 하나도 통과하지 못했어. 


결국 저들은 죄를 지었고.


그렇게 저들은 나를 영원히 실망시키겠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가 잊게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아.


난 저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지나치게 과분한 대우이자, 하나의 세련된 

도피라고 생각해....


그래서 난, 좀 더 세련되고 영원히 

지속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를 고안해냈어.


그 세계를 구성하는 원동력은 바로 '희망'이야.


학대가 공존하면서도, 

거기엔 명분이 함께하고,

언젠간 이 모든 게 나아지리라는 희망의 

실마리가 계속 주어질 거야.


그들이 희망을 포기하려 한다면 희망의 실마리를 계속 주어서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으로 지옥에서의 삶을 이어가도록 할 거야.


내가 느낀 건데,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 입구에 적힌 말조차도, 

참 신의 사랑이 가득한 구절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이곳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희망을 버리면 지옥은 '진짜로' 살 만한 곳이 되거든.


그런데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은 결국 그들에겐 지옥일 수 밖에 없는 거야.


이렇게 간단한 이치라고, 친구."


사령관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불을 붙이고 

차분히 들이마셨다.


시가를 들이마시는 사령관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난 저들이 계속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저 웃음을 짓고, 계속 저들을 살려두고 싶어.


앞으로 오르카호의 입구엔 이런 팻말을 

걸어놓을 생각이야.


'이곳에 들어오는 자여, 희망을 가져라'


그래, 단테가 그린 지옥의 완벽한 안티테제이자 그렇기에 더더욱 완전한 지옥이 탄생하는 거야. 


나만 지금 짜릿함을 느끼고 있니?"


사령관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속삭이며 

타오르는 불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난 신이 되어 나만의 낙원을 누릴 거야.


뭐, 그들에게도 여전히 수많은 신체적 

'은총'과 순간순간의 즐거움이 가득하겠지.


하지만, 더이상 거기에 인격체로서의 

'소통'은 없을 거야. 


오로지 '계시'와  '순종'만 있을 뿐.


저들은 프로그램 덩어리에 불과해.


....진심이 거기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내가 

상병신 중의 상병신이었지. 하핫.


.....아무튼 제 주인을 물어뜯으려 든 개새끼는 

필요가 없다 이거야."


사령관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 꽁초를 발로 

눌러 비벼 껐다.


"...그리고 집이 털릴 때 주인을 못 지킨 개새끼들도 

다를 바는 없고. 맞지? 로크?


아...그래, 그것들이 붙잡아 두었다는 그놈 말이야?

뭐? 비밀의 방을 하나 더 만들고...거기에서 걔들을 학대해?

음...그놈은 진짜 병신 새끼네.


기왕 뺏었으면 좀 잘해보지, 

그것도 못 참아서 

그것들 따위가 감히 그것들이 쫒아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게 하냐...

그리고 그딴 것들을 학대할 마음이 드는 게 신기하다...


차라리 죽은 나무를 후들겨 패는 게 더 개운하고 

시원하겠는데?


...아! 그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냐고?


아...그래...그러면...흠.....


본보기도 보일 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위는 모조리 도려낸 후에 함내에서 조리돌림하도록 해.


눈코입은 물론이고, 팔다리와 그것까지도.

대신에 성대는 남겨놔. 

비명소리를 들어야 하니까.


.....감정은 없어. 진짜로. 그저, 본보기일 뿐이야.


원래 경고음을 틀어놔야, 적지에서도 

공격을 삼가는 법이거든?


내 영역을 침범한 데에 대한 '본보기'라고나 할까?


반드시 주동자들한테서 세세한 '감상문'도 받아오는 것도 잊지 말고."


사령관은 그제서야 퍽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로크는 살덩어리들이 오한이 일어난다는 

표현을 어디다 쓰는지 이제 알 것만 같았다.


슬슬 사령관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게 자신의 심경을 진술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저딴 것들 때문에 아파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게 웃긴 일이군.

음...그것들을 뭐라 다시 불러야 할까...


사령관은 생각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지은 민요 같은 노랫 가락을 계속 흥얼거렸다.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그들이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다시 겪게 하자.

그대로 느끼게 하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잊어버리도록 하자.

자신이 누군지를 잊고 자신을 원망하게 하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증오하게 될 무렵에서야

그들이 그들 자신이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하자!

그들이 미쳐가도록 하자.

스스로에 대한 증오로 미치도록 하자.

그들이 안식을 구하게 하도록 하자.

내게서 안식을 구하게 하자.

그들이 내게서 쉬게 하자...


그 다음 날부터, 지옥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은 악마들이 아니라

그들의 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천국'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


진짜 진짜 매우면서도 잔잔한 감성으로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일단 빌드업하는 화인데다,

다른 작품들이 다뤄준 상황들은 빨리 요약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날림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모조리 어떤 존재의 영혼 밑바닥까지도 모욕당하고 찢겨지는,

그런 매운 맛이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도 

매우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이 글은 제가 제시하는 정답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에요.


어디까지 갈 수 있어? 어디가 밑바닥이야?

이런 방법은 어때? 


여러분도 댓글로 숨기지 말고 인간의 창의력을 밑바닥까지 보여 주시길 권장합니다.


료나나 고어보다도 정신적인 추락과 벗어날 수 없는 학대, 

버릴 수 없는 희망의 콜라보로 빚어진 지옥이자 천국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단련이 덜 된 것만 같네요.


아무튼...열심히 맵게 조리해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