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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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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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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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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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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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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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아닌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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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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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후, 오르카 호에 비상이 걸렸다.

  

  메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급작스럽게 열이 오른 메이는 둠스데이의 숙소에서 나이트 앤젤의 간호를 받으며 쉬게 되었고, 비몽사몽한 그녀의 자백으로 밤에 몰래 빠져나가 사령관과 바다를 보았다는 것이 알려졌다.

  

  닥터와 라비아타는 이미 일어난 일을 추궁해도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몇 번이나 계속된 사령관의 무단이탈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페로는 사령관을 찾아 오르카 호를 배회했다.

  

  “산 채로 잡아오세요.”

  

  페로는 오르카 호에 남아있는 한가한 바이오로이드를 총동원하여 사령관을 찾아 나섰고, 졸지에 사령관은 자신의 호위기인 페로를 피해 숨어지내야 했다.

  

  페로가 사령관 수색을 시작한 지 세 시간 후. 페로는 사령관을 포획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도 리리스의 방에서.

  

  “어떻게 언니가…”

  

  어떻게 오르카 호에서 사령관이 자신들에게서 세 시간이나 눈에 띄지도 않고 도망 다닐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하던 페로는 밖에서 펜리르와 함께 눈싸움하던 하치코를 불러 사령관의 냄새를 추적하게 했다.

  

  “주인님은 여기 있어!”

  

  사령관의 냄새를 쫓아 오르카 호 이곳저곳을 배회한 하치코는 어느 문 앞에 멈춰 섰고, 페로는 미심쩍은 눈으로 하치코를 바라보았다.

  

  “언니의… 방?”

  

  냄새를 추적한 끝에 도달한 곳은 리리스의 방문 앞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리리스의 방문을 연 페로가 본 것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령관과 그에게 교태를 부리는 리리스의 모습이었다.

  

  허탈함과 배신당했다는 분노에 가득 찬 페로는 그 자리에서 리리스와 사령관에게 잔소리를 쏟아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으신가요, 언니! 오르카 호의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주인님을 찾아 헤매고 있는 와중에 경호대장인 언니께서 주인님을 숨겨주시다니요! 주인님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지는 못할망정 주인님을 숨겨주시다니 어떻게…!”

  

  스스로도 잘못한 것을 알기는 하는지 리리스는 입도 뻥끗 못 하고 정좌한 채 페로의 잔소리를 들었고, 사령관은 리리스가 잔소리를 듣는 도중 탈출을 감행했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페로에게 잡히고 말았다.

  

  “어딜 가시나요! 주인님께서는 스스로의 안위에 둔감하신 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심하십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섬에 아무리 건강한 바이오로이드는 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인님께서는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시고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셔야…!”

  

  페로의 잔소리는 한 시간을 넘게 이어졌고, 사령관과 리리스는 페로와 함께 놀고 싶다고 찾아온 하치코가 그녀를 거의 반강제로 데려가고 나서야 그녀의 잔소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그 날 사령관은 저녁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을 놓고 간신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멍한 그의 얼굴에 사람들은 페로에게 달려가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들볶은 거냐고 따졌고, 물을 가져다준 자신에게

  

  “아. 고마워, 하치코.”

  

  라고 말하는 사령관을 본 페로는 역시 자신이 너무 심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깨작깨작 케이크를 집어 먹는 사령관 옆을 식판을 든 나이트 앤젤이 지나갔다. 영혼을 심해 저 밑바닥에 처박아 둔 듯 넋을 놓고 있는 사령관을 보고 나이트 앤젤이 얼굴을 팍 찌푸렸다.

  

  “도대체 뭐하고 계신 거예요?”

  

  “아, 나이트 앤젤.”

  

  나이트 앤젤이 사령관의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요즘 공기 원자를 찾는 취미가 생기셨나요? 왜 그렇게 멍하니 계신 거예요?”

  

  “…글쎄다.”

  

  “며칠 전에 우리 대장이랑 몰래 밖으로 빠져나갔다면서요? 대장이 무슨 말 안 하던가요?”

  

  “아쉽게도 바다를 보다가 페로가 찾아와서 나는 먼저 들어갔지. 몰래 빠져나갔다고 페로한테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거든.”

  

  “결국은 잔소리를 들으셨네요. 여자를 바람 맞히니 그런 거에요. 그건 그렇고, 오늘 혼나는 걸 들어보니 페로 양은 사령관이 바다로 몰래 나간 걸 모르는 눈치던데요?”

  

  “그랬나? 인기척만 보고 페로라고 생각했거든. 그럼 페로가 아니었나 보지.”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말을 돌리는 사령관을 보며 나이트 앤젤이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 남자, 틀림없이 뭘 숨기고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메이 대장의 저녁을 가져다줘야 하는 데 말이죠.”

  

  “들고 있는 음식이 그거야? 지금 가져다줘야 하는 거 아냐?”

  

  “아뇨. 이건 제 저녁이에요. 저도 방금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저 대신 사령관이 메이 대장에게 저녁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저녁을 먼저 가져다주자니 저녁 시간이 끝날 것 같고, 제가 다 먹고 가져다주기에는 너무 늦으니까요.”

  

  “아… 나는 조금 바쁠 것 같은…”

  

  “부! 탁! 드립니다!”

  

  답지 않게 강경한 태도의 나이트 앤젤을 보며 사령관이 진땀을 흘렸다. 하긴. 메이가 병에 걸리고 나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한 번쯤은 찾아가 봐야지. 나이트 앤젤이 저녁을 못 먹는 것도 조금 그렇고.

  

  “그러면 내가 가볼게. 나이트 앤젤은 저녁 먹고 있어.”

  

  그렇게 말한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받아 식당 밖으로 사라졌다. 사령관이 식당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지켜본 나이트 앤젤이 피식 웃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자신 옆으로 음식을 받으러 가는 하치코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 하치코. 아직 저녁을 안 먹었나요?”

  

  “응! 하치코는 방금까지 밖에서 펜리르랑 페로랑 같이 눈사람 만들고 왔어! 이마안큼 큰 눈사람을 만들었다구!”

  

  팔을 크게 펼치며 원을 그리는 하치코를 보며 나이트 앤젤이 웃으며 자신의 식판을 건넸다.

  

  “그러면 이거 가져가세요. 받은 지 얼마 안돼서 아직 식지 않았을 거에요. 줄 서서 받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하치코가 나이트 앤젤이 건네는 음식을 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식판을 받아들었다.

  

  “와아! 고마워, 나이트 앤젤 언니! 그런데 언니는 저녁 안 먹어?”

  

  하치코의 질문에 나이트 앤젤이 피식 웃으며 검지로 머리카락을 꼬며 대답했다.

  

  “저는 저녁을 빨리 먹었거든요.”



  *

  메이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이마로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힘겹게 눈을 뜨자 탁한 조명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령관의 얼굴이 보였다.

  

  “사령…관…?”

  

  “여, 메이. 저녁을 가져왔어.”

  

  눈을 뜬 메이를 본 사령관이 웃으며 침대에 달린 식탁 위에 음식을 올려놓았다. 메이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도, 팔도 무거웠다.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묶어놓은 듯했다.

  

  “힘들면 그냥 누워있어. 내가 먹여줄게.”

  

  사령관이 침대를 조작해 침대 윗부분을 일으켰다. 땀을 닦고 젖은 앞머리를 정리한 사령관이 죽을 떠 메이의 입가로 가져갔다. 간신히 입을 벌려 사령관이 건네는 죽을 먹은 메이가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오늘 햄버그라서… 나이트 앤젤에게 많이 가져오라고 했는데…”

  

  “햄버그?”

  

  그러고 보니 나이트 앤젤의 식판에 햄버그가 한가득이었다. 나이트 앤젤은 햄버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 역시 그 음식은 메이에게 가져다주려는 거였나. 감쪽같이 당했군.

  

  “일부러 환자식으로 준비한 거니까 불만 말고 전부 다 먹어. 환자가 무슨 햄버그야?”

  

  메이의 불만을 무시한 사령관이 그녀에게 죽을 건넸다. 메이는 햄버그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불만인 듯했지만 어차피 이 몸 상태로는 햄버그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는지 조용히 사령관이 건네는 죽을 먹었다.

  

  메이가 죽을 다 먹자 사령관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사령관이 다시 침대를 눕히고 메이가 침대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아직 일도 남았고, 설거지 시작하기 전에 그릇도 가져다 줘야 하니 나는 이만 가볼게.”

  

  사령관이 그릇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떠나가는 사령관을 붙잡았다. 메이가 사령관을 올려다보며 가슴 깊숙이 끓어오르는 감정의 말을 내뱉는다

  

  “사령관…!”

  

  간절하고.

  

  “나는 사령관이…!”

  

  애달프게.

  

  허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령관이 그녀의 손을 잡아 이불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사령관이 말한다.

  

  “아직 열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무리하지 마. 조금 더 자 둬야지.”

  

  “사령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녀의 감정을 그에게 전하고 싶지만, 무거운 몸이, 뜨거운 머리가 그것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부드러운 사령관의 손길에 간절한 그녀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속절없이 잠을 청했다.



  *

  늦은 밤. 사령관실 앞.

  

  페로가 안절부절못하며 사령관실 문 앞을 서성인다. 지나가던 리리스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달려온다.

  

  “무슨 일인가요, 페로?”

  

  “아, 언니!”

  

  페로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리리스에게 매달리며 말한다.

  

  “언니, 주인님께서 홀로 술을 드시고 계세요. 호위기인 저까지 밖으로 물리고 혼자서…”

  

  “주인님께서 가끔 홀로 술을 드실 때가 있으시죠. 오늘도 그저 그런 기분이신 걸 거에요.”

  

  “하지만 저렇게 많이 드시는 건 처음 보는 걸요! 어쩌면 심중에 무슨 일이 있으신 건…”

  

  리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그저 주인님을 홀로 놔두죠.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실 테니까.”



  *

  하늘 높게 떠오른 달이 천천히 기울어져 가는 새벽.

  

  메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조금은 머리가 가벼워졌다. 아직 열이 남아있긴 했지만 상당히 내린 듯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금은 힘들긴 하지만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령관을 만나고 싶어.”

  

  그를 만나고 싶다. 몇 번이나 전하지 못했던 이 애달픈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메이가 비틀거리며 사령관실로 향했다. 몇 번이나 넘어졌지만 멈추지 않고 사령관실로 향했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사령관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술 냄새. 코가 마비될 정도로 독한 술 냄새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사령관…”

  

  사령관이 술에 취해 책상 위에 쓰러져 있었다. 메이가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책상과 바닥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병이 굴러다녔다. 메이가 책상 위의 빈 병을 들어보았다. 몸이 아픈 메이도 냄새로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독한 술이었다.

  

  왜 술을 마신 거야?

  

  뭐가 그렇게 슬펐어?

  

  사령관이 인기척에 몸을 일으켰다. 그의 숨결에서도 술 냄새가 진동했다. 메이를 본 사령관이 씨익 웃었다. 평소와 달리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많이 마신 듯했다.

  

  “어라, 메이 아니야.”

  

  “사령관.”

  

  “으응?”

  

  “사령관.”

  

  무섭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말한다는 것이.

  

  나는, 이렇게나 너를 사랑하는데.

  

  “나는…”

  

  너는 그렇지 않을까 봐.

  

  “사령관, 나는…”

  

  너에게 나는, 그저 수많은 바이오로이드 중 하나일까 봐.

  

  “사랑해…”

  

  나는 너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봐.

  

  “사랑해, 사령관.”

  

  하지만, 더 이상 참는 건 그만할래.

  

  이 애달픈 감정을 내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나는… 너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네가, 내 특별한 사람이 되어 주길 바라.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이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치기 시작했어.”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는 기쁨, 그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기대, 그에게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기쁨을, 기대를, 두려움을 품고 메이는 조심스레 사령관에게 묻는다.

  

  “사령관은… 너는, 나를 사랑해…?”

  

  그녀의 물음에 사령관이 살며시 웃는다. 술에 취해 풀린 눈으로, 거의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로 그가 말한다.

  

  “아니.”

  

  메이를 향한 그의 말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제 주제를 모르고 성큼 찾아든 겨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