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에게 감정이라는게 있긴 하다면 말이다.

사령관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길 바래서 그를 따라왔건만, 오르카호에서 로크가 볼 수 있는건 자신의 목숨과 인류가 걸린 싸움에서 소극적으로 희생자를 줄이는데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작전 뿐이었다. 이치와 논리를 따지는 로크에게 있어서, 사령관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우행에 불과했다.

이러한 불만을 품은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들, 그 중에서도 지휘라는 막중한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지휘관 개체들의 의견 역시 동일했다. 멸망의 메이는 매번 작전 회의를 할 때마다 악을 쓰기 일쑤였다. 자신의 부하들을 아끼는 축인 마리와 레오나 역시 작전을 보고서 눈썹을 꿈틀거리기 일쑤였다. 칸은 자신의 무용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인지 사령관의 지휘에 큰 불만을 품지는 않았지만 그녀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지금대로면 승리는 꿈 속의 꿈일 뿐이리라 느끼고 있었다. 무적의 용은 아예 작전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말로는 자신은 외부 작전 때문에 바쁘다 하였지만 속내는 뻔했다. 승리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는 어리석은 작전에는 신경쓰는게 낭비라는 것이었다. 중상자만 발생해도 후퇴를 결정하는 작전에서 대체 어떻게 승리를 쟁취하겠는가.

로크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AGS들을 이용한 작전에서는 그는 무능은 커녕 로크가 아는 누구보다도 우수한 전술지휘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매순간마다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어낼지 파악하는 신속한 판단력, 적의 의도를 파악하는 통찰력은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재능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일, 사령관이 AGS만으로 작전을 진행하겠다고 한다면 로크와 바이오로이드들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실제로 바이오로이드들을 이용한 작전의 실패를 AGS의 승리를 통해 메꿔가고 있는 것이 오르카의 현실이었다. 사령관에게 바이오로이드들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러한 지휘를 한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바이오로이드들에겐 기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째서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다치는 것까지는 감수하는, 매번 실패뿐인 작전을 계속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인가.

이게 바로 로크와 지휘관들이 가진 공통적인 불만사항이었다.

지휘관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무의미한 바지사장이 아니란게 증명은 되기에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들지 않는다 치자. 로크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는 이러한 무의미한 희생을 그저 바라만 보고있는 알바트로스였다. 지금 오르카에서 사령관의 부재시 그 빈자리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지성과 지휘력을 가진 알바트로스가 지금 상황에 대해서 사령관에게 어떠한 의견도 표출하지 않는 점이 로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로크는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로 했다.

"그래, 그래서 내게 질문하기 위해 찾아온거로군."

"그렇습니다, 각하."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다른 지휘관들을 배려할 이유를 찾지 못한 로크는 사령관에게 지금 현 상황에 대해서 지휘관들이 가지는 불만과 자신의 의문을 정면으로 부딛혔다. 로크는 사령관이 이 대화를 계기로 각성하지 않으면 더 이상 오르카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선 마지막 대화를 시작했다.

"각하의 행동에는 합리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만일 각하께서 어리석은 자에 불과하였다면 놀랍지 않지만, 제가 판단하기론 각하의 지성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각하께 답을 요구합니다. 왜 그런 무의미한 낭비를 멸망의 기로에서 인류를 이끌어야 할 각하가 반복하는 것입니까?"

"하아..."

사령관은 깊히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 맥이 빠진듯이 의자에 앉은 사령관은 탁자 위의 버튼을 눌렀다. 빠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소리는 무엇입니까?"

"탈론 페더가 설치해놓은 카메라와 도청기를 제거했지."

의자에 등을 깊숙히 기댄 사령관은 한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뜨고선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알바트로스에 비견될 정도로 우월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았던건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일견 모욕으로 들릴 대사지만 로크는 반응하지 않았다. 알바트로스의 지능을 인정하는 것도 있지만 감정이 없는 로크에게 있어서 화라는 감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로크, 너는 우리가 추구하는 승리가 무엇이라 생각하지?"

"철충과 별의 아이의 소멸, 그리고 인류의 재번영이지요."

"그런 뻔한 말 말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인류의 재번영이 뭐냐는거지."

깍지를 끼고선 탁자에 몸을 기대고 말하는 사령관.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번득인 지성의 빛에 로크는 이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C구역이라던가 더치걸을 보면서 생각했지. 당대 인류는 그 잠재력을 발휘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철충에게 그리 간단히 멸망한거야. 지금 이렇게 세가 약하진 오르카호조차 적절한 작전과 전략으로 승기를 잡아가는데 지금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와 기술력을 자랑하던 인류가 패배한건 이유가 있는거지. 그러니 과거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은 무의미해. 하지만 과거를 그저 부정만 해서도 안되지. 그 실패를 이해하고 넘어서야만 해.

그래서 난 필사적으로 생각했어.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의 모습이 대체 어떠해야 할지. 솔직히 말하자면 철충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도 논의해보고 싶었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은 고작해야 과거 인류는 싫다 정도 밖에 모르더군. 그냥 내가 하자는대로 따라올 뿐이야. 그런 면에선 차라리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나았지. 그 여자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라도 그리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펙스 회장들을 부활시킨 후 붙잡은 다음에 회유라도 해볼까 싶을 정도로 막막했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나를 따르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인류와 동등한 위치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 인류가 어리석게 그 가능성과 잠재력을 막지만 않았어도, 바이오로이드들은 인류의 적법한 후예로서 더 위대한 영광을 성취할 수 있었을거야. 구인류는 그야말로 바보 그 자체라니까."

조소를 흘리는 사령관을 말없이 바라보는 로크. 허나 사고 모듈이 맹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로크는 곧 사령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했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그림의 대략적인 윤곽을 이해하고나서도 로크는 여전히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과거 인류를 벗어나 새로운 문명의 아버지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그가 저지르는 실책-이제는 그게 실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각하의 이야기는 이해했으나, 그것이 왜 바이오로이드들을 이용한 작전과 연관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간단한거야.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스스로의 생명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

"그렇다면 오히려 바이오로이드들을 죽여야 하는것 아닙니까?"

"아니, 그렇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 나를 미워하면 미워했지 그건 이해하지 못할거다.

내가 지니야와 실피드들의 머리 위로 핵을 쏘라고 한다고 메이가 생명의 가치로 반대할까?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을 몇명 희생시켜 작전을 성공시킨다면 마리가 그걸 실패라고 여길까?

아니, 그녀들은 그걸 생명의 가치를 바탕으로 잘못되었다 여기지 않을거야. 왜냐면 우린 전쟁 중이고 그녀들은 병사거든. 승리할 수만 있다면 죽음조차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이 그녀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들의 가치야.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게 틀렸다곤 안하겠어. 하지만 그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옳은 이야기지, 과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일까? 스스로의 목숨을 아껴서 두려움을 가지는게 틀린 일인가? 누군가의 목숨을 희생시켜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런 생각이 구인류를 만들어낸거지.

그래서 난 소수라도 중상을 입고선 자신의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가지길 바랐고, 그 공포심을 바탕으로 목숨의 가치에 대해 자각하길 바랐어. 실제로 꽤 먹혔지. 자살임무나 다름없는 작전에 참가하던 밴시가 나한테 처음으로 죽는게 두렵다고 고백했어. 속으론 환호성을 질렀지. 내 계획이 먹혔다는 거니까."

"그래서 중상자까지만 허용하신 겁니까?"

"그래. 만약 사망자가 나왔다면 그냥 작전 실패로 여겨 아쉽다고 생각하거나 작전이 성공했다면 영웅적 희생으로 미화되었을거야. 다시 말하지만 난 그게 완전히 틀린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전쟁이 끝난 후, 그런 개념으로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써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을 뿐. 그래서 무리를 하더라도 중상자까지는 허용했지."

"그럼 알바트로스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이로군요. 그래서 아무 말이 없었던 거고."

"그래, 알바트로스는 내가 바이오로이드들을 다루는 동안 AGS를 이용해 전쟁의 승기를 잡는다는 막대한 임무를 맡겼어. 알바트로스가 밖으로 도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덕분에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큰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고. 예상보다 훨씬 그 일을 잘 수행해주고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야.

근데말이야, 알바트로스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고서도 내 의도를 다 이해했는데, 로크 넌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알바트로스는 지휘관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야 호위용 로봇이니 전쟁에 대해 몰랐고, 알바트로스는 전쟁에 익숙하니 각하의 전략을 이해했겠죠."

"그렇군. 그럼 로크 너도 이해했겠지. 동의할지 아닐지는 네 선택이야. 하지만 이거 하나는 지켜줬으면 하는군. 절대로 이 일을 발설하지 말것. 그렇다면 널 반역자로 간주하고 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냥하겠어."

"걱정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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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작전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성공 확률이 없는 일에 쓸데없이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받아들여선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로크는 이해했다.

사령관은, 미래로의 길을 이끌어야 할 자는

그 길에서 한 점의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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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가 활약 못하는게 스토리상 무적의 용과 비슷한 이유라면 어떨까, 그리고 활약 안나오는게 너무 아쉬웠엉...


희생이 큰 작전에 AGS 투입시키면서 굳이 섹돌 쓰는거 보면 왜그럴까 싶어서 뇌내망상 한번 굴려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