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음성이야 오빠!"


주말 아침부터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닥터를 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두서 없이 말하지 말라고. 동인음성이라니 그게 뭔데...


처음 듣는 단어지만 오르카호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나의 감이 말해준다.

여기서 선택지를 잘못 골랐다간 심신이 피폐해진다고.


오르카에 승선한 이후로 얻은 수많은 교훈중 하나는 바로 업무 외에 일을 벌리면 심신이 피곤해진다는 것.

그동안 크고작은 해프닝 때문에 닥터의 신세를 많이 졌다.


내가 뭔가를 저지르면 미래에서 온 고양이 로봇마냥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최대한 수습을 해주는 닥터.

툴툴거리면서도 있는 힘껏 나를 돕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사랑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솓아오른다.

닥터 완전 천사..


그렇기에 내 오지랖으로 인해 또 다시 닥터의 손을 빌리게 된다면 정말 면목이 없는것이다.

이래보여도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남자,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자고 다짐했건만 이번에는 닥터쪽이 문제다.

내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닥터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의 다짐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럴땐 단호해야겠지.


"안돼 안해줘 돌아가."


더 이상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단박에 거절하자 닥터가 입을 삐죽 내민다.


"히잉~ 들어보지도 않고 단번에 거절하다니 차가워졌네 오빠.. 닥터는 오빠를 이렇게 기른적이 없는데..."


닥터에게 길러진다니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너무해 오빠..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생 부탁 하나 못들어 주는거야?"


자기 입으로 사랑스럽고 귀엽다니 닥터 정도의 또래가 아니면 절대 용납 못할 발언이다.

그러면서 입으로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우는 시늉을 하다니.. 날이 갈수록 잔망스러워져서 오빠는 걱정이야.


"그동안 내가 오빠 뒷바라지 해준게 얼만데.."


닥터는 어느새 눈물이 맺힌 눈을 치켜뜨며 나를 올려다 본다.

그런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너무 귀엽잖아! 항복! 닥터 너무 귀여워! 우리 닥터 하고싶은거 다해!


"휴.. 알았어 알았어. 무슨 얘기인지 들어는 볼테니까"


들어는 본다고 했지만 여기까지 오면 사실상 허락이나 다름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귀여운 여동생에게 이길 수 있는 오빠가 있을리 없지.

지금도 이렇게 요망한데 나중엔 리리스를 뛰어넘는게 아닐까? 그런 무서운 상상을 하며 마지못해 닥터를 무릎에 앉힌다.

그렇게 나의 굳은 다짐은 반년도 가지않아 산산조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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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오빠? 단순한 생존? 철충이 미워서? 아니면 인류의 재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오빠 때문이야. 오빠가 사령관이어서 우리는 힘낼 수 있는거야."


에이 뭐 그런걸 가지고..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런말을 들으면 부끄럽다. 씰룩씰룩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바이오로이드들과 몸을 섞으면서 이런거에 내성이 생긴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오빠는 우리에게 받기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이상으로 오빠를 의지하고 있어."


"오르카호는 개성이 넘치는 개체들 투성이잖아? 오빠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분이 일어났을거야."


그말을 들으니 일부 개체들이 서로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연상 된다.

물과 기름이나 다름없는 개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건 내가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어. 칭찬받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우리 모두에게 이런 욕구가 심어져 있어. 인정 안하는 개체도 있지만"


닥터의 말에 바이오로이드가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체감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대로 나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빠와 더 가까워지고 교감하는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포상이자 명예야"


하면서 닥터는 폭하고 내 품에 머리를 파묻는다.


"슬픈 일이지만 모두가 그런 영예를 누릴 수 있는건 아니야... 오빠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사랑을 나눠주는건 사실상 불가능해."


"오르카는 규모가 크고 앞으로도 더 커질거야. 나중이 되면 오빠의 얼굴조차 못보는 개체도 생길거고..."


닥터는 슬픈 목소리로 내가 애써 외면해온 사실을 상기시킨다.

확실히 그렇다. 나는 모든 브라우니의 번호를 외우지 못한다. 모든 레프리콘의 하소연을 들을 수는 없다.

해바라기는 태양만을 바라보지만 태양은 해바라기에게만 빛을 비추진 않는다.

모든 개체가 컴패니언이나 배틀메이드 만큼 나와 가까워 질수는 없는것이다.


자신들을 한번도 봐준적 없는 나를 위해 최전선에 서는 그녀들이 안타까웠다.

내게 있어서 그녀들 모두가 소중하다.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미숙한 시절에는 미안한 마음에 그녀들에게 작게나마 보답하고자 급양개선을 명목으로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이야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되지만 당시의 마음만은 지금도 변치 않았다.


"하아.. 오빠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천성이라는거겠지. 앞으로도 오빠는 브라우니 하나에 웃고 울거야 분명."


마리와 레오나가 항상 지적한다. 모든 작전은 크건작건 아군의 손실을 전제로 하는것이 기본이라고.

요컨데 희생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다. 대원의 손망실에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분명 차질이 생길것이다.


나는 고집스럽게도 그것만은 타협하지 않았다.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다. 효율도 나쁘겠지.

지휘관들의 조언을 들어 작전을 펼쳤다면 지금보다 더 큰 성과를 더 빨리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확실히 비효율적이지만 그럼으로 얻을 수 있는것도 분명 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니 나의 아집일지도 모르나 그런 이상을 추구했기에 지금의 오르카가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오빠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귀여운 여동생 닥터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답니다~~"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자 내 얼굴을 힐끗힐끗 보던 닥터가 힘껏 목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자기 입으로 귀엽다고 하지말라고.. 그런건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거람.


"크흠흠~ 흠흠! 사령관에게 인정받고 싶슴다~ 칭찬받고 싶슴다~~ 하지만 인류의 사령관은 저 하늘의 별! 

저따위 일개 브라우니는 말도 섞을수 없슴다~ 어떻게 해야 좋은검까?!"


엥? 갑자기 브라우니 성대모사? 뭐야 엄청 잘하잖아 나중에 다른것도 시켜보자!

의외의 특기를 뽐내는 닥터를 보며 감탄하고 있자 사령관실의 문이 열리더니


"그 고민!! 잘 받았습니다!! 이 탈론페더가 해결해 드리죠!!"


탈론페더가 눈을 반짝이며 들이닥쳤다.

자로 잰 듯한 타이밍에 등장한 페더를 보고 있자니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다.

어라? 이 텐션의 반전은 뭐야? 설마 너희들 처음부터 짜고 친거야? 가지고 논거야? 그런거야?

나의 순결한 마음을 이렇게 짓밟다니.. 이이이이녀석들 각오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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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 그리다 삘받아서 썼는데 쓰고 보니까 라노벨 열화 카피네 현자타임옴 올리고 후회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