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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링크 : 멸망전 미식회 3화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4명의 콘스탄챠는 각자의 앞에 식기를 세팅하고,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식전 빵이 담긴 바구니와 와인 몇 병을 놓았다.


“식전 빵과 와인, 식기의 배치를 보니 프랑스식 코스요리인가요?”

“네 맞아요. 오늘은 7코스를 준비했어요.”


7코스 요리는 그야말로 미식의 정통. 5코스, 9코스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닌 식사방법이다. 


오르되브르, 수프, 피시, 메인, 샐러드, 디저트, 음료 순으로 구성되는 코스인데, 나오는 음식이 7가지나 되는 탓에 코스를 마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식회의 첫 포문을 여는 자리이니 전통적인 구성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맛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현해내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예냐도 코스의 구성에 도움을 줬나보죠?”

“맞아요, 소완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요리엔 일가견이 있는지라. 음- 오늘따라 먹물빵이 잘되었네요.”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과 부들부들한 속살에서 모락모락 나오는 김을 보자니 애피타이저를 먹기 전임에도 군침이 돌아, 우리는 예냐를 따라 홀린 듯이 빵을 집어 들었다.


아쉽게도 먹물 빵은 요시츠네와 예냐가 가져간 것으로 동이나서 나와 하나는 각자 호밀 빵과 버터 롤을 가져왔다.


버터 롤을 반으로 찢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치아에 부드럽게 찢기는 질감 속에서 은근한 버터의 향이 고소한 밀의 향을 감싸주어 부드러운 향이 입안을 감쌌다.


그 향을 음미하고 있자니, 다른 빵들에도 관심이 갔지만 7가지의 음식을 먹으려면 위장을 충분히 비워둬야 한다.


아쉬움에 나는 식전주로 목을 축였다. 식전주로 나온 와인은 그 역할에 충실하게 낮은 도수와 부드럽고 은은하게 달콤한 맛이 났고, 떫은맛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와. 제빵은 소완의 주 분야가 아닌데도 이정도 퀄리티라니! 감동인데요.”

“미식에 미친 아가씨의 휘하에 있는 소완은 역시 다르다는 건가…”


식전빵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코스의 기대감을 저만치 높여버렸다. 이제 이 기대감을 만족으로 바꾸어나갈지, 아니면 그저그런 맛있는 음식이 나올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이번에 나온 것은 오르되브르. 흔히들 알고 있는 애피타이저였다.


“…이거, 카프레제인가요? 아니 이건 토마토가 아니라 연어…”


확실히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그 모습을 착각할 만했다.


포를 뜨듯이 얇게 썰어낸 연어살 위에는 그보다 더 얇게 썰어낸 모짜렐라 치즈를 얹고 그것을 3번 반복해내어, 마지막에는 발사믹과 올리브 오일을 뿌려내고 바질 잎으로 장식을 한 모습.


마치 카프레제를 위로 쌓는다면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처음에 하나가 얇게 썰어낸 연어를 토마토로 착각할만했다.


“이걸 보니 긴장해야겠군요. 카프레제에서 약간의 변주를 주어 그대로 오르되브르로 배치할 자신감이라면…”


나는 이 연어-카프레제의 탑의 일부분을 조심스럽게 잘라 한 번에 입안으로 가져갔다.


얇게 썰린 연어와 모짜렐라 치즈는 입안에서 쉬이 부서지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아 종합적인 맛을 표현해내었다. 그리고 단순히 데코인줄 알았던 바질은 카프레제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해내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연어-카프레제와 카프레제를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토마토가 아닌 연어의 맛이 더욱 부각되는 것은 소완의 의도에 걸려들었다는 것이겠지.


“…이거 일부러 이런 구도를 잡으신 거죠? 연어-카프레제와 카프레제의 차이를 느끼라는.”

“훗. 정답이에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머릿속의 이미지가 오히려 느끼고 있는 감각을 증폭 시켜 주는 걸 의도했어요.”

“거기다가 진이 말한 이 ‘연어-카프레제’는 기존의 카프레제와는 다른 점이 명확히 부각되는군.”


요시츠네는 연어-카프레제를 마저 입안에 털어넣고 말을 이었다.


“먹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오르되브르에 걸맞게 아주 얇게 썰어냈어. 기존의 카프레제처럼 요리했다면…메인까지 가기도 전에 만족감을 느껴버리고 그 이후에는 질릴 수도 있는걸 생각한 거지.”

“…”

“…”


서로가 가진 미식에 관한 지식이 뛰어났기에, 우리들은 서로가 느낀 감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런 기분이구나, 이래서 예냐는 우리를 모은 거였어.


“이 미식회를 통해서 앞으로 더 발전할 우리 주방장들의 실력에 기대가 되네요.”

“음음. 앞으로도 계속 미식회에 참가해야겠어요.”


그릇에 발사믹 소스의 흔적조차도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먹어 치운 우리는 마찬가지로 참신하면서 뛰어난 맛을 가진 수프와 피시를 먹고, 메인을 기다리면서 와인을 마셨다.


“후, 정말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질주였네요.”

“뛰어난 셰프의 코스를 맛볼 때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죠. 그런 실력을 갖춘 셰프인데 이렇게 한 숨 돌릴 시간을 줬다는 건…”


분명, 메인은 앞에서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리라. 

그 사실을 알아차린 우리는 긴장과 기대를 동시에 담아 주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콘스탄챠들이 서빙을 시작했다.


“비프 라구 볼로녜세와 여러 종류의 치즈를 끼얹은 파르파델레입니다.”

“…”


그 전까지의 디쉬들은 현대적이면서도 세심한 감각으로 데코레이션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 파르파델레는 마치 시카고 피자를 처음 본 이탈리아인의 감성을 이해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프랑스식 코스요리에 속했다고 하기엔 엄청난 비주얼.


꿀꺽-


넓적한 파르파델레 면은 자연스럽게 깔려 있었고, 그 위로는 군침을 자극하는 라구 소스. 마지막으로 그 위를 덮은 여러 종류의 치즈가 갓 만들어진 비프 라구 볼로녜세의 열기에 의해 은은하게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 위를 압도하는 분위기의 엄청난 음식을 보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파스타를 입안으로 가져가는 것뿐.


쩝-

후릅-


라구 소스의 농후한 풍미는 여러 종류의 치즈와 섞여 마치 혀가 괴로워지는 듯할 정도로 쉬지 않고 때려대는 듯했다. 그 정도로 풍미의 향연이 끊이지 않고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탱글한 파르파델레 면은 치즈 소스와 라구 소스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어, 소완의 제면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프랑스식 코스요리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이단아 적인 메뉴 선정에서 나는 거듭 놀라움을 느끼면서 계속해서 파스타를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굉장하네요. 메뉴의 완성도도 그렇고, 프랑스식 코스요리라고 한 후에 이런 메뉴를 내놓는 그 대범함까지.”

“저는 메뉴가 나오는 순간 배신감까지 느꼈다니까요? 물론 맛은 배신하지 않았지만…”

“후후, 여러분이 코스를 즐기셔서 저도 기쁘네요.”


샐러드로 메인의 여운을 가볍게 씻은 우리는 입안에 약하게 남은 파르파델레의 존재감을 아직 느끼고 있었다.


“이제 더 놀랄 힘도 없는데…디저트는 또 어떤 메뉴가 나올지 기대되네요.”

“메인의 존재감이 너무 컸으니, 디저트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조차 못하겠는데요.”


그리고 나온 것은 어딜봐도 평범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응?”

“어?”

“…”


그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스쿱으로 퍼낸 모양에 그 무엇도 첨가되지 않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여태까지의 메뉴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 넣었다.

하지만 내 입안에서 바닐라의 단 맛이 퍼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청량감이라고 해야 할만한 느낌이 샐러드를 지났음에도 아직 남아있는 메인의 여운을 저 멀리 밀어냈다. 아니,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제야 약한 바닐라 향이 빈자리를 채워갔다. 


“이거…분자기법을 사용했네요. 맞죠?”


내 물음에 요시미츠와 하나는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맞아요. 위에는 평범한 바닐라로 덮었지만… 그 안에는 박하와 순무 등의 상쾌한 맛을 내는 재료를 분자기법으로 뽑아내서 온도 차를 이용해서 서로 섞이지 않게 만들었어요.”

“그 온도 차 덕분에 비교적 차가운 재료들이 먼저 입안을 깨끗하게 하고…”

“마지막에 와서 바닐라를 온전히 느끼게 만들었다라.”


하-. 정말 메뉴 하나하나에서 평범함을 느낄 수 없었다. 보통의 감각을 거부하는 이 코스에 나는 질릴 정도였다.

괜히 미식에 미친 아가씨라는 말이 나도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약한 탄산을 가진 민트 라임 주스로 입가심을 한 우리는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7코스를 따라가는 데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충격과 감탄이 더 컸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홀의 한쪽에서는 우리의 소완들이 이번 코스를 만들어낸 소완에게 잡아먹을 듯이 질문을 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순서는 누가 좋을까요?”

“…”


이런 충격적인 코스를 맛본 뒤에 대접하려면 많은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소완들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시켜달라며 어필하고 있었다.


“제가 하도록 하죠.”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저 대접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코스, 확실히 한 방 먹었지만…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 전속 주방장도 지고의 소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