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닛코시에서 도쿄로 돌아오는 검은 밴의 안에서는 불편한 공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그 공기는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튼다 해도 날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나아질까도 싶었지만 창문을 열어봐야 바람소리만 거세질 뿐이었다.

 밴 안의 모두가 불편한 이유는 도쿄도에 들어올 때까지 브라우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브라우니는 바이오로이드였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었다. 키리시마 의원의 키리시마 법뿐만이 아니었다. 며칠전 미국에서도 조나단법이라 불리는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대한 기본법이 통과되었고 그 유행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벨과 바이킹, 요크셔는 브라우니의 기분 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물건이 기분이 나쁜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전쟁터에 있을 때 고블린을 신경쓴 적이 있던가. 고블린이 죽건 말건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브라우니는 달랐다. 무미건조한 고블린과는 다르게 감정이 풍부해서였을까. 군인같이 않은 외형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에 감정이입이 된 것이었을까. 그들은 브라우니를 고블린처럼 대할 수가 없었다.

 “그 뭐냐, 미안해. 지진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

 불편한 정적을 깬 것은 요크셔였다. 그는 브라우니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일단 사과를 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바뀌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요크셔 넌 일본 사람이잖아. 우리처럼 지진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닐텐데. 너라도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바이킹의 말이었다. 자신에게 책임을 미루려는 것을 느낀 요크셔는 바이킹을 보지 않고 말했다.

 “일본을 떠난지 몇 년인데요. 일본의 기억은 대부분 잊었어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스시가 일본어로 뭔지 안떠오를 정도에요. 빌어먹을 스시 말이에요. 게다가 누가 길가에서 세워둔 차가 갈라진 땅에 낀 경험을 여러 번 해보겠어요? 지진이 문제가 아니라 차가 더 놀랐어요. 게다가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아무 생각도 안났다고요.”

 요크셔의 말대로였다. 세사람은 지진이 멎은 뒤, 빠진 바퀴를 빼느라 온 힘을 다 써야 했다. 그리고 간신히 차를 구멍에서 빼낸 그들은 서둘러서 지진이 난 지역에서 빠져나왔다. 그에는 추가로 여진이 발생할 수 있고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요크셔의 경험이 담긴 조언이 가장 큰 영향을 주긴 했다.

 “그래. 전부 아무 생각도 안하고 힘만 쓴 내 탓인 거지. 브라우니는? 이라는 한마디 할줄 모르는 바보라.”

 “바이킹. 그냥, 좀, 알았지?”

 벨은 바이킹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요크셔의 사과를 브라우니는 받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게다가 지금의 둘의 대화는 분위기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더 불편한 공기를 만들어낼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벨의 말에 바이킹과 요크셔는 말싸움을 멈추었고 정적과 불편한 공기는 다시 차 안에 가라앉았다.

 사실 브라우니가 말이 없는 이유는 자신을 두고갔기 때문에 화가 났거나 토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다. 브라우니는 조금 전, 토모와 토모를 데리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만일 그 사실을 들키게 된다면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두려움이 브라우니를 둘러싸고 있어 그녀는 아무 말을 할 수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진짜 최악이네요. 개고생만 하고 건진건 하나도 없어요. 지진 때문에 증거로 쓸만한 거 찾기도 힘들게 되었고요. 아니, 애초에 거기서 건질 수 있었던 게 있었을까요?”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들이 브라우니를 찾기만 했더라도 토모를 찾을 수 있었다. 토모에게는 운이 좋았던 것이었고 그들에게는 운이 없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운이 없었으면 자신들이 운이 없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이런 데 와봐야 무의미하다고. 돌아가면 맥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장대하게 설명하겠지. 총을 무얼 썼고 적은 누구고 어떻게 총을 쐈고 무슨 정보를 얻었고. 그러면 우리는 시골마을에서 차 빠진 거 당기느라 힘을 다 썼다고 말하겠지. 질투 가득한 목소리로 와 부럽다 이런 말도 해주고 말야. 진짜 퍼킹 수까 같은 날이야.”

 “그리고 브라우니를 두고 올 뻔한… 아니 됐어요.”

 요크셔는 말을 덧붙이려다 이 말이 다시 대화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을 멈추었다. 이 답답한 분위기는 안전가옥에 도착할 때까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차내만 아니었다면 담배라도 피우면서 진정이라도 했을 것이었다.

 브라우니는 담배를 쥐는 손동작을 하는 요크셔를 보자 다시 토모가 떠올랐다. 서로 담배를 피우는 자세를 하면서 웃던 그 순간은 머릿속에서 잊혀지려 하지 않았다. 잊고 싶은 기억은 필사적으로 잊으려 할수록 머릿속을 기어올랐다.

 브라우니의 인생에서 제일 담배를 피우고 싶은 순간이었다. 자신이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브라우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나단 법 어디에도 바이오로이드의 흡연을 금지하지 않았으니 담배를 피워도 될 것이었다. 지금 브라우니의 손에 담배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맥이 뭔가 건수를 건져왔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분명 생길 거야. 최소한 지금처럼 뭘 해야 하는가도 모른 채 방황할 일은 없겠지.”

 “제발 그랬음 좋겠군. 방아쇠 좀 당길 일이 생기게 말야.”

 주먹을 쥔 바이킹은 검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수까, 일본에서 있을 일이 블록버스터인줄 알았는데 실상은 다큐멘터리였어. 벨, 안가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네비 말로는 1시간 반. 도심은 저녁이라 차가 밀리나봐. 피곤하면 좀 자둬. 운전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뒷좌석의 요크셔는 어느새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려는 듯,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이런 식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좋을지도 몰랐다. 브라우니도 잠으로 도피를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도심으로 차가 들어섰을 때에는 바이킹과 요크셔 둘 다 잠에 든 다음이었다. 차 안에는 벨과 브라우니만이 깨어있었다.

 “사과를 받아줄 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사과를 할게. 미안해.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벨은 룸미러로 브라우니를 보며 말했다. 브라우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물론 그렇겠지. 그래. 이해해. 미 해병대에 그런 말이 있지. 전우는 두고가지 않는다고. 그리고 우리는 두고갈 뻔했고. 그래. 우리 셋은 전장에서 다같이 총을 들고 오랫동안 싸워왔고 너는 그렇지 못했어. 아무리 용병이라도 전우애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뭐 이쪽은 전우애가 아니라 볼장 다 본 관계지만 말야.”

 벨은 바이킹이 깨지 않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너를 아무 바이오로이드라고 생각한다는 건 아냐. 그래, 우리는 전장에서 바이오로이드를 소모품으로 굴렸어.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지. 뭐 전장에서 그런건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나. 널 처음 본 순간, 나는 걱정이 들었어. 너 같은 여자아이가 전장의 선두에 서게 된다니. 아니면 그런 동정심을 적들에게 유발하게 하는 외형일까. 눈먼 총알에게 눈이 있기를 바라면서? 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야, 나는 너를 아직은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뿐인 동료라 생각해. 바이오로이드이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똑같이 총을 들고 서있는 군인 말야. 내게 있어서 너는 그 이상은 몰라도 그 이하는 절대로 아냐.”

 벨의 말은 브라우니의 귀를 조금씩 파고 들어가 그녀의 고막을 조금씩 진동시켜갔다. 하지만 브라우니는 여전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오히려 브라우니의 죄책감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브라우니의 마음이 벨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브라우니의 마음을 파먹고 있었다.

 들어봐. 저들은 너를 이렇게 아끼려 하는데 너는 뭔데. 간접적인 불복종까지 하면서 저들을 거스르려는 이유는 뭔데? 너는 저들을 배신하는 거야. 브라우니의 마음속 무언가가 브라우니를 괴롭혔다. 그것은 양심이었을까, 블랙리버가 심어놓은 세뇌장치였을까. 브라우니는 아무것도 아닌척하면서 감정을 죽여갔다.

 나는 블랙리버제 전투용 바이오로이드, 브라우니. 오늘 낮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거짓말을 속으로 수십번, 수백번 되뇌이며 브라우니는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언젠간 너도 알게 될 거야. 세상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는 걸 말야.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벨은 그 말을 남기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차에서 뛰쳐내리고 싶을 정도로 불편한 적막은 밴이 안전가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도착했어.”

 벨은 안전가옥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쩌다 운전을 맡아서 쉬지도 못하고 고생인지 몰랐다.

 “건진건 있어?”

 맥켄지와 다른 일행은 이미 안전가옥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맥켄지는 웃는 얼굴로 위스키 잔을 들고 있었다. 안좋은 일이 있었다면 화난 얼굴로 위스키 잔을 들고 있었겠지.

 “아무것도. 여기는 지진 괜찮았어?”

 “고층 건물이라 그런지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리더라고. 지진은 처음이라 놀랬어.”

 고층건물이라. 좋은 곳도 다녀왔구나 싶었던 벨이었다.

 “하암. 좋겠구만.”

 바이킹은 하품을 하며 안전가옥으로 들어왔다. 크로아상은 들어오는 바이킹과 요크셔에게 맥주병을 던져주었다. 뒤이어 들어온 브라우니는 아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원래 브라우니가 저랬던가?”

 브라우니를 위한 맥주병을 꺼내려던 크로아상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브라우니 앞에서 브라우니 쿠키라도 먹은 거야?”

 크로아상은 재미도 없는 농담을 던지고는 킥킥 웃었다.

 “재수 더럽게 없던 날이었어. 사고 흔적만 발견하고 지진 때문에 바퀴는 틈에 빠지고. 수까, 그런 지진은 난생 처음이었어. 드디어 일본이 가라앉는 건가 싶었다니까. 하나 조언할게. 차에는 항상 리프트 잭을 넣고 다녀.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한 바이킹은 맛있게 맥주를 들이켰다. 러시아인에게 맥주는 좋은 음료였다.

 “뭔 일 있던 거야?”

 바이킹의 설명으로는 맥켄지가 이해하기에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한창 조사하는데 지진이 일어났어요. 도로가 갈라져서 그 틈에 차 바퀴가 빠진 거고요. 그걸 빼내겠다고 세명이 달려들어서 생고생을 한 거죠. 차 들어올릴 리프트 잭만 있었어도 일이 쉽게 풀렸을 거였을 거란 거에요.”

 “그리고 그 와중에 브라우니는 두고 올 뻔했지.”

 벨은 아무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들어간 거야?”

 맥켄지는 브라우니가 들어간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그런 거겠지. 바이오로이드도 토라지는 모양이야. 다음번에 그 연구원에게 보고할 때 덧붙여.”

 “근데 왜? 왜 두고 온 거야?”

 맥켄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바이오로이드는 지갑이 아니었다. 깜빡하고 두고 왔다라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부모의 마음으로 애를 돌봐도 애를 잃어버리기 마련이야. 하물며 우리는 남이라고. 결과적으로 데려왔으니 된 거잖아. 그럼 이만 맥주를 마실게.”

 벨은 그사이 크로아상에게 받은 맥주를 들이켰다. 이 맥주를 비우면 바로 잠에 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10초후 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빈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맥, 그쪽은 뭘 했는데?”

 벨이 방에 들어간 뒤, 바이킹은 맥주병을 든 손으로 맥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말이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거야.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나카토미 빌딩에서 있었던 일보다 더 스릴 넘치니까.”

 맥켄지는 바이킹과 요크셔의 기분이 어떤지는 상관도 않으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