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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교에서 있었던 회의 이후로 이틀을 침대에서 보내고, 이틀 후가 지난 사흘 째가 되어서야 다시 직무로 복귀 할 수 있었다. 의식은 금방 돌아왔지만 도저히 직무를 볼 기분도, 기운도 없었기에 사령관실에 박혀 시간을 죽이기만 했다. 중간중간 찾아 온 참모들과 몇몇 대원들, 자세한 사정을 몰라 그저 몸이 안좋은 줄로만 알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어린 시선과 말들을 보내왔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걱정말라는 말만 반복한 이틀이었다. 


'현 시간부로 지정된 바이오로이드 개체 외에, 지휘관 개체를 포함한 모든 바이오로이드 개체의 사령관실 출입을 금합니다.'

'추가사항 및 지시사항은 별도로 전파 하겠습니다.'



콘스탄챠에게 함내 방송을 통해 위 같은 지시사항을 전파하도록 한데에는 단순히 함교에서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번째 사령관이 부임한 이후, 오르카의 더 나은 순항은 예정 된 듯 했다. 홀로 부담해 왔던 사령관이란 직함의 무게를 조금은 덜 수도 있겠다는 것 만으로도 새로운 생존자의 발견은 나 개인적으로도 환영 할 일이었다. 

그러나 두번째 사령관을 맞이한 이후부터 오르카의 곳곳에서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불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했다.

처음은 사소하게 생각했다. 내 결정에 따라 두번째 사령관으로 부임한 그를 환영하는 이들은 다수였다. 사령관은 과하다며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이 또한 없지 않았으나 그 또한 인간이었기에, 무엇보다 내가 내린 결정이었기에 사령관으로 추대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작은 변화는 잠깐의 어수선함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 두번째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직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까지, 나는 다시금 직무에 쫓겨 눈 앞에 들이닥치는 전투를 비롯한 모든 상황과, 서류더미에 파뭍혀 지내는 시간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가시적인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건 두번째 사령관이 전투지휘를 제외한 직무에 본격적으로 투입된 시기였다. 만약 가시적인 변화 자체야 진즉에 있었다고해도 '직무를 보느라 알아 챌 수 없었다.' 라고 변명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나간 시간은 계속 지나가기만 할 뿐, 뒤도는 일은 없다.


하루 아침에 태도가 일변한 대원이 있었는가 하면, 저들끼리 뭉쳐 곁눈질을 보내며 쑥덕대는 이들이 있었고, 오르카의 곳곳에서 크고 작은 언쟁을 벌이는 소리가 점점 늘어났으며 참모와 지휘관 개체들의 의견충돌 또한 이전과 달리 빈번해졌고 그 교환되던 몇몇의 의견에선 감정적인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외에 언급되지 않은 변화…문제들은 많았다.

그 모든 걸 돌아보고 해결하기에는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커져있어서, 나는 사령관실의 침대에 누워서도 좀 처럼 잠을 못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그 불편한 변화는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그 커지는 변화에 질 수 없다는 듯 철충들의 공격도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빈번해져갔다. 전투의 빈도 또한 늘었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 지도 모르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을 즈음에, 그가, 두번째 사령관이 직접 전투를 지휘하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함교에서 문제삼은, 바로 그 전투였다. 전권은 내게 있었고, 나는 그에게 전투지휘는 이르다고 분명히 일러뒀을 터였다. 

지휘관 개체들 또한 알고 있을 터였다. 통수권자는 첫번째 사령관 인 것을. 


지휘관 개체들이 왜 그의 명령을 따랐는가는 둘째치고, 가장 이해 할 수 없었던 건 보고서에 적혀있던 사상자의 수였다. 

대규모 전투의 평균치의 여섯 배를 웃돈 그 숫자에 나는 아연실색 했고 이어지는 참모들의 보고를 듣고 있자니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우려했던 일이 아니었다. 전투를 지휘 했다는 월권행위는 둘째치고, 자격과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였으니까. 


오늘 이른 아침, 나는 사령관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따로 호출했다. 

자초지종을 따져 물으니 사흘만에 본 그는 여전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철충이 지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이상, 기존과 다른 전략을 '고려'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고.'


나는 부아가 치밀어 마리와 레오나에게 한 것 이상으로 눈 앞에 마주앉은 놈을 두들기고 싶었지만, 곁에 있는 아르망과 콘스탄챠가 눈에 밟혔기에 잠자코, 그에게 돌아가라 말했다. 또 다시 사흘 전과 비슷한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댔기에, 곧 있을 회의 전까지 혼자 있겠노라 두 참모에게 고했다. 


그리고 지금, 장소만 바뀐 채 지휘관들은 다시 집합해 있었다. 

직무에 복귀하여 보는 첫 아침 회의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회의는 항상 사령관실에서 진행해 왔으니까. 

함교에서 진행한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모두 이전의 일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듯, 다들 잊었다는 듯 사뭇 진지하게 각 사항들에 대해 논의해갔다. 

이 또한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익숙함들이 주어야 할 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편안함이 없었기에 효율성 또한 없었다. 

회의는 묘하게 겉도는 듯 했고 애매하게 끝맺어가는 회의를 보고 있자니 무기력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평소와는 너무나 이질적인 회의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마지막 안건에 대해 논의가 오가던 때에 들려온 그 소리에, 사령관실에 모여있는 이들 모두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령관실에 침묵이 감돌게 되자 그 소리, 한껏 쾌락에 젖은 교성이 더욱 크게 들려왔다. 

들려오는 위치로 보아하니 사령관실과 그리 떨어진 장소는 아닌 듯 했다. 


"샬…럿?"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쓴 아르망이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 채,  이 교성을 내는 이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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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데." 


내가 말했다. 눈 앞에는 테마파크의 정문으로 이어진 길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사령관이었을 때든 지금이든 다시 찾을 만한 곳은 아니었기에 작년, 테마파크에서의 일련의 사건 이후 더치 걸과 키르케라는 바이오로이드 개체와 마지막으로 추모를 하고는 다시 찾은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위화감이 일었다.

내가 기억하는 테마파크의 마지막 모습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전투로 인한 흔적으로 좀 더 어수선 했어야 할 터였다.

알비스와 LRL이 살짝 기대한 얼굴로 테마파크에 들러보자는 시선을 보내왔기에 나는 발키리에게 눈길을 한 번 주고, 두 아이에게 끄덕였다. 나는 옆에서 굳은 얼굴로 가만히 서있는 더치 걸에게 말을 걸었다.


"더치, 네 마음대로 해."


따라오든, 기다리든, 떠나든. 그 말을 알아들은 더치 걸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난 여기랑 큰 인연이 없었어서.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발키리의 손을 한 쪽씩 잡고 걷고 있는 아이들을 뛰어가 따라잡고는 재밌겠다며 아이들의 흥을 돋궈준다. 

그 모습이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배려는 이정도면 충분하다 여겨 테마파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발키리가 두 아이를 더치 걸에게 맡기고 뒤돌아 내게 다가왔다.


"인간 님."


"뭐야."


"정말 들어가실 겁니까?"


정말 들어갈꺼냐니, 발키리의 물음은 이해하냐 마냐를 떠나 내 화를 돋구기 시작했다.


"왜, 내가 좀 누그러진 듯 보여서 기어오르는거냐? 내가 언제 아이들을 더치에게 맡기라 했지?"


눈을 부라리며 당장이라도 몸이 튀어나갈 수 있다는 듯이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발키리는 움츠러 들기는 커녕, 과거를 뒤집어봐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던 표정을 지어보이고서는 다시금 내게 확인해왔다.


"…들어가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보아하니 점점 미쳐가는 것 같은데, 모듈 점검이나 해 봐."


발키리를 지나쳐 이미 테마파크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잡기 전에 테마파크를 한번 돌아 본 그제서야, 나는 아까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테마파크는 내 마지막 기억과는 다르게 매우 정갈한 상태였다. 오르카에서 무력으로는 순위를 다투던 바이오로이드 개체들이 직접 무력을 행사해 군데군데 무너뜨렸었기에,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다는 가능성은 일절 존재 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내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직 인류가 존재했다면 테마파크는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테마파크는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류가 존재했다면?'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나는 더치 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 빨라지는 심작 박동이 달리는 탓에 그런건지, 아니면 절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그 가능성이 가슴을 자극해서 인지는 몰랐다.

그렇게 달리다 퍼뜩, 나는 터져나와 버린 헛웃음에 호흡이 흐트러져 급속히 숨이 가빠졌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가능성이라니, 오르카를 떠나며 나 자신에게 했던 선언이 무색해지지 않는가.


어느 정도 달려 보이기 시작한 목적지를 바로 눈 앞에두고 나는 멈춰섰다. 

가쁜 호흡이 진정이 됐을 즈음에, 목적지에 다가가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 장소, 테마파크의 c구역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었다. 이전 구역들처럼 정갈한 한 것 또한 아니었다. 

테마파크에서 가장 화려했던 이 구역이, 그래서 모조리 무너져 있었어야 할 이 구역에 애써 구색만 갖춘 듯한 모양새로, b구역의 건물들과 비슷한 건물들이 여럿 세워져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어렴풋이 직감하면서도, 애써 부정하며 c구역이라 불리던 장소의 더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광장이라 부를만한 인상의 장소를 가로질러 눈에 보이는 건물 중 가장 큰 건물을 돌아나가니 눈에 그 장소, 시설이 담겼다.  


인류멸망 전 기록에서 보았던 경마장이란 시설과 흡사했다. 

차이가 있다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하는 관중석은 존재하지 않았단 점이었다.

관중석을 제하고 경마장을 구성하는데에 필요한 요소만 가져다 놓은 그 모양새가, 시설 군데군데가 탁한 구리색으로 얼룩져있는 그 모습이 기묘하리만치 기분 나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진정시켰던 호흡이 다시 가빠지는 듯 했다. 멸망 전 인류의 악의가 한껏 살아남아 맥동하는 듯한 그 인상에 두통이 엄습했다. 하늘도 내 기분을 알아챈 것인지 해를 숨기고 얇은 소나기를 추적추적 뿌리기 시작했다. 


"말씀 드렸는데…"


근처 건물의 벽에 손을 짚고 몸을 추스르는 와중이었다. 어느새 따라온 발키리가 등 뒤에서 말했다.


"아이…들…"


아이들은 어쩌고 왔느냐 물으려 했으나 목이매여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 발키리가 대답했다.


"더치가 보고 있습니다. 아직 출입구 근처에 있어요."


발키리 또한 이 장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기운 없는 목소리로 가시죠. 라 말하며 손을 내밀어 온다. 

거부하고 밀쳐내려 했지만, 지금 고집 부리다가는 주저 앉을 것만 같아 발키리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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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은 금방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날 부축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에게서 한 때의 그녀를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옥죄듯 머리에 엄습하던 두통도 잦아들었다. 날 부축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한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가 미웠다.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인 것이 미웠다. 

아이들이나 지키고 기다리면서, 잠깐 기절이라도 하게 날 내버려뒀으면 좋았을 것이다.


큰 건물을 돌아 광장을 가로질러 c구역을 나서자마자, 두 바이오로이드와 마주쳤다.

금방 좋아진 몸 상태가 반영이라도 된 듯, 마주친 두 바이오로이드가 누구누구 인지는 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아르망."


"폐…폐하?…폐하!?" 


정성스레 뽑아내어 다듬은 듯한 고운 비단 같던 금발은 윤기가 없었고 흰색과 붉은색이 아름답게 조화된 수단은 색이 바래고 떼가 타 그 옷의 주인이 보다 생기가 없어보이게 만드는데에 일조했다. 


"…"


내가 아르망이라 부른 바이오로이드가 다급히 달려오는 사이, 나는 또 한명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눈길을 향했다. 그 바이오로이드는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는, 구태여 말하자면 슬픔과 당황을 적절히 섞은 듯한 것에 가까워보이는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 또한 아마도 분노에 가까울 이름 모를 감정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지만, 나는 퍼뜩, 이제서야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마침, 내 바로 앞 까지 온 아르망에게 곧 바로 물었다.


"아르망, 저 c구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재회의 기쁨을 표현한 인사라도 기대한 것 인지 한 껏 밝았던 얼굴이 내 돌발적인 질문에 곧바로 어두워졌다. 무엇이 괴로운지 눈을 반쯤 감고 울듯이 인상을 쓰고 있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겠다는 듯 발키리가 부축을 조심스레 풀고 대신 내 질문에 답했다.


"…인간 님이… 떠나시고 나서…"


발키리는 잠시 뜸을 들이고, 쥐어짜내 듯 말을 이었다.


"c구역은 재건 됐습니다. 두번째…사령관의 손에 의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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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환영, 많은 의견 환영, 리플은 다 환영


재밌게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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