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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이오로이드를 혐오한다 33화


사무실에서는 나와 김창식 둘이서만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몇분정도가 지났을까, 성난 목소리가 우리를 덮져왔다.


"씨발! 씨발 좆같은 새끼!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며! 씹새끼! 죽여버릴거야!"


김창식은 분노를 표출하며 의자를 집어던지고, 테이블을 걷어찼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분노보다는, 끝이없는 허망함이 펼쳐졌다. 10년 이상 투자한 시간이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투자했던 시간마저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다. 자본가는 돈 텔로니의 마약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대로만 가면 텔로니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할 것이다. 이는 텔로니와 손을 잡은 강수찬에게도 이득이 갈 것이라는 소리다. 10년 이상의 나의 청춘이, 우리아빠를 죽인 사람 배를 채워주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도구취급을 받은거다. 내가 여기서 할수 있는건 없다. 언제나 텔로니에게 임무를 받고, 그 임무를 성공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끝이 났다.


나는 김창식이 화를 내며 사무실을 깽판치는 것을 무시하고 희망이란게 보이지 않는 암울한 사무실을 터벅터벅 빠져나왔다. 김창식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터벅터벅 걸어가서 두블럭 앞을 지나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


'턱'


차 안에서 리리스는 나를 보지도 않고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을 보니 기어봉을 잡고있던 오른손이 덜덜 떨리는게 보였다.


"...주인님... 그 씹새끼들... 주인님을 때린거죠? 맞죠? 리리스가... 리리스가!"


"됐어... 집으로 가자. 내가 할 수 있는건 다 했어... 지금은 쉬고싶으니까... 집에가자."


단추를 때며 리리스의 가방에 집어넣은 나는 그대로 조수석에 기대어 누웠다. 안전벨트를 매지도 않은 나는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천장을 바라봤다. 리리스는 눈을 크게 떠서 나를 몇초정도 바라봤지만, 이내 차량에 시동을 걸고 매끄럽게 도로를 나섰다. 리리스가 쥐고 있었던 기어봉이 완전히 일그러진게 내눈에 보였다. 차량 출발한지 몇분이 지나자 나의 휴대폰이 울려댔다. 화면을 켜보니 문자 메세지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 조직으로 그만 나오게. 내가 자네 일한 걸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두는 거니까, 어디가서 조용히 살아줬으면 한다

-돈 텔로니'


창 밖으로 보안용 휴대전화를 집어던졌다. 이제 돈 텔로니의 나처럼 더이상 쓸모없어진 존재니까 말이다.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창 밖에 흐려지는 하늘을 보면서.


정적은 집에 왔더니 유미가 방방 뛰며 나를 반길 때까지 계속됬다.


"아찌! 아찌 어디갔다 왔어?! 심심했다구!"


나는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냉장고로 향했다. 유미가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지만, 나에게는 오직 냉장고 속 술에만 시선이 집중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모든 술을 꺼낸 뒤에 내눈에는 쇼파에 앉아있던 안수민이 보였다.


"소한아, 아무리 당황했어도 그건 아니지... 우리 내버려두고 어딜 갔다 온거야?"


"...당신 나랑 얘기좀해"


오랫만에 들어보는 나의 진지한 말투에 안수민도 잔뜩 긴장한 상태로 쇼파에서 일어났다. 말없이 식탁 의자에 부릅 눈을 뜨고 앉아있는 리리스가 상황의 심각성을 대신 말해주었다. 옥상에서 안수민은 불안한 모습으로 몸을 배배 꼬았다.


"무, 뭔데... 무슨 일이야? 얼굴은 왜그래? 어디 맞았어?"


"...집 알아봐줄테니까,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 뭐라고? 내가 지금 들은게 맞아?"


"헤어지자고. 나도 더이상 못버티겠어."


"아니, 또 왜그래 소한아! 또 뭐가 문젠데?! 도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이유로 헤어지자는건데?"


"내가 존나 힘들다고!"


안수민은 경직됬다. 그녀가 약간 뒷걸음질을 치며 나를 경계했다. 그것 때문인지, 나의 이성이 아주 약간은 돌아왔다.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나중에 얘기하자. 조금 있다가 내려갈게..."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긴장이 된 건가, 그녀의 손이 나의 얼굴에 닿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나는 언제나 당신 응원할거야. 항상 당신편에 서줄거고. 그러니까 힘들면 무조건 말해. 알겠지?"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녀 또한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옥상 아래로 내려갔다. 적막한 옥상에는 나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손에 가득 있는 술병만이 높은 하늘 아래에서 나를 반겼다.


꼴깍, 갈색의 위스키가 탄내를 내며 나의 목구멍으로 흘러내려들어갔다. 안좋은 기억을 까먹기 위해서 마신 술이지만, 계속해서 슬픈 감정은 나의 가슴을 찢어내고 위스키와는 반대로 역류하였다. 죽은 신도시의 밤은 나의 감정과 함께 점점더 깊어져만 간다.


사무치는 허망함과 가족들의 미안함에 잠은 오지 않았고, 눈을 감으면 악몽은 기본이고 가위에 눌리는 것은 일상이였다. 옥상에서 며칠을 지냈다. 항상 검은 점액에게 뒤덮이는 악몽이 끊이질 않았다. 일어나면 술을 마시고, 술이 떨어지면 배달을 시켰다. 뱃속에 알코올이 가득차 입에서까지 알콜냄새가 날때까지 술을 들이마셨다. 그 술은 구토와 눈물로 교환되었고, 옥상에서는 꺼이꺼이 우는 나의 곡소리로 가득 찼다.


그렇게 폐인처럼 지낸지 얼마나 지냈을까, 더이상 가족들의 사진도 볼수가 없었던 나는 정말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주머니 속에 있던 칼이 뒷주머니에서 나를 자극하였다. 그 은빛 칼날을 손에 쥐었다. 서늘한 느낌이 가슴을 찔렀다. 천천히 그 칼을 주머니에서 빼내었고, 기어이 나는 그자리에서 일어섰다. 옥상에서 본 충유시의 모습은 역겨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나 하나 없어져도 누구하나 슬퍼줄 거 같지 않았다. 거짓말같이 펜이 난간 옆에 누워있었다. 예전에 옥상에서 사람들이랑 지냈을 때 내놨던 거겠지... 나는 조용히 그 펜에게 다가가 그것의 뚜껑을 따서 슥슥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적어나갔다.


'더이상의 고통을 받고싶지 않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안수민과 안유미, 블랙 리리스, 엘븐 시리즈(3명), 마리아, 정수하, 박영지, 김창식에게 동등하게 나눠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나는 이대로 사라지겠다.'


유서같은 무언가를 쓰니 다시한번 그리움과 허망함이 사무쳤다. 그냥 돈 텔로니의 말대로만 따르고 의구심은 품지 않으며, 흘러가는데로 살아갈걸... 후회도 많이 했다. 천천히 옥상 난간에 올라갔다. 두 발이 도시 위에 서있었다. 왼손으로 주머니 칼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찰칵'


짤막한 소리와 함께 은빛 칼날이 솓구쳐 올라왔다. 천천히, 천천히... 칼이 목으로 다가갔다. 잘가라 세상아. 더이상의 고통, 더이상의 우울함은 없어질 것이-


'탕!'


무언가가 나의 왼쪽으로 지나쳤다. 칼은 그대로 아파트 아래로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비친 거울과도 같은 칼날에는 하얀 머리, 노란 눈이 보였다. 블랙 리리스였다.


"...아쉽네... 더이상 이딴 새끼로 살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에 리리스도 만만찮게 대답하였다.


"뭐, 저도 아쉽네요. 주인님의 머리를 관통할려고 했던 총알이, 우연하게 칼을 맞고 나가버렸네요?"


진담 반 거짓 반과도 같은 말투였다. 곧있다가 안수민의 목소리도 들렸다.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찰박찰박 신발을 튕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무, 뭐하는 짓이야! 얼른 내려와 소한아!"


슬펐다. 죽고싶어도 죽을 수 없었기에, 그깟 인형들 때문에 나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숭고한 죽음이 실행되지 않았다.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10년, 아니 10년 이상... 나는 10년 이상을 낭비했어. 우리 가족을 파탄낸 새끼한테 말이야. 내 청춘, 내 인생... 모든게 존나 허망해... 제발 나를 죽게 내버려둘 수 있어?"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원..."


...? 뭐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리리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내가 잘못 들은건 아니겠지?


"뭐라고?"


"내가 이딴 걸 주인님이라고 여겨온게 정말로 후회되네요... 후우..."


"..."


"저는 말이죠, 주인님만 보면 막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요. 아세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어디서 싸움도 존나 못하는게 주인님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척, 겪을거 다겪어봤다는 태도로 저희 깔보시는거, 꼴보기 싫다고요. 저 힘 되게 세요. 아세요? 제가 주인님 명치 마음먹고 때리잖아요? 관통할걸요?"


"..."


"솔직하게 말해서, 주인님 하는거 보면 되게 어설퍼요. 스페츠나츠 출신답지 않게 쓸데없이 행동이 과하고 힘도 별로 주먹에 안실리고, 회피할때도 몸을 너무 강하게 흔드시고. 그러고서도 스페츠나츠 출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말문이 턱 막혔다. 반복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실력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던 나였기에 진실만을 말한 그녀에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가 왜 주인님 곁을 지켜보고, 보호하는지 아세요? 저는 경호용 바이오로이드에요. 남들보다 먼저, 선제적으로 진압해서 주인님의 안전을 지켜드리죠. 근데 주인님은... 너무 꼴깝떠세요. 주인님은 강하지 않으세요. 오히려 약해도 존나게 약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블랙 맘바를 잡고있던 손도 덜덜 떨렸다.


"나한테 의지해달라고!"


"...!"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고 늘어지라고!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보호해달라고 조르라고! 그런거 하나 못하는게 주인이야?! 항상 당신이 여기저기서 쳐맞고, 치이고, 배신당하고! 그런거, 당신만 슬픈줄 알아?! 난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복수를 할 판에도 모자른데, 자괴감에 찌들어서는 자살을 할려고 해? 충성을 맹세한 경호원 앞에서? 당신이 그러고도 인간이야?!"


의지... 내 평생 살아계셨던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의지한 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앞을 보며, 오직 고독하게만 나의 길을 걸어갔다. 아니, 텔로니와 강수찬의 길이 되었지... 곰곰히 생각했다. 돈을 받고 가족의 죽음을 덮으려는 강수찬과 돈 텔로니를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으로, 허무함이 아닌 배신감에 찌들도록 찌든 분노가 차올랐다. 주먹이 리리스처럼 부르르 떨렸다. 이제야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한숨을 푸욱 쉬었다.


"쓰읍... 후우..."


가능한 들이마실 수 있는 모든 산소를 폐속으로 집어넣었다. 더이상 죽고 싶지 않았다. 아니, 돈 텔로니와 강수찬에게 복수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그들에게 빚진 복수를 해야만 했다고 그때 생각했다. 천천히 난간에서 내려갔다. 두발이 다시 땅에 닿았다. 그러자마자 리리스와 안수민이 곧바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들은 나를 꼭 안았다. 떨림이 느껴졌다. 옷에 물이 묻는 것도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머릴 쓰다듬었다.


"...미안해... 다들..."


"하아... 하아...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절대 안해. 절대로. 그 씹새끼들이 벌을 받을 때까지는 눈도 안감을 거야."


"이 바보야... 사람은 눈 안감으면 죽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는 리리스와 안수민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말들을 되물어봤다.


"...리리스."


"네, 주인님."


"방금 했던 말... 지킬 수 있어?"


"그럼요. 처음으로 주인과 경호원 관계로 만났을때부터 그 말을 지킬거라 맹세했는걸요... 그리고 방금전은 죄송-"


"아니, 내가 고마워해야되는걸... 덕분에 많은 걸 배웠어. 독설 잘하더라."


리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자. 집으로."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내려갔다. 그 씹새끼들을 쳐죽일 복수를 한시라도 빨리 계획하기 위해서...

============================33화 끝=================================

글 잘쓰는법 참고해서 과감하게 대화체 완전히 바꿔버렸음다...

처음 바꿔본 것인지라 오늘은 조금 짧아요...

어떤게 더 괜찮은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글은 삘받을때 써야 잘써지더라...

더 나은 글로 찾아오겠슴다!

그럼 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