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상 

프롤로그 하




사령관과 알바트로스의 전설에 남을만한 특공쇼가 끝난지 한 달이 지나고

모든것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오르카 호, 심하게 손상된 청년 육체가 복원되는 동안 

어린 소년 육체를 쓰고 있는 사령관은 기상나팔이 을린지 2시간이 지났지만 

이불로 그의 아담한 몸을 대롱벌레처럼 둘둘 감싼채 우스꽝스런 안대를 쓰고 

팔자 좋게 곯아떨어져 있었다. 


바닐라는 그런 사령관을 한심해서 못봐주겠다는 듯 내려 보다가 이불을 확 겉어버렸지만

사령관은 눈치조차 못챈듯 입을 쩝쩝 다시면서 배를 북북 긁었다.

한숨을 푹 쉰 바닐라는 옆에 있던 베개를 들더니 사령관을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지휘관 회의 잊으셨습니까? 이제 30분 남았습니다!"


바닐라의 외침에 그제서야 일어난 사령관은 오만상을 짱그리며 머리를 북북 긁었다.


"아직 30분이나 남았잖아...좀 더 잘거니까 나 좀 내버려둬."


"지금 지휘관 분들이 얼마나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는지 아십니까?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가 탈곡기에 털리듯이 탈탈 털리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제 그만 일어나서 준비하셔야 합니다."


"오늘 지휘관 회의는 취소야...그렇게 전해."


"이 인간이 진짜...헛소리는 이제 그만하고...준비하세요...!!"

 

사령관을 일으켜 세운 바닐라가 그를 화장실로 질질 끌고가면서 말했다.






9시 반, 오르카 호의 1번 회의실 안에서 사령관이 합류한 후 

처음으로 지휘관 회의 가 열렸고 모든 지휘관들이 참석을 위해 소집되었다. 

칸, 메이, 마리, 레오나. 그저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존재감을 내뿜는 기라성 같은 지휘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콘스탄챠는 턱까지 차오르는 열기를 가라 앉히기 위해 손을 펄럭였다.

반면에 사령관은 이런 불편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따분해 죽겠다는 얼굴로 태연자약하게 알사탕 봉지를 까고 있었다. 


"사령관. 지상군이 출전을 안하고 대기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어째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할게 없으니까."


사령관이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짧게 대답하자 

칸은 기가 차다는 듯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사령관. 사흘 전에 있었던 공중 작전때 싸워보지도 않고 철수명령을 내린거,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들어야겠어."


메이가 마치 이 날을 위해 벼렸다는 듯이 캐묻자 

사령관은 별거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왜긴 왜야. 위험하니까 후퇴하라 그랬지."


메이가 도끼눈을 뜨고 사령관을 쏘아봤지만

사령관은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알사탕을 입에 넣었다.


"정찰로 얻은 정보보다 더 많은 철충들이 있더라고...

그 무기고에 있는 장비들을 노획 못한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인명피해가 생길까봐 빼라고 한건데 문제 있니?"


"사령관. 우린 지금 소꿉놀이가 아니라 진짜 전쟁을 하는거야. 

전쟁에서 작은 희생은 큰 목표를 위해선 얼마든지 감내해야 하는거라고."


메이의 말에 사령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쟁? 우와~ 우리 지금 전쟁하고 있던거야? 

난 전혀 그렇게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사령관. 지금 회의 중이야. 좀 진지하게..."


손톱을 다듬던 레오나가 짜증을 내자 사령관이 그녀의 말을 가로 막았다. 


"난 진지한데? 너희들 뭔가 착각하고 있는거 같은데 우린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게 아냐.

마리 질문 한 번 해볼게. 우리 저항군의 총 인원이 몇명이지? 쿠팡걸 같은 비전투 인원들 빼고."


"네 각하. 총 486명 입니다."


마리의 말에 사령관이 손뼉을 탁 쳤다. 


"브라보. 역시 불굴의 마리야. 콘스탄챠, 스틸라인에 10점이라고 써줘."


서기 콘스탄챠가 사령관의 말을 그대로 노트에 적었고 마리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마리의 말대로, 우리 오르카 호의 인원은 비전투인원 빼서 486명.

그 중 절반 가량이 스틸라인이야. 내가 이번엔 메이한테 물어볼게.

철충들의 숫자가 전부 얼마나 되는지 아니?"


"뭐? 그런걸 내가 어떻게 알아?!"


메이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하자 사령관이 혀를 차면서 손가락을 저었다.


"쯧쯧 실망이야 메이. 콘스탄챠 둠브링어에 10점 감점이라고 써줘."


"야! 지금 나랑..."


메이가 발끈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령관이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


"56억 7543만 1633마리."


"뭐라고?"


"56억 7543만 1633마리. 그러니까 이제 좀 앉아줄래?"


평소와는 달리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실린 사령관의 목소리에 메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거보다 더 많을수도 있고 더 적을수도 있지. 사실 철충의 구체적인 숫자는 중요한게 아냐.

중요한건 놈들의 숫자가 우리보다 수천배는 많다는거지. 자 우리 여기서 계산을 해보자고.

메이, 네 말대로 큰 목표를 위해선 병사들의 희생은 피할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싸움을 계속하면 누가 먼저 나가 떨어질까? 반올림해서 500명인 저항군? 

아니면 신조차도 저 육지에 대체 얼마나 많은 개체들이 바글거리고 있는지 모를 철충 어느 쪽일까?"


사령관의 말에 메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반론도 꺼내지 않았다. 


"너희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내 방식에 어느정도 불만이 있는건 알고 있어.

갑갑하겠지. 인간님이 드디어 저항군에 합류했지만 별다른 역습 없이

여전히 해저에 쳐박혀 있는 이 상황이 말야.

하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야. 나 하나 들어왔다고 당장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어. 

485명이 486명이 됐다해도 변하는건 없다 이 말이야."  


사령관이 커피를 홀짝이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이건 전쟁이 아냐. 애초에 전쟁이 성립될 수 없을 정도로 체급차가 너무나도 크지.

그렇기에 난 처음부터 전쟁을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저번 공세?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알바트로스를 믿고 이판사판 저질렀거지, 식량이 충분했다면 그런 모험은 시도도 안했을거야.

이제 먹을 것도 충분하겠다...다시 평소처럼 쭈그리고 있어야지.

혹시 저번에 내가 추천해준 영화 킹덤 오브 헤븐 본 사람 있니?"


사령관의 질문에 마리와 칸이 손을 들었다.


"판타스틱! 콘스탄챠, 스틸라인과 호드에 30점씩 추가해줘. 

킹덤 오브 헤븐에 이런 장면이 나오지. 

이맘과 살라흐 앗딘이 어째서 이슬람군이 십자군한테 번번히 패했는지를 논하는 장면 말야.

이맘은 무슬림들이 불경해서 그렇다고 말했고

살라흐 앗딘은 이맘을 비웃으면서 이슬람군이 준비가 안되서 패한거라고 답했지.

그리고 살라흐 앗딘은 준비된 이슬람군을 이끌고 십자군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내는걸로 그의 말을 증명했어.

우리는 지금 그 준비단계에 있어. 그리고 오직 준비된 군대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있지."


"......"


"물밑에서 움직이면서 자원과 기술을 확보하고, 동료를 모으면서  

쓸데없는 희생은 피하면서 버티는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그리고 때가 되면... 우린 놈들을 이 지구에서 몰아낼거야. 내가 너희한테 약속할게."


사령관의 말이 끝나고 회의실엔 적막이 흘렀다. 잠시 후 레오나가 쿡쿡거리며 작게 웃기 시작했다.


"우리 사령관 이런 성격이었어? 순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아."


"동감이다. 평소에도 이런 믿음직스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도 안심이 될텐데 말이다."


칸 역시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머쓱해진 사령관은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쑥스럽게 왜들 그래. 아무튼 이제 아무도 불만 없는거지?"


"바보야.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어떻게 불만을 가질수 있겠어. 진짜 평소에 좀 잘하지..."


메이가 입을 삐죽이면서 중얼거렸다.


"그럼 각 부대의 건의사항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리가 준비한 서류를 꺼내면서 화재를 전환했고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험악했던 

회의실의 분위기는 부드럽게 풀어져 사령관은 지휘관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회의를 마저 진행했다.








회의가 끝나고 함장실로 돌아온 사령관은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놓은채 

벽면에 걸린 과녁판을 향해 다트를 던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본 바닐라가 먼지떨이로 사령관의 다리를 후려쳤다. 

"책상에 다리 올려놓지 마십쇼."

바닐라의 말에 사령관이 궁시렁 궁시렁 투덜거리면서 다리를 내렸다. 


함장실을 청소하던 바닐라는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함장실을 쭉 둘러봤다. 

하루에 4번씩 그녀가 열심히 청소를 해도 이놈의 함장실 청소는 그런 그녀를 비웃듯 

청소를 해도 해도 깨끗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문제는 바로 저 웬수같은 사령관이었다.

데코레이션이란 이유로 저 다트판 같은 온갖 잡동사니를 난잡하게 들여놓는건 예사요

그녀가 청소를 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그는 방을 어지르고 있었다.


예를들어 저 책장, 분명 10분 전에 그녀가 깔끔하게 정돈했지만 

저 웬수가 잡지를 제 자리에 꽂아넣지 않고 책 위에 대충 쑤셔넣는 바람에 그새 어질러져 있었다.

바닐라가 톰이라면 사령관은 제리처럼 그녀가 하는 일을 실시간으로 훼방했고

그녀는 뫼비우스의 띄마냥 반복되는 이런 일상에 짜증이 확 치밀었다.

사령관은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를 후벼파더니 코딱지를 둥글레 말아 

함장실 구석에 탁 하고 튕겨냈고 이성의 줄이 끊어져버린 바닐리가 책상을 쾅하고 내려쳤다. 


"아 깜짝이야!! 무슨 짓이야!"


"지금 청소하는거 안보이십니까?"


"아 쫌~!! 그놈의 청소 아침에도 했는데 하루에 한 번으로 줄이면 어디 덧나냐? 


"누군 하고 싶어서 하루에 4번씩이나 청소하는줄 압니까?!

하루에 4번 청소하지 않으면 이 함장실은 수습이 불가능한 돼지우리가 되고 말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너무 깨끗한건 싫어! 오히려 불편하고 일하는데 방해가 된다니까!"


"주인님이 하는 일이라곤 어떻게 하면 참신한 방법으로 LRL양을 놀려먹을까 

궁리하는거 밖에 없지 않습니까?"


바닐라와 사령관이 으르렁거리면서 옥신각신 하던 그 때 

함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콘스탄챠가 트레이를 끌고 안에 들어왔다. 


"주인님. 식사시간이에요."


콘스탄챠를 본 사령관은 움찔했다. 

그의 전반적인 생활과 잡무를 책임져주는 하우스키퍼 겸 비서 겸 업무셔틀을 화나게 했다간

평온하고 여유로운 해피한 일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난 한달간 사령관은 정말 뼈저리게 배웠다.


'바닐라. 내가 잘못했다. 콘스탄챠한테는 이르지 말아다오."


사령관이 다급하게 속삭이자 바닐라가 승리의 썩소를 지었다. 


'아까 전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가신겁니까 주인님?'


'아 쫌 봐줘라...하나 남은 그랑크뤼 초콜릿은 너 줄테니까 어때 딜?'


'딜! 나중에 말바꾸기 없습니다.'


사령관과 바닐라가 책상 밑에서 화해의 뜻으로 손을 잡고 흔들었다. 


콘스탄챠가 트레이에서 음식을 꺼내 뚜껑을 열자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티본 스테이크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모습을 드러냈고 사령관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오오...때깔 좋은거봐. 새까맣게 태우지 않고 미디엄 레어로 잘 익힌거 보니까 

포티아의 솜씨는 아닌거 같은데 누가 이걸 만든거지?"


사령관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기다란 흰 머리를 찰랑이면서

족제비의 상을 한 바이오로이드가 그의 앞에 다가와 절을 올렸다. 


"소완이라 하옵니다. 최후의 인간님을 뵙게 되어 소첩, 감개무량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부제는 마스터 셰프 ORCA인데 분량조절 실패로 마스터 셰프 ORCA는 나오지 않는 폰마셰프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모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