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저주에 걸린 것이 틀림 없다. 혹은, 어찌할 도리가 없을만큼 사랑에 빠졌거나.


천장에 난 구멍으로 보름달이 보였다.무너진 건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달빛을 받으며 몽환적으로 빛났다. 


그가 잠들어 있는 포드, 식물로 뒤덮힌 잔해들, 그리고... 가슴에 난 구멍으로부터 쏟아져나오는 검붉은 피.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내게는 5분 남짓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만이 삶이라면, 그보다 적게.


그나마, 고통이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무거운 몸을 이끌고, 포드를 향해 기어갔다. 몸을 세워, 작은 창 속 담긴 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순진하면서도 섬세해보이는 얼굴.


이상한 일이다. 분명, 심장은 6분 전에 한 줌 핏물이 되었을텐데, 심장을 간질이는 온기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가시가 박힌 듯 날카로운 고통이 숨통을 조인다.


"쿨럭, 쿨럭...!"


무너지듯, 관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등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야속하게도 한 없이 서늘하기만 했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고개를 들어, 달을 다시 바라보았다.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달빛 사이로 기억이 피어올랐다. 


***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지만, 삼두구미라는 괴물이 있었다. 


주로 제주의 민간 전승에서 등장했는데, 그 이름대로 머리가 셋에 꼬리가 아홉인 요호였다. 평소에는 노인의 모습을 한 이 요괴는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파먹으며 살았다 한다.


나의 모델명은 이 요괴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나는 두미 413호. 시체를 파먹기 위해 설계된 바이오로이드다.


기업과 정부 간의 전쟁이 끝났을 때의 일이었다. 비록, 세 기업들은 전쟁에 승리했으나, 종전 직후에는 막대한 손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전쟁은 언제나 사업에 좋지 않은 법이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기업으로써 그들은 그 손실을 묵과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은 이제 그들 것이었고, 그 손실을 만회할 방법은 수 없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안전했던 것이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강력한 AGS들이 주축이었던 정부군에 맞서 기업연합군은 물량전을 펼쳤었다. 


하루에, 1만에 달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배양되어 전장에 나갔다. 그리고, 채,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9할이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당시의 통계에 따르면, 만주벌판에서만 100만이 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죽었다. 시체가 산과 들을 덮었다는 오랜 비유가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모두 재활용이 가능했다.


단순히 무기나 장비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체에 남아있는 오리진 더스트, 합금으로 이루어진 골격, 뇌에 박혀 있는 각종 묘듈들까지. 하나 같이 간단한 재가공 절차만 거치면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치, 플라스틱 쓰레기들처럼.


심지어, 합금으로 이루어진 바이오로이드의 골격은 300년이 지나도 썩기는 커녕 녹슬지도 않았다.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오리진 더스트 역시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었다.


경제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던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이 탄생했다.


특수 제작된 시체 분리수거용 건틀릿을 오른팔에 차고, 이동형 창고를 등에 맨, 옛 요괴의 현신들.


우리는 부패한 전장을 누비며 죽은 바이오로이드의 뼈를 발라내고, 머리를 부숴 사고묘듈을 뇌수 속에서 건져냈다. 그리고, 남은 살과 내장들은 한데 모아, 오리진 더스트를 추출하고 소각했다.


그렇게 창고가 가득차게 되면, 창고는 재활용 시설로 보내졌고, 재료로 가공되어 다시 바이오로이드 배양 공장으로 보내졌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경제였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일거리는 줄지 않았다. 기업들 간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오히려, 적을 죽인다는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었다.


우리는 전투가 일어나면 병사로써, 전투가 끝나면 청소부로써 일했다. 때로는 우리 중 하나를 분리수거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혐오하며 배척했지만, 상관없었다. 그것이 인간들이 우리를 만든 이유였으니까. 


인간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시체를 파헤칠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철로 이루어진 악마들이 떨어져내렸다.


...


사실, 그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한다. 그 전의 기억들조차 자매들에게서 이어 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배양 포드에서 태어났을 때, 이미 세상은 꿈의 잔재들만이 남아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나의 자매들은 없었다. 그들을 찾아 세상을 떠돌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부패한 유전자 씨앗 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우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뿐이었다. 이 광활한 세상에, 나 혼자. 


그래도, 시체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 때부터, 나는 내 일을 시작했다. 시체들을 분리수거하고, 그 부산물을 아무도 찾지 않을 창고에 보관했다. 그 무의미함을 모르진 않았으나...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계처럼 시취 어린 일상을 그렇게 30년간 반복했다. 


그리고, 그를 발견했다.


***


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의 오늘은 내일과도 한달 뒤와도, 10년 뒤와도 다르지 않다. 


낮에는 철충들을 피해 지하수로에 숨고, 그들의 활동량이 적어지는 밤에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여명이 나를 고발하듯 비추면 다시 지하수로로 숨어들었다. 


쥐새끼의 것과 큰 차이 없는 매일. 그 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하수로에서 숨겨진 연구소를 찾기 전까지는.


그곳의 설비는 무식한 내가 보기에도 멸망 전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전등뿐만 아니라 모든 설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요 설비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이곳은 인류의 마지막 보루 중 하나였던 걸까. 대체 그들은 이 곳에서 무엇을 연구했던 걸까.


이런저런 곱씹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연구소의 최심부로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본 것 중에 가장 거대한 문이 나를 맞이했다. 잠금장치조차, 컨테이너만한 문을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나는 우리들 중 하나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을 짓을 저질렀다. 문을 열려고 한 것이다.


그 문을 여는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최소 100구의 시체를 분리할 수 있는, 멸망 전 시세로 계산하자면 최소 1천만원 이상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안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 문을 여는데 낭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미친 것처럼 밤낮을 잊은 채 문을 여는 데 매달렸다.


그리고, 긴 노력 끝에 나는 환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60평 쯤 되보이는 거대한 방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마저도 방에 있는 유일한 등이 만든, 빛의 원 안에 들어올만큼 작다.


그럼에도, 그 방의 공기는 그 물건 하나 때문에 한 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세로로는 1미터, 가로로는 50센치를 넘지 않는 배양용 포드였다. 포드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문제는, 그것에 매달린 황금빛 유골들이었다. 바이오로이드의 것임이 분명한 여섯개의 해골들은 절박하게 포드를 붙잡고 있었다. 


마치, 구원을 갈망하는 한 무리의 죄인들처럼.


돌연, 나는 이 기괴한 경건함을 등지고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포드를 향해 다가갔다.


조심스레 유골들을 치우니, 낡은 천이 포드에 난 창을 가린 것이 보였다. 발악하듯 망설임이 가슴 속에서 날뛴다. 하지만, 기어이 나는 천을 치워냈다.


그렇게, 그가 내 삶 속에 박혀들었다.


***


바닥에 박혀있던 포드를 분리하는 데 일주일. 그리고, 그것을 지상으로 끌고 나오는데 또 한 달이 걸렸다.


말했다시피, 그것은 우리 답지 않은 일이었을 뿐더러, 내게 각인된 명령 역시 반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했다. 


내 언어묘듈에는 8개 국어가 내장되어 있으며, 내 뇌 속에는 삼안 사 특유의 관습에 따라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지금조차도.


손바닥만한 창에 담긴, 그의 얼굴을 보면, 그저... 얼굴 가죽 아래에서 무언가 우글거리는 것 같았다. 안면 근육이 그 탓에 경직된 건지 입꼬리가 올라갔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은 듯, 가슴 뛰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온기가 치밀어서 머리가 몽롱해졌다.


대체 이 감정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할까.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이 감정에 중독되었다는 것만큼은 명백했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체를 분리수거 하는 중에도, 포드 옆에 쪼그려 앉아 그 얼굴을 확인했다.


어떨 때는 그저 하루 종일 앉아서 그의 얼굴만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시간은 참치캔처럼 구겨져서, 1분이 1초가 되고, 1시간이 1분이 되었다. 


중증의 마약중독자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을 때도 그의 얼굴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볼 때는 가슴에 솟아나는 그 감정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때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중독이란건 더 큰 자극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