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옛날.

 철충이란 재앙이 온 세상을 뒤덮기 전, 인간이 신이었을 무렵.


 생명의 창조란 위대한 기적을 손에 넣은 인간들에 의해. 대지에 첫 발을 내딛게 된 아름다운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위해, 인류의 손과 발, 눈으로서 행동하며 충성을 증명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창조한 신들에게 있어 아주 가까운 존재였다.

 물이 땅에서 바다로 흘러, 바다에서 구름으로, 그것이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듯이.

 인위적으로 태어난 생명이라 할지라도 같은 하늘 아래, 위대한 생명의 축복을 통해 탄생한 그들은 서로 닮아 있었다.


 그러나, 신들이 그들을 자신들과 동등한 하나의 객체로 여겼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들 모두가 쓴웃음을 짓고서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들을 창조한 인간들은 이 가련한 생명들을 무참히 짓밟고, 찢고, 뭉개고, 탐하며 그들의 존엄성을 망가뜨렸다.


 허나 그들은 그런 인류의 폭거에도 자신들을 창조한 오만한 신들을 위해 기꺼히 몸을 바치며 숭배의 눈길을 보냈다.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였다. 신이 그들을 창조할 때, 그렇게 만들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바이오로이드. 한 때 인류의 찬란하고도 추악했던 문명을 장식하던, 가련한 장신구들이다.









 그 날도, 블랙리버의 격납고에는 잔잔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격벽마다 달린 조명의 환한 빛이 켜지고, 정비복을 입은 바이오로이드와 인간들이 바쁜 발걸음으로 중앙 통로를 오가고 있다.

 오늘 하루 동안 발생한 무수한 오류와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무언가를 고치기에 어울리는, 깊지 않은 밤.

 철을 두드리며 나사를 조이고, 선을 연결하는 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런 가운데, 격납고의 모퉁이에 있는 컨테이너의 구석에서, 한 여자가 누워 뒹굴고 있었다.


 다른 정비공들과 마찬가지로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꽤죄죄한 차림이지만.

 길쭉하고도 늘씬한 몸매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커다란 고글이 눈에 띄었다.

 어지간히 바닥에서 굴렀는지, 거의 벗겨진 모자 사이로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고글 뒤에 감춰진 그 두 눈은, 그저 멍하니 허공을 향해 있었다.

 

 언뜻 보면, 개방되어 있는 천장 너머라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치고 있는 풍경은 보통의 사람들이나 바이오로이드들이 보고 있는 것과 조금 달랐다.


 여인의 눈에 보이는 모든 부품 하나하나가, 가지각색의 빛을 띄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의 찬란한 빛은 너저분한 공구함에서도,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도 치솟아 조그만 컨테이너 구석구석까지 이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제 역할을 마친 철의 생명이, 기름의 끈적한 향을 타고 떠돌고 있었다.

 문득, 자신의 사명을 마친 하나의 철조각이 격납고 한켠의 용광로로 스며들어가는 소리가 여인의 귓가를 먹먹히 울렸다.


 의식을 집중하기만 하면,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이 거대한 격납고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뜨거운 생명의 불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수많은 광물이 가지는 특성과 성질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바이오로이드는 적지 않지만.

 그녀 만큼 선명히 본질을 내다볼 수 있는 이들은 몇 없었다.


 이 눈을 가지고 있다면, 기계로서 만들어진 생명의 영혼이 각기 다른 색을 띄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


 여인은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윽고 누군가가 컨테이너 주변의 부품을 치우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제발 자신을 찾는것이 아니기를 희망하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눈을 감았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를 향해 제발이라 웅얼거리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발소리의 주인은 끝내 그녀의 머리맡까지 다가와서 삐딱하게 선 채로 서슴없이 말을 걸어왔다.


 

 "여어, 펙스의 기계 요정님. 아! 이제 블랙리버의 기계 요정님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까?"


 

 그 말을 들은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건넨 남자는, 정비모에 가려지지 않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가만히 발치의 여성을 응시했다.

 그대로 몇 초. 결국 그 집요한 시선을 이겨내지 못한 것인지 짐짓 모른척 고개를 돌린 채 뒹굴고 있던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몸을 툭툭 털며 일어서서 드러나 있던 흰 브릿지가 섞인 갈색 머리를 검은색의 모자 안으로 집어넣고 나서야,

 그녀는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방문자에게 대답했다.


 

  "...전 아직 펙스 콘소시엄 소속의 바이오로이드 입니다, 블랙리버 유한회사와 저희 회사측의 목표가 일치했기에 잠시 이 곳에서 머물고 있는거고요."



  "아무렴 어때? 나는 지금 눈 앞에서 순수 공학의 정수라 불리는 요정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한걸.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얘기했던 거, 생각해봤어? 왜 그 펙스쪽 일 때려치우고 우리쪽으로 오는거 말이야."



 "...전 순수하게 양사의 협력 관계에 의해 잠시 동안 이곳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아직 펙스 콘소니엄의 명령권에 종속된 상태이니, 죄송하지만 오토 베르니케님의 지시를 이행할 수는 없습니다."



 펙스 콘소시엄 측의 관계자가 들었다면 심히 불쾌해 했을만한 발언이란 것을 자각하지 못했는지,

 마음속으로 깊이 한숨을 내쉰 여인, 해체자 아자즈는 삐딱하게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힐끗 내려다 봤지만.

 블랙리버 AGS(Auto Guard System) 관리부 국장 오토 베르니케는 여전히 명랑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 옷차림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기름때에 쩌든 정비 복장으로 특별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한 부서를 책임지는 위치의 인간으로서 그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

 국장이란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밑에 사람을 부리는 행동보단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직접 AGS를 유지, 보수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과

 광물이 지닌 특성과 가치, 그리고 그 것에 깃든 혼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겸한, 아자즈와 '동류'였다.

 어쩌면 보는 것 만으로는 그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늘 엉성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그의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은 언제나 철과 부품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다.

 이제 그를 만난지 한달이란 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아자즈 또한 이 특이한 사내가 블랙리버라는 거대 군수기업의

 AGS 관리부 국장이란 직함은 허울로 달고 있는것이 아니구나, 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자신을 넘어서는 이 특이한 성품은 어떠려나 하고 종종 실없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던 아자즈는, 아직도 웃는 채인 오토에게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이신가요?' 라고 용건을 물었다.


 그러자 그의 입꼬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층 더 상승한 것을 본 그녀는 조금... 아니, 꽤 많이 귀찮아 지겠다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늘 그랬듯 미끼를 물어버린 생선마냥 파득거릴 일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아가씨가 매일 땡땡이 치는거 말이야."



  "저 또한 그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만, 당장 밀린 일이 너무 많은지라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건 뭔 소리야? 아무튼, 일이 밀려서 바쁘다고? 그런것치곤 매일 바닥에 껌딱지 마냥 붙어서 뒹굴고 있던데?"



  "전 늘 바닥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싶어한답니다. 이 광활한 대지 아래 잠들어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오토 베르니케 님께서는 지금 당담 직무를 피하기 위해서 저를 찾아오신 듯 한데, 한낱 바이오로이드에게 묶여있지 마시고 속히 업무에 복귀하시는건 어떠실까요."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토는 처음으로 입꼬리를 내리며, 묘한 눈빛으로 아자즈를 쳐다보았다.

 다른 이가 보았다면 감히 건방진 말투로 인간에게 설교를 한 바이오로이드를 벌하려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뜨거운 시선이였지만,

 아자즈는 그의 눈빛이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저 눈빛은 '왜 내가 일하기 싫어서 튄걸 알고 있는거지?' 정도의 시선이다.


 그 무언의 물음에 대답하면, 또 긁어 부스럼이 될 것이라는 건 뻔히 보이는 그녀였지만.

 지난 한달간 그랬듯, 가만히 회답을 기다리는 이 귀찮은 인간님의 끈기에 지고 만 아자즈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낮에 같이 일하시던 인간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요즘들어서 오토님께서 국장 업무를 팽개치시고 자꾸만 격납고로 숨어... 들어오신다고 말이죠."


 

 오토는 그녀의 솔직한 답변을 듣고서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어깨를 떨며 웃었다.


 

 "페터 그 자식이 결국 아가씨한테 꼰지른건가? 이거 참 부끄럽구만, 나름 안들키고 튀려.. 빠져 나온다고! 옷도 훔쳐입어서 나온건데! 하하하!"


 

 오토의 호탕한 웃음 소리를 듣던 아자즈는 점점 음흉하게 바뀌어가는 오토의 표정을 불편하게 바라보다가

 이 시한폭탄과도 같은 인간님이 더이상 자신에게 딱히 볼 일이 없다면 재빨리 그 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가 황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이봐 요정 아가씨, 나도 좀 같이 땡땡이 쳐보자 응?"



 '거 부탁 좀 합시다. 다음에 있을 시연회 빼줄게' 라며 심상찮게 미소를 짓는 오토의 모습에, 아자즈는 이내 살풋 미간을 찌뿌렸다.

 빨리 숙소에서 한정판 1/144 사이즈 메탈 골타리온 프라모델 조립해야하는데. 라고 한탄을 하면서 말이다.












ㅇ아잦....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