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 게임 - prologue




                                                                         



인국유성.인적국지우야(隣國有聖人敵國之憂也), 이웃 나라에 성.인이 있으면 적국으로서는 근심거리다.

- 사마천, 사기 진본기 中



"총사령관이 잠든 지 벌써 8년이 지났소."


성숙한 듯한 깔끔한 목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치마 아래까지 내려오는 흰 망토와 더불어 전체적으로 깔끔한 흰색의 제복, 어깨를 덮듯이 내려온 정결한 흑발과 어우러진 목소리는 주위의 집중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무적의 용. 호라이즌을 지도하는 함장이자, 인류의 전 함대를 이끄는 지휘관이기도 한 그녀는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품은 듯이 날카로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사령관의 진전 상태에 대해 듣기가 힘들구려."


총사령관이 왕도 오르카의 지하에 잠든 지 8년, 초기에는 어느 정도의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지 이야기가 들렸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듣기도 힘들어졌다.

5년차 부터 치료가 더뎌지고 있다는 말을 꺼낸 이후부터 거의 치료에 대한 언급이 줄어가고 있다는 점이 지휘관 개체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적의 용의 말이 끝나자 잠시의 침묵이 테이블을 감싸기 시작했다. 주위의 지휘관 개체의 바이오로이드들도 침묵으로 그 말에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상석에 앉아있던 남자는 조용히 눈을 떠 근처를 둘러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흑갈색 머리카락과 호리호리한 몸매는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나 날카로운 눈매와 위압감으로 인해 중성적인 매력으로 변하고 있었다.

콘스탄챠의 녹색에 가까운 눈을 이어받은 총사령관의 장남, 세바스티안은 양옆에서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리는 것이 느껴지자 짧은 콧김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버님의 치료는 무척 힘든 작업입니다. 워낙 몸 상태가 악화하셨고,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 기술들이 복원되지 않았던 탓에 멸망 전 수준의 진료가 힘든 이상 시간과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말은 그게 아님을 알고 있지 않소?"


무적의 용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에 반박해 들어갔다. 과거의 총사령관이 있었을 시절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무례함이었으나 주위의 그 누구도 이러한 행동에 지적하는 자는 없었다.

다들 임시 총사령관인 세바스티안에게는 그럴 위엄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였을 것이다.


"재작년부터 치료 진행률이 75%라는 말밖에 듣지를 못했소. 2년이 지났거늘 아직까지도 그 이상 발전하지 못했단 말이오?"


"주인님의 치료에는 많은 기술이 필요해요. 현재로서는 부족한 기술을 대처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을 뿐이에요."


무적의 용의 말에 세바스티안의 뒤에 있던 콘스탄챠가 끼어들어 대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인류는 멸망 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이미 너무나도 많은 기술과 자원들이 사라져버렸고 로스트 테크놀러지가 되어버린 기술들을 복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적의 용은 잠시 언짢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콘스탄챠와 눈을 마주쳤다. 비록 지휘관 개체의 역할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총사령관의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그녀는 오르카 호의 안주인의 자리로 등극했었다.

그 덕분에 원래라면 참여하기도 힘들 지휘관 회의에도 모습을 보일 수 있었으나 이렇게 주관적으로 의견을 피력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지휘관 개체의 아이들이 인큐베이터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른 지휘관 개체들의 입김이 거세어지기 시작하자 콘스탄챠도 모성의 마음으로 회의에 자주 참여해 발언권을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곱게 바라볼리는 만무했다.


"...콘스탄챠 양에게 묻지 않았소만."


"주인님의 일에 관해 물어보시길래 저도 이야기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렸어요. 언짢으셨다면 죄송해요."


콘스탄챠는 짧게 목례를 하며 사과를 건넸으나 이 장소에 있던 그 누구도 그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증거로 여전히 힘이 들어간 눈동자가 무적의 용의 날카로운 푸른 눈의 안으로 파고들겠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짧은 눈싸움을 지속하던 무적의 용이 먼저 고개를 돌려 다시 상석에 앉은 세바스티안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세바스티안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그 눈길을 받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세바스티안에게서 대답이 나올 여지가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지 않나?"


간드러진 듯한 목소리였으나 어딘가 독기를 품은 듯한 분위기의 말투가 기분을 건드린 듯이 세바스티안의 표정이 조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조용한가 했더니...'


속으로 말을 삼킨 세바스티안은 고개를 돌려 고고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철혈의 레오나를 마주 보았다. 백금색 머리카락과 어딘가 졸려 보이는 듯한 인상이 어우러져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길 법도 하건만, 차가운 눈빛과 말투 때문인지 강철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든 인상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눈가에 주름이 잡힌 것이 인상까지 쓰고 있었으니 더욱 그런 느낌을 받기 쉬울 수밖에 없었다.


"총사령관은 분명 7년 뒤에 새로운 후계자들이 태어나면 직책을 주고 업무 능력을 키우라고 말하지 않았나?"


레오나의 말대로 총사령관은 정식 후계자의 자리를 세바스티안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능력을 시험할 수 있도록 왕도에 들어와 오르카의 내부에서 직책을 맡기도록 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세바스티안은 아직 실전에 들어가기에는 학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왕도로 불러들이지 않고 대륙 곳곳에서 각 지휘부대의 업무를 도와 안정화 작업에 들어가도록 명령을 내렸다.

막 깨어났을 무렵에는 인큐베이터의 지식을 통해서만 습득된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지휘관 개체들도 어느 정도 불만을 품으면서도 이해하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 뒤로 1년이 지나도록 아무론 소식이 없자 답답해진 바이오로이드들도 분명히 있었을 테니.

이러한 문제들이 겹쳐져 결국 한 달에 한 번 있는 회의에서 터지고 만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물론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세바스티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세를 바꿔 철혈의 레오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휘관에게 들려주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는 레오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휘관 개체가 불만을 가지던 사항이었으니 직접 끝을 맺으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이제 1년,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왕도의 업무는 단순히 지역 안정화와 개발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야와 각 부서 및 부대와의 교류를 통한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바스티안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말이 예상되기 시작한 바이오로이드들의 눈에서 불만이 눈물처럼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바스티안은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총사령관은 첫째 아들이었던 세바스티안의 가능성을 무시했을지 몰라도, 그 또한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총사령관의 아들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당당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고 주위의 지휘관들도 그 점만은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깊은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싶으신 심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제 동생들을 다른 지휘관의 곁으로 보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갑작스러운 제안에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흠칫거리며 몸을 들썩였다. 짧은 말이었지만 세바스티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쉽게 요약할 수 있었다.


'각 지휘관 개체의 자식인 후계자들을 다른 지휘관의 휘하로 보내라.'


자신이 아닌 각 지휘관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경쟁을 붙이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말이었으니 분노하거나 어이를 상실한 지휘관들도 곳곳에 드러나게 보이었다.

심지어 아까 말을 꺼냈던 철혈의 레오나나 무적의 용은 굳은 표정으로 미쳤냐는 듯이 세바스티안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지속되던 침묵은 앙증맞은 고함과 함께 깨져버리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어느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소녀는 지휘관 회의라는 자리에 걸맞지 않게 무례한 행동을 일삼고 있었다. 일어나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티조차 나지 않는 작은 키에 그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흉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붉은 머리카락은 작은 키를 더욱 강조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기동 폭격을 위한 부대인 둠 브링어를 이끄는 소녀는 그 몸집에 걸맞지 않게 멸망이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었다.


멸망의 메이. Throne of Judgement이라는 거대한 의자에 몸을 실은 채 지상을 불태우는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녀의 호전성과 잔혹성에 치를 떨며 그 이명을 이해하게 되고야 만다.

그러나 전장에서의 모습과 달리, 일반적인 그녀의 모습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녀가 전장과 일상의 차이가 이렇게나 큰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뿐이다.

전장에서의 모습에 냉혹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여도 그 위험성 때문에 여리고 소심한 성격도 동반하게 된 탓에 지금과 같이 어린애 같은 행동을 보이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이해한 메이는 뒤늦은 헛기침과 함께 다시 자리에 앉아 세바스티안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도 그럴게, 다른 영역으로 보내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야?"


"아버님은 다양한 업무를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직책을 마련하라는 의미셨습니다. 그러니 다른 영역의 업무를 돕는 것도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메이의 말에 잠시의 틈도 없이 반박에 들어간 세바스티안의 태도에 메이는 잠시 불쾌감을 느끼고는 뒤이어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총사령관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잖아?"


"물론 직접적인 말씀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다. 그러나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보다 왕도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업무가 더 다양하지 않나? 총사령관도 그걸 원하고 있을 텐데?"


"물론 때가 오면 기회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지금은 튼튼한 기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중요한 직책에 능력이 불확실한 동생들을 앉히고 싶지 않군요."


"...그럼 그때는 언제 오는데?"


"아버님의 피를 이어받은 것은 물론이고 능력이 뛰어난 지휘관분들의 자식이니 각지에서도 충분히 활약하여 능력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능력을 보여준다면 왕도에 자리를 마련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어느샌가 세바스티안의 말에 넘어가고 있는 메이를 보기 안쓰러웠는지 맞은편에서 경건한 목소리가 말을 가로채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러한 시련들이 반려의 후계자들을 강하게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고 사료됩니다."


등 뒤의 날개를 슬며시 들어 올리며 주위의 시선을 끌어모은 아자젤은 뒤이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바스티안을 바라보았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예. 왕도에서 직접적인 업무 능력을 쌓는 것입니다."


아자젤의 직접적인 발언에 상석의 세바스티안은 물론, 뒤쪽에 기립하고 있던 콘스탄챠까지 표정이 굳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반려는 아르망 추기경과 더불어 이 오르카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재셨습니다. 당연히 육성에 대해서도 추기경과 오랜 토론을 거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자젤은 무언의 동의를 구하듯이 구석에 서서 회의를 지켜보던 아르망 추기경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아자젤의 시선이 탁상의 밖으로 향하자 아자젤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들도 따라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에게로 시선이 몰리자 아르망 추기경은 잠시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지만 곧이어 침착하게 작게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의견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자신의 의견에 신뢰도가 쌓이자 자신감을 얻은 아자젤은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왕도에 직책을 두고 성장하는 것도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반려의 계획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되니, 이만 왕도로 부르시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어요?"


더 이상 의문형조차도 아닌 사실상의 강제성이 느껴지는 말투에 주위의 바이오로이드들도 침을 삼키고 세바스티안의 반응에 오감을 곤두세웠다.

치열한 설전을 예상하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던 세바스티안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에 맞받아쳤다.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군요, 아자젤님.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그러한 전권을 제게 위임하신 뒤 잠드셨습니다."


세바스티안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손목에 장착된 시계는 어느새 회의가 끝날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당연히 저의 선택을 존중하셨음은 물론이고 제 선택이 육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셨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추기경께서도 그렇게 예측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이번에도 회의장의 시선이 아르망 추기경에게로 몰렸으나 추기경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경청하고 있었다.

아까와 달리 동의가 없는 행동이었으나 세바스티안에게는 아르망의 동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신격화되어 추앙받고 있는 총사령관의 판단이라는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자젤이 내세운 것과 똑같은 방법이었으니 처음 의견을 꺼냈던 아자젤조차도 별다른 반론을 하지 못하고 여유를 부리는 세바스티안의 표정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느 정도 주위의 열기가 식어들자 세바스티안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척하면서 회의의 끝맞침을 고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회의가 오래되어 많이들 피곤하셨을 텐데 그만 들어가시지요. 밀린 업무도 해결해야 할 테니."


세바스티안은 이미 주위의 동의를 구할 생각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들을 생각이 없는 상대를 향한 회의는 지속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핑계로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을 기세였기 때문에, 다른 지휘관들도 이 이상 주제를 꺼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었는지, 차례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짐을 챙기던 세바스티안은 마지막까지 자기를 노려보며 나가는 멸망의 메이를 배웅하고는 텅 빈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한때는 총사령관이 꿈꾸던 모든 것이 세워져 있는 이 회의실에 앉아있던 것은 그가 원하지 않았던 후계자였다.

이러한 아이러니함에 헛웃음을 내보내던 세바스티안은 마지막까지 남은 자신의 어머니, 콘스탄챠에게 다가갔다/


"고생하셨어요, 어머님."


반듯한 세바스티안의 목소리가 맘에 들었는지, 콘스탄챠는 가벼운 미소로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러나 곧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세바스티안."


부드러운 목소리가 세바스티안을 감싸듯이 스며들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유일하게 유년기를 지냈던 세바스티안은 어릴 때부터 항상 자신을 돌봐온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연기하는 총사령관의 목소리는 거의 들을 일이 없었으며,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가슴속에 콘스탄챠에 대한 시샘으로 인해 그 아들인 자신에게도 영향이 미치고 있었다.

혼란스럽던 시기의 오르카 호 내부에서 그를 지키고 아껴주는 목소리는 콘스탄챠와 그녀의 자매들인 배틀 메이드 프로젝트의 바이오로이드뿐이었다. 세바스티안에게 있어서의 가족이란, 그녀의 어머니와 자매들인 배틀 메이드 프로젝트의 인원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어느새 다가온 콘스탄챠의 손길이 세바스티안의 뺨을 타고 흐르자 온기를 느끼려는 듯이 눈을 감고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피부로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에 마음을 다잡은 세바스티안은 다시 각오를 다진 얼굴로 여전히 아름다운 눈을 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냉혹한 표정은 한때, 인류의 적을 몰아내던 총사령관의 표정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아들에게서 반려의 모습을 발견한 콘스탄챠는 뿌듯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세바스티안, 너는 주인님의 유일한 적자란다."


그녀의 말은 틀리면서도 틀리지 않았다. 총사령관과 지휘관 개체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많았지만, 정식으로 정사를 통해 태어난 아이는 콘스탄챠의 아이뿐이었으니까.


"비록 그녀들이 너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너는 언제나 당당해야 한단다."


그녀의 말은 짧고도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그녀의 아들이었던 세바스티안은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고 있었다.


"예, 어머니. 걱정마세요."


세바스티안의 눈길은 더 이상 자신의 어머니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문밖에서 자신의 권리와 가족을 해칠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하이에나만이 그의 목표였다.


사랑조차 없이 태어난 자신의 형제와 자매들은 후계자가 될 자격 따위는 없다, 그것이 콘스탄챠에게 이어받은 세바스티안의 사고방식이었다.


오직 이 왕관을 쓰기 위해서 자신은 20년이 넘는 시간을 엎드리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예비에 불과한 자신의 동생들이 왕관을 이어받는 일 따위는 결코 인정할 수 없을 테니까.

세바스티안는 굳게 닫힌 문의 밖이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이 노려보며 그녀의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이 왕관은, 저만이 쓸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왕관을 유지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유능한 왕은 결코 적국에 성.인을 두지 않는 법이니.


'오늘 이후로 나는 아버지 유일한 독자가 될 것이다.'


젊은 왕자는 이미 자신의 몫을 노리는 들개를 사냥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공백제외 6467자, 공백포함 8467자입니다.


어떻게든 1화가 연재되었습니다... 급하게 시작한 작품이라 연재가 제대로 진행될지 조금 골치아프네요 ㅋㅋㅋㅋ

웃긴게 성.인이 금지어라서 그 사이에 급하게 .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단어가...


앞으로 문단의 시작에 그려진 부대마크는 이번 챕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부대의 인물이 이 챕터의 서술자에 가까운 역할이거나 주인공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번의 경우 콘스탄챠의 아들인 세바스티안이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기 때문에 배틀 메이드 프로젝트의 마크를 삽입했습니다.


프롤로그 쓸 때는 6천자가 참 끝도 없이 많아서 살 붙이느라 힘들었는데 1화는 생각보다 금방 써졌네요. 

문제는 흥미를 잃지 않도록 글을 유지할 능력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가능하면 불편감없이 연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