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밀리는 강력한 바이오로이드다. 

화력으로 승부하는 캐노니어 부대원 중에서도 최강으로 손꼽히며, 중요한 작전에서는 늘상 결전병기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런 에밀리의 화력을 강화하는 것은 오르카호에 큰 도움이 될것이다...라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어..하지만 그 수술, 엄청 위험해, 아이 참, 큰일날 수도 있다니까?"


닥터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에밀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오르카호에 새로 합류한 이터니티에게 최강의 자리를 빼앗긴 지금,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강해지는것, 그리고 사령관의 인정을 받는 것.


"강해지면..사령관이 좋아해.."


어눌한 문법이지만 뜻을 전달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강해지면 더 많은 공을 세울 수 있고, 또 그만큼 사랑하는 사령관의 얼굴을 많이 볼수 있다.


"...아아..정말이지."


닥터는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짚었다.

도무지 포기할 기색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다른 자매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 분명한 ''에밀리를 강하게 만들어야하는 101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서류와, 


에밀리의 진지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닥터는 굳은 결의로 반짝이는 소녀의 눈동자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번뿐이야?"


"...! 고마워 닥터."


"이잇, 그렇게 고개숙여 인사할 필요는 없어!"


"..응."


"그래, 저기 실험실 침대에 누워있어. 자고 일어나면, 전부 끝나있을 테니까."


"으응, 그럴게."


에밀리를 이전보다 더 강한 바이오로이드로 만드는 것에는 약 반나절이 걸렸다.

절묘하게 배합된 약물과 더스트가 관을 타고 주입될 때마다 강해진다는 고양감에 휩싸여 수술대 위에 누워 발을 까딱거렸다.

마치 원하는 것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암.."


독한 약물과 섞여 주입된 수면제에 손을 들어 눈꺼풀을 문질렀다.

에밀리는 의식이 깜빡거리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어..?"


"아, 일어났어?"


언제 잠들었던 것일까. 

희미한 약품 냄새가 코를 찔러오고 있었다.

에밀리는 놀라 일어나려다 휘청이며 이불을 잡았다. 배가 고프다.

몸의 근육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그녀는 침대에 반쯤 몸을 붙인채 의기양양한 얼굴의 닥터를 올려다 보아야만 했다.


"끝..난거야?"


"응,일어나 볼레?"


에밀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번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땅을 잡고서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온다.


"나..엄청 강해진 것 같아."


그녀는 맹하게 웅얼거리며 주먹을 쥐고 펴는 것을 반복했다. 

약에서 깨어난 몸을 움직이자마자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몰아친다.

제녹스만 있다면 그 어떤 적도 일격에 녹여버릴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신감이 차올랐다.


"....사령관한테..말해야..."


"아! 잠깐 에밀리! 적어도 하루는 안정을 취해야..!"


"고마워..닥터…"


"에밀리!?"


에밀리는 따라붙는 닥터의 말을 애써 못들은 척 하며 곧바로 실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휘청이며 달려가는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2


닥터의 걱정과는 다르게, 강화는 매우 성공적이였다.

강해진 그녀의 힘 아래 철충들은 흐물흐물 녹아내렸고, 에밀리는 그토록 원했던 사령관의 얼굴을 더욱 많이 마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자라…"


에밀리는 드물게 초조해하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눈 앞에는 수많은 철충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신경쓰지 않는듯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만 했다.


"...더..강해..져야. "


[?!€$¡¡¡]


명백한 무시에 격분한 철충들이 달려들었지만 에밀리는 제녹스를 충전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총알이 비처럼 내리는 전장에서 한눈 파는것은 죽음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조심하시길."


근처까지 다가온 철충이 발톱을 내리찍으려는 찰나 거대한 철로 이루어진 관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쇠가 쇠를 긁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철충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갔다.


[?!¿♤$.....€….]


"..."


에밀리는 이터니티의 기관총이 철충의 몸을 갈아버리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터무니없이 강한 힘이다. 

어째서 저 벽을 넘을 수 없는 것일까.

그녀 역시 질세라 제녹스를 쏘아댓지만 이번에도 이터니티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철충의 뇌파가 더이상 느껴지지 않으니, 이제 돌아가도록 해요."


"먼저 가..나.. 조금 나중에…"


전투가 끝나고도 한참을 우울해하던 에밀리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전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제녹스보다 기관총에 쓰러진 철충들의 수가 훨씬 많다.


"....?"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에밀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철충이 쓰러지며 부순 상자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수술대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약물이다.

이것만 있으면..라비아타처럼 자신도 더 강해질수 있을까? 

물론 무턱대고 체내에 오리진 더스트를 축척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방법이였지만 그녀가 그것을 알 턱이 없었다.


에밀리는 홀린듯 다가가 붉은빛으로 반짝이는 가루들을 집어올렸고,

눈을 꼭 감고 그것들을 모두 입 안에 밀어넣었다.



3




그러니까 그건 사고였다. 

지만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한 것이 비스트헌터 하나 뿐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큰일이군요."


"...저렇게까지 힘을 제어 못할줄은 몰랐는데…"


"......"


사령관과 지휘관들은 제녹스가 만든 커다란 구멍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머리를 짚었다.


"...미안해 사령관..."


모든 지휘관 개체가 모인 회의실 한복판, 에밀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우물거리며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온 몸에서 푸른 빛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평소와 달랐다.


"에밀리.."


사렁관은 씁쓸한 눈빛으로 에밀리를 바라보았다.

닥터의 강화 수술을 받은 이후에 무턱대고 오리진 더스트를 삼켰으니, 안 그래도 불안정한 몸을 제어할 수 있을리 없었다.


결국 살짝 넘어진 것만으로 발동한 과부하는 제녹스를 날뛰게 만들었고,

30분 동안 이어진 폭주는 오르카 호의 천장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고서야 멈추게 되었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전해들은 사령관의 표정을 본 아스널이 다급히 물었다.


".... 오리진 더스트를 다시 제거할수는 없는 건가?


"아...그게..수술로 주입한거면 몰라도 입으로 삼킨건….미안해."


"..."


닥터의 대답을 들은 아스널은 조용히 물러났다.

지상이면 이야기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잠수함 안, 작은 구멍 하나로도 오르카호 전원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사령관 역시 같은 생각이였다.


"미안..에밀리.."


아무리 그가 에밀리를 아낀다고 해도, 

거대한 폭탄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결국 그는 지휘관으로써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4




"...하나..둘.."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간간히 갈매기 소리만이 들려오는 고요한 백사장 위,

에밀리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제녹스에 올린 상자의 갯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다섯...여섯....."


쫒겨나듯 급히 나온 것이라 짐은 많지 많았다.

게다가 헌터가 알려준 것 처럼 목록을 만들어 뒀기 때문에 빠진 물건 또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열..끝났어.."


마침내, 짐을 모두 챙긴 것을 확인한 에밀리는 고개를 돌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참동안이나 꾸물거린 것이 무색하게도 바닷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오르카호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


아무 말 없이 허공을 지켜보던 에밀리는 예의 바른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이것 역시 콘스탄챠가 알려준 것이다.

입버릇처럼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아도 꼭 인사를 해야 한단다.' 는 콘스탄챠의 말이 에밀리의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럼...안녕히 계세요."


느릿하게 인사를 마친 에밀리는 고개를 돌렸다.

인간들이 모두 사라진 바닷가를 따라 긴 폐허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무너진 건물들을 바라보다가 그 사이로 길게 뻗은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


하지만…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에밀리는 생전 처음 느끼는 상실감에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늘 자신의 길을 안내해주던 사령관은 이제 없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자, 굳은 얼굴로 오르카 호 밖으로 나갈 것을 명령하는 사령관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전히 그가 좋았지만 에밀리는 가슴 한편이 콕콕 찔리는 듯 한 낯선 감정에 시달렸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태어나 처음 느끼는 기묘한 기분이다.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 불행히도 지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에밀리는 차가운 바람이 체온을 모조리 빼앗아 갈 때까지 서 있었고,

몸이 떨려오자 문득 고개를 들고 눈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5



그녀가 제녹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검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속의 커다란 광산이였다.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에 내리기가 무섭게 낯선 바이오로이드의 기척을 느낀 철충들이 스물거리며 기어나왔다.


[...?¿¤€$¡]


"사령관...조금만 기다려줘."


에밀리는 입술을 꼭 깨물고 정면을 쏘아보았다.

검게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의 안쪽에는 노란 광물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다시 오르카 호 안에서 지낼 수 없더라도 저걸 잔뜩 가져가면 사령관이 기뻐할 것이다.


환하게 웃는 사령관의 얼굴을 떠올린 에밀리는 주먹을 들어 자신의 무릎을 힘껏 내리쳤다.

그것만으로도 몸에서 새파란 빛무리가 뿜어져 나오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솟아오른다.

그녀의 앞길을 막는 철충의 파도를 항해 제녹스를 겨누며 중얼거렸다.


"..비켜줘."


새파랗게 달아오른 제녹스가 징징 울리며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강한 힘이였던지 그 끝에 맺혀있는 광선 주위의 돌이 녹아내릴 정도였다.


"조금..더…"


보통의 철충들이면 저 광선에 스치는 것만으로 먼지가 되었겠지만 이곳은 철충의 본대가 거주하는 영원의 전장, 어설픈 힘으로는 달려드는 적들을 처치할 수 없다.

뜨겁게 달아오른 손잡이와 맞닿은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에밀리는 절대 제녹스를 놓지 않았다.


"...!!"


상처입은 에밀리의 몸은 더 강한 힘을 불러왔다.

폭주하게 된 제녹스는 바이오로이드의 근력으로도 제어하기 힘들게 되었고, 

곧 제녹스의 포신이 입을 벌리며 빛으로 이루어진 강을 쏘아냈다.


[콰과과과]


"..."


에밀리는 감았던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눈이 멀어버릴것 같이 새파란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노란 광물이 드문드문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서 주워야 해."


그녀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주워 제녹스에 차곡차곡 싣기 시작했다.

이젠 자신을 지켜줄 헌터도, 탄약과 물자를 보급해주던 아스널도 없다.

에밀리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녀는 조급한 손놀림으로 광물을 모아 광산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동굴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철충들의 소리가 들러오고 있었다.




6




사령관은 좀처럼 입에 대지 않았던 담배를 빼 물었다. 

에밀리가 내린 곳 근처에서 거대한 광물더미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토미워커를 보내는 대신 직접 오르카호에서 내리기로 했다.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채, 높게 쌓인 광물더미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무언가를 감춘 듯 불룩 솟아있는 광물들을 치우다 신음을 흘렸다.

광물이 치워진 자리에는 반쯤 부숴진 제녹스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에밀리?"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손을 바삐 움직였다.

바닥에 흩어진 핏자국과 광물더미를 덜어낼 때마다 상처입은 그녀의 모습이 불길하게 아른거렸다.

그는 기어이 맨손으로 높게 쌓인 돌덩이들을 모두 치워냈다.

그리고 거기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얼굴울 보았다.


"아…"


파해쳐진 무덤 한 가운데, 에밀리는 평온한 미소를 띈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것은 마치 그녀를 밀랍로 만든 인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조용히 에밀리의 몸을 어루만졌다.

흘러내린 겉옷 아래로 보이는 핏자국이 선명하다.

몸 곳곳에 난 상처를 볼때마다 철충들과 싸우는 에밀리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


어쩌면, 강화 수술을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아니면 그녀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을까.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이미 모든것은 돌이킬 수 없이 뒤틀린 후였다.


그는 에밀리의 몸을 안아들고 오열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몸을 감싸안고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차가운, 더 없이 차가운 바람이 그런 두 사람의 주위로 불어오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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