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혹시 사령관은 게이입니까?

 

 

 

 

 

 

 

“잘 들어, 사령관은 게이거든? 절대 긴장 풀면 안 되거든?”

 

“네?”

 

여기 오자마자 처음 들은 말은, 포츈의 경고였다.

 

“고블린은 남자니까 분명 사령관의 수비 범위내거든? 조심하지 않으면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될지도 모르거든? 진짜 조심해야 하거든?”

 

“아니, 아니……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혹시 신입 놀리기입니까, 이거?”
 
“아니거든! 널 위해서 해주는 말이거든! 경고하는 거니까 새겨들어야 하거든!?”

 

설마……인류 최후의 인간, 오르카의 사령관이 게이라고?


내가 그런 걸 차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이런 소리를 들으니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같은데…….

 

“일단 들어가겠습니다. 승리! T-1 고블린, 사령관님께 인사드립니다!”


“어머, 어머! 어멈메, 얘가 그 고블린이니~? 근육 진짜 멋지다 얘!”


“……!”

 

이……이 무슨……괴물인가!


3대 1000은 칠 것 같은 근육질의 남성이, 짧은 치마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머리는 양 갈래로 묶었고 수염은 꽤 덥수룩했다.

 

“긴장하지 마렴, 응? 여기 앉아. 설마 살아남은 고블린이 있을 줄이야……!”


“저도 오랫동안 동면 상태여서 아는 게 많이 없습니다. 그, 각하라고 부르면……?”


“각하는 무슨!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 아니면 달링이라던가~?”

 

“각하라고 부르겠습니다.”


위험하다. 나는 그의 옆에 서 있던 CS 페로를 보았다.

 

그녀가 내게 죽기 직전의 먹잇감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을 보냈다.

 

“페로야, 나 홍차 좀 타줄래? 아참, 너는 뭐 마실래? 커피?”


“전 괜찮습니다.”


“긴장 풀어도 괜찮다니까! 사내가 당당해야 맛이 좋지. 안 그래?”


……맛이 좋다고? 왜 그런 표현을……갑자기 오한이 났다.

 

“그나저나 참 걱정이네~ 우리 동생은 남자라서 여자애들 사이에서 지내기

 

불편하겠어. 나야 뭐, 워낙 친근하고 포근해서 아~무 문제없지만 말이야.”

 

“예…….”


“미리 말해두겠는데 애들한테 함부로 손대지 마. 죽여 버릴 거니까.”

 

갑자기 느껴진 살기에 닭살이 돋았다.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진짜 단어 그대로 죽인다는 뜻이다, 이건.

 

덜덜 떨고 있는 내게 CS 페로가 홍차를 건네주었다.

 

“물론 서로 사이좋아져서 잘 지내는 건 좋아~ 그러다가 눈이 맞아도 괜찮은데

 

그러기도 전에 함부로 행동하면 나 진짜 화낼 거야. 알겠지, 우리 동생?”

 

“알겠습니다. 절대 그럴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만 알면 됐어! 나머진 애들이 알아서 다 해줄 테니까 아무 걱정 마렴.

 

앞으로……우리 친하게 지내보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우윽!?”


“어머, 어머. 손이 참 곱네~”


그리고 그가 내 손을 핥듯이 쓰다듬으며 미묘한 시선을 보냈다.

 

…….

 

아무래도 나는 잘못된 곳에 온 것 같다.

 

 

 

 

 

 

 

 

 

설마 나 같은 일개 전투원한테 개인 숙소가 주어질 줄은 몰랐다.

 

그것도 꽤 넓고, 내부에 있는 가구들도 상태가 좋았다. 

 

멸망 전엔 그냥 사람처럼 생긴 기계 취급이었는데……게다가 오는 길에

 

만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행복해보였다. 

 

“외견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건 역시 좋지 않군.”


조금……아니, 많이 특이하긴 하지만 아마 괜찮을 것이다.

 

사실 여기 오기 직전, 인간 한 명에 나머진 모두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가자마자 죽임당하는 것도 각오했다.

 

모든 여자를 독점하고 있는데 거기에 웬 남자가 끼어든다……? 

 

게다가 그 남자가 바이오로이드, 그것도 진작 폐기되어 사라져야 했을

 

나(고블린)이었다면 처분하더라도 아무 문제없을 터였다.

 

“좋은……인간인가. 그런 게 정말 있었을 줄이야, 하하.”


생각이 복잡하다. 그리고 이럴 땐, 땀을 좀 흘리는 게 최고였다.

 

나는 벽에 달린 이정표를 보면서 체력단련실로 향했다.

 

안에 들어가니 꽤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시설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나……딱 좋네. 운동은 혼자서 하는 게 제일이니까.”


우선 가볍게 몸을 좀 풀고 해볼까? 나는 스트레칭을 한 뒤 데드리프트를 했다.

 

“흠! 흐음! 흐으읍!”

 

“어머, 어머. 얘, 허리 더 안 펴면 다친다?”


“컥!”


어, 어느새 등 뒤에……!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닌자인가? 각하는 설마 닌자라도 되는 건가!?

 

“오자마자 운동이라니……참 성실하네. 호감 포인트 +5!”


“그게 뭡니까?”


“비밀~ 하지만 차곡차곡 쌓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지도~?”


……절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은데.

 

“자, 보렴. 그렇게 하는 것보다 이게 나아. 흐음!”


사령관이 능숙하게 바벨을 잡고 들어올렸다.

 

“이렇게! 등을! 펴고! 손목에! 힘이! 너무 들어가면! 안 돼! 알겠니!?”


“아, 알겠습니다.”


“자, 내가 보조해줄게. 어서 해봐~”


나는 바벨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사령관이 내 등 뒤에서 나를 껴안고 몸을 더듬었다.

 

“가, 각하……?!”


“긴장 풀어도 돼~ 설마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겠니? 뭐……그러고 싶지만…….”


몸이 떨린다. 전장에 나갔을 때도 이렇게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나는

 

지금 죽음 이상의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차, 영차~ 힘내라, 힘내! 어때? 오빠가 응원해주니 좋지?”

 

“…….”


도망쳐야 한다.

 

지금 날 도와줄 사람은 없다……도망치지 않으면……당한다!


“오, 오늘은 그만해야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빠랑 같이 샤워하고 가야겠네? 그치~?”


왜 벗는 거야! 터, 털이! 이건 인간보단 유인원……!


“자, 너도 벗으렴. 벗지 않으면 씻을 수 없잖니~?”


“저는 혼자 씻겠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 얼른! 영차하고 벗으렴?”


“그만, 더 이상……다가오지 마십시오. 그 손놀림은 대체 뭡니까?!”
 
“너, 쌓여 있잖아? 부끄러워하지 말고 내게 알몸을 보여주는 거야~”


“내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우……우와아아아아악!!”


나는 무심결에 근처에 있던 아령을 들어 각하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

 

“어, 어머……어……억.”


저질렀다.

 

저질렀다저질렀다저질렀다저질렀다저질렀다저질렀다저질렀다저질렀다저질렀다-

 

“가……각……각하아아아아아-!!”


“얘도 참……터프……하구나…….”


각하와 처음 만날 날.

 

나는 그와 만나고 5시간 만에 그의 머리를 아령으로 내려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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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게이를 차별하거나 딱히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창작이다.

누가 게이 사령관 이야기 했던 게 떠올라서 호다닥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