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펙스의 고블린 군대를 물리친 오르카 호는 이전보다 더 크게 개조되었다. 2.5배 더 커진 오르카 호는 닥터와 포츈의 피땀을 거친 노력 끝에 다시 태어났다. 원래부터도 오르카 호의 주력들이 주둔해야하는 곳이라 생활 공간이 넓은 곳이기도 했지만 잠수함이라는 곳 특성과 그녀들이 여성이라는 특성이 겹쳐서 여러 안 좋은 일들이 많았었다. 주로 습도와 태양빛 관련한 것들이었는데 바다 속에 있다보니 습도가 미친듯이 높고, 태양빛을 거의 못 받으니 오르카 호의 그녀들은 여러 스트레스를 달고 있었다. 닥터와 포츈은 아직 오르카 호가 파괴되기 전에도 습도나 폐쇄 스트레스 때문에 불만이던 그녀들에게 여러 컴플레인을 들었으니 이번에는 절대 그런 컴플레인이 들어오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더 크게 만들어서 생활 공간을 늘리고 기지 내 생산소, 지원실, 제작실 등이 모여있는 단지를 따로 만들고 인력이 있어야 작동했던 곳들을 전부 자동화를 시켜놨다. 또한 단지에서 나는 소음 문제를 두꺼운 방음벽을 두 겹이나 쳐서 차단시켜버렸고 나머지에는 전투원들의 쾌적함을 위한 공간들을 만들어냈다. 우선 가장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왔던 습도 문제를 닥터가 직접 개발한 고성능 제습기를 오르카 호 곳곳에다 설치하여 습도 문제를 없애버렸고 자외선을 쬐게 해주는 일광욕실도 만들어주었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요리사들의 공간을 더 넓혀주고 그녀들이 쓰는 주방도구들을 더 다채롭게 했을 뿐 아니라 매점의 크기도 늘리고 카페테리아의 크기도 늘렸다. 단일 수행만 가능한 AGS 역시 만들어서 넓어진 오르카 호를 더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각 부대원들이 쓸 생활관도 편하게 만들었다. 오르카 호의 생활이 한층 더 윤택해졌다.


특히 매점의 경우는 사령관이 직접 명령을 내린 것인데 그녀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보수를 줘서 그것을 매점에서 쓸 수 있게 해서 그녀들이 싸우는 이유를 '철충들을 전부 없애기 위해서', '인류 부흥을 위해서' 로 끝내는 게 아닌 '자신의 윤택하고 쾌적한 삶을 위해서' 를 추가하여 좀 더 전투 능률을 올렸다. 실제로 능률이 올라가니 그녀들의 승리는 한층 더 많아졌다. 특히 최근에는 최상급 연결체 네스트가 지배하고 있던 지역을 소탕해서 그 곳에 주둔지를 만들었고 거기에 오르카 호의 군대를 상시 주둔시키면서 거기에도 똑같이 매점과 목욕탕 등의 시설을 세움으로서 그녀들을 만족시켰다.


코나는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와 함께 철충들이 있는 지역을 신속하게 타격하고 철충들을 섬멸하면서 연이은 승리를 거뒀다. 고블린들에게 역습을 가해 물리친 승전보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필리핀 열도 복구. 다음 수복 지역은 인도네시아로 정하는 등 오르카 호는 유래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마리는 스틸라인 전투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뚫을 정도라며 기뻐했고, 레오나는 자신의 자매들의 우수함을 전장에서 입증할 수 있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했고, 메이는 필요할 때에 차갑게 행동할 수 있는 사령관의 태도가 크게 마음에 들었고, 칸은 부하들이 하는 그 어떤 말도 내뱉고 반영하는 사령관의 융통성이 마음에 들었고, 아스널은 캐노니어의 필수성을 다시 한 번 깨우쳐준 사령관에게 고마워했다. 용은 자신과는 다른 전술적 식견을 가진 사령관에게 큰 감명을 받고, 라비아타는 이 모든 것을 해내면서도 바이오로이드 한 명 한 명의 의견에 경청해줄 뿐 아니라 사령관이라는 직책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코나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녀가 갑자기 변했을 땐 모두가 의심했지만 이젠 아니다. 모두가 이젠 그녀를 인정하고 있다. 아쿠아가 새로 가꾼 작은 화원 가꾸기를 도와주고 LRL과의 역할놀이를 수행하고 코코와 함께 화이트셸에 타고, 안드바리에게 자원을 조금이라도 넘게 쓰면 혼쭐이 나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잠들면 마리아와 함께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부드러운 이불을 덮어준다.


브라우니와 함께 스팸을 까먹다가 레프리콘에게 혼나고, 이프리트와 함께 땡땡이를 치다가 임펫에게 딱 걸려 혼나고, 서먹했던 발키리와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을 뿐 아니라 지휘관 개체를 제외하면 가장 신뢰하는 전투원을 발키리로 꼽을 정도로 그녀를 신뢰하였다. 자신을 발견해준 은인 발키리에게 그녀는 의지했다. 코나는 이런 공적에도 모두가 있어줘서, 모두가 할 일을 제대로 해줘서 가능한 거라고 겸손하게 나왔지만 오르카의 모두는 알고 있다. 그녀가 없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고.


"최근에 있었던 지휘관 회의말야. 난 지금도 안 믿겨. 아니 믿겨질 리가 없어."


용접용 가면을 쓴 채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닥터가 말했다. 그녀는 스파크를 튀김과 동시에 등 뒤에 맨 가방에 달린 기계팔들의 보조를 받고 있었다. 기계팔들은 끼릭끼릭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닥터를 도왔고 닥터는 기계팔들의 보조 덕에 보다 수월하게 작업을 수행했다. 어린 몸을 가진 그녀지만 천재 바이오로이드라는 내용이 어디 가지 않는지 매우 능숙하게 제작 중이었다.


"아, 닷새 전에 있었던 거?"


"언니도 웃기지만 다른 지휘관 언니들이 더 웃겨. 아니 왜 허락한 거야?"


고블린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오르카 호로 돌아간 후 가지게 된 지휘관 회의는 약 11번이다. 코나는 정식 지휘관 회의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을 때부터 한 가지를 건의했다. 바로 자기자신을 전장에 투입해달라는 건의였다. 모두가 기가 막혀했다. 그걸 탈론페더의 녹음기에 몰래 공유하는 기능을 만들어놓은 닥터도 도청하여 들었고 닥터는 그녀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닥터는 그 때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말해보았다.


"자신의 감지 능력이 실전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될 것....뭐, 맞는 말이긴 하지. 금란 언니 곱하기 5를 하면 그게 언니거든."


"도움이 될 수 있잖아? 금란 씨도 우수한 전투인원으로서 오르카 호의 전력 중 하나야. 내가 금란 씨보다 다섯배는 더 감지능력이 좋으니까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될 거야. 분명해."


"그러다 죽으면 다 끝인 건 알아?"


다른 지휘관들은 그녀의 건의를 거부했다. 만장일치로 말이다. 닥터가 그 이유를 말해줬듯 현장은 너무 위험하고 튼튼하게 설계된 일부 바이오로이드도 중파되어 돌아올 정도로 위험한 철충의 공격이 인간에게 닿으면 오르카 호가 기껏 다시 부활했음에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휘가 없어 제대로된 능력을 발휘하지 못 하는 그녀들은 처음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했을 것이다.


코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안 죽을 거야."


전장에서 자신이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닥터는 괜히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지 않았다. 곧 그녀가 말할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다른 분들이 날 지켜줄 테니까."


정말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닥터가 예상한 말을 그대로 말한 코나에게 닥터가 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기계팔들이 닥터가 만드는 것을 잡아 고정했고 닥터는 만들고 있는 물건의 주파수를 높이면서 잠시 손을 땠다. 엉덩이를 돌리자 의자가 돌아가 닥터가 그녀를 볼 수 있었고 닥터는 용접 가면을 위로 올리면서 얼굴을 보였다.


"미호 언니 알지? 미호 언니도 보호기 언니들한테 보호받는데 어쩔 때마다 다쳐서 돌아오잖아?"


"그렇지."


"언니를 지켜주긴 할 거야. 하지만 오히려 그게 족쇄가 되겠지. 언니의 목숨이 최우선이니까 다들 이전과 같은 전투를 하지 못 하게 되버려. 신경쓰지 말라고 해도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언니가 죽으면 다 끝인데."


닥터는 의자에서 내려와 코나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자, 내가 봐도 언니는 우수한 전투원으로서 활약이 가능해. 고블린들이 쏘는 총, 그거 우리가 쓰는 총보다 더 빠르고 강력해. 맞으면 즉사야. 근데 언니는 그걸 맞고 아예 몸이 찢어졌잖아. 모두 언니의 살점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걸 봤대. 하지만 언니는 초월적인 회복력으로 그 부상을 단번에 회복시키고는 다시 눈을 떴지. 금란 언니 검을 빼들어서 고블린들을 썰어버린 걸 보면 언니 칼질이면 철충들도 썰릴 거야. 공격력도 충분하지. 또 언니는 인간인데도 바이오로이드의 민첩성을 가졌어. 영상을 보니까 발키리 언니보다 날렵하더라. 내가 무슨 말하고 싶인지 알아?"


"나가도 문제없다?"


"아니! 이런 우수한 능력을 가진 언니를 전장에 내보낼 수 없는 이유가 있잖아! 오빠도 죽었는데 언니마저 죽어버리면 우린 어떻게 해? 다시 그 때로 돌아가?"


그녀의 건의는 약 10번 거절되었다가 닷새 전에 있었던 회의에서, 11번째 되는 회의에서 승낙받았다. 단, 보호기를 항상 주변에 두고, 전투 상황이 약간이라도 불리하게 흘러간다면 그녀는 보호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곧바로 후퇴해야한다는 조건을 받았다. 코나도 승낙했고 그렇게 끝난 문제였다. 그러나 닥터는 그걸 승낙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고 있다. 닥터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코나가 죽는다면 오르카 호는 이전처럼 무너질 것이다.


"닥터는 다른 사람들을 못 믿는 거야?"


안타까운 듯 말하는 코나에게 닥터는 미간을 잡으면서 그녀의 바로 옆에 앉았다.


"언니들을 못 믿는 게 아니야....하지만 언니들도 당해서 돌아올 때도 있어. 난...."


코나의 팔을 껴안으면서 닥터가 얼굴을 비볐다.


"언니가 안 죽었으면 해서 그래."


닥터의 초지능은 항상 만약의 경우를 머리 속에 그린다. 그래서 닥터는 항상 만약의 때를 대비한 기계들을 만든다. 지금 닥터의 머리 속에 그려지는 모습은 철충의 공격으로 코나가 죽는 모습이었다. 닥터를 포함한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녀의 목숨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다들 매튜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고 아직까지도 그것을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되풀이되는 악몽을 꾸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았다. 닥터도 그 중 하나였다. 별의 아이의 무서움보다 매튜가 죽는 모습을 다시 보는 것이 그녀들에겐 더 한 공포였다. 코나는 닥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안심해. 난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언제나 보여주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닥터는 이런 웃음을 보자 한때 그녀였던 악마가 떠올랐다. 그 악마도 이런 웃음을 지을 수 있었고 그 웃음으로 모두를 속여왔었다. 악마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서 똑같은 웃음을 지었을 땐 그걸 볼 때마다 가슴이 놀라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지만 이제는 가슴도 심장도 안정적으로 뛴다. 그러던 중 제작이 완료되는 소리가 났고 닥터는 코나의 옆에서 나와 그 동안 만들고 있던 것을 기계팔로 들어올렸다.


"자, 언니. 이게 앞으로 언니가 쓸 무기야."


닥터가 그 동안 공을 들여 만들고 있던 건 롱소드였다. 중세의 기사가 쓰는 것과 똑같이 생긴 롱소드를 만드는데 닥터는 약 하루를 소모했다. 코나가 주문한 것으로 코나가 원하는 것들이 여기에 다 들어있다. 철충도 절단하는 절삭력을 지닌 칼날, 절대 안 부러진다고 장담할 수 있는 내구도, 픽션에 나오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크기가 아닌 평범한 롱소드의 길이. 코나가 원하는 것은 그게 전부다. 코나는 검의 손잡이를 들고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올리면서 자신이 주문한 무기를 바라보았다. 잘 보면 여러 장식까지 되어있었다. 크로스가드에 오르카의 심볼이 그려져 있었고, 폼멜에는 라틴어로 '승리' 라고 적혀져 있었다. 가드의 양끝에 푸른 보석이 달려있었고 손잡이에는 오르카 호의 근간을 이루는 부대의 심볼이 아주 작게 도배되어 있었다.


코나는 잠시 뒤로 물러나 검을 휘둘러보았다. 묵직하고 무게중심이 완벽하게 잡혀있는 것을 안 그녀는 검을 역수로 잡으면서 닥터에게 말했다.


"고마워, 닥터. 딱 내가 원하는 거야. 이거라면 아무리 철충을 베어도 이도 안 나가겠어."


"후후, 그걸로 끝인 줄 알아? 언니가 모르는 기능도 있다구?"


"내가 모르는 기능?"


닥터는 검을 쥐는 포즈를 가볍게 잡고는 코나에게 행동을 요구했다.


"손잡이에 악력을 줄 수 있어?"


"에에? 부서지지 않을까?"


"그럴 거 같아서 손잡이도 엄청 튼튼하게 만들었어. 한 번 해봐."


그녀의 요구대로 코나는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천천히 압력을 가했다. 점차 강해지는 그녀의 악력에 따라 검날이 붉게 변했고 코나는 특유의 촉각으로 열을 느꼈다. 닥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우면서


"그만!"


손을 보이며 그만두라 말했다. 악력을 풀자 검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신기하게도 검에 가해졌던 열이 하나도 검신에 남지 않았다. 코나는 이게 뭐냐는 눈으로 닥터를 보았고 닥터는 설명을 시작했다.


"검신이 붉어지면서 고열이 나타났었지? 그 검의 가장 강력한 기능이야. 철충도 결국 열에 약해. 금속이니까. 이그니스 언니랑 포티아 언니가 화염을 방사해서 철충들을 없애버리는 거 봤지? 고열 공격은 상당히 효과적이야. 그런데 여기서 좁은 면적의 검에 고열이 추가된다면?"


"철충의 금속 신체에 보다 더 훌륭한 일격을 가할 수 있겠구나."


"찌르는 것만으로 처치할 수도 있지. 열 저항성이 높은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안 통하는 건 아니야. 검의 고열을 막는다 쳐도 검의 물리적 공격은 막을 수 없을테니까. 고열에 약한 철충이라면 효과가 2배! 또한 손잡이에 가해지는 압력에 비례해서 열도 높아져. 정말로 불꽃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말야."


코나는 그런 신기한 기능까지 추가할 수 있는 닥터가 매우 자랑스러웠다. 닥터의 코가 천장에 닿을 만큼 우뚝 솟아올랐고 코나는 그런 닥터는 마구마구 쓰다듬었다. 닥터의 머리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닥터도 코나도 좋았으니 별 상관없었다. 닥터에게서 검집도 받은 코나는 그녀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사령관실로 돌아갔다.


사령관실로 돌아온 코나는 항상 가지는 상담 시간을 가졌다. 사령관실에 설치된 편지함에 여러 쪽지가 들어있고 코나는 날이면 날마다 편지함을 확인해서 안의 쪽지를 본다. 비밀 엄수를 위해 쪽지에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코나는 이미 글씨체만으로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상담을 많이 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적은 날이었고 편지함에는 2개의 쪽지가 들어있었다. 놀랍게도 쪽지 2개에 적힌 내용은 똑같았다.


"악몽을 꾸고 있어요...."


티아멧과 레이시다. 코나는 눈을 감으며 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들은 코나와 상담을 갖는 바이오로이드 중 단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찾아오며 코나는 티아멧과 레이시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둘을 만날 때마다 자신도 울적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둘 다 멸망 전 인간들에 의해 고통을 받았던 몸이고 거기서 느꼈던 감정은 코나 본인도 느끼고 또 뭔지 알 것 같기에 둘의 상담에는 특히 더 신경을 써줬다. 코나는 둘의 쪽지를 확인하자마자 핸드폰으로 둘에게 단독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밤에 찾아오라고.


그리고 밤이 되자 둘은 정해진 시간에 도착했고 코나는 둘을 위해서 아우로라에게 부탁해서 준비한 수제 쿠키와 홍차를 준비해놨다. 둘의 앞에 놓여진 홍차에 모락모락 김이 솟아났다. 코나는 홍차를 홀짝이고 둘을 향해 말했다.


"오늘도 똑같은 악몽을 꿨니?"


레이시는 아무 말 없이 홍차만 바라봤고 티아멧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나는 그녀들이 무슨 악몽을 꾸는지 알고 있다. 이전에도 똑같은 악몽을 꿔서 자신에게로 온 적이 있는 둘이니까 짐작이 갔다. 티아멧이 그 꿈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네. 똑같은 악몽을 꿔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티아멧의 목소리에 코나는 괴로웠다. 레이시에게도 묻고 싶었다. 그녀와 똑같은 악몽을 꾸냐고. 하지만 코나가 보기엔 티아멧보다 레이시가 더 괴로운 모양이었다. 둘이 꾸는 악몽은 그에 대한 꿈이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에 피투성이인 망신창이의 신체, 휑한 동공의 두 눈, 완전히 변색된 피부를 가진 그가 지긋이 응시하는 꿈. 그는 꿈에서 별 다른 걸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볼 뿐. 하지만 둘은 그것만으로도 지옥에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티아멧과 레이시는 과거 인류에게 극심한 개조를 당했고 트라우마가 머리 속에 깊게 박힌 상태다. 그래서 매튜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보다 그녀들을 아꼈다. 자신 역시 그녀들과 비슷한 일을 당했던 경험이 있었으니 일종의 공감을 형성했다. 그래서 둘은 보다 그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둘은 보았다. 그의 죽음을. 들었다. 오르카 호의 마지막에서 그가 죽기 직전 내뱉은 고통의 단말마를. 그 단말마는 지금도 모든 바이오로이드에게 악몽으로 남았지만 유독 티아멧과 레이시는 보다 더 끔찍한 악몽을 꾸는 셈이었다.


코나는 접시 위에 찻잔을 올렸다.


"...미안해. 나 때문에."


티아멧과 레이시 같이 매튜가 나오는 악몽을 꾸는 그녀들에게 코나는 항상 사과했다. 그녀들이 악몽을 꾸는 이유는 다 자신의 탓이라는 걸, 그녀는 안다. 자신이 매튜를 죽였으니까 죽인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코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입이 백 개라 할지라도 그녀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코나는 사실 자신을 향한 비난을 원했다. 자신이 비난을 듣고 그걸로 그녀들이 기분이 한층 더 나아진다면 무슨 욕을 들어도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코나의 바램과는 달리


"아니에요. 사령관님 탓이 아니에요."


모든 바이오로이드는 이제 코나를 용서했다. 그 누구도 더는 그녀를 욕하지 않는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코나를 진정한 사령관으로 인정했고 그녀를 향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그를 향한 애착이 유독 강한 티아멧도 이렇게 그녀를 용서했을 정도였다면 다른 이들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제가 아직 그 분을 놓아드리지 못한 거 같아요."


티아멧은 눈동자를 아래로 내려 손가락을 보았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 그의 마지막 선물이자 이 세상에 남은 그의 흔적. 매튜는 티아멧과 서약했고 티아멧도 그의 서약을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그의 서약을 받은 바이오로이드는 오르카 호의 전체 숫자를 봤을 때 그리 많지 않았다. 컴패니언, 티아멧, 레이시, 소완, 리제, 다프네, 드리아드, 바닐라, 콘스탄챠 등 그녀들을 제외하면 그와 서약한 바이오로이드는 없었다. 티아멧은 반지를 보며 말했다.


"그 분이랑 서약하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제 편의를 봐주시고, 제가 다쳐서 돌아오시면 크게 걱정해주시고, 저한테....달콤한 사탕을 항상 선물해주신 그 분이 죽었을 땐 세상 모든 것들이 미웠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난....기억을 잃어서 그런 걸까,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하지만 티아멧이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 나도 만나고 싶어. 만나서, 사과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죠."


티아멧은 약지를 꽉 쥐면서 그의 흔적을 자신의 피부에 더 밀착시켰다. 코나도 티아멧의 그런 행동을 보면 볼 수록 자신의 마음 속에 가시가 생기는 것 같았다. 티아멧이 그리워하는 그를 죽게 만든 건 역시 자신이고 항상 기억해야할 진실이니 코나는 티아멧을 포함한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죄책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놓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편 조용히 있기만 했던 레이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전 조금 다른 꿈을 꿨어요."


그 말에 코나와 티아멧이 둘 다 레이시의 말에 집중했다. 특히 코나는 티아멧과 거의 비슷한 꿈을 꾸는 그녀가 다른 꿈을 꿨다는 말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 레이시는 머리의 장식을 매만지면서 약간의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꿨던 꿈을 말해주었다.


"그 분은 돌아가셨는데...제 꿈에선 그 분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몸에 상처가 가득하셨지만 그래도 죽지 않은 몸이었죠. 하지만 뭔가 달랐어요. 제가 아는 그 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그 분이 아니신 거 같았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어떻게 변했길래...?"


코나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레이시는 눈을 꾹 감았다. 티아멧이 레이시의 손을 살포시 잡아줬고, 레이시는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쿵쾅대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말했다.


"후우....그 분은....철의 군단을 거느리고 계셨어요."


코나는 그 말에 레이시의 꿈을 해몽해보기로 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철의 군단이라면 AGS이다. 레이시의 꿈에서 그는 AGS 군단을 이끄는 모양이다.


"철의 군단과 수많은 바이오로이드, 그리고....철갑을 두른 무언가들을 이끌고 계셨어요."


철갑을 두른 무언가, 라는 말에 코나는 갑자기 해몽이 막혔다. 철갑을 두른 무언가라고? 그 말을 계속 곱씹어보며 코나는 생각했다. AGS야 원래부터 몸이 금속이니 해당되지 않을테니 그럼 바이오로이드 밖에 없을텐데 방금 레이시는 바이오로이드와 철갑을 두른 무언가를 구분했다. 즉, 둘은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레이시는 그 철갑을 두른 무언가들을 떠올렸다.


"이상한 뇌파였어요. 같은 바이오로이드의 뇌파도 아니고, 철충의 뇌파도 아니고....인간의 뇌파도 아니고....난생 처음 느껴보는 뇌파였죠. 철갑을 두른 그것들은....대단히 무자비했어요."


"무자비했다니?"


"꿈이라는 걸 인식하기 전에 저는 정말로 제가 전쟁터에 있는 줄 알았어요. 어딘지 모를 곳에서 강력한 철충 군대를 만나 고전했을 때 그 분이 이끄는 군단이 나타났죠. 철갑을 두른 그것들이 쏜 탄환은 철충들을 폭발시켰어요. 마치 내부에서 폭발한 것처럼 철충들을 파편도 없이 없애버렸죠. 그 중에선 방패와 검을 든 근접 병과도 있었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제가 인식하지도 못 할 속도로 달려나가 철충들에게 검을 마구 휘둘렀어요. 철충을 벨 때마다 뭔가가 터지는 것 같았는데 결코 화약으로 인한 폭발은 아니었죠. 뭔가 공기가 진동하는 것 같긴 했어요. 무자비했다는 건 철갑을 두른 그들에게 처치당하는 철충들의 모습은....마치 도살되는 것 같았거든요."


도살되는 철충이라니....코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레이시의 표정을 살펴보면 그녀는 진심으로 충격받은 것 같았다. 티아멧이 옆에서 그녀를 염려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레이시는 여전히 꿈에서의 충격을 잊지 못한 것 같았다. 꿈이니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레이시는 계속 꿈을 설명했다.


"그런 도살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네스트가 나타났어요. 무려 3기나요. 그 네스트들은 사출 장치가 온전했었죠. 엄청난 숫자의 전투기들을 사출해낸 네스트들과 그 분이 이끄는 군단이 충돌했어요. 너무나도 가뿐히 그 분이 압도하고 계셨죠. 특히 그 분께 다가갔던 전투기들은 그 분이 머리를 쥐는 것만으로 파괴되었고 네스트들은 그 분이 다가올 때마다 계속 물러났죠."


네스트가 공포를 느끼고 도망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말에 코나와 티아멧이 집중했다. 레이시는 둘이 자신의 말을 집중하듯 안 하듯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네스트에게 다가가는데 성공한 그 분은 네스트를 일격 한 번에 파괴했어요. 네스트를 주먹으로 공격하니 충격파가 터져나오면서 사출된 전투기들이 충격파에 파괴되고, 네스트는 그대로...."


하지만 이렇게 되면 뭔가 이상한 점이 발생한다. 그런 전장이라면 레이시를 포함한 오르카의 전투원들이 아주 위험했을 상황인데 때를 잘 맞춰 그가 구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레이시는 눈동자를 가만히 두질 못 하고 몸을 덜덜 떨고 있다. 즉 그녀는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다. 바로 매튜에게.


"...그 분의 뇌파도 달라졌어요."


레이시는 꿈에서 가장 충격적이던 것을 드디어 실토했다. 그녀는 매튜가 대군단을 이끌고 있던, 공격 한 번으로 네스트를 파괴하던, 별로 상관없었다. 그녀가 가장 공포스럽게 여겼던 건 그의 달라진 뇌파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보고 싶다는 말조차도 꺼내지 못 했어요. 그 분의 뇌파는....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죠. 알 수 없고, 알려고 해도 절대로 알지 못 하고,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뇌파가 발산되는 그 분은....마치 그 분의 모습을 한 '무언가' 같았어요. 철갑을 두른 그들도 기괴한 뇌파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분의 것에 비교해보면 다들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별의 아이보다도 더 공포스러운....그리고 그 분이 저를 조용히 내려다보시는데....저는 움직일 수가 없었...!"


울컥했는지 그만 울음을 터뜨린 레이시를 티아멧이 토닥여주면서 위로했다. 코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눈동자를 탁자 위의 쿠키에 뒀다. 코나도 여간 충격을 먹은 것인지 울고 있는 레이시를 위로해줄 수 없었다. 티아멧의 위로를 받으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둘을 배웅하지도 않은 채 코나는 계속 쿠키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레이시가 꾼 꿈은 이상하게도 코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꿈만 듣고 그의 생존여부가 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레이시의 꿈은 마치 매튜가 죽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레이시도 그를 유독 그리워하는 아이들 중 하나이니 그가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일념이 그런 꿈을 꾸게 한 걸지도 모른다.


코나는 귀에서 울려대는 이명과 잡음에 눈을 감았고 양 후두부를 누르면서 계속 커져가는 이명과 잡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코나는 그런 소음들 사이에서 한 가지 말이 들려왔다.


너가 죽게 두진 않을 거다, 코나. 죽는 건 쉽지.


"....?"


반사적으로 출입문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출입문에는 그 어떤 진동도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코나는 목이 말라 홍차를 마시고 목으로 넘겼으나 목으로 넘어갈 때 나는 소리가 무언가에 묻히는 것처럼 들렸다. 코나는 당장 컵을 입에서 때어냈고 잠깐 찻잔을 내려놔 쿠키 하나를 집었다. 쿠키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지만 바삭거리는 소리가 또 무언가에 묻히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귀 속에 물이 있는 것 같이.


큰 충격을 먹은 그녀는 오랫동안 정지한채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감각에 장애가 생긴 것인가? 하고 코나는 피가 마르는 거 같은 기분을 느꼈고 닥터가 준 검을 보았다. 검의 손잡이를 만지니 손의 감각으로부터 손잡이의 그립감이 느껴진다. 촉각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이번에는 코를 킁 킁 하고 냄새를 맡자 다 식었지만 아직 향긋한 홍차의 냄새와 고소한 버터향을 내는 쿠키의 냄새를 맡아 후각에도 이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촉각도 아까 검의 손잡이를 잡는 걸로 느꼈으나 촉각에도 문제가 없다. 시각 역시 사물들의 위치와 색이 잘 보이니 문제없다. 그럼 역시 청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나 모를 것을 알아보기 위해 코나는 아직 닥터가 자고 있지 않기를 바랬다. 전자시계는 AM 03:30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닥터에게로 가기 위해 출입문에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을 때 다시 그녀의 귀에 한 가지 말이 들려왔다.


내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코나가 될 수는...없는 거냐...


그 말이 들리자마자 바로 문을 연 코나는 복도를 둘러보면서 이 소리가 들린 방향을 찾으려 했다. 너무 긴장한 자신의 모습에 약간 허탈감을 느낀 코나는 한숨을 쉬고 다시 문을 닫았다. 문이 덜컥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나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귀 근처에 손을 가져다가 손가락을 튕겨보았고 딱 딱 거리는 소리가 확실하게 나자 청각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았고 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급격히 다가오는 피로감에 코나는 쿠키와 홍차를 치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침대로 가 누웠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불이 꺼졌고 코나는 그대로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그 동안 악몽을 꾼 아이들의 상담을 해줘서 그런 것인가, 코나 역시 악몽을 꾸었다. 몸을 꿈틀거리면서 꾸고 있는 악몽 때문에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코나는 입 밖으로 작은 신음을 내었다. 코나는 한 가지 장면만 재생되고 있었다.


자신의 뒷머리카락을 잡히고, 그대로 유리에 얼굴을 처박는 것. 무지막지하게 강한 힘에 유리에 금이 가고, 뺨과 이마에 파편이 박혔지만 처박히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려고 해도 자기 스스로가 누군지 모르는 너의 마음 속, 머리 속 깊은 곳은 네가 한 짓을 전부 기억할거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너도 느낄 거다, 코나. 네가 한 짓을 기억하게 될 거야.


얼굴이 피범벅이 되는 걸로 모자라 얼굴 자체가 뜨겁게 부어오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큰 격통에 코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으면서도 귀는 명확했다. 소리가 확실하게 들렸다. 짐승과도 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성이 자신의 머리 자체를 잡아서는


날 기억하게 될 거다 코나!!!


그대로 유리에 박아버렸다. 코나는 얼굴이 깨지는 감촉을 느끼자마자 눈을 떴고 가팔라진 호흡을 진정시키면서 눈을 껌뻑거렸다. 어두운 자신의 방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그 모든 것들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그녀는 그만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연두빛을 내는 전자시계는 AM 05 : 00 분을 알리고 있었고 코나는 항상 일어나는 시간보다 2시간 더 일찍 일어난 것에 다시 자리에 누웠다. 2시간 더 자려고 했지만 옷과 침대가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그만 잠에서 깨어났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스윽 닦았다.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소매가 축축할 정도였고 그녀가 슬쩍 소매를 보자 땀이 아닌 다른 것도 나왔음을 눈치채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만져보았다. 손가락을 때어보니 붉은 선혈이 묻어있었고 코나는 그만 과거의 자신의 행적이 플래시백처럼 터졌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것처럼 강렬한 빛과 함께 여러 장면이 연출되고 코나는 그럴 수록 고통을 느끼면서 일어났다. 혹시나 밖에 누군가 있을지 몰라 비명도 지르지 못 한 코나는 그저 숨을 멈춘 채 빨리 이 플래시백이 지나가길 빌었다. 플래시백은 약 1시간 동안이나 지속되다가 드디어 그녀를 해방시켜주었고 코나는 당장 식은땀으로 젖은 자신을 닦고자 갈아입을 옷과 속옷을 준비하고 개인 욕실로 들어갔다.



☆ ★ ☆ ★



오르카 호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복도에 무릎 꿇고 손 들고 있는 알비스와 그런 알비스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는 안드바리, 헬스 트레이닝 룸에서 바벨을 들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마이티R과 그 옆에서 스쿼트를 하는 스카디, 켈베로스와 함께 복도를 120바퀴 째 돌고 있는 하치코, 제녹스 위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는 에밀리와 그런 에밀리를 쫓는 파니와 레이븐 등등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으면서 여러 장면이 나타나는 평화로운 여느 때와 같다. 코나는 우연히 만난 홍련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아."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쉰 코나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멈춘 홍련이 물어봤다.


"사령관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갑자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네요."


"아...하하, 조금 나쁜 꿈을 꿔서요."


홍련은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물었다.


"무슨 꿈이었나요?"


코나는 홍련의 물음에 후훗 웃으면서 그녀를 안심시켜주려고


"그냥 철충에게 쫓기는 꿈이요."


거짓말을 하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코나는 홍련이 이대로 넘어가주기를 바랬지만 홍련은 그런 거짓말 쯤이야 꿰뚫어볼 수 있는 이였다. 또 코나가 악몽에 대해서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는 거에 그녀는 더더욱 코나가 걱정스러워졌다. 대체 얼마나 나쁜 꿈이길래....하는 마음으로 홍련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사령관님. 힘드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주세요. 도와드릴게요."


"그냥...조금 피곤한 거 같네요. 오늘은 좀 푹 쉬어야겠어요."


서둘러 자리를 뜨는 코나의 걷는 뒷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 홍련은 관심을 끊을 수 없었다. 곧 홍련은 지휘관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지휘관들은 오늘 꾼 악몽을 그저 개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금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모든 지휘관들은 혹시 휩노스 병일지 몰라 노심초사했지만 최근에 있었던 닥터의 건강 검진에 따르면 코나는 이미 휩노스 병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만든지 오래라 휩노스 병일 가능성은 없었고, 따라서 그녀의 심리적인 원인이 악몽을 꾸게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휘관들이 평소에 악몽은 꾸지도 않는 그녀가 무슨 악몽을 꿨길래 오늘 하루의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동안 코나는 언제나 그랬듯 밤에 상담을 시작했다.


이번엔 다른 아이가 찾아왔다. 네오딤이었다. 코나는 항상 무표정하고 무감정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네오딤이 아까부터 마음을 굉장히 졸이고 있는 모습이 신경쓰였다.


"무슨 일이니, 네오딤. 너도 나쁜 꿈을 꿨었니?"


레이시와 티아멧이 그랬듯 네오딤도 악몽을 꾸었나 하고 생각해 물어보자 네오딤은 고개를 끄덕였고 코나는 곧 절벽 끝자락에서 아래를 보고 있는 사람처럼 가슴이 졸여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슨 꿈이었는지 물어보기도 겁났지만 그래도 상담을 위해서 용기를 내보았다.


"무슨 꿈이었는지 알려줄 수 있겠어?"


네오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오딤은 작은 목소리로 오늘 꾼 악몽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전 사령관이 나왔어."


네오딤은 자기자신을 포옹하는 것처럼 팔을 만지면서 그 때의 꿈을 떠올렸다.


"이상한····옷이랑····이상한 마스크를 한 전 사령관이····날 안아줬어. 나, 전 사령관이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항상 철구로 사령관을 그려보고····만들어보고····하면서····철로 만든····전 사령관을 한 번 안아본 적, 있는데····너무 차갑고, 딱딱하고, 하나도 따뜻하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어. 꿈에서도····전 사령관, 날 안아줬었는데····너무 차갑고, 딱딱하고, 무서웠어. 좋은 꿈이어야 하는데····무서웠어."


레이시와 티아멧이 꾼 꿈과는 다른 꿈이었지만 네오딤에겐 그런 꿈 역시 악몽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감정 표현이 적었던 네오딤은 그가 축출당했을 시에 무감정하게 있었지만 속으로는 꽤나 깊은 상처를 입었다. 코나는 말 없이 다가가 네오딤을 안아주었다.


"응····사령관, 따뜻해."


그를 죽게 만든 근본적인 당사자인 그녀임에도 네오딤은 그녀를 받아줬다. 그녀를 증오하지 않는다. 그러니 코나는 더더욱 네오딤에게 죄책감을 깊게 가졌다. 그를 꿈에서라도 만났지만 그의 익숙한 따스함이 아닌 살이 애린 차가움을 느꼈던 네오딤은 그제서야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대로 잠든 네오딤을 데리고 가기 위해 그녀는 에키드나를 불렀다.


"후훗....좋은 밤."


철의 뱀의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에키드나가 코나에게 인사를 건냈고 코나도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답해주었다. 곤히 잠든 네오딤을 무릎배게로 눕힌 에키드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윽 쓸어넘기면서 색-색- 거리는 숨소리를 내는 네오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네."


"오랜만에?"


이전까지 네오딤이 잠을 설쳤나 싶은 마음으로 코나가 묻자 에키드나는 아쉽게도 그녀의 말이 진짜라고 말해주었다.


"요즘 들어 꾸벅꾸벅 조는 횟수가 많아졌었지. 잠을 자긴 하지만 항상 짧게 자고 깨. 잠드는 걸 무서워하는 것처럼 말이지. 깊은 잠을 자고 눈을 떠서 아침을 맞이하는 쾌락을 잘 모르는 것 같아."


"....."


코나는 저렇게 깊이 잠들어있는 네오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졌다. 자신 때문에, 자신이 그를 죽인 덕에 네오딤이 잠을 설쳤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네오딤이 이렇다면 다른 아이들도 이럴 수 있다는 말이다. 에키드나는 날카롭게 그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는 그녀를 안심시켜주었다.


"걱정하지마. 이제 아무도 당신을 증오하지 않아. 그런 표정 하지마. 이 아이도 슬퍼할 거야."


"...하지만."


"마침 전해줄 사실도 있어서 왔어. 그렇게 풀 죽어있으면 안 알려줄 거야?"


잠깐 장난꾸러기처럼 말한 에키드나의 말에 조금 곤란해진 코나는 쓴웃음을 지었고 그런 반응을 바랬던 에키드나는 즐거운 쾌락을 느꼈다. 코나가 일단 에키드나의 말대로 풀 죽은 표정을 관두자 그녀가 전해줄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도 가끔씩 그가 나오는 꿈을 꿔. 항상 꾸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한번 씩 나오지. 꿈에서라도 죽은 그를 만난다는 것이 나에겐 부족한 쾌락이었지만...."


"에키드나도 악몽을?"


"아니. 난 악몽이 아니야. 오히려 좋은 꿈이었지. 나 말고도 팬텀, 스카디, 아우로라 역시 그가 나오는 꿈을 꿔. 난 여기서 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당신은 바로 알아차릴 거 같은 걸."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고 네오딤을 데리고 가는 에키드나와 철의 뱀의 뒷모습을 보면서 코나는 그가 나타나는 꿈을 꾸는 자들을 다시 되새겨보았다. 팬텀...스카디...아우로라...? 팬텀과 아우로라는 에키드나와 똑같은 버뮤다 팀이지만 아우로라는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건가 싶었다. 코나는 에키드나가 아무런 의미없이 한 말이 아닐 거라 생각해 한 번 이들의 공통점을 수첩에 적어 나열해보았다. 네오딤, 레이시, 스카디, 팬텀, 에키드나, 아우로라....볼펜으로 책상을 톡 톡 치면서 이들의 연관성을 생각해본 코나는 일단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다.


바이오로이드, 여성, 매튜 에이번즈와 친밀, 개조.


코나는 이렇게 나열해보다가 무언가 한 가지 떠올라 에키드나 옆에 쉼표를 찍고 티아멧을 적었다. 이렇게 보니 코나는 에키드나가 느낀 흥미로운 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이들은 대표적으로 싸이킥을 쓸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이거나 혹은 개조된 바이오로이드다. 이들 전부 매튜와 친밀했다. 그렇다면 매튜와 깊은 친밀도를 갖춘 개조된 바이오로이드는 매튜에 관한 꿈을 꾼다는 가설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것 같았다. 코나는 이렇게 생각난 김에 똑같은 능력을 쓸 수 있는 마리와 레아 역시 적어보았다. 이 둘은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바이오로이드가 아니고 이에 따라 코나는 이 둘도 매튜에 관한 꿈을 꾸고 있지만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자신도 그에 대한 꿈을 꾼 것 같았다. 짐승의 포효소리가 섞인 목소리를 가진 야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목소리가 그가 맞다면 말이다. 코나는 다시 한번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해보았다. 다시 그의 꿈을 꿔보기 위하여. 하지만, 이번엔 그녀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은 채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기상했다.



☆ ★ ☆ ★



카페테리아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앞에 두고 바이오로이드를 곁눈질로 살피면서 코나는 지금 커피를 내리고 있는 아우로라와 카푸치노를 즐기는 마리를 관찰하였다. 아우로라는 언제나 그렇듯 허둥지둥 대면서 커피도 내리고 와플도 굽고 시럽도 만드느라 바쁘고 마리는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다. 마리야 원래부터 인내심이 있어 내색하지 않더라도 아우로라는 그런 악몽을 꿨더라면 하루종일 실수할텐데 능숙하게 일하고 있다. 에키드나는 분명 아우로라도 매튜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하는데 저래서야 알아차릴 수 없다.


아우로라는 시럽을 섞으면서 염력으로 엘븐 밀크를 크림으로 만들고 있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와플 기계에서 와플을 꺼내고 접시에 담아 위에 크림과 블루베리, 딸기를 올리고 종을 눌러 크림 와플을 주문한 지니야를 오게 했다. 소완의 엄격한 지도 아래 아우로라는 허둥대고는 있지만 실수 없이 일하고 있었다. 코나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었다.


아우로라가 실수해서 소완에게 혼나는 모습은 너무 흔하지만 매튜에 관한 실수인가는 모른다. 그저 또 컵을 깨뜨려서 소완의 무시무시한 웃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코나는 기록물 보관실에 있었던 기록 중 매튜가 카페테리아에 방문해서 자주 시켜먹었던 음료, 콜드브루 커피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자신이 콜드브루 커피를 시켜 아우로라가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유도할 순 있다. 하지만....하필이면 코나는 쓴 커피를 못 마시기에 시켜봤자였다. 이건 고생해서 커피를 우려낸 아우로라를 욕보이는 행위이기도 했기에 코나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누군가 콜드브루 커피를 시키기를 바랬다. 그러다가 그 때,


"각하,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마리가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묻자 잠시 멍때리다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합석을 허락했다. 마리는 그런 그녀의 얼빠진 모습을 지적하면서 앉았다.


"각하. 그렇게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행위는 품위를 손상시킵니다. 항상 명예롭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ㄴ, 네에..."


"조식은 하셨습니까?"


"방금 하고 왔죠."


코나는 모르지만 마리 역시 코나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합석한 것이다. 코나가 악몽을 꿨다는 홍련의 보고에 마리는 이를 그냥 넘겨선 안 되는 일로 간주했다. 휩노스 병이 아니라고 하니 그건 안심이 되었지만 그녀의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악몽이라면 한 가지 밖에 없을 것이다. 전 사령관, 매튜 에이번즈. 닥터의 검진을 떠올린 마리는 그 때 닥터가 했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심리적인 요인으로 기억을 잊고 있을 뿐, 언니의 뇌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라고 하였다. 확실히 마리도 커피를 즐기면서 계속 코나를 살핀 결과 코나도 마리 자신과 아우로라를 연신 살피는 동태를 보였었다. 의심이 가는 행동을 했기에 마리는 뭔가 악몽도 그냥 악몽이 아님을 알았다.


"저도 한 잔 시켜도 되겠습니까?"


"네."


그 말에 마리는 아까 한 잔을 마셨지만 더 마신다고 문제 있는 건 아니니 아우로라에게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콜드브루 커피 한 잔."


마리는 그저 오랜만에 콜드브루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코나는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콜드브루 커피를 시켜진 것에 행운을 느끼면서 곧바로 아우로라를 보았다. 예상대로 아우로라는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옆의 소완은 그런 아우로라를 보자 헛기침을 해서 그녀를 정신차리게 했고 그녀도 주방장의 헛기침에 바로 정신을 차려서 뒤를 돌아 콜드브루 커피를 내리기 위해 이동했다. 발을 부딪혀서 그대로 넘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컵을 쨍그랑 깨뜨리자 카페테리아 안에서의 시선이 주목되었고 소완은 또 실수한 아우로라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우로라는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넘어져서 다친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깨진 컵이 아까운 것도 아끼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서러움을 몰려온 그녀는 그대로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소완은 갑자기 우는 아우로라에게 놀랐지만 아우로라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아주 서럽게 울었다. 누가 보면 마치 소완이 울린 것 같았다. 소완이 당황했을 때 코나가 일어서서 아우로라에게 다가갔다.


"자, 아우로라 씨."


아우로라를 부축해서 일어나게한 코나는 소완을 보면서 억지로 웃었다.


"그...같이 갈까요? 잠시..."


"ㅎ, 하오나 그러면 이 곳을 보는 자가 하나도...."


마리는 곧장 코나의 사태 파악 능력에 다시 감탄했다. 카페테리아에 꽤 많은 수의 바이오로이드가 있는데 거기서 아우로라가 갑자기 울어버렸다. 소완은 평소에 포티아와 아우로라를 자주 혼내는 엄격한 주방장으로 명성 높기에 이대로 두면 다들 소완을 안 좋게 볼 것이고, 소완만 덩그러니 놓고 아우로로만 데리고 가면 홀로 남은 소완에게 다시 시선이 집중될 것이다. 그러니 코나는 아우로라와 소완을 같이 데려가 그러한 일을 방지했다.


그녀의 상냥함에 마리는 흐뭇해했다. 코나는 억지로 소완을 데리고 가버렸다.



☆ ★ ☆ ★



훌쩍거리는 아우로라의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완이 손수건으로 닦아주었고 코나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우로라는 둘의 위로에 설움이 그쳤는지 울음을 뚝 그쳤다. 소완과 코나는 잠시 그녀와 떨어졌다. 눈을 감고 코나에게 꾸벅이며 소완이 사과했다.


"죄송하옵니다. 소첩의 교육이 부족하여 주인에게 수고를 하게 만들었사옵니다..."


"아니에요. 소완 씨의 탓이 아니니까요."


오르카 호의 아우로라는 소완이 직접 교육한 파티시에르이기에 소완은 이런 사태에 대해 책임감을 가졌다. 물론 코나는 소완의 탓도 아우로라의 탓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누군가 콜드브루를 시키길 간절히 빌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았다. 코나는 이후에 소완이 그녀를 혼낼까 불안하여 그녀에게 요청했다.


"아우로라 씨를 혼내지 말아주세요. 실수는 누구나 하잖아요?"


"....소첩은 그녀를 나무랄 생각따윈 없사옵니다. 적어도 이번은."


"이번은?"


이번 만큼은 봐준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물어보자 소완이 알려주었다.


"아우로라가 실수한 이유는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겠지요. 콜드브루는 그 분께서 자주 드셨던 커피이옵니다. 소첩이 가르챈 대로 커피를 내리고 그 분께 드리면 그 분은 아무 말 없이 전부 마시고는 돌아가셨사옵니다. 아우로라는 아무 말 없이 마셔주는 행위에 그 분께서 커피를 맛있게 드셔주셨다 생각하였고 항상 그 분이 오시면 콜드브루 커피를 내렸사옵니다."


"하지만 아까의 모습은 주의를 주셨던데...."


"파티시에 된 자가 집중을 하지 않으니 눈치를 좀 주었사옵니다. 후....이리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코나는 아우로라에게 점점 더 미안해졌다. 소완은 이후 어서 아무도 없는 카페를 보러 가겠다고 서둘러 돌아갔으며 그녀는 예정대로 아우로라에게 다가갔다.


"좀 괜찮아요?"


"아, 사령관...."


아우로라는 주위에 소완이 없나 눈치를 살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자 피식 웃음이 터져나온 코나가 말해주었다.


"소완 씨라면 다시 카페테리아로 돌아갔어요."


"에, 에?! 진짜?! 어, 얼른 돌아가야...."


"아아아, 잠시만요. 조금만 쉬었다 가세요. 또 가셔서 실수하시면 안 되잖아요?"


"그, 그래두...."


그녀의 옆에 앉은 코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웃음을 보여 아우로라의 마음을 진정시켜줬다.


"제가 혼내지 말라고 당부해뒀어요. 소완 씨도 혼낼 생각 없대요."


"지, 진짜? 다행이다아..."


소완이 어지간히 무서웠는지 아우로라는 진심으로 안심한 모양이었다. 코나는 그런 아우로라가 조금 불쌍했으나 소완은 요리에 관해선 설령 사령관이라 할지라도 진지한 자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아우로라는 이 주변에 자신과 그녀 밖에 없다고 대충 생각하자 속마음을 털어내었다.


"사실....갑자기 너무 슬퍼졌거든."


"콜드브루 커피는 전 사령관님이 자주 드셨던 커피라서요?"


"어? 어떻게 알았어?"


"기록물 보관실에서 다 봤었죠."


그러면 부차적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아우로라가 그가 있었던 그 때를 떠올리면서 말해보았다.


"전 사령관은 카페테리아에 자주 안 왔어. 커피도 홍차도 디저트도 별로 안 좋아했었지. 하지만 아주 가끔씩 카페테리아에 오면 콜드브루만 시켜서 먹었어. 전 사령관한테 맛있다 들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전부 마시고 갔었어. 맛있었다는 증거였겠지?"


"아우로라 씨가 만든 것들은 전부 달콤하고 맛있었어요."


"고마워...그냥...콜드브루를 보면 전 사령관이 떠올라서....너무 보고 싶어서...."


코나는 다시 훌쩍이는 아우로라는 안아주고 토닥여주면서 위로해주었다. 마음이 진정된 그녀는 소완을 도우러 다시 카페테리아로 향했고 코나는 아우로라에게서의 확인을 끝냈으니 이제 레아의 차례라 생각했다. 지금 시각에 페어리 시리즈는 화원을 가꿀 시간이니 코나는 어서 화원으로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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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랑 펙스랑 빨리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