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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쯤 되는 전편임 이어짐


"여기는 대체 어딥니까...?"


샌드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눈 앞의 커다란 문을 바라보았다. 대도시라고는 했지만 지하에 이런 시설이 있었다니. 그것도 자신이 군인으로써 살아오며 봤던 여러 강한 권력을 지닌 이도 가지지 못 했을 법한 거대한 벙커가. 그런 것을 제 앞의 소년이 당당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어디긴. 여기가 볼트-101─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 


거주지등록은 안 되어있지만. 소년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품에서 꺼낸 키카드를 제어장치에 갖다대었다. 곧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열리는 두꺼운 문, 그 안으로 보이는 어디까지 이어진 건지 모르겠는 복도. 혹시 이 소년은 멸망 전 대부호의 자식이고 이 안에는 살아남은 이들이 잔뜩 있지 않을까? 라는 의심도 해보았지만, 그 안에서는 어떤 인형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 해? 안 들어오고." 


샌드걸이 멍하니 망상에 빠진 사이 소년은 복도 안을 걷고 있었다. 그는 들어오지 않고 그저 문 안을 바라만 보고 있는 샌드걸을 보고는 소리를 쳐 정신을 차리게 했다. 샌드걸은 몸을 움찔 떨고는, 얼떨떨한 기분과 함께 조금 급히 안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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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매우 넓었다. 겉보기에도 최첨단에 가까운 기술이 적용된 만큼 보통이 아닐 것이라고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샌드걸은 자신이 예상하던 것 이상의 크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광장과 같은 넓은 장소로 이어진 긴 회랑, 그리고 또 갈라져서는 수십 개는 되어보이는 방과 각각 이어지는 복도. 소년은 곧바로 외투와 짐을 벗어던지고는 욕실로 보이는 방으로 향했다. 


"먼저 씻을래?" 


소년은 옷을 벗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질문할거리를 추려내고 있던 샌드걸은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에 잠시 말을 더듬다가,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먼저 실례한다고 말했다. 


"실례일 것까지야. 마음껏 씻고 와. 따뜻한 물도 제대로 못 맞았을 텐데. 아, 뜨거운 물로 샤워를 못 하는 건 끔찍하지!" 


소년은 과장되게 소리치며 상의를 벗은 채 적당한 소파에 몸을 눕혔다. 샌드걸은 그 말을 듣는둥 마는둥 욕실로 들어서려다가, 잠시 고개만 돌려서는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알아야 하는 것,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응, 뭐가 궁금해?" 

"...여기엔, 저희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까? 다른 민간인이라든가, 군인이라든가... 아니면 제 동료-" 

"미안. 없어." 


소년은 샌드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방금같은 과장된 행동과 말투라고는 없는 담담한 목소리. 어쩌면 그것이 그 나름대로의 동정과 슬픔의 표시일 수도 있겠지만, 샌드걸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욕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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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걸은 차가운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죽음은 두려웠지만 먼저 간 자신의 동형기들이 부럽다는 기분도 느꼈다. 지독하게 무서웠다. 동료도 상관도 없는 지금 어떻게 살아남을지, 왜 살아남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차가운 물줄기 사이에 따뜻한 물이 스며들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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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나왔어? 뜨거운 물 잘 나오지? 아낄 필요 없이 마음껏 써. 여기 몇백 년도 넘게 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더라." 


아, 여기 로션. 보습은 중요하잖아? 소년이 가져다놓은 것으로 보이는 실내복을 입고 나온 샌드걸은 소년이 던진 로션을 받고는 가만히 쥐고 있었다. 소년은 곧장 욕실로 들어가버렸고 그녀는 또 다시 벽을 두고 홀로 남겨졌다. 


잠시 멍하니 소년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에 앉아있던 샌드걸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천천히 로션을 제 몸에 펴바르기 시작했다. 차갑고 진득한 감촉. 얼마만에 피 이외의 것을 제 피부에 묻혀보는 것일까. 이런 것들을 쉽사리 즐길 수 없는 것은 군인, 그것도 바이오로이드인 군인으로써는 당연한 것인데도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더욱 깊은 우울함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약해진 것일 지도 모른다. 지친 것일 지도 모른다. 샌드걸은 조금 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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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걸은 눈을 떴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깜깜한 어둠 뿐이였다. 도시의 불빛과는 동떨어진 지독하게 어두운 공간. 어쩌면 자신은 쓰러져 환상을 본 것이고 곧 죽을 목숨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느껴진 것은 한기나 몸을 짓누르는 고통이 아닌 온기와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였다. 아, 푹신한 침대의 감촉. 얼마만인가. 


...사실 이만한 침대에는 처음으로 누워보는 것이였다. 너무 편안해 오히려 익숙해지지 않는 침대에 불편함을 느끼던 중, 문득 조용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그녀의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아마 소년이 씻고 나와서는 잠들어버린 샌드걸을 보고 여기까지 옮겨준 것이리라. 그리고 이 옆에 잠든 것은, 그저 잠들 공간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외로움 때문일까.


서서히 어둠에 적응되어가는 시야 속에서 소년선명해진다. 차츰 선명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소년은 나름대로 귀여움을 느낄만한 모습이였다. 샌드걸은 저도 모르게 잠든 소년의 뺨을 쓰다듬고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샌드걸은 편안히 눈을 감았다.


내가 쓰고 싶은 건 로맨티컬리 아포칼립틱 같이 멸망 이후의 세상에서도 오히려 정신병적으로 로맨틱과 드라마틱을 추구하는 소년


거기에 이상해하면서도 옆에 있으면서 구원을 받는 군인 샌드걸을 쓰고 싶었는데


그냥 뭣도 아닌 좆같은 글이 되버림


실력향상을 위해 계속 쓰기는 해야겠는데 차마 창작물 취급을 못하겠음 ㄹㅇ 이건진짜아님


그나저나 짤 작가 픽 있나 개이쁘게 그렸는데 갤에서 봤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