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소첩이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노크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깨었다.


여전히 메슥거리는 속이 신체를 어지럽힌다.


“어어...들어와...”


어림짐작으로 더듬어가며 머리맡에 있던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었다.


포옥 포옥, 침실의 양탄자가 소완의 구두소리를 삼켜 비교적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었다.


“건강한 하루는 건강한 식사와 건강한 운동으로 비롯되옵니다. 알렉산드라씨와 마이티 양에게 그런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다는 소리는 하지 않으시겠지요.”


생각해보니 오늘 일어나서 먹었던게 피로회복제 한병과 지독한 스크류 드라이버 한잔이 전부였다.


...그 이상을 먹었으면 침실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화장실에서 이제껏 먹었던것을 역순으로 검증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소첩이 직접 만들어서 주는 식사를 두번이나 거르셨다는건...”


소완이 가져온 식사를 탁자에 내려다 주고는 침대 앞에 섰다.


“소첩이 만들어주는 지고의 쾌락이 싫증이 나버린 것입니까?”


소완이 가지고 있던 칼이 오늘따라 더욱 반짝인다.


“이건 명-”


“후훗.”


손을 들어 제지하기 전에, 소완이 엷게 웃어보였다.


“농담이옵니다. 소첩이 감히 주인을 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소첩의 별 볼일 없는 재주도 결국은 극상의 쾌락을 느껴야 할 주인님이 계셔야 빛을 발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소첩이 오늘은 다른분께 의뢰를 받아서 아침식사와 점심식사는 따로 차리지 않았었습니다.”


“의뢰라니?”


“로열 아스널님께서 말입니다. 어젯밤 제게 귀띔을 해주셨사옵니다. 주인께서 자신과 정사를 마치면 피곤해 하니 저녁즈음에 몸에 좋은 식사를 챙겨 달라고 말이지요.”


“그 아스널이?”


“지금 그 말씀은, 못들은걸로 해도 되겠사옵니까?”


넌지시 고개를 끄덕이며 콧잔등에 검지손가락을 올렸다.


소완도 넌지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오늘 식사는 복분자를 곁들인 장어요리옵니다.”


“그럼 잘 먹을게?”


“소첩이 자아낸 지고의 쾌락을, 천천히 음미해주시기를.”


소완의 구두소리가 복도를 도각도각 울려퍼진다.


“자 그럼 우선...”


배를 채우기만으로는 아까운 음식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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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먹었고, 시간도 어느정도 남았겠다, 반지도 돌려줄겸 해서 닥터에게 가보기로 했다.


반지의 작은 보석을 돌리자 푸른 홀로그램이 천장과 벽을 감싼다...


닥터의 위치는... 연구실인가.


따로 배정된 자신의 침실이 있는데도 자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며 어디선가 공수해온 간이침대를 설치해놓고서는, 자신의 방으로 개조하여-그래봐야 넓은 공간에 침대 하나 덜렁 있는거지만-쓰고 있었다.

포츈이나 아지즈는 대부분 정비실쪽에만 있으니 경쟁자가 없는것도 한몫 했을것이다.


“이런.”


연구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수면중. 방해 금지. 4 5일째 철야함.’


어쩐지, 아침에 반지를 보여줄때 어딘가 퀭 해보이더라니.


이 반지를 완성하자 마자 바로 나한테 자랑하러 온것이었나.


그녀가 새삼 대견하다 싶으면서도, 달리 할것이 없어진 나는, 반지를 다시 끼고는 정처없이 발걸음을 향했다.


그렇게 향한곳은.


“사령관? 마침 잘 됐네. 여기 앉아서 심판이 되어줘.”


함 내의 소구경 사격장.


‘아무리 함 내에서 지휘를 하는 지휘관이라도 만약의 사태는 대비해두자’ 라는 라비아타 통령의 건의아래, 호신용 데린저 권총부터 함에 구멍을 뚫어버릴수도 있는 볼트액션 총까지 전부 구비해둔 무기고에서 사격연습이나 해둘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 사령관, 우리들의 승부를 지켜봐줘. 확실하게 증거를 남겨서 누가 위인지 소문을 내야하니까.”


아이언애니와 워울프가 갑자기 들어와서는 졸지에 심판이 되어버렸다.


내용은 이러했다.


주점에서 한창 스틸라인 부대원들과 주당을 겨루고 있었던 워울프가 우연히 만난 아이언 애니의 리볼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 사격장에서 패스트 드로우&패닝(싱글액션 리볼버의 속사방식) 배틀을 하자고 말이다.


“그래서 우연히 사격연습을 하려는 나에게 증인과 심판을 일임했다?”


“우연이란 중요한 요소지. 우연히 만나 친해진 전우가 사실은 내 적일수도 있는것처럼.”


“그럼 그럼. 그런 전우를 쏘기보다 우연히 맞은 총탄에 죽으면서 슬퍼해야할지 좋아해야할지 고민할수도 있는것 처럼 말야.”


워울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하는 애니를 보면, 역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 통하는게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준비!”


양 선수가 홀스터에 손을 가져다 대었고.


“시작!”


타타타타타탕!!!!


순식간에 몰아치는 6연발 속사.


총구에서 흘러나오는 매캐한 화약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무승부로 하는게 낫지 않을까?”


만발.


일말의 오차도 없이 단 하나의 구멍만이 뚫린 표적은 한발만 명중했다는 착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좋은 센스군.”


홀스터에서 자신의 중절식 리볼버를 꺼내 탄피를 털어버린 애니는 워울프에게 총을 건네주었다.


“이렇게 인연이 되었으면. 하나쯤 추억을 만들어 둬도 좋겠지.”


스윙아웃으로 탄피를 털어낸 워울프는 서있는 자리에서 3발의 총알을 다시금 탄창에 넣더니, 주머니에 들어있던 동전들을 저 하늘 위로 쏘아올리며-


탕탕탕!


“동감이야. 하나씩 나눠갖자고.”


개운하게 정 가운데가 뚫려있는 동전을 주워든 워울프도 애니에게 권총을 돌려주었다.


"다음에는 밖에서 철충을 얼마나 잡나 내기를 해보자고."


이렇게 서로 훈훈하게 끝나는가 싶더니.


두 사람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던 데린저 권총에 고정되었다.


“뭐야 이 폭죽은?”


“사령관 이 쪼매난건 뭐야? 어디 벽에 못이라도 박게?”


...야단났다.


“이런 쓰레기 다 치우고 중절식 리볼버는 어때?”


“아냐, 사령관은 초심자니까 배려를 해보자고.”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럼.””


“자 오늘 사령관의 권총사격 훈련을 담당할 일일 교관 보안관 아이언 애니와.”


“일일 교관 워울프다.”


“우선 권총의 기본은 장전입니다.”


“스윙아웃으로 리볼버의 실린더에 있는 탄피를 전부 비우고 다시 장전합니다.”


“스피드로더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시에서 스피드로더를 언제 들고다닐겁니까.”


“장전하면서 복창. ‘나의 리로드는 레볼루션!’”


“나의 리로드는 레볼루션!”


“동작이 늦다!”


그렇게 라이플을 한번 쏴볼까 했던 사격훈련은, 수시간에 거친 리로드 연습만으로 끝이 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