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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이오로이드를 혐오한다 39화


호흡이 가빠지고, 발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그녀가 다가오는 건지,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건지 모를 미묘한 가까움에 이끌리며 팔을 들어올렸다. 주먹을 가능한 꽉 쥐었다. 리리스는 가만히 서있었다.


"평소 힘에서 대략 10% 이하로만 상대해 드리죠."


"...너무 얕보는거 아냐?"


"그정도도 인간을 한참 뛰어넘은 정도인데요?"


"..."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더이상의 잡담은 집중력만 흐뜨릴 뿐이다. 그녀에게 주먹을 몇번 날려봤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가볍게 내 손을 피해갔다. 역시나 구수하고 직선적인 공격은 그녀에게 먹히질 않는다.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이번에는 날라오는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면서 그녀를 공략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약점이 없었다. 전투 외의 그녀의 약점을 찾아야 했다. 그때 갑자기, 리리스가 나의 한쪽 팔을 잡아챘다.


"!"


갑작스레 몸이 공중으로 붕 띄워졌고, 어디론가 내팽개쳐졌다.


'쿵!'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것을 버텨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리리스의 발이 눈앞에 있었고, 나는 재빨리 몸을 굴려 공격을 피했다.


'콰직!'


소름끼치는 소리가 바닥에 울렸다. 몸을 털고 일어나서 고개를 흔들며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였다.


"후우... 후우..."


"어머, 벌써 지치신 건가요? 제가 가르친 보람이 너무 없게 만드시네요..."


이번에도 그녀는 나를 깔보기 시작했다. 나의 신경을 긁으며 아드레날린이 많이 생성되도록 하는듯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막혀도 피해도 다시 막아도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공격했다. 그녀가 공격할 때에는 침착하게 팔뚝이나 허벅지를 이용해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잽싸게 뒤로 스탭을 밟으면서 그녀의 공격을 피해갔다. 그렇게 대략 3분 동안 주먹이 오갔다.


땀이 미친듯이 흘러내렸다. 리리스와의 훈련동안에도 이것보다는 힘들지 않았는데... 정신이 쏙 바질 정도로 집중을 하니 다리가 금방이라도 풀릴거 같았다. 생각해야만 했다. 내 앞의 무적의 경호원을-


"...잠깐-"


"죄송하지만 여기에 일시정지 버튼은 없답니다? 후훗~"


잠시동안 생각에 빠지다가 위험해질 뻔했다. 리리스가 갑작스레 두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니킥을 날릴려고 했지만 금새 이성을 유지한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방금 전에 좋은 생각이 났다고 방심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현재 나와 리리스의 관계는 주인과 경호원 관계일 것이다. 아니, 무조건 주인과 경호원 관계이다. 지금은 나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 계급이 무너져 있겠지. 그리고 만약에 리리스가 다시 계급에 눈을 뜨게 된다면, 필시 잠깐동안 계산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0.1초라도 괜찮다. 그녀를 방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더이상 공격을 그만두고, 체력이 빠진 척을 하며 리리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막기만 하는 척을 하였다.


'턱! 휘익! 뻑!'


둔탁한 소리가 허벅지에 들렸다. 오른쪽 다리가 저려왔다.


"주인님, 왜자꾸 공격을 안하시는 거죠? 다시 한번 저한테 퍼부어 주세요!"


모든 소리를 무시하고 그녀가 나의 함정에 빠지기만을 기원했다. 점점더 뒤로 빠지면서 리리스를 유혹했다. 그 후로, 나는 옥상의 모서리 부분까지 왔고, 오직 난간 하나만이 나의 생명을 붙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리스는 나를 매섭게 몰이붙였다. 이때다. 이때가 기회였다. 나는 더이상 리리스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고, 스텝을 한번 앞으로 밟으며 그녀의 오른손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퍽!'


"우욱!"


턱뼈가 나갈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그 감정에 휘몰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연기를 진행했다. 나는 리리스가 당부했던 것의 반대로 행동했다.


"으아악!"


엄청나게 큰 고함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등을 보여주었다. 스텝의 안정을 잃고 뒷쪽으로 둥글게 돌아서 크게 다친 것처럼 행동했다.


"어, 어머! 주인님!"


성공했다. 리리스에게 나와 그녀의 관계를 상기시켰다. 리리스의 아주 당황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녀가 나에게 뛰어오는 소리도 들렸다. 완벽하게 함정에 빠졌다. 허리에 힘을 크게 주면서 다시 반대 방향으로 역회전했다. 한쪽 다리를 땅에 고정시키고 반대쪽 다리를 들어올려 그녀의 목에 감쌌다.


"꺅!"


몸을 공중에 띄웠고, 리리스의 팔을 잡아챘다. 다리로는 리리스의 팔목을 고정시켰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그 자세는 오래가지 않았고, 우리는 바닥에 드러눕게 되었다. 서있던 모습 그대로 말이다.


'콰당!'


정신을 잃을 틈도 없이 다음 작전을 이어나갔다. 양쪽 다리를 재배치해서 그녀에게 암바를 걸었고, 곧이어 그녀의 손을 쫘악 잡아당겼다. 완벽한 자세가 잡혔으며, 나는 그녀에게 협박을 가했다.


"하, 항복해! 여기서 더 할 수 있는게 없을걸?!"


하지만 리리스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갑작스런 나의 계획에 당황해 한 것일까, 자신이 진 것에 대한 분노가 쌓인 것일까, 그건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몇초 후, 그녀는 나의 다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후후... 역시, 이ㅓ셔야지 저의 주인님 다우시죠... 항복, 항복입니다!"


'툭툭!'


가볍지만 강렬한 손바닥의 느낌이였다. 나는 그제서야 다리를 풀어줬고, 많이 약해진 상태였지만, 어쨋든 리리스를 이겼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감출수가 없었다.


"이야아아아아! 이겼다아아아아!"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관람객들에게 세레모니를 해주었다. 엘븐 시리즈, 마리아, 안수민과 유미는 나를 향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주었다. 특히 유미는 그런 나에게 달려와 내 배에 착 감겨지듯 안겼다.


"아찌! 아찌가 이긴거야?!"


"그럼! 못봤니? 아저씨 너무 서운한데?"


"봤지! 아찌 엄청 멋있어!"


나는 그런 유미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리며 그녀를 이리저리 하늘에서 빙빙 돌렸다. 그러다 우연히 바닥에 누워있는 리리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가 손을 내밀었고, 리리스는 역시나 곧바로 나의 손을 붙잡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꾀를 쓰시긴 하셨지만, 그래도 좋은 싸움이였어요... 후훗..."


"...다음에는 정정당당하게 이겨보겠어."


"도전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리리스가 활짝 웃었다. 그녀의 환하고 노란 눈이 빛났다. 그녀를 이겼겠다, 나는 리리스를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속으로 가득찼다. 한동안 해보지 못했던 소원이 하나 생각이 났고, 나는 그것을 리리스의 눈 앞에서 말해버렸다.


"...리리스? 오늘 고기 먹을까?"


그녀의 빛나는 눈은 갑작스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녀는 싸늘하게 굳어버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턱!'


한쪽 손으로 나의 양쪽 볼을 쭈욱 잡아댕긴 리리스였다. 그리고 그녀는 얼굴을 매우 가깝게 가져다댔다.


"...기껏 몸을 만들어드렸더니, 바로 고기를 드시겠다구요?"


"드, 든븍즐으즌으! 든븍즐 므글르그 흣즈!(단백질이잖아! 단백질 먹을려고 했지!)"


"하아... 오늘만이에요?"


우효오! 얼마만에 먹어보는 갈색 단백질 덩어리인가! 곧바로 집으로 내려가서 냉장고를 확인해봤다. 역시나, 냉장고에는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고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곧바로 고기들을 꺼네, 이른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오랫만에 그릴을 꺼네 옥상으로 올라갔고, 오랫만에 즐겁게 옥상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엘븐 시리즈에게 쌈채소들을 부탁하고, 오래전 기억을 붙잡고 그릴을 조립해갔다. 다행히 옥상에는 예전에 남은 나무와 숯들이 있었고, 라이터를 이용해 그곳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내 코를 감싸더니, 화력이 붙은듯 타닥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화염이 솟구쳐 올라왔다. 금방 해동한 고기들을 화로에 오르자 지글지글 구워졌고, 삼겹살을 포함한 다양한 부위의 살덩이들이 나의 침샘을 자극시켰다. 마침내 고기가 다 구워지자 우리는 얼마만에 맛보는 고기인지 감격하며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어치웠다. 내가 운동을 한다고 아예 유혹을 없애기 위해 그들도 고기를 못먹었기에, 모두가 그리워했던 기름기 가득한 음식에 감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수많은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함께하며, 늦은 점심이 무르익어갔다.


"꺼억~"


배가 너무나도 불렀다. 이런 풍족감은 3주만에 처음이였다. 풀때기로만 배를 채웠던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옥상에 누워 다시 건강해진 나의 몸을 바라보는데, 누군가가 나의 윗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찌!"


그녀는 누워있던 나를 내려다 보았다. 손에는 많은 책들이 들려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유미를 안아올렸다.


"어이구! 무슨 일이야?"


"나, 책, 읽어줘!"


역시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동화책들이였다. 나는 자리에서 털털 몸을 정리하고 일어나서 밥을 먹었던 흔적들을 정리한 뒤, 유미를 한 손으로 안은 뒤, 집으로 내려왔다. 2층에 있던 거대한 침대에 오붓하게 앉아서 책을 한권한권 읽어갔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팥쥐 등등... 수많은 책들을 읽어가며 시간이 어느새 이른 저녁까지 흘러갔다. 유미도 피곤한지 눈꺼풀이 검뻑거리면서, 가끔씩 내 어깨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유미야. 졸려?"


"웅..."


"...자자. 이불 덮어줄게."


유미는 내가 말을 안해도 이불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밖으로 나왔다.


침실에서 내려와 거실을 둘러봤다. 평소처럼 그녀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엘븐 시리즈들은 베란다에 가득 찬 세레스티아의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이야기꽃을 펼쳤고, 마리아와 리리스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선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안수민은 쇼파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책을 좋아하는건 알고 있었지만, 수민의 얼굴은 씁슬한 웃음이 느껴졌다.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아쉽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긴, 지난 3주동안 다시 몸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또한 완벽한 계획을 짜기 위해 온 시간을 리리스와 리앤, 테리와 보냈던 나는 그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갑작스레 솟구쳐 올랐다. 안수민에게 곧바로 다가갔다. 그동안 나를 믿고 기다려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시간이 왔다.


"수민아."



"어! 어, 소한아. 왜그래?"


그녀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책을 덮고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 한구석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 있으면, 나랑 밖에서... 그러니까... 그게..."


아니 진짜, 평소에는 곧이 곧대로 나오던 말이 왜이리 안나오는 건지, 처음 그녀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을 때처럼, 어린 아이처럼 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왜그러는 거야, 말을 좀 똑바로 하라구."


"엄... 그게... 나랑 그... 있잖아? 남자랑 여자랑 도시에서 그... 손도 잡고... 밥도... 먹고..."


"...데이트?"


"그래! 그, 데이트 데이트!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한참 애먹었네!"


"그래서, 데이트를 지금 하자고?"


그녀의 표정이 요염하면서 말괄량이 같이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으, 응..."


"...좋아! 잠깐만 기다려!"


그녀는 곧바로 옷장으로 뛰어들어갔고, 3분정도 지나자 타이트한 청바지, 스트릿 브랜드의 널널한 윗옷을 입고, 자신의 미를 뿜뿜 내뿜고 있었다.


"어때?"


"응... 이쁘다."


"그럼 이제-"


"자, 잠깐!"


"또 왜?!"


"머, 머머머 먼저 나가서 기다려줄래? 내가 좀... 해야될게 있어서..."


"흥, 뭐야? 그 사람 내쫓는듯한 그런 말투는?"


"아, 제발... 하고 싶은게 있어서 그래."


"...알겠어. 이 안수민, 나가있어주지. 대신, 멋지게 꾸미고 나와야되?"


그녀는 내 머리를 정리해주고서는 홀연히 현관을 빠져나갔다. 거실에는 나만 우두커니 서있었고, 리리스를 포함한 모든 집 구성원들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저기 마리아."


"네, 주인님?"


"지금 나좀 도와줘. 제발."


"물론이죠. 뭘 도와드릴까요?"


"나 옷좀-"


"코디해드릴까요?"


"응! 제발제발제~발! 부탁할게!"


"자, 그럼, 옷장으로 가볼까요?"


"리리스도 따라와. 아니, 다 따라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최고의 의상을 입고 나가겠어."


순간 집안에는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옷장으로 뛰어들어갔고, 그녀들은 다양한 옷을 들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꿀꺽'


"수민이가 지금 밖에 있으니까 서둘러서 부탁할게."


데이트에서 옷은 중대사항이다. 서둘러서 옷을 챙겨입고 빨리 그녀에게 달려가야겠다.


==================39화==================

싸움 묘사 왜이리 힘드노;;

슬럼프가 자주 와서 그런지 펜 잡는 시간이 점점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