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4090

사령관의 도주일기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7267


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7659

개장! 오르카 유치원!
https://arca.live/b/creationlist/21493925

레이디 플레이어 원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3401

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https://arca.live/b/creationlist/22010186

전설이 아닌 소녀

https://arca.live/b/creationlist/27547480


용사 이야기

https://arca.live/b/creationlist/30299221



  *

  책상 위에서 서류를 작성하던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좀체 끝나질 않는군. 끝날 듯하면서도 다음 일이 밀려온다. 사령관이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이 맑았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파란 하늘이 어디까지고 펼쳐져 있었다.


  “땡땡이나 쳐볼까.”


  일이 손에 붙지 않을 때는 땡땡이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일거리를 붙잡고 있어 봐야 되는 일은 없다. 말도 없이 나갔다고 페로한테 혼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커피를 홀짝이며 사령관이 복도를 걸어나갔다. 복도 한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 위로 파도가 일렁거렸다.


  이 복도는 잠수 중에는 강화 유리가 창문 형식으로 닫혀있지만, 지금처럼 바다를 항해할 때에는 유리가 열려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갑판까지 나가지 않아도 바다를 구경할 수 있고 바이오로이드들의 생활 구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일이 없는 덕에 땡땡이를 칠 때 자주 이용하고는 한다.


  허나 오늘은 예상치 못한 선객이 있었다.


  어깨를 덮는 갈색 머리칼. 조금 우울한 눈. 스틸라인의 수많은 브라우니 중에서도 조금은 특별한 소녀.


  “여, 브라우니 중위.”


  소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바닷바람에 갈색 머리칼이 흩날렸다.


  “사령관님이십니까.”


  사고뭉치가 많은 스틸라인의 부대원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부대원으로 꼽히는 브라우니 중위였다.



  *

  즐거운 토모


  키리시마 스캔들의 주역 중 하나이자 자비로운 리앤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바이오로이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바이오로이드.


  기존의 토모 모델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만들어진 개체.


  키리시마 스캔들과 자비로운 리앤으로 토모 모델의 돌연변이가 잘 알려졌을 뿐, 양산형 개체는 때때로 이런 돌연변이 바이오로이드가 나타나고는 한다.


  똑똑한 토모, 내성적인 바닐라, 무뚝뚝한 포티아 등.


  지금 내 앞에 있는 브라우니도 그런 돌연변이 개체 중 하나다.


  지능이 높고 비관적인 성격의 브라우니.


  뭐, 드물다면 드물고 흔하다면 흔한 돌연변이 브라우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 모델인 데다 가장 많이 생산된 바이오로이드인 만큼 돌연변이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띈다. 그러니 단순히 성격이 일반적인 브라우니와 다르다고 해서 특별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특별한가.


  브라우니 중위.


  무려 중위. 준위도 아닌 중위다.


  멸망 전 마리의 부관 자리까지 올라갔던 브라우니까지 포함해도 내가 아는 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높은 계급의 브라우니다.


  뭐, 본인이 승진 거부만 하지 않았더라면 더 높은 계급까지 올라갔겠지만.


  어째서 그녀가 계급이 이리 높은가. 간단하다.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깨어나고 오르카 호의 사령관의 자리에 취임하기도 전, 라비아타가 이끌어온 레지스탕스 시절부터 살아남은,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존해 온 브라우니.


  스틸라인에서는 비할 자가 거의 없고, 오르카 호의 모든 바이오로이드와 비교해도 그녀보다 오래 살아온 바이오로이드를 찾는 것이 더 힘들다.


  그녀보다 오래 살아남은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대다수가 전설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물론 뽀끄루 같이 순해 빠진 녀석도 있지만.


  “그래서, 우리 브라우니 중위는 이런 곳에서 뭐하고 계신 걸까?”


  “사령관님도 근무 시간 아니십니까? 이런 곳에 계셔도 되는 겁니까?”


  “그럼 둘 다 땡땡이인 걸로.”


  사령관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브라우니도 그를 따라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힙 플라스크를 홀짝였다. 바닷바람 섞인 보드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낮부터 술이냐.


  “마리 대장님께서 진급 제안을 하셨습니다.”


  “또 거절하려고?”


  장난스러운 그의 물음에 브라우니가 말없이 술을 홀짝였다. 진짜냐.


  “벌써 몇 번째 진급 거절이냐?”


  “여섯 번째입니다. 진급하라는 대로 다 받았으면 지금쯤 소장일 텐데 말입니다.”


  “사상 최초 브라우니 소장을 못 봐서 아쉽기 그지없구만.”


  실제로 소장이 됐을지는 둘째치고, 그렇게까지 진급 제안을 걷어차는 이 녀석도 바보다.


  “그러고 보니 너는 진급을 엄청 싫어했지. 중위까지 오는데도 별의별 조건을 걸어대며 간신히 올라왔으니까.”


  오르카 호가 만들어지고 레지스탕스가 합류한 후, 그녀도 마리를 따라 오르카 호에 합류하게 되었다. 마리는 브라우니를 자신의 부관으로 두고 싶어 했지만 그녀의 단호한 요구에 결국 일병 계급으로 남았다.


  허나 마리는 브라우니가 신체 강화 수술을 받고 장교가 되어 자신의 옆에 있어 주길 바랬다. 마리의 끈질긴 진급 제안에 브라우니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언어 모듈 변경을 약속해 주시면 진급하겠슴다.]


  내 조건을 받아들여 주면 진급해 주겠다. 상상을 초월하는 브라우니의 제안에 스틸라인이 발칵 뒤집혔지만 아무도 브라우니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비록 계급이 낮다고 해도 어마무시한 짬의 차이가 있었고, 마리가 흔쾌히 브라우니의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병 브라우니는 하루아침에 중위 브라우니가 되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진급에 스틸라인이 한 번 더 뒤집힌 것은 덤이다.


  나중에 그 건으로 마리에게 물어보니 마리는 머리를 싸매며 내게 한탄했다.


  [원래는 대령으로 승진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사 정도나 생각했지 무슨 대령이냐며 한참을 싸우다가 타협한 게 중위입니다. 46년이나 얼굴을 맞대고 있었더니 간땡이가 부어서 일병이 대장한테 바락바락 말대답이나 하고...]


  46년이나 봤으면 말대답 정도는 할 만하지. 사령관의 말에 마리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녀석은 밥맛이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사령관이 남은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술을 홀짝이던 브라우니가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십니까?”


  “그 전에 마리에게 얼굴이나 비치련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보기도 했으니.”


  “아, 그러면 이것 좀 대신 전해주시겠습니까?”


  돌아서는 사령관을 향해 브라우니가 무언가를 건넸다. 만져보니 작은 알갱이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얼마 전에 탐색에 나갔을 때 얻은 커피입니다. 마리 대장님께서 특별히 좋아하시는 물건입니다. 사령관님께서 대신 전해드리며 슬슬 제 진급을 포기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전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네가 그렇게 말했다고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해주마.”



  *

  “지... 진짜 에스메랄다 게이샤입니까?”


  “그렇게 말해도 나는 모른다. 중위가 그랬으니까.”


  “1번 브라우니가 말입니까?”


  1번 브라우니. 브라우니 중위. 레지스탕스 시절에는 200번대 브라우니라고 들었다. 레지스탕스가 오르카 호로 탈바꿈하며 경사스러운 1번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다. 본인은 죽어라 싫어했지만.


  “주면서 제발 자기 진급 좀 포기해 달라고 그러던데.”


  “그렇게 말하니 반드시 진급을 시켜야겠군요.”


  마리가 커피를 건넸지만 사령관이 질색하며 거절했다. 이 이상 커피를 마시면 혈관에 피 대신 커피가 흐를 거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너는 이미 진행 중이야.”


  “피가 부족할 때 수혈할 커피는 에스메랄다 게이샤로 부탁드립니다.”


  “그런 고급 커피 수혈할 때 쓸까 보냐.”


  마리가 웃으며 과자를 내밀었다. 사령관이 과자를 집어 와작와작 씹었다.


  “대령으로 승진시키려는 건 역시 부관에 앉히려고 하는 거냐?”


  “…그쯤 되어야 다른 부대에 면이 서겠지요.”


  “40년 짬밥이 대령이 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느냐마는.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당사자 의견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처럼 계속 권유한다면 언젠가는 받아주지 않겠습니까?”


  “글쎄다….”


  지금까지 거절하는 것을 보면 과연 받아줄지 싶다만. 구태여 사족을 덧붙이지 않고 삼킨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는 겁니까?”


  “일하다 중간에 빠져나온 거거든. 더 지체했다가는 페로의 불벼락이 떨어질 거다.”


  마지막으로 과자 하나를 집어 든 사령관이 마리의 방을 나섰다. 과자를 입에 문 사령관이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브라우니 중위와 자신의 이전 부관이었던 브라우니 겹쳐보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겹쳐 본다는 것은, 결코 끝이 좋은 일은 아닐 터이다만.


  해가 천천히 서쪽으로 떨어질 기미를 보였다.


  오전에는 보이지 않던 거대한 구름 기둥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다 날씨는 여자의 마음처럼 변덕이 심하다고 한다만 눈에 띄지도 않던 구름이 적란운이 되어 다가오는 건 조금 심하지 않나 싶다.


  “곧 스틸라인의 훈련도 있다고 했지. 슬슬 정박할 때인가….”



  *

  때 늦은 귀가에 페로의 불벼락이 사령관을 내리치고 한 달 후.


  폭풍 같은 비와 태풍 같은 훈련이 지나가고 정박한 섬의 정찰을 위해 스틸 라인의 부대가 출동하게 되었다.


  정찰은 7명 구성으로 10반.


  브라우니 세 명.


  레프리콘 한 명.


  이프리트 한 명.


  실키 한 명.


  마지막으로 반장 한 명.


  브라우니 중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폭풍은 하늘의 작은 구름마저 끌고 사라졌지만 숲은 아직 물기를 품고 있었다. 덥고 습하고 물 냄새에 미끄럽고.


  “썅. 정찰하기에는 최악의 날씨구만.”


  세상에 담배가 맛이 없을 줄이야. 짜증을 내며 한 모금 담배를 태운 브라우니의 옆에 이프리트가 살금살금 걸어왔다.


  “브위님. 브위님 짬에 이런 곳에 나오시는 겁니까?”


  “브위는 뭐냐. 누가 멋대로 줄여서 부르래. 뒤지고 싶냐?”


  브위라니. 브라우니가 피식 웃었다. 얼굴 자주 봤다고 조금은 장난도 걸 줄 알게 됐나.


  “내가 반장이라 불만이냐?”


  “아닙니다. 다른 반은 임펫 중사님이나 상사님이 담당하시는데 저희 반은 브위님이 반장이신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브라우니가 고개를 돌리니 휴식을 취하던 다른 부대원들이 눈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과연. 다들 궁금해하는걸 독박써서 물어보러 왔다 이건가.


  “우리 대장님께서 이상한 일로 스틸라인 전체를 굴리고 있어서 다들 바쁘다. 내가 안 했으면 너를 중사로 앉혀서 반장을 시키던가 피닉스 대령님이 반장을 했을 거다. 어느 쪽이 좋냐?”


  “…사랑합니다, 브위님.”


  “나 같은 걸 사랑해서 뭐하냐. 그 말은 사령관님한테 해라.”


  담배를 한 번 더 빨아들인 브라우니가 군화 뒤축에 담배를 비벼 담뱃불을 껐다. 브라우니의 눈치를 살피던 이프리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브위님. 브위님은 왜 진급 안 하시는 겁니까? 진짜 다섯 번 진급 거절 하신 겁니까?”


  “여섯 번이다. 이번에 한 번 더 물어보셨거든.”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소금기 담긴 바닷바람에 브라우니의 긴 머리칼이 가볍게 흩날렸다.


  “내가 전방에서 싸우면, 니들 두 명 뒤질게 한 명만 뒤진다. 한 명 뒤질건 아무도 죽지 않게 되겠지. 그래서 그런 거다.”


  브라우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정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서두르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오르카 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안 남았으니 후딱 끝내고 돌아가자. 오늘은 텐트 말고 침대에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