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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바닐라 이야기 이전편과 예쁜 인형 아가씨, 소년의 불꽃 등을 보고 오면 좀 더 재미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님 말고


-웨딩의 길은 두 갈래-

점원의 눈이 핑 도는 것이 보인다. 하기사 20분 전에 대형 사고를 쳤는데 여기서 또 대답을 잘못 했다간 진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 그냥 솔직하게요. 개인적으로 궁금한거라…”

양혼은 점원이 부담을 갖지 않게 밑밥을 깔아준다.

음…솔직하게 말하자면…”

점원이 태블릿을 끄고 이어진 쇼파의 끝자리에 앉는다.

제가 여기서 일하고 난 뒤로 처음이에요”

언제부터 일하셨나요?”

“2년 전이요”

2년 전, 2056년은 자신이 바닐라를 데려온 해였고, 라비아타가 세상에 공개된 해였으며 세상을 바이오로이드가 잠식시켜가기 시작한 첫 해였다.

바이오로이드란게 출시되고나서 처음이라, 역시 아직은 흔한 행동은 아닌 듯 했다.

굳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양혼은 새삼 자신과 일반사회의 괴리감을 느낀다. 물론 이전에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새삼 일반인에게 그 사실을 재확인 하니 사회에 대한 눈이 다시금 뜨이는 느낌이였다.

아, 그렇지만 신랑님은 멋있다고 생각해요”

반 쯤은 아부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양혼은 입을 꾹 닫고 점원의 아부를 듣는다.

사실 오는 손님들 중에는 직접 신부님을 데려오지 않는 분들도 많으시거든요. 정치인이나 큰 회사 임원들 같은 경우엔 서로 바쁘기도 하니까요. 신부님만 따로 오는 경우도 있구요”

돈이 많을수록 이런 낭만을 즐기기 힘들어지는 걸까, 양혼은 속으로 삼킨다.

그래도, 웨딩 드레스를 입혀줄 사람이라면 최소한 같이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이 되었건 바이오로이드가 되었건 말이죠. 그래서 신랑님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웨딩샵에서 일하는 사람의 가치관이란 걸까, 결혼이란 것의 로망과 낭만을 제대로 아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설파한다. 양혼도 나름 그 가치관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그, 바이오로이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네?”

제 주변엔 뭔가, 다들 극단적인 사람밖에 없어서 말이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원체 인간관계가 좁은 그이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바이오로이드와 관계된 인물이 바이오로이드와 유달리 친밀한 선유와 바이오로이드를 증오하는 예빈, 이 두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이 궁금해질 법도 하였다.

음, 저는 그냥 편리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물론 진짜 살아 움직이고 감정을 갖고있으니까 순수한 도구라고 보기엔 그렇지만…역시 학대한다거나 하는 뉴스를 보면 좀 그렇죠?”

뭐랄까, 김빠지는 대답이다. 물론 저런 애매한 중간의 대답을 예상한 것도 맞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극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신랑님, 턱시도도 조금 둘러보시겠어요?”

턱시도는 그냥 제 체형 맞춰서 골라주세요. 뭐 옷 잘 알지도 못하고, 그게 그거고…애초에 결혼식 주인공은 신부니까”

그러면 이쪽 방으로 와주시겠어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한 방으로 이동한다. 비어있는 한 방은 그 방 자체가 커다란 기계장치인듯 큰 창 하나가 달려있었고 바깥에는 콘솔을 조작할 수 있는 패드가 달려있었다.

자 10초면 돼요”

직원의 지시에 따라 팔을 벌리고 서있는 양혼의 몸을 기계가 재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한다. 물론 방 안에 서있는 양혼은 그냥 팔만 벌리다 나왔다. 저런 거로 몸에 맞는 옷을 전부 찾아내는 것 보면, 역시 세상은 그의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 분명했다.

점원이 태블릿에서 몇 벌의 턱시도 샘플을 보여준다. 옷 자체의 디자인과 양혼이 옷을 입었을때를 보여주기 위한 정교한 3D 사진까지, 물론 양혼은 봐도 그 옷이 그 옷 처럼 보인다.

이거로 해드릴까요?”

네, 뭐…”

적당해 보이는 턱시도를 하나 고른다. 굳이 입지 않고 새 옷 상태 그대로 받는 옵션을 선택한다. 날짜를 정하고, 배송받을 시각까지 정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시간이 꽤나 흐른 것 같은데 바닐라는 아직까지 드레스 삼매경이었다.

으음…”

삼면이 거울인 방에선 드레스를 입기만 해도, 자신의 앞과 양 옆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주문에 맞춰 그리 길지 않은 스커트의 드레스들을 입어보지만 이거다 싶은 느낌이 확 오지는 않는다.

무언가 별로라기보다는, 모두 마음에 들어서 탈이다. 

마지막이 될 드레스, 행거의 맨 끝에 걸려있는 드레스를 천천히 입는다. 검은색의 레이스 속옷 끈이 어깨위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검은색의 속옷만 입은 그녀가 천천히 드레스를 착용한다.

거울을 바라본다. 순간 가슴께를 강타하는 충격이 느껴진다.

그려진다. 하얀 건물 앞에서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깨가 드러난 이 드레스와 허벅지를 덮는 치마에 달린 프릴, 그리고 색색의 부케를 들고있는 모습이, 잔디밭 중앙을 장식하는 돌길을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뒤를 돌자 자신과는 반대되는 검은 턱시도를 입고있는 양혼이 보인다.

그에게 폭 안긴다. 따뜻하다. 살아가는 것의 행복이 이런 것일까, 귓가에 울리는 맑은 종소리, 바람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람의 소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겐 행복이다. 오로지 세상에 둘 만 서있는 그 순간이 그녀에게 최상의 행복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였다.

이거로 하겠습니다”

흰 커튼을 확 걷고 나온 바닐라의 드레스 차림은 평상시와는 다른 귀여운 매력이 있었다. 대부분 바닐라를 차가운 성격으로 아는데, 저런 귀여운 드레스를 추천해 준 것을 보니 점원의 안목이 헛것은 아닌 듯 했다.

푸흡…”

으아아…”

물론 바닐라의 모습은 어느 신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귀엽고 이뻤다. 하지만 어깨를 드러낸 흰 드레스와는 대비되는 검은색의 브라끈이 고스란히 보이는 건 역시 조금 황당해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피식 하고 웃는 양혼의 모습과 보자마자 안절부절 못한 채로 탈의실로 들어가 커튼을 홱 치는 점원의 모습이 대비된다.

 

일련의 소동이 끝나고 나서야 두 사람은 결제를 한다. 옷은 식은 아니지만 간단히 기념하려는 날에 받기로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날이었다. 사흘 뒤 금요일, 그 날이 두 사람에겐 아마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두 분은, 되게 잘 어울리신다고 생각해요”

그렇습니까?”

카드를 돌려주는 점원이 싱긋 웃어보인다. 아부성의 멘트인지 진심에서 나오는 말인지는 알 턱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아보인다.

꼭 행복하셔야해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점원을 등 뒤로 두 사람이 웨딩샵에서 걸어나온다.

바닐라, 아쉽진 않아?”

뭐가 말입니까?”

결혼식 못하는거”

양혼은 결혼식에 자주 가보진 않았지만 갈때마다 그 웅장할 정도로 높은 천장과 압도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수 많은 하객과 화려한 음악을 볼 때 마다 자기도 언젠가 결혼을 하면 저런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바닐라는 결혼식을 본 적이 없었다. 양혼의 주위에 결혼하는 사람도 없을 뿐 더러, 굳이 찾아갈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별로, 전 그냥 기념할 만한 날 하루면 충분합니다”

고마워”

그래도, 결혼인데 증인을 초대한다는 말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집에 오며 양혼이 몇 가지 이야기를 했었다. 아무래도 결혼이란 의식을 치를거면 최소한 그 사실을 알아줄 사람은 있지 않아야겠냐는 말이었다. 보통은 하객들이 그 의식을 대신해주지만, 하객이라기엔 초라한 숫자의 인원을 초대할 양혼의 입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증인이었다.

그런가?”

씩 웃는 양혼이 바닐라를 번쩍 안아들고 욕실로 향한다.

 

영원만큼 길어보였던 시간은 정직한 걸음걸이로 걸어간다. 63시간이 지났을 때, 밝은 집안과는 반대로 하늘이 찌푸린 먹구름만 가득한 그 날, 금요일 정오가 되었을 때, 최고급의 승용차에서 내린 한 남성과 바이오로이드 세 기가 양혼 집의 벨을 누른다.


사실 하객이라고 해봐야 내 글에 등장한 인물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결혼식이 끝나면 이 글도 끝날거야

5.5를 생각하고있긴 하지만


사실 바닐라 이야기 끝낸 뒤가 제일 걱정이다.

뭔가 스토리의 라인이 떠오르는데 내가 쓰기에는 너무 큰 라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