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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이오로이드를 혐오한다 40화


마치 첩보영화처럼, 리리스와 마리아가 동시에 옷장의 양쪽 문을 열어젖혔고, 수많은 옷들이 우리를 반겼다. 대부분은 정장이긴 했지만, 가끔씩 보이는 스트릿 브랜드의 옷들이 시선을 끌었다. 리리스와 맞춰 입을려면, 저걸 입어봐야 되나...


"오랫만에 저런거나 한번 입어보고 싶은데...?"


리리스는 어떻게 내가 보고 있는 옷을 정확히 알아차리고서는 검은 후드티와 함께 두껍고 새빨간 패딩을 하나를 들고와, 내 몸에 대어보았다. 항상 정장만 입었던 나였기에, 그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였다. 그녀들도 마음에 안들었는지, 미간을 찡드리는 세레스티아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치명적인건.


"이런 초가을 날씨에 입고 다니면 쪄죽으실 텐데요?"


엘븐은 중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해주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진 정도는 아니였기에, 그것을 감안해서라도 이건 좀 아닌듯 하였다. 나는 다시 그 옷을 집어넣고, 옷장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정장 재킷, 정장 재킷, 또 다른 정장재킷들... 내가 이렇게 정장을 많이 사놨었나? 아무리 내가 평범한 옷무새를 좋아한다 한더라도, 이렇게 쌓여있는 정장들을 보니 약간의 현자타임이 찾아왔다. 그때, 검은색, 남색 옷들 사이에서 밝은 갈색 톤의 옷이 하나 보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거다!"


밝은 갈색을 뿜어내는 옷은 롱코트였고, 나는 곧바로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은 후, 그 코트를 걸쳐보았다. 방금 전보다는 훨씬 나아보였지만, 뭔가가, 하얀색과 밝은 갈색의 조합은 뭔가가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그때, 세레스티아는 응급처치를 


"저기... 이럴땐 하얀색 말고... 하늘색 쪽 옷을 입어보는건 어때요?"


다행히 하얀색 긴팔티셔츠가 눈에 들어왔고, 그것으로 갈아입고나서 코트를 걸쳐보니, 세레스티아의 보는 눈이 있어서일까,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옷무새가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다크 엘븐의 조언으로 바지는 눈이 많이 가지도 않고, 가고 싶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검은 긴바지를 하나 입고나서 전신거울을 비춰보니 너무나도 나의 마음에 딱 들었다. 숨길수 없는 하얀색 이빨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흐음... 이정도면 괜찮겠지?"


"물론이죠! 이정도면, 빈틈 없는 저, 리리스도 홀딱 반해 넘어가겠는걸요?!"


마리아는 대답 대신 웃음을 지었고, 세레스티아와 엘븐은 이미 나의 사진을 찍고 있었으며, 휴대폰 화면을 보는 다크엘븐만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두의 무언의 허락을 받은 나는 옷장 옆에 있는 메론 향의 향수를 몇번 칙칙뿌린 뒤, 얼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마중나가기 위해 현관 옆 차키들 중에서 가장 세끈하게 빠진 붉은색 스포츠카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손을 현관문에 올려놓았다. 뒷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그녀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엘븐이 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저, 저기!"


"으, 응?"


"너무 밀여붙이지 말고, 은근하게 유혹해요! 가끔씩은 벽쿵 같은것도 해주구요!"


"어, 응..."


"주인님! 화이팅!"


마리아가 주먹을 꽉 쥐며 나를 응원해주었고, 나는 눈을 한번 크게 떠준뒤에 문을 열었다.


'철커덕.'


문을 열자 안수민이 나타났고, 그녀는 빠르게 내 옷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오~ 비주얼 변신좀 했네?"


"계속 정장만 입으니까... 좀 식상할거 같아서 말이지... 이상해?"


"전혀. ...근데, 향수 뿌렸어?"


"...응."


"어후! 어쩐지, 메론향이 진동하더라! 자! 나가서 몸 한번 털고 가자! 다음에 향수는 조금만 뿌려!"


"알겠어. 자, 가자."


한팔로 쏙 들어오는 그녀의 허리에 내 손을 감싸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는 엘레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요즘 많이 못챙겨줬지?"


"그걸 말이라고 해? 가끔은 서운하기도 했다구..."


"미, 미안... 오늘 재밌게 놀고 화 풀어..."


나는 그녀의 삐죽 튀어나온 정수리 머리카락을 돌리면서 안수민을 쓰다듬었고, 그녀는 부끄러웠는지 볼이 새빨게졌다.


"...새, 생각해 보고..."


어색함에 말이 없어진 우리였다. 엘레베이터에 문이 열리고, 후끈한 공기와 함께 우리는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웅!'


"뭐, 뭐야... 리앤?"


"...참... 데이트 하자면서... 이러기 있어?"


"자, 잠깐!"


나는 주머니를 뒤져 차키를 꺼네고 그녀의 손에 열쇠를 쥐어줬다.


"이, 이거... 차키니까 주차장에 빨간색 스포츠카에서 기다려 줄수 있어? 그그그, 금방 내려갈게!"


볼을 부풀리면서도 차키를 받아가는 그녀였다. 주차장으로 사라진 안수민과 함께 나는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나야, 리앤. 혹시 시간 있어?"


"혹시 빨리 얘기해줄레? 약속이 있어서 말이지..."


"그래? 그럼 본론만 말할게! 우리, 운전수가 한명 필요해!"


"뭐? 아니, 작전모의할때, 나랑 테리 쪽 제이미, 너희쪽에서 운전수 한명. 3명이서 하기로 했잖아?"


"그게, 상황이 꼬였어. 우리쪽에서 뺑소니 전담반에서 운전수 한명을 구할려고 했는데, 거긴 전부 강수찬이 먹은 곳이라서, 자칫 잘못하면 들통날 수도 있거든..."


"하, 씨... 다른 사람은 못구해?"


"거기도 엑셀만 밟을줄 아는 애들이 들어가는 곳이라서, 안될거 같아..."


"...일단 오케이. 나중에 연락 다시 할게."


뚝. 머리가 지근거렸다. 어느새 3분이나 시간이 흘러있었다. 곧바로 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갔고, 나의 차량을 찾기 찾아나섰다.


오른쪽 구석에서 발견한 나의 붉은 차량, 거기서 안수민은 조수석에 타고있지 않았고, 조용히 차량 옆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안수민은 나를 올려다봤다.


"흥, 리앤이 뭐래? 일있다고 했지?"


"...응..."


"뭐, 어쩔수 없지. 우리 바.쁘.신 소한씨를 위해서라면, 나는 또 집으로 올라가 있어야지?"


"뭐래, 차에 타봐. 그런거 아니니까."


"뭐? 오늘 나랑 데이트 가는거야? 진짜?"


"그럼. 근데..."


"근데?"


"내, 내가... 그... 있잖아? 그런게 있어서..."


"아 뭔데! 빨리 말해봐!"


"데이트 할 만한 장소를 잘 몰라..."


"...소한아."


"...응..."


"너... 모태솔로야?"


"...! 말이 심해!"


"아니, 맞잖아!"


아오 저걸 때릴 수 도 없고...


"혹시 주변에 아는 사람 있어?"


내 주변에서 커플이 있었던가... 아! 한명 있구나! 한상주!


"잠깐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한상주는 안수민과 같은 바이오로이드 여자친구, 시로마가 있다. 그녀와 함께 놀러갈 만한 곳을 몇곳은 알고 있겠지.


'뚜우우...'


제발 받아라... 제발... 안그러면 저 안수민한테 평생동안 놀림감이 될거라고!


"여보세요?"


"받았다! 받았어!"


"아오 깜짝이야! 다짜고짜 전화해서 소리지르는 건 뭐에요!"


"아, 미...미안합니다...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말이죠..."


"어... 소한씨? 오랫만이네요?"


"예, 예 오랫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잘지냈긴... 집 붕괴되서 모텔에서 시로마랑 몇달을 보낸지도 모르겠는걸요?"


"아... 맞다..."


한상주의 집은 예전에 발생한 폭동으로 인해 붕괴가 되었지만, 그가 모텔에 지내고 있을줄은...


"그나저나 물어보고 싶은게 뭡니까? 오늘 저도 일있어서 빨리 나가봐야 되는데."


"아! 그... 혹시... 데이트 할만한... 그런... 장소를... 찾고 있는... 데... 말이죠?"


"...풉."


"뭐, 뭐야, 지금 비웃었어요?"


"아니, 웃기잖아요?"


"하아... 제발 좀 알려주세요. 부탁좀 드릴게요!"


"어엄... 충유시 문화거리 쪽에, 큰 건물 하나 있어요. 예성빌딩이라고, 데이트 할만한 곳들 죄다 모여있는 곳이에요."


"오..."


"볼링장, 롤링 스케이트장, 감성카페, 만화방, 오락실 그밖에 놀만한 것들은 다 거기에 있으니까, 거기 한번 가봐요."


"고마워요. 나중에 밥 한번 사죠."


나이스! 방금전까지 안수민한테 나중에 지지고 볶일 생각에 머리가 화끈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미래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좋은 곳이라도 찾았나봐? 모.태.솔.로.씨?"


다른 걸로 조리돌림 당할줄은 생각 못했네.


"차에나 타 임마. 이상한 말 하지 말고."


그녀는 말없이 차문을 올려 조수석에 올라탔고, 엄청난 배기음을 자랑하는 스포츠카는 주차장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BGM



전기차의 조용함이 지배한 도시에서 들려오는 성난 배기음은 우릴 더 돋보이게 했다. 지나가는 이들은 우리의 차량을 보고서 감탄하는 이들도 있었고, 사진을 찍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마치, 우리가 유명인사라도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조금 좋아져 엑셀을 한번 세게 밟았다.


'부우웅!'


그녀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부의 정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속을 긁었다. 직감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여기는 연인이 있을 공간이 아니였다. 나는 아무말이나 그녀에게 걸어봤다.


"...나 없는동안 뭐하고 지냈어?"


"그냥... 책 읽고... 유미 놀아주구... 리리스랑 마리아랑 얘기하구... 생각해보니까 별로 없네?"


...내가 그녀를 챙겨주지 못했던 예전의 시간들을 되돌아봤다. 그때의 안수민은 웃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는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볼링이랑 롤러 스케이트중에서 뭐가 더 좋아?"


"음... 그냥 둘 다 하면 안될까?"


"너가 좋다면야."


안수민은 그제서야 웃기 시작했고, 그때의 미소에서는 다행히 씁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맞다! 엊그제 세레스티아한테 유미랑 키울 씨앗들을 받았는데, 엄청 빨리자라더라고!"


"그래? 뭐 받았길래?"


"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보라색, 하얀색 꽃들이 피더라고. 아 맞다맞다! 또 있잖아..."


우리는 수많은 연인들처럼 이야기꽃을 피웠고,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색함은 떠나보낼수 있었다.


'끼익!'


"자아... 도착했다..."


비좁은 건물 아래 주차장에서 겨우 빈공간을 찾아 재빨리 우리의 차량을 맡겼고, 안수민의 손을 꼭 잡고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지하 1층에는 주차장 뿐만 아니라 롤러스케이트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선, 카운터에서 롤러스케이트를 1시간만 빌렸다. 볼링도 하고, 만화방에서 만화도 읽을려면, 하루가 모자라다. 신발을 갈아신으면서, 낑낑거리며 롤러스케이트를 갈아신고 있었다.


"흐응~ 흡! 챠! 됐다!"


"작으면 좀 큰걸 신지 뭘 그렇게 낑낑거려?"


"작은게 아니라... 너무 수직적으로 신발이 만들어져서 들어가는게 힘들어서 그런 거라구..."


"...이런거 처음 해봐?"


"...응... 이런건 처음이야..."


"하이고... 처음 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고 땡깡을 부려? 으이그... 내 이럴 줄 알았다."


"배, 배우면 되는걸 가지고 왜그래?! 원래 처음은 엄청 하고 싶은 건데?!"


"내가 뭘 가르쳐, 선생도 아닌데..."


"가르쳐 줘~ 응, 응? 가르쳐 달라고~"


안수민의 손이 나의 팔목을 꽈악 잡고서는 이리저리 흔들었다. 갈색 코트가 늘어날 것만 같았다.


"가르쳐줘! 응? 어떻게 타는 건지 알려주는게 그렇게 어려운거야?"


"..."


이마에 중지 조준, 발사!


'탁!'


"아!"


"한번만 알려줄테니까 놓치지말고 따라해봐."


"히잉... 말만 하면 되는건데 왜때리는거야..."


스페츠나츠에서 활동했을 당시, 동료한테 아이스스케이트를 배웠었으니, 그렇게 알려주면 되겠지? 롤러스케이트를 갈아신은 우리는 트랙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타원모양으로 돌고 있었다. 생각보다 붐볐던 트랙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안수민은 처음부터 휘청휘청거렸다.


"어어? 소한아! 도와- ...꺄악!"


그녀는 잠시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다 바닥으로 넘어질려 했다.


'휘익!'


'턱!'


가까스로 그녀의 팔을 잡았고 안수민은 다행히 엉덩방아는 피할 수 있었다.


"괜찮아?"


넘어질려는 그녀를 잡아올리니, 우리 사이의 공간은 한뼘으로 줄어들었다. 수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으, 응..."


그녀는 부끄럽다는듯 얼굴을 마주치지 못했다.


"...잘봐."


나는 몸을 돌리고 그녀와 등 뒤로 두 손을 잡고, 천천히 썰매를 끌듯 뒤로 롤러스케이트를 밀었다.


'탁...탁...'


속도는 빨라지다 느려짐을 반복하며 안정을 찾아갔고, 우리사이의 공간은 멀어지다 가까워지며 서로의 밀당아닌 밀당을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안수민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 롤러스케이트를 비스듬하게 밀어주구... 나아가는 발은 딱 곧게 놨둬서 쭈욱 앞으로 가게 해주면 되는거야."


그러나, 뒤를 돌아보자 안수민은 도통 내 말을 듣는둥 마는둥 내 얼굴만을 빠안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듣고 있는거야?"


"어, 어? 어..."


"진짜? 내가 방금 뭐라 그랬는데?"


"어... 그게..."


"...손 꽉 잡아."


몸을 돌려 이번에는 서로 마주보며 두 손을 고쳐 잡고 나는 안수민을 잡아당기면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등 쪽으로 바람이 느껴졌다. 힘이 들긴 했지만, 이런것도 나쁘진 않았다.


안수민은 참 이상했다. 내가 앞쪽에 사람이 있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할 때면 빤히 내 얼굴을 보면서도 다시 그녀쪽으로 얼굴을 돌리면 못 본척 허공이나 보고 있었다. 얼굴은 어디 아픈지 버얼게지고선...


"너 진짜 괜찮은거 맞아?"


"그그그그, 그럼!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을 정도로 컨디션 최고상태야!"


"그렇다 치고선 얼굴은 엄청 빨개졌는데?"


"조, 조명 때문에 그래 바보야!"


그때, 안수민은 내 뒤를 보고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저, 저기! 뒤에!"


뒤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녀는 사람이 없는 트랙 바깥쪽으로 나를 밀쳤다. 나는 안수민과 손을 꽉 잡고 있던 상태라 그녀도 나를 따라 트랙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끌어당겨 꼭 안았고, 빠른 속도를 못이긴 우리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넘어지게 되었다. 그때에도 나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등쪽으로 넘어지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조취를 취했다.


'쿵!'


"크윽!"


나와 그녀의 사이는 김 한장 간격보다도 가까워졌으며, 코 끝이 닿을락 말락하며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안수민이 다치진 않았는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봤다.


"고, 괜찮아?"


"응... 미안... 나도 모르게..."


"롤러 스케이트는 우리 취향에는 안맞는거 같다. 볼링이나 치러 갈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안수민을 본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서는 출구를 빠져나왔다. 그녀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나는 그녀를 먼저 밖으로 보낸 뒤, 안수민이 신었던 스케이트보다 한 수치 더 큰 사이즈의 스케이터 모델 한짝을 산 뒤에 그녀의 뒤를 따라 롤러 스케이트장을 빠져나갔다.


밖에서는 안수민이 아직까지도 붉은 얼굴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눈을 요염하게 뜨고선 검지 손가락을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대곤 무슨 상상을 하는지 혼자서 깜짝 놀라고는 고개를 강하게 양옆으로 흔들기도 했다. 정작 내가 오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써 웃으며 나를 반기는 그녀였다.


"어, 어! 왔어? ...손에 그건 뭐야?"


'스윽'


"나중에 다시 올 수도 있으니까 그때동안 연습해 놓으면 좋을거 같아서 말이지."


"아... 고, 고마워! 열심히 타볼게!"


"열심히까지야... 그나저나, 볼링은 할 줄 알아?"


"그럼! 당연하지!"


"잘 됬네. 가자."


그녀는 내 뒤를 따라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고, 바로 윗층에 있던 볼링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1시간 이용권을 구매한 우리는 비어있는 레인들 중에서 창문이 바로 옆에 있던 가장 바깥쪽 레인에 자리를 잡았다.


'철커덕!'


자리에 앉자 10개의 핀들이 세워졌다. 내가 먼저 일어나서 볼링공을 잡아올렸다.


"내가 하는거 잘봐야된다?"


"풉!"


"웃지말고!"


"알겠어! 한번 해봐!"


숨을 가볍게 들이마시고 공을 굴렀다.


'쿵!'


'쿠르르르...'


'쾅!'


약간 왼쪽으로 휘긴 했지만, 7개의 핀이 쓰러졌고, 3개만 더 쓰러뜨리면 스페어를 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공을 굴렸다.


"합!"


'쿠르르르르...'


'쾅!'


나머지 3개의 핀들도 같이 쓰러졌고, TV점수표에는 스페어 처리가 되었다고 나에게 알려줬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안수민을 바라봤다. 그녀 또한 활짝 웃으며 내가 대단하다는 듯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짝짝짝!'


"이렇게 하면 되는거야. 알겠지?"


"이미 알고 있었거든?! 이제 내 차례지?"


그녀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서 볼링공을 하나 집어올리고선 옆에 있던 헝겊으로 공을 닦기 시작했다.


"그건 왜 닦어? 이미 깨끗해 보이는데?"


"이렇게 닦아야지 공이 쭈욱 나가는 거거든?" 


"...쩝, 그렇구나."


그녀는 계속해서 커다란 공을 닦아댔다. 근데 저렇게 보니... 그녀의 거대한 상부에 나는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와... 볼링공이 세개..."


"...!"


그 말을 들은 안수민은 갑자기 다시 얼굴이 붉어졌고 볼링공을 한 손으로 잡고선 나에게 던질려고 했다.


"아ㅋㅋㅋ 미안해! 미안하다고!"


"한번만 더 그런 이상한 농담하면 진짜로 화낼거야!"


"알겠으니까 공이나 던져보셔."


안수민은 새침한 얼굴로 레일 앞에섰고, 핀들을 바라봤다. 그러고선 사선으로 비껴서 자세를 고친 그녀는 레일로 걸어갔고, 공을 밀어넣었다.


'휙!'


안수민의 볼링 자세는 프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공은 역시나 사선으로 들어갔고, 핀을 맞기는 커녕, 공이 바깥 도랑으로 빠지는 게 안봐도 비디오였다.


"앜ㅋㅋㅋ 내가 하나도 못맡출 알았-"


'휘이이익!'


'쾅!'


"예에! 스트라이크!"


"......어?"


볼링공은 빨려들어가듯 휘어져서 핀들을 정통으로 맞췄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이어나가질 못했고, 옆레인에 있던 사람들도 방금 전 광경을 봤는지 입을 쩍 벌리고 같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계산을 한 건지는 몰라도, 놀라운 궤적이였다.


"롤러 스케이트는 몰라도, 볼링은 내가 한 수 위인거 같네?"


"스트라이크한번 쳤다고 좋아하기는, 아직 한참 남았다고!"


"그깟 스트라이크 난 계속 칠 수 있다고!"


"좋아, 그럼 이번에 진 사람이 카운터에서 음료수 빵 어때?"


"좋아! 덤벼보라구!"


우리는 다시 불타올랐고, 볼링공을 서로 구르기 시작했다.


서로 막상막하의 경기였다. 안수민은 무서운 결정력으로 남은 8번의 시도 중에서 4번을 스트라이크로, 2번을 스페어 처리했지만, 2번을 너무 미적 점수에 몰두해서인지, 각각 5, 7개씩밖에 맞추지 못했지만, 나는 안전을 위해 8번 중에 7번을 스페어로 끝냈고, 남은 한번은 8개로 맞추는 준수한 성적으로 끝을 냈다. 볼링을 치며 우리 둘은 서로의 신경을 긁으며 방해공작을 시전했다.


"이번에도 아름다운 곡선을 보여주겠어! 간닷!"


"...어? 유미야!"


"뭐? 유미?!"


"...뻥인데."


"우으... 거짓말 치기 있어?!"


"너가 속으면 안되지!"


...


"자아..."


"어어~어! 넘어지나? 어? 진짜 넘어지나? 넘어졌다? 넘어질거 같은데?"


"...혼난다!"


"너도 이랬잖아!"


그렇게, 서로 투닥투닥거리며 마지막 한번의 기회를 맞이했다.


"나부터지? 간다?"


조용히 쉼호흡하고서... 공을 정중앙으로 밀어넣었다.


'쿵!'


"제발 스트라이크... 제발..."


'쾅!'


공은 정중앙으로 흘러갔고, 모든 핀들이 완벽하게 쓰려졌다. 스크린에는 스트라이크라고 크게 문구가 쓰여졌다. 그녀가 나를 이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스페어가 필요했다. 안수민이 조용히 일어나서 볼링공을 잡고, 이번에는 말없이 공을 직선으로 밀어넣었다.


'쿵! 쿠르르르르르...'


"제발 제발..."


'쾅!'


...


"안돼애애!"


공을 너무 약하게 밀어넣었는지, 공은 앞으로는 쭈욱 갔지만, 양쪽 끝의 핀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절규했다.


"자, 내가 이긴거 같네? 난 사이다로 부탁할게?"


실실 웃으며 그녀를 놀려 먹으니 너무 재미졌다. 그때, 안수민은 핀을 빤히 바라본 뒤, 조용히 한 마디를 던졌다.


"아직 공 던질 기회 남아있지?"


그녀는 조용히 공을 들어올리고선, 어느때보다도 신중하게 공을 닦으며 시선은 핀에다 집중하였다. 그리고, 안수민은 핀을 향해 공을 던졌다. 


'쿵! 쿠르르르르...'


공은 가운데로 흘러가다 점점더 오른쪽으로 휘어들어져 갔고, 우선 성공적으로 오른쪽 핀을 맞추는데 성공했다. 어느새 손에 땀이 흘러찼고, 침을 꼴깍 삼키며 남은 하나의 왼쪽 핀을 바라봤다. 볼링공이 심하게 휘면서 와서 그런지 핀은 벽을 한번 심하게 맞은 뒤, 왼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 핀은 정확하게 남은 마지막 볼링핀을 명중시켰다.


'데구르르...'


"...이건 말도 안돼..."


""와아아아!""


뒤에서는 언제부턴가 관객들이 생겨났었고, 그들은 안수민이 남은 볼링핀을 맞추자마자 그자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는 위풍당당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앉아있던 나는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소한아, 콜라로 부탁할게? 아, 코카콜라인거 알고 있지?"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카운터로 향하고 있었고, 콜라 하나와 사이다 하나씩을 사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때 그녀의 계산력은 안수민이 아니라 하르페이아에 가까웠다. 아, 그게 그거지... 어쨋거나, 양손에 캔을 들고 그녀에게 가보니, 중년 남성 2명이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방금 정말 대단했어요! 모처럼 좋은 구경 했습니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안수민은 머리를 뒷쪽으로 쓸어내리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로 끼어들면서 불편함을 드러냈다.


"저,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여기 제 명함이에요! 선수하실 생각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그들 중 한명이 안수민에게 명함을 하나 주면서 자리를 떴다. 나는 빤히 그녀를 쳐다봤다.


"...얼마나 잘하면 선수제의까지 들어오는거야?"


"오~ 콜라 고마워!"


안수민은 빨대를 쪽쪽 빨아들이며 음료수를 마셨다.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아서 그녀는 어떻게 공을 굴렸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 설명은 20분을 넘겼다. 이야기가 되게 흥미로웠기에 나는 말리지 않았고, 그녀의 말을 심도있게 들었다. 그때였다.


'부우웅!'


바깥에서 시끄러운 배기음이 들렸다. 볼링장 안에 있던 사람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밖을 바라보니, 수많은 고급차량들이 공용주차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사이다를 한번 들이키며 그들을 바라봤다.


"...뭔가 재밌을거 같은데?"


"그러게..."


"...수민아."


"응?"


"바람이나 쐐러갈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키를 흔들었다. 노란 방패에 검은 발이 두발로 서있었다. 그녀 또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볼링장을 빠져나와, 재밌어보이는 그 공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40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