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만하게 조금만 연습하면 이 정도는 껌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린티가 가사가 적힌 종이에서 눈을 들어 어딘가 켕기는 듯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입을 살짝 벌린 앙증맞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하고 있었지만, 당황했을 때의 린티 특유의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비스듬하게 치켜올라가서 경련하고 있는 입꼬리와 광대에서 볼가까지 번진 홍조는, 린티를 한계까지 놀려먹다 보면 맛볼 수 있는 소프트크림 밑바닥에 숨겨진 상큼한 셔벗과도 같은 별미였으니까.


"으~ 정말... 린티가 모처럼 프로듀서님 앞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귀엽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꼭 그렇게 찬물을 끼얹으셔야겠어요?"


린티의 말대로 그녀는 저번에 지적받았던 인트로의 영어 가사 부분을 열성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들려줬던 원어민의 유창한 팝송이 큰 자극이 되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언어 모듈에는 다국어 옵션이 없었고, 결국 연습과 반복으로 그 간극을 메꾸어야 했다.


"자, 따라해봐. Secret!"

"씨... 씨크으릿!"

"..."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발음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서 과도하게 입가를 벌리느라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S 발음이 튀어나왔고, R까지 가서는 혀를 입천장에 닿지 않도록 구부리는 게 많이 힘들었는지 L 발음에 더 가까웠다. 물론 어설픈 발음도 내 기준으로는 매력 포인트로 충분히 먹히고 있지만, 이대로 녹음에 들어갔다가는 본인과 유닛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음... 혀가 부드럽게 돌지 않는 것만 해결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혼잣말을 하며 침대맡에 둔 블랙 체리의 꼭지를 따서 입 안에 털어넣었다. 보통 체리보다 살짝 단단한 과육에 이빨이 들어가자, 산미가 있으면서도 달콤한 과즙이 팡 터지며 혀 위에 퍼져나갔다. 드리아드가 뿌듯하면서도 자신 있는 표정으로 내밀 만한 야심작다웠다.


씨를 조심스럽게 뱉어낸 나는, 체리 꼭지를 골똘히 쳐다보며 잠시 어떤 터무니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린티는 여전히 혀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꼬이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발음 교정에 매진하고 있었다. 낭설에 가까운 의심스러운 방법이었지만, 그래도 시도해보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 이미 웃기지도 않은 수많은 방법을 써보았고, 아직까지 큰 효험은 없었으니, 실패해도 결국은 본전이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린티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린티."

"리... 리쓴! 아, 프로듀서님? 왜요? 지금 연습... 합."


입술 사이로 밀어넣은 블랙 체리에 린티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린티의 부드럽고 따뜻한 입안에 살짝 잠긴 검지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빼내니, 마침 당이 부족했는지 굳었던 린티의 얼굴이 행복한 표정으로 풀려나가고 있었다.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감싼 볼을 우물거리며 상큼한 체리를 음미하는 린티에게서 높은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음~ 고맙습니다앙... 프로듀서님..."


드리아드가 보았으면 함박웃음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리액션을 보여준 린티는, 이 작은 숨돌리기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은 새로운 트레이닝의 시작이었다. 나는 길다란 체리 줄기를 들어 린티의 코앞에 보란 듯이 내밀었다.


"린티, 잘 봐."


그리고, 거침없이 체리 줄기를 내 입에 털어넣었다.


"아...?! 프, 프로듀서님!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꼭지까지 먹는 건 좀..."


기겁하는 린티를 앞에 두고 나는 입천장과 입술과 혀를 모두 써서 체리 줄기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십수 초 후에, 린티에게 혀를 내밀었다.


"어...?"


내 혀 위에는 깔끔하게 묶인 체리 줄기가 있었다.


펫. 하고 옭매듭이 된 체리 줄기를 씨를 뱉어놓는 그릇 위에 토해내니, 린티는 신기해하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살펴보고 있었다.


대놓고 말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그동안 본의 아니게 먹어본 립스틱과 틴트와 립밤이 수백 그램이 넘어갈 정도라서 혀를 쓰는 일에는 도가 튼 나였다.


"...어때, 너도 할 수 있겠어?"

"하! 물론이죠!"


린티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나에게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단숨에 체리 줄기를 머금었다.


"음... 으음... 으으음~"


역시나 잘 되지 않는지, 온 얼굴 근육을 다 쓰며 천방지축하게 표정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신기하게 변하는 린티의 얼굴을 구경하다가 1분 남짓하는 시간이 흘렀다.


"음!"


린티가 드디어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높고 짧은 감탄사를 낸 린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무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흐읍."


린티의 어깨가 한번 크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어느새 린티의 얼굴이 내가 팝송을 들려주며 발음을 비교했을 때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경악을 숨기지 못하고 린티는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설마... 삼켰어?"


끄덕끄덕.


"..."


말이 없어진 나를 보고 린티의 풀이 크게 죽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인 린티를 보니, 내 마음도 절로 콕콕 찔려왔다. 아무리 쾌활한 린티라도 며칠 째 가사 한 마디를 완성하는 데에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 그럴 법 했다.


나는 린티의 보드라운 민트색 브릿지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그거 성공했어도... 사실 발음 좋아지는 거랑 크게 상관 없어."


린티의 머릿결과 함께 부들부들 떨리는 손 너머로 린티의 분함이 느껴졌다. 울먹거리는 린티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상관... 있어요..."

"뭐가 상관 있는데?"

"방금 그거... 린티도 안다구요... 키스 잘 하는 방법 비슷한 거잖아요..."

"어, 알고 있었어? 그래. 그러니까 발음 좋아지는거랑 상관 없는 거야. 그렇게 실망할 필요 없어."

"나, 나중에 사령관님을 실망시켜드리면 어떡해요!"


린티는 다독여주는 내 손을 밀어 치우고 고개를 쳐들었다. 순간 울컥했는지, 눈망울이 촉촉해져있었다. 나는 린티의 말을 잠시 따라가지 못하고 망연히 린티를 쳐다보며 굳었다.


천천히 두뇌의 톱니바퀴가 맞춰지자,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네가 키스 능숙하게 못 할까봐 그렇게 실망했던 거야?"

"히윽?!"


아무래도 이제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이젠 머리에 김이 피어오를 기세로 얼굴 전체가 새빨개진 린티는, 무릎을 끌어안고 벽에 등을 붙였다.


"그게 걱정이면 지금 당장 연습시켜줄 수도 있는데...?"


그런 내가 린티에게 음흉한 멘트와 함께 이끌리듯 점점 다가가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린티는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내 얼굴을 보곤 어쩔 줄 몰라하며 이번엔 다른 의미로 눈가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잖아? 혀가 부드러워지면... 발음이 더 좋아질 지도...?"

"바, 방금까진 별 상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 그리고... 맞다! 저, 저 아이돌이라서 연애는...!"

"시끄러워. 그래 놓고 며칠 전에 내 입술에 먼저 틴트를 묻혔던 그 입술은 누구 입술이더라?"


이제 린티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달아날 곳이 없었다. 내 두 팔과 자신의 언행에 스스로 갇힌 린티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렁그렁한 눈은 내 입술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너도 기대하고 있으면서..."


그래, 그런 점이 하나부터 끝까지 치사했다. 평소에는 자기가 귀엽다고 어필하면서 의기양양한 주제에, 조금만 밀어붙이면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귀여움까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분명히 지금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것도 그녀의 탓이 9할 이상일 것이다. 그렇게 내 안에서 날뛰는 열을 린티의 탓으로 돌리며 나는 린티에게 얼굴을 가져갔다. 린티의 과일향 틴트 냄새가 코끝을 살며시 간질였다.


서로의 숨결을 느낄 거리가 되자, 나는 블랙 체리를 먹어두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