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는 연령을 이유로 자비를 베풀지 않지만, 어린이가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은 변치않아."


                                                                                                           -켈시, 명일방주






"마스터."


사령관, 주인, 인간. 사령관을 부르는 호칭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마스터'라는 특이한 호칭으로 부르는 바이오로이드는 이 오르카에 단 한 명밖에 없다. 


"안녕, 타치."


맑은 날의 푸른 하늘같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왼쪽 눈에는 검은 십자가가 그려진 안대를 낀 붉은 눈의 바이오로이드. 


타치는 그 루비같은 눈으로 무표정하게 사령관을 올려다보고 있다. 


"무슨 일이야?"


"콘스탄챠로부터 오늘은 출격할 일이 없다고 전달 받았습니다. 마스터, 저는 이제 쓸모없진 것입니까?"


원망도 배신감도 슬픔도 없는 무색의 질문. 타치의 질문에는 '마스터'인 사령관의 진의를 확인하려는 의도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거 아니야."


사령관은 무릎을 굽혀 타치와 눈높이를 맞춘다. 


재생산된지 얼마되지 않았고, 또 어릴 때부터 암살자로 설계되어 감정과 미각을 잃었다는 게임 캐릭터를 본따 만든 바이오로이드인지라 전투 이외의 생활에는 익숙치 않은 것이 당연하다. 


"오늘 타치가 쉬는 거는 오늘이 '어린이날'이라서 그래. 오늘은 타치 말고도 다른 어린이 바이오로이드들도 다 쉬는 날이야."


"어린이날?"


타치의 되물음에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날'의 의미도, 제가 어린이라는 것도, 또 제가 어린이이기 때문에 쉬어야 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령관은 으음......고민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긁적인다.


"무기로 만들어진 저에게 나이 따윈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인간보다 긴 수명을 가진 바이오로이드인 저에게 나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정론이다. 애초에 성장속도가 인간과는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 어린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도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의문으로 가득 찬 타치의 눈동자를 보면서 사령관은 처음 이 날을 제정할 때의 다짐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타치. 더치걸이라고 알지? 너랑 비슷한 체형의 바이오로이드인데."


"흰 드레스를 입고 가끔 드릴을 들고 출격하는 주황색 머리의 바이오로이드. 알고 있습니다."


타치가 기계적인 말투로 대답한다. 


"그 애, 사실 멸망 전부터 살아왔던 아이인 건 알아?"


"......"


타치가 침묵으로써 몰랐음을 알린다. 


"우리가 구조하기 전까지 더치걸의 인생은 땅을 파는 게 전부였어. 타치 네가 암살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처럼, 더치걸도 땅을 파는 게 인생의 전부였지."


사령관의 설명에 타치는 그저 무표정하게 경청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너도 봤지? 지금 더치걸은 땅을 파는 게 전부가 아니야. 지금은 LRL, 알비스, 안드바리랑 같이 재밌게 놀고, 마리아와 알렉산드라한테서 수업도 듣고, 숙소에서 다른 언니들이랑 푹 잠도 자."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드릴과 총과 도끼를 들고 싸우러 나갑니다." 


타치가 무덤덤하게 반론한다. 


"마스터께선 '어린이'인 그들이 전장에 나서는 걸 원치 않으시는 것 아닌가요?"


사령관이 멋쩍게 웃는다. 


"마음은 그렇지만, 어찌됐든 그것도 그 아이들이 가진 '재능'이고, 또 그 아이들도 언니들과 함께 싸우길 원하니까 그걸 억지로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물론 너무 위험한 곳이나 가혹한 일은 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지만."


타치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마스터. 어린이날인 오늘은 싸우지 못하게 하면서 또 어린이가 싸우는 것을 막지 않는다니......"


"콘스탄챠에게는 아이들에게 쉬라고 해뒀지만, 꼭 그게 강제적인 건 아냐."


"네?"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건, 너희들에게는 '자유'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 거야."


타치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깜빡 거린다. 


"자유......말입니까?"


"더치걸이 광부가 아니라 이쁜 옷을 입고 즐겁게 노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있듯이, LRL이 등대지기가 아니라 상상 속의 용을 처단하는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가 될 수 있듯이, 너희들은 어떤 정해진 길이 아니라 너희들이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날인 거야, 오늘은."


사령관이 싱긋 웃으며 타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타치는 갑작스러운 터치에 움찔했지만, 그것이 위협적인 손지껌이 아님을 알고는 다시 사령관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자유에 대한 책임과 그 자유가 잘못된 길로 너희를 이끌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모두 짊어질만큼, 어른인 나와 언니들이 너희들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날이기도 하지. 비록 만들어진 생명이긴 해도, 너희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이'로 태어난 아이들이니까."


"사랑......"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입에 올리며 타치는 생각에 빠진다. 


사령관은 자신의 의도가 잘 전해졌기를 빌며 읏챠, 하고 몸을 일으킨다. 


"뭐, 타치 네가 오늘도 출격하고 싶다면 억지로 말리지는 않아. '검'이 되는 것도 네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니까. 물론 오늘만큼은 다른 아이들과 놀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웃어보이는 사령관을 보며, 타치는 방금까지 사령관의 손이 닿았던 머리에 손을 얹으며 사령관의 온기를 느껴보았다. 


"......그럼, 오늘은 염치 불고하고 다른 어린이 바이오로이드들과 어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타치의 말에 사령관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좋아, 그럼 같이 가볼까? 나도 오랜만에 아이들이랑 좀 놀아줘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앞서가는 사령관의 뒤에서 타치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그때, 사령관이 뒤돌며 타치를 바라보았다. 


"손 잡고 갈래?"


"......"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사령관의 말에, 타치가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는, 사령관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웃는다. 


"네."


타치가 조심스레 다가가 사령관의 손을 잡는다. 사령관은 암살자로 만들어졌던 작은 아이의 손을 쥐고, 아이의 보폭에 맞춰가며 오르카의 복도를 걸어갔다. 










고찰이기 때문에 당일에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하다 절대 변명이 아니다


공식 일러랑 연결되게 짤막하게 써봤다 타치 혼자 조금 어색한거 같애서 타치가 주인공이 되었따


글 쓰는데 자꾸 엄마가 와서 딴짓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타박한다 제발 글로 돈 좀 벌고 싶다 공부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