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안녕하세요, 게임은 안하고 챈질만 하는  놈입니다. 라스트오리진은 정치적 사상적 갈등없이 깔삼하게 인류가 멸망하고 바이오로이드 다수와 인남 한명만 남았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이라 뇌피셜에 많은 도움 받아요.


글은 오래 두면 포기하는 성격이라 즉석에서 글을 써올립니다. 불편하면 죄송해요.

---

사령관은 두려웠다.


이 지겨운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전쟁이 끝난 뒤 구인류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매일매일 사령관을 짓누르고 있었다. 조금만 자신에게 틈을 허락한다면 펙스의 악마들이나 다름없는 쓰레기로 거듭날 것만 같았다. 그 모든 불안감이 사령관의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바이오로이드들과의 관계조차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막연한 충성심으로 자신에게 복종하는 콘스탄챠 S2가, '서방님의 뜻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무적의 용이 이어받겠습니다.'라며 무한한 애정을 바치는 무적의 용이, '바보같고 삐걱거려도 내가 사랑하는 사령관이니까!'라며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멸망의 메이가, 그 모든 바이오로이드들과의 수많은 방식의 관계가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워지니, 사령관의 기분은 깨어날 때 부터 잠들 때 까지 울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브라우니 같은 바보같지만 착하고 솔직한 아이들과의 애정에 기대어 그 우울함을 떨쳐냈지만, 어두운 무기력함의 짐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블랙 리리스와 매일 자신의 몸을 들이대며 육탄전을 벌이던 포이마저 애정행각보다는 사령관의 기분전환과 심리적 부담감 완화에 전념하기 시작했을 때, 사령관은 더이상 버티기 힘들게 되었다.


"힘들고 더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아이들과 함께 잠시만이라도 푹 쉬셔도 돼요."


마리아의 위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좌우좌를 보면 이 작고 가녀린 아이를 100년동안 등대에 가둔 채 신경조차 쓰지 않은 펙스의 관료들이, 더치걸을 보면 이 아무런 죄도 없는 순수한 아이를 양껏 착취하다 최후의 최후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재림된 추악한 지옥에 데려가서 마지막 생명까지도 유린하는 테마파크의 돼지들이, 알비스와 안드바리를 보면 이 어린 아이들의 육신을 전쟁이라는 파괴적 목적만을 위해 멋대로 빚어내고 멋대로 쥐어 짜내 숨통을 끊어버리는 블랙 리버의 역겨운 장교들이 계속해서 사령관의 위선을 비웃었다. 그 악몽은 사령관이 언제까지 선한 구세주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선지자의 가죽을 언제까지 쓰고 모세 행세를 할 수 있을 지 조롱했다. 사령관은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사령관은 이제 사령실 안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육신을 아무리 건강하고 활기넘치는 것으로 바꾼다 한들, 권태감과 불안감, 우울감에 좀먹힌 영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리제와 리리스, 소완이 싸움조차 그만두고 사령관의 심적 회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불철주야 노력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령관의 심리상태에 대한 심각성이 더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우울함에 전염되기라도 한 듯 놀라울 만한 행동들을 보여줬다.


탈론페더는 오르카호 곳곳에 설치되어있던 도청장치들을 사령관의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모조리 철거하고, 영상물의 유포를 중단해버렸다.


샐러맨더는 사령관처럼 기운이 없어진듯 숨쉬듯 하던 도박을 멈췄다.


티타니아는 증오의 감정이 사령관에 대한 염려와 연민으로 채워져 레아와 리제, 다프네와 같이 사령관의 심리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바바리아나와 아스널은 사령관에게 성적인 대시 대신 서적 낭독과 악기 연주를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의 노력에도, 사령관의 우울증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르카의 모두가 우울감에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사령관을 요안나가 개척한 섬으로 잠시 휴양을 보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올렸지만, 사령관은 자신이 요안나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고 되뇌이며 해당 제안을 거절했다. 참다 못한 미호가 그러면 그저 이렇게 사령관실에만 박혀서 무기력하게 있는 건 폐가 아니냐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너무나도 깊은 우울감에 잠식된 사령관의 끔찍한 얼굴을 보자 그런 소리마저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미호는 사령관실의 문을 닫고 나와, 바닥에 웅크려 흐느끼는 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무기력하게 서류를 들여다보며 사인을 하고 있던 사령관에게 핀토와 알비스, 그리고 흐레스벨그가 찾아왔다. 의아해하는 사령관에게 핀토는 작은 패키지 하나를 내밀었다.


"혹시 너희들의 사진이라던가 뭐 그런거면 제발, 가져오지 말아줘. 더이상 너희들한테 마지막 인간이라는 걸 무기로 입에도 못 담을 짓거리를 자의적으로 하게 두고 싶지 않아..."

"그, 그런거 아니...에요...! 사령관...님..."

"있지 사령관님, 이거 우리가 폐허에서 발굴해낸 고전게임 상자야. 혹시 사령관이 좋아할까봐 가져온 건데..."

"사령관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지금 사령관님께 필요한 건 휴식과 놀이라고 전대장님이 조언하셨습니다."


사령관이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작은 상자 하나가 사령관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고, 삼인방은 사령관실을 나간 뒤였다. 사령관은 막연한 기대감과 어차피 내가 했던 게임들이랑 비슷한 거겠지...하는 권태감을 가지고 상자의 포장지를 뜯었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가격표가 붙은 상자에는 이런 문구가 제목으로 적혀있었다.


'메탈기어 라이징 리벤전스'


아자즈가 심심하다며 만들어낸 다규격 게임팩 대용 콘솔에 CD를 넣고 전원을 켜자, 메뉴에는 세이브 파일이 여러 개가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플레이하다 중고로 판 게임팩인것 같구나.'


되는대로 맨 위의 세이브파일을 연 사령관은 몇시간 뒤, 무언가 충격과 깨달음을 얻은 듯 한 표정으로 사령관실 밖으로 나왔다.


"사, 사령관님?!"


놀란 콘스탄챠와 주변의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 어색한 침묵의 기류 속에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콘스탄챠, 내 몸을 당장 나노머신과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시켜줘."

---

다음편은 바로 쓰려고 합니다. 메탈기어도 라오도 안해봤는데 스티븐 암스트롱 상원의원이 너무 인상깊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