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 공식 설정과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이상, 정기보고 마칩니다. 사령관 님"


사령관은 보고서를 읽으며 시라유리에게 대충 손짓을

통해 알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시라유리는 깊게 고개를 숙이고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좋아. 이대로만 진행하면 될 것 같아. 새롭게 재건된 080조직의

수장으로서 네가 해 줄 일이 참 많겠어. 고생이 많지?"


"얼마든지요. 사령관님의 기대에 부응해 보이겠습니다."


시라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사령관을 향해 각오를 전달했다.


오르카 호가 무적의 용이 이끌고 온 함대들과 합류해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한 후 사령관이 비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명령만을

듣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성하며 오르카 저항군 내의 불온분자 색출과

검열의 임무를 맡을 정보조직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수장으로는 수많은 후보들 중 가장 믿을만 한 시라유리가 낙점되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따르는 여자를 다루는 것은 사령관에게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사랑하는 여자는 맹목적으로 변한다고 하던가.


"오늘도 예쁘네, 자 여기."


"가, 감사합니다."


슬쩍 시라유리를 향해 아네모네 꽃 한송이를 건네는 사령관.

시라유리는 얼굴을 붉히며 사령관이 건넨 꽃 한송이를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받아들었다.


다른 그 누구도 믿지 않으며 천성이 음흉한 시라유리가 이토록 풀어지고

믿는 대상이 또 누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시라유리에게 세상이란

사령관이고 시라유리에게 믿음이란 사령관 이었으니까.

사령관은 시라유리를 그렇게 길들여왔다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럼, 이따가 저녁에 보자."


"아, 네..!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가볍게 던진 말 한 마디에 시라유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냉혈하고 냉혈한 그녀를 마음 깊은곳 부터 묶어둔 사령관은

물러나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올린 계획서를 꺼내 다시 읽어 나갔다.


「보다 확실한 부대 장악을 위해 스틸라인의 지휘관 마리 개체를

제거한 뒤 다시 생산하여 세뇌 프로그램을 심어야 할 것.

강한 무력과 세력을 갖고있는 지휘관 개체이니 직접적인 암살

보다는 작전 중 순직을 가장한 방법으로 처리해야 뒷처리가

쉬워질 것으로 예상. 작전 투입 전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음.

이를 이용하여 커피에 약물을 투여. 기능에 장애가 있는 틈을 타

원거리 저격을 통하여 무력화 하는 계획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의견이 모아진 바. 이에 작전 진행의 여부를 묻습니다.」


사령관은 망설임 없이 결재란에 서명했다.

스틸라인은 오르카 저항군의 육군 세력중 가장 강력하고 많은

수의 전투원이 속한 부대다. 반드시 완벽한 장악을 해야한다.

지금 있는 마리 개체의 전투 경험은 완벽히 보존해 두었다.

새롭게 마리 개체를 생산하여 세뇌 하기만 하면 될 일.


사령관은 계획의 진척도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런 방식으로 휘하의 모든 부대를 장악했다.

무적의 용의 해군 세력은 무적의 용 휘하의 지휘개체와

전투원들을 포섭해 두었다. 여차하면 사령관의 편에 설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거기까지 계산이 끝난 사령관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구석을 향해 나즈막히 어느 인물을 불렀다.


"리리스."


"네~ 주인님."


화사한 미소와 함께 사령관의 호출에 응한 리리스는

한 구석의 병풍 뒤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애초에 이 세상에 눈을 뜨고 믿은건 너밖에 없었어."


"어머나~ 기뻐라!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저 리리스는 언제든

주인님만의 리리스 랍니다!"


리리스의 대답에 처음으로 표정이 부드럽게 풀린 사령관.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리리스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입을 겹쳤다.


"응, 응츄.. 츄읍.. 후후훗."


저항없이 사령관의 키스를 받아들인 리리스, 그런 리리스에게

사령관이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하명했다.


"마리 제거 계획이 끝나는 즉시 시라유리를 처분해.

철충들의 소행으로 보이도록 하는거 잊지 말고."


"네. 맡겨주세요 주인님!"




17시간 뒤 새벽 1시 12분


전선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던 마리의 가슴에 불의의 총탄이 몇 발 날아들었다. 

주시자의 눈을 다른 곳들로 돌려놓고 정찰을 하려던 것이 화근이었다.

기습적인 저격에 마리가 가슴팍과 목에 총탄이 꿰뚫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가슴팍엔 거대한 구멍이 뚫릴 정도로 부상이 심해 사망이

확실시 되자 마리는 기력을 다 해 후퇴 명령을 내리고 숨을 거두었다.



"후우... 마리 당신에겐 딱히 나쁜 감정은 없었어요. 

하지만 사령관님을 위해서니 이해해 주세요."


시라유리가 거대한 철충의 대물 저격총을 구석에 집어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충의 대물 저격총을 입수하기 위해 꽤나 고생했기에

짜증이났지만 칭찬과 함께 꽃 한송이를 건네주는 사령관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라유리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어머, 마침 저도 그래요. 당신에겐 딱히 원한은 없지만...

주인님을 위해서니 당신이 이해해 주세요."


"뭐, 뭣?!"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리리스, 그런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시라유리는 얼어붙었다. 그리고 리리스가 웃는 얼굴로 권총을 그녀에게

겨누고 망설임 없이 발포했다.


타앙-! 탕! 탕!


가슴에 두 발, 목 언저리에 한 발. 확실하게 상대를 절명 시키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조준사격 이었다. 


"커헉! 크흑..!"


피를 울컥 토하며 뒤로 쓰러지는 시라유리. 그녀가 쓰러지며

사령관이 주었던 아네모네 꽃이 바닥에 떨어졌다.


"허억...! 커헉..!"


피를 토하면서 필사적으로 기어 그 꽃을 향하는 시라유리.

그런 그녀의 뒤를 리리스가 천천히 따라갔다.


"어머? 그 꽃은.. 후후. 아까 주인님이 주신거군요.

시라유리 양, 그 꽃의 꽃말은 알고 계시나요?"


피를 토하며 흐려지는 시선으로 필사적으로 꽃을 다시 집어들어

가슴팍으로 가져가는 시라유리. 그런 그녀의 머리에 리리스가

총을 겨누며 말했다.


"그 꽃의 이름은 아네모네."


철컥.


시라유리의 목숨을 끊을 탄환이 리리스의 권총에 장전되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탕!


시라유리의 머리를 확실하게 날려버린 리리스가 권총을 

권총포켓에 넣고 말을 끝냈다.


"배신, 그리고 속절없는 사랑.. 그동안 주인님의 쓰레기 청소부

역할.. 감사했어요. 이제 치울 쓰레기가 없으니.. 그 자리는 제가

다시 차지해야겠네요. 후후후."


시라유리의 시신을 뒤로한채 리리스가 등을 돌려 사령관이

기다리고 있을 오르카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리리스가 사령관에게 받은 꽃은 분홍색 장미

그 꽃의 꽃말은 행복과 믿음, 그리고 사랑의 맹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