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화(첫 만남)   2화(등대로)   3화(시동 걸기)   4화(초읽기)  5화(고비)  6화(미친놈과 더 미친놈)


“아이고 허리야...괜찮은가, 그레고르 사령관?”

“넌 허리도 없으면서 허리가 왜 아파?!”

“좋아, 멀쩡한 것 같군!”

“본 기체에 손상 없음. 작전 수행 가능함.”

“그건 다행이네...근데 여긴 어디야?”

“목표 좌표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으로 추정. 아군과 합류하는 것을 추천함.”

“그래, 서둘러서 가자. 여기서 밍기적거리다가는 철충이-”

“그레고르 사령관! 숙이시게!”

“뭐? 무슨-으아아!”


                                                                             

 

“그리폰, 요안나 씨, LRL! 주인님의 새 지시야! 지원군 포드가 착륙했으니, 그쪽으로 스토커를 유인 하라셔!”

“뭐? 유인하라고? 그쪽이 우리 쪽으로 오는 거 아니었어?”

“궤도가 틀어졌대! 원래 목표로 한 위치보다 더 멀리 떨어지셨다나 봐!”

“죽여주는군.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레고르가 이쪽으로 지원을 오고, AGS들과 스토커를 처리하는 사이에 인간이 오르카 쪽으로 후퇴하는 전략이었을 텐데, 뭔가 아다리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완전히 계획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 없을 걸세. 그레고르 주군이 스토커 근처에 착륙했으니, 놈도 그쪽으로 눈길을 줄 수밖에 없겠지. 위험하긴 하지만, 전세를 뒤집을 기회일세.”

“좋아요, 그럼 서둘러 합류하고 작전을 계속하죠. 명심하세요. 스토커를 밀어붙이지 못하면 두 주인님 모두 위험에 처할 거에요. 포드에 도착하면 서둘러 재정비할 준비를 하세요.”

“어...근데 말이야, 저 덩치 큰 놈을 해치운다고 해도, 인간은 계속 위험한 거 아니야? 철충이 몰려들고 있잖아?”

 

LRL이 맹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봤다. 분명 작전 시간에 다 설명해줬을 텐데, 얜 뭘 한 거야?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고는 작전을 설명해줬다.

 

“꼬맹이 넌 작전 브리핑 시간에 졸았냐? 네가 스토커라고 생각해봐. 지금 당장 눈앞에서 그레고르랑 우리가 자기 머리통을 날려 먹으려고 하고 있는데, 병력을 되돌리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

“...그래도 인간이 위험한 건 똑같잖아? 스토커가 병력을 안 돌리면?”

“그럼 후딱 해치우고 인간 쪽으로 다시 합류하면 되지. 어차피 난 날아다니니까.”

 

그제야 꼬맹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머리 둔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좋아, 가자! 서둘러! 꾸물대다간 스토커가 우리를 앞지를 거야!”

“나와 LRL은 좀 뒤처지겠군. 상관 말고 먼저 가시게, 금방 따라갈 테니.”

“네, 그럼 나중에 봐요. 그리폰, 가자!”

 

인간이 보내준 좌표를 향해 죽어라 뛰기를 몇 분. 중간중간 덤벼드는 스토커 휘하 철충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스토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뒤따라오는 요안나와 꼬맹이가 알아서 처리 중이기를 바라며, 목표 지점을 향해 계속 뛰었다.

 

“콘스탄챠, 여기 맞지?”

“응. 근데...포드는 어딨지? 그레고르 주인님? 들리세요? 여긴-”

 

콘스탄챠의 말을 끊듯, 어디선가 총성이 울려 퍼졌다. 펍 헤드는 테이저건을 쓰니, 저건 폴른인가? 하늘에서 정찰하고 싶지만, 아직 스나이퍼의 처리가 끝나지 않은 이상, 섣불리 이룩했다가는 벌집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총성?! 어느 방향이지?”

“폴른이 근처에서 교전 중인가 봐! 콘스탄챠, 보리한테 안내하라고 할 수 있겠어?”

“이미 수색 중이야! 모두 따라와!”

 

폴른의 화력이 무시 못 할 수준이긴 하지만, 쪽수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다. 서둘러 찾지 못하면 계획이고 뭐고 다 끝장이다.

 

[콘스탄챠 씨! 들리시나요?]

“네, 주인님. 말씀하세요.”

[저희를 포위하고 있던 철충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요.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레고르 씨와의 합류는 아직인가요?]

“그리폰과 제가 먼저 도착하긴 했는데, 아직 포드를 찾진 못했어요! 폴른의 총성이 들려서 그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알겠어요. 지원군과 만나면 우선 주변을 정리한 뒤 매복해 계세요. 그레고르 씨가 스토커의 주의를 끌면, 주변에서 기습하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스토커를 기습한다라, 잘만 한다면 순식간에 전투를 끝낼 수 있겠지만, 위험부담이 적지 않다. 기회는 한 번뿐이겠군. 미사일 런쳐를 쥔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컹! 컹!”

“이 앞이야! 전투 준비!”

“오케이! 미사일 장전 완료!”

 

잔뜩 긴장한 채로 풀숲을 헤쳐나가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입구가 반쯤 찌그러진 포드, 수많은 철충의 잔해, 남아있는 철충을 하나하나 사살하고 있는 폴른, 그리고 그 옆에서 압도적인 전압으로 철충들을 회로 째 태워버리고 있는 재퍼.

 

“...재퍼?”

“응?”

 

재퍼? 그러니까, 철충? 아니, 철충이 왜 같은 철충을? 뭐지?

 

“그레고르 사령관에게 보고함. 바이오로이드 병력들의 합류를 확인함.”

“왔냐? 멀뚱멀뚱 서 있지만 말고 좀 도와줘!”

“지금 저 재퍼가 말한 거야? 잠깐, 저 목소리...”

“설마...그레고르 씨?”

“그럼 누구로 보이냐?!”

“나도 잊지는 말게나!”

“펍 헤드 씨?! 의식은 멀쩡하세요?”

“걱정하지 말게! 쌩쌩하니! 다 포츈 양의 생체회로 덕분이지!”

 

자세히 보니 펍 헤드의 머리 부분은 감염되지 않은 상태로 멀쩡히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도 못한 광경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콘스탄챠, 쏠까?”

"...급소는 노리지 마."

“야, 야, 야! 나 이미 안전한 사람이라고 결론 난 거 아니었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 꼴을 보고 어떻게 안 쏴! 영락없는 철충이구먼!”

“아, 그건 걱정하지 말게! 외모는 그렇지만, 그레고르 사령관이 감염시킨 부분은 내 무기뿐이니. 기체의 통제권은 아직 내게 있다네!”

“펍 헤드! 넌 딴짓하면 안 되지! 조준은 네가 하는 거잖아!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나도 원해서 이런 거 아니야! 어쩌다 보니 된 거라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면 ‘어쩌다 보니’ 철충 감염을 일으키는 걸까. 질문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머리가 오버플로우 되는 느낌이다.

 

“잠깐, 이러면 작전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레고르 씨가 스토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상태라면 문제는 없어. 펍 헤드를 전력으로 쓰지 못한다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완전히 

실패는 아니야. 요안나 씨와 LRL이 합류하면 바로 매복-”

“콘스탄챠아아아!”

 

콘스탄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는 요안나가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고, 그 뒤에는...

 

“스토커가 벌써 도착했다고?!”

“놈이 그레고르 주군에게 생각보다 심하게 집착하는 것 같네! 내가 중간중간 발을 묶어보려 했지만 바로 지나치더군!”

“모두, 전투를 대비하세요! 주인님, 들리시나요?” 

[네, 무슨 일이시죠, 콘스탄챠 씨? 저희도 상황이 그리 여유롭진 않은데요? 응? 콘스탄챠 씨! 뒤에 철충이에요!]

“그거 나야, 임마!”

[...그레고르 씨?]

[그레고르 사령관이 뭐가 어떻길...세상에.]

“지원군과 합류하기는 했는데, 상황이 좀 많이 꼬였어요! 지휘를 내려주세요!”

[아이고 머리야...]

 

                                                       


스토커와의 전투가 시작되고 몇 분, 나와 펍 헤드는 프란츠의 지시에 따라 이따금 몰려드는 철충을 처리하며 스토커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아니, 사실 프란츠의 지시는 그냥 포드 옆에서 대기하라는 거였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전력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겸 철충을 처리하는 거다. 내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프란츠의 지휘하여 바이오로이드들과 폴른이 스토커와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미사일 재장전 중! 이제 두 발 남았어!”

[스토커가 거리를 벌리고 있어요! 쫓아가세요! 녀석이 레일건을 충전하면 안 돼요!]

“내 앞에서 등을 보이다니, 배짱도 좋군!”

[좋아요, 요안나 씨가 발을 묶는 사이에 녀석의 코어를 노리세요!]

 

프란츠의 지휘에 따라 콘스탄챠와 폴른이 총알을 퍼부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청량한 쇳소리와 멀쩡히 날뛰고 있는 스토커뿐이었다. 장갑이 여간 두꺼운 게 아닌가 보군.

 

“프란츠 사령관에게 보고. 아군 공격의 도탄을 확인함.”

“장갑이 너무 두꺼워요! 이 정도 화력으로는 모자랄 거에요!” 

[그리폰 씨, 미사일 쏠 수 있으신가요?]

“저렇게 날뛰는 놈의 코어를 어떻게 노려? 난 저격수가 아니라고!”

“무슨 대책이 없다면 빨리 생각해내시게나! 더는 놈의 주의를 끌 수 없을 것 같네!”

 

스토커 앞에서 주의를 끌고 있던 요안나가 소리쳤다. 자세히 보니, 스토커의 맹공에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시간을 더 끌면 스토커가 빠져나갈 정도의 빈틈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방법까진 쓰기 싫었는데...포츈 씨? 괜찮을까요?]


프란츠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자기 옆에 있을 표츈에게 물었다. 최후의 방법이라. 뭐지?


[지금은 그 방법 말고는 답이 없거든? 기체에 부하가 심하긴 하겠지만, 전부 죽는 것보다는 낫거든?]

[...요안나 씨! 뒤로 물러나세요!]

“알겠네!”

 

요안나가 방패를 내리자, 스토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와 펍 헤드를 향해 돌진했다. 잠깐만. 이거 설마?

 

“프란츠? 설마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야?”

[펍 헤드 씨, 기회는 한 번이에요! 녀석의 다리를 노리세요! 그레고르 씨는 펍 헤드 씨의 출력을 최대한 올려주세요!]

“알겠네!”


아무래도 정답인 듯 하다. 나와 펍 헤드가 스토커를 감전시키는 사이 그리폰이 미사일을 맞춘다는 작전. 사실 평범한 펍 헤드라면 불가능한 작전이지만, 내가 무기를 감염시킨 탓에 충분한 화력이 나올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잠깐만! 포츈이 기체에 부하가 심하다니 뭐라느니 했잖아? 괜찮겠어?”

[그리폰 씨가 미사일을 한 번에 맞추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요! 포츈 씨도 허락했으니,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폴른 씨와 콘스탄챠 씨는 두 분을 엄호해주세요!]

“아니, 막무가내인 것도 정도가 있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올라왔다. 펍 헤드가 테이저건을 스토커의 다리에 박아넣었다.

 

“테이저건 출력 최대! 이 다음은 맡기겠네, 그레고르 사령관!”

“...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머릿속으로 몸에 힘을 집중시키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곧, 펍 헤드의 테이저건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토...커...의...움직임...을...멈...췄네...!”

“역시나...길게 유지는 못 할 거야! 프란츠, 서둘러!”

[그리폰 씨! 스토커의 코어를 노리세요!]

“...좋았어, 명중! 이제 코어가...어?”

[맙소사. 저걸로도 멀쩡하다고?!]

 

그리폰의 미사일이 직격으로 맞았지만, 스토커의 장갑은 약간만 찌그러지고 말았다. 여러 발을 더 박아넣으면 좀 부서질 것 같기도 하지만, 그리폰의 로켓은 이제 한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안...녕하신...가...내 이...름은...펍 헤...드...6급 경...찰 공...무원...로봇...”

“프란츠?! 얘 상태가 영 말이 아닌데?!”

 

펍 헤드의 몸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잘 돼봐야 합선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배터리 합선으로 인한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몸에 흐르는 전류가 내 불길한 예감을 더 부추기는 듯했다.

 

[어어, 그러니까, 그...]

 

프란츠도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허둥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생각해놓은 대책은 여기까지였나 보다. 그렇다면...

 

“그리폰! 포드를 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사출 포드에 탄약 실어온 거 기억하지? 거기에 네 로켓도 챙겨왔거든? 유폭시키면 저 녀석의 장갑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을 거야!”

[안돼요, 그레고르 씨! 너무 위험해요!]

“맞아! 거기도 폭발 범위 안이라고! 펍 헤드는 튼튼하니까 그렇다고 쳐도, 넌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겠어?!”

“지금 그게 중요해?! 명령이니까 그냥 쏴!”

 

나도 어차피 강철로 만들어진 몸이다. 어지간한 폭발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않겠지?"

“아, 몰라! 책임은 네가 지는 거다! 전원 고개 숙여!”

 

쾅!

 

"어, 잠깐만. 이거 생각보다 폭발이 큰-"

 

콰과과광!




다음화

                                                                                   

일단 이걸로 1지 끝

이 다음부터는 캐릭도 꽤 많이 나오니 기대 반 걱정 반임

사실 글 쓰는것보다 합성 짤 만드는게 더 재밌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글인데 봐주시는 분들은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