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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암... 


음..."


ㅡ!


"윽!"


옆에서 들린 인기척에 몸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졸린 눈으로 보인건 아침식사를 들고온 콘스탄챠. 내 손이 그녀의 목을 비틀준비를 마친게 보였다. 조금만 늦게 정신을 차렸으면 큰일날 뻔 했다.


"끄윽... 죄송해요 주인님.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재빨리 목을 조르고있는 손을 풀었다. 콘스탄챠의 신체능력이라면 이런건 쉽게 뿌리칠 수 있었을테지만 진짜 날 주인으로 생각하는지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사과할게 콘스탄챠. 그런데 내 방에는 왜들어온거야?"


오르카호에 들어온 첫날. 가장 큼지막한 방을 배정받고선 씻을새도 없이 잠들었다. 며칠간 누적된 피로가 한번에 몰려와서 정말 쥐죽은듯이 푹 잤었다.


"저도 일단은 메이드니까요. 전투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가사와 업무보조도 가능해요."


"그렇구나. 그게... 내 아침식사는 저거였나?"


내가 그녀의 목을 조르면서 엎어져버린 식사. 


젠장. 또 분위기 싸해진다.


"앞으로 내방에 들어올때는 노크는 필수. 그리고 절대 잠들어있는 내 옆으로 다가오지 않기. 


아. 이건 다른 녀석들한테도 전해줘."


용병생활이 이렇게 무섭다. 그녀가 바이오로이드여서 멀쩡하게 움직이지만 인간이었다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좀 예민한건 알고있다.


'그래도 이렇게 안하면 죽었으니까...'


"옷 갈아입는걸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오늘은 또 뭐해야해?"


일단 내 한몸 건강하게 있는이상 난 만족한다. 이런 안전한곳에 살수있다면 딱히 더 바랄것도 없다. 앙헬도 이미 죽었을테고 내가 아는이들도 이미... 


"함장실로 와주세요. 


우리... 아니, 저희의 목표에 대해 설명드릴게요."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방 밖을 나섰다. 어떻게든 그가 우리의 주인이... 오르카호의 사령관이 되는걸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만 했다.


***


"왔어? 거기 옆에 적당히 앉아."


"어... 거기 누가봐도 사령관자리 아니야?"


"그런데?"


...


나름 말끔하게 입고선 방에서 나오 함장실의 문을 열었다. 날 기다리고있는건 너무나 당당하게 사령관이 앉을자리를 점령한 붉은소녀와 다른 일행들. 하나같이 언짢은 얼굴인걸 보니 내가 오기전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핵잠수함에 미사실하나 없다고?! 지금 나한테 장난하는거야?"


"그게... 누나가 주거시설을 늘려야려고 싹다 치워버렸거든."


"하... 됐어. 기대한 내가 바보지.


뭐해? 얼른 앉아 사령관."


"앉을자리가 없는데?"


"그래? 그러면 내 옆에 앉으면 되겠네."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내가 덜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의 바로 옆에 앉았다. 아니 정확히는 살짝 떨어져서.


"이러면 설명해주기가 어려운데? 조금더 가까이 오지?"


"우리 그정도 사이는 아니지 않아?"


눈앞의 거대한 흉부도 부담스러운건 사실이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눈앞에 있는건 인간을 갓난아이 손목 비틀듯이 죽일 수 있는 지휘관계체다. 이명도 모르는 녀석이니 성향도 전혀 파악이 안된다. 


'성격이 더러운건 알겠지만...'


"역시 마음에들어. 


지금 이순간에도 날 죽일수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잖아. 


안그래?"


텁.


내가 은근슬쩍 손에 쥐었었던 연필을 그녀가 다시 뺴았아간다. 그녀가 자리에 있는 장치를 익숙하게 조작하자 우리 눈앞에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난다.


"좋아. 그러면 지금 상황에 대해서 어디까지 들었어?"


"어... 인간들이 박터지게 싸우다 뜬금없이 나타난 철충한테 멸망해서 전쟁이 다 끝났다?"


"전쟁이... 끝나? 하핫! 농담도.


전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어. 지금 이순간에도, 지상에도 공중에도 도심에도 페허에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우리가 그 벌레같은 놈들을 섬멸하지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끝나."


그녀가 화면을 넘길때마다 멸망전의 자료들이 보인다. 참혹하게 학살당하는 시민들과 철충에게 잠식당해 역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AGS.수많은 참혹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넘어간다.


"권속이여... 짐은 속이 안좋구나..."


좌우좌가 안색이 파래져서 함장실 밖으로 나간다. 잠시 뒤 화장실쪽에서 구역질소리가 들린다.


"그만두세요. 주인님은 아직 그 모든걸 받아들이기에는 일러요. 조금만 더 천천히..."


"으음? 내 생각은 다른데?"


그래서. 이 모든걸 본 감상은?


...


...


"아무것도.


그냥 그런데?"


딱히 이제와서 어떻게 할수있는 일도 아니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막아보며 노력은 하겠지만 옛날사진 몇장 본다고...


"주군. 무감정한척하지 말게나. 주군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건 알고있네."


"아니야 요안나. 그냥...  많이봐서 익숙해진거야."


"좋아. 그렇다면 귀.찮.은 과정은 다 생략해도 되겠지?"


계속해서 화면이 넘어간다. 인간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바이오로이드들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바이오로이드들은 주인이었던 인간의 유지를 이어받아 철충과 끝나지 않을듯한 전쟁을 하고있었다.


"이상한데? 철충들이 아무리 강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린다고?"


넘어가는 자료 중에서 어느순간 이상한점을 발견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바이오로이드가 급격하게 밀리고있다. 


'휩노스... 병? 그건 또 뭔데?'


"뭐 자세히 설명하자면 연결체가 어쩌고저쩌고 여러 요인들이 있었지만... 


다 집어치우자고."


붉은 머리카락이 내 귓가에 스친다. 어느순간 다가온 그녀는 내 멱살을 잡고있었다.


"말해 사령관. 나에게 명령하면 돼.


 저 벌레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라고 말해. 그거면 충분해.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해."


명령을 내릴 인간이 없었다. 이건 치명적인 문제였다. 군용으로 제작된 일부 바이오로이드들은 과거에 받았던 인류재건의 명령을 수행하기위해 움직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는 인간과 비슷한 뇌파를 가진 철충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나간 자매들이 수없이 많다.


그녀는 이런 지지부진한 싸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 세상을 석기시대로 되돌리더라도 자신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안겨준 저 버러지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싫어.


명령이다. 손을 놔."


통하지 않는다.


"명령이다. 내게서 떨어져."


움찔.


명령이다 움직이지 마.


명령이다 나한테 지시하지 마라.


명령이다 주제를 알도록


명령이다...


계속해서 명령을 이어나간다. 미리 생각해놓은 순서대로 그녀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도록. 다시 움직이려할때쯤 다음 명령을, 내 멱살을 쥔 손에 힘이 들이갈때쯤 또다른 명령을.


명령이다. 


너의 사령관은 나다.


아무리 그녀라도 모든 명령을 무시할 수 있는건 아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명령부터. 그것에 저항했다면 점점 더 중요한 명령순으로, 그것에 가까스로 저항하더라고 그것보다 더한 명령을 내리면 된다.


서서히 그녀의 손발이 이윽고 완전히 힘이 풀린다. 허수아비처럼 서있을수밖에 없게된 그녀는 그럼에도 미소짓고있었다. 


그가 다가온다. 어제보다 훨씬 더 위험한, 불꽃같은 남자가 다가온다.


"후...


명령이다. 판단은 내가한다. 


너희 사령관은 나다."


"아... 역시."


너는 정말 최고야 사령관.


쪽.


"너?! 지금?"


"왜그래 사령관? 이 몸이 주는 상이니 감사히 받으면 돼."


그녀는 더이상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얌전히 사령관용 좌석에서 내려와 옆에 앉은 그녀는 자신의 안목이 맞았다는걸 다시한번 확인했다.


***


"...이렇게되서 결국 사령관님이 필요해진거예요."


당했다. 


얼떨결에 사령관 하겠다고 말해버렸다. 저 악마같은 꼬맹이가 만족스러워하는걸 보니 제대로 걸려든 것 같다.


"알았어. 할게 사령관 한다고. 


그런데 뭐 대단한 전술을 기대해도 곤란해. 나는 일개 용병이고 할수있는거라고 해봐야 내 주변에 몇놈정도 돌보는거라서."


진심이다. 이대로 여기 앉아서 전략전술이나 짜라고 한다면 난 즉시 이 자리를 박차고나올 자신이 있다.


"그건 걱정하지마 사령관. 그런건 내가 알아서 해줄테니까.


메이. 내 이름은 멸망의 메이야."


'이명이...멸망이라고?'


지휘관계체에게는 그에 '걸맞는'이명이 붙는다. 그것에는 어떠한 허세나 허풍도 없다. 불굴의 마리는 허명이 아니라는걸 직접 확인했으니까 알고있다.


"좀 놀랐나봐? 내가 담당하는건 전략적 판단. 그리고 대량살상기의 운용이야."


"콘스탄챠. 저 말이 사실이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던 콘스탄챠는 머릿속 한구석에서 멸망이라는 이름을 떠올려냈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분명 둠 브링어의 지휘관이자 저항군을 이끌던 리비아타에게 조언을 하던...


"...네. 리비아타언니도 그녀의 판단만을 신뢰하고 믿었었어요."


"적어도 능력은 의심할여지가 없다는 것이군. 허나 나의 주군은 그대가 아니네. 


지금까의 무례한 행동으로 보아. 나는 그대의 판단을 믿고 따라도 될지 의심스럽네."


요안나는 불신에 가득찬 표정으로 메이를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검을 뽑을 생각이었건만... 


벌써 두번이나 주군의 신변을 위협할만한 행동을 했다. 그녀가 누군지는 몰라도 저렇게 충동적인 이가 지휘를 맡는다면 어떻게될지는 뻔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뭐?


장난해? 이몸이 설마 그런 실수를 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물론 메이에게 그런 의문을 표하는건 그녀에 대한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녀의 옥좌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무심결에 작은 버튼을 눌렀을지도 모른다.


"잘 들어. 머저리.


나는, 


'둠 브링어'는 절대 폭격지점을 틀리지 않아."


"자자! 일단 거기까지 할까?"


이래가지고 인류 재건은 무슨. 폭발하기 직전인 메이를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요안나도 자리로 돌려보낸다. 


"요안나. 일단 메이가 미덥지 못하다는거지?"


"그렇네 주군."


"그러면 일단 한번 시험해보면 되지 않을까?"


사실 나도 못미덥기는 마찬가지다. 그녀가 '둠 브링어'의 지휘관이라는건 놀랄만한 사실이지만 겉으로 보이에는 무장은 커녕 아무 무기도 가지고있지 않은것처럼 보였다. 아직 우리는 메이의 능력을 전혀 모른다.


"사령관.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게 뭐라고 생각해?"


"없는게 너무 많아서... 굳이 따지자면 인력 아닐까?"


이 거대한 잠수정에 있는거라곤 열명도 채 되지않는 바이오로이드와 나 하나밖에 없다. 지휘는 뭐든 할수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 우리가 제일 처음 해야할일은 인력확보야."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하고 여기도. 


아 그리고 여기까지.


홀로그램위에 띄워진 지도에 수십게의 점이 찍힌다. 그 옆으로 더 많은점이 찍한다. 우리와 가까운 점들중 일부만이 붉게 빛난다.


"지금 들어오고있는 구조요청 신호들이야. 다 구하기는 무리고 가장 생존확률이 높은곳만 추려봤어."


"가장 생존확률이 높은 곳이라고?"


이미 화면에 찍힌 점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 저 개수가 추린거라니. 


"왜 이런짓을 한거지? 


어떤 미친놈이 소규모 스쿼드로 군대를 갈갈이 찢어놓냐고!!


각개격파해주세요! 광고하는거야!?"


쿵!


순간 감정이 격해져 책상을 내리쳤다. 


이게 무슨 미친 짓거린가. 저렇게 뿔뿔이 흩어져 구조요청을 보낼 정도면 그것조차 못보내고 죽은 이들이 배는 될것이다.


"주인님. 이건 리비아타 언니의 계획이었어요. 저희로서는 상황이 절박했고... 인간을 찾지 못한다면 더이상 희망은 없었으니까요."


"날... 찾으려고?"


"뭐. 어차피 인간만 있으면 병력은 보충할 수 있으니까."


메이의 무심한듯한 말에 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인간을... 나 하나를 찾기위해 저렇게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뿔뿔히 흩어졌단 말인가? 죽을확률이 더 높은 사지 제발로 걸어들어갔다고?


"잘 기억해 사령관. 


너무 자기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 


사령관의 목숨은 생각보다 많이... 비싸더라고."


늘 자신만만하던 메이의 얼굴에 아주 잠깐. 씁슬한 미소가 감돌았다.